穀日은 '곡식날'이라는 뜻. 정월 초여드렛날의 다른 이름이다. 穀日에는 갖가지 볶은 곡식으로 농사를 망치는 해충을 쫓는 呪術(주술)이 널리 행해졌다. 지방에 따라 판본이 조금씩 다르다. 경남 居昌(거창)에서는 콩을 볶아 '새삼 볶자 새삼 볶자'라고 외치며 콩을 심을 밭 여기저기에 볶은 콩을 뿌렸다 한다. 새삼은 메꽃과의 잡초. 고려 때 鳥伊麻(조이마) 조선 때 鳥麻(조마)는 鳥(새 조)와 麻(삼 마)의 뜻 부분을 취한 吏讀(이두)이다. 새삼 볶기를 하면 콩 농사를 망치는 잡초인 새삼이 나지 않는다고 믿었다.
穀日을 '좀날'이라 부르기도 한다. 穀日에 五穀(오곡)을 볶아 먹으면 좀이 슬지 않는다는 믿음에서 나온 말이다. 좀은 옷이나 책을 갉아먹는 벌레. 澱粉(전분)이 있는 물건은 죄 먹을 수 있다. '좀먹다'는 드러나지 않게 조금씩 자꾸 해를 입히는 일. '세월이 좀먹나'는 좀 느긋해지라는 말이다. 좀을 고상하게 부를 때는 壁魚(벽어)라고 하는데, 영어로 좀을 은빛 물고기(Silverfish)라고 하는 것과 뭔가 통한다.
韓非子(한비자)는 공리공담을 일삼는 學者(학자) 입만 벌리면 옛날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言古者(언고자), 제멋대로 무기를 지니고 다니는 帶劍者(대검자), 일을 두려워하는 患御者(환어자), 본업에 충실하지 않는 商工之民(상공지민) 다섯 가지 부류를 五蠹(오두)라고 불렀다. 五蠹는 '다섯 가지 좀'이란 뜻이니 나라를 좀먹는다는 말이다. 오늘이 穀日. 좀을 쫓는 액막이나 한판 벌여야겠다.
출처:국제신문 글 임형석 경성대 중어중문학과 외래초빙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