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침 땅굴 어록.
1988년 10월 수도군단장 정인균 중장, 우리 요원이 김포반도에 장거리 남침땅굴이 파고들어 온것을 보고했는데 해병대에서는 아는 사실입니까? - 해병대 사령관 대답; 전혀 사실 무근입니다. 그런 일이 없습니다. 12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받은 적이 없답말입니까? 전혀 사실 무근입니다. 그런일이 없습니다. + 직속상관인 군단장님은 남침땅굴 보고서를 이선에서 마무리 했다.
당시 내고향 친구 배학무는 24시간 군단장과 생활을 같이 하는 당번병으로 근무를 했다.
보안사 대공 수사1과 반장 정지용 준위, 이창근이 보고서 보았는데 군에 계속 남아 나
1988년 와 같이 근무할생각이 없는가?- 이때부터 지용형과 나의 친밀한 관계는 시작 되었다.
1988년 이종창 신부님, 분명합니다. 정말 수고 했어요, 남침땅굴 맞습니다. 김포를 지나 수참리 향산리에서 검단방향으로 갔어요!
1989년 3월 해병대 부사령관 박환인 장군, 난 김포반도에 남침 땅굴이 들어온 것을 확신한다. 그 이유는 내가 2사단장시절 산속에서 대전차 방벽 장어물을 세우는데 수많은 돌들이 나와서 쌌으며 황해도 여안에는 돌가루를 바다에 버려 물색갈이 뿌였게 변할정도 였다. + 박환인 장군은 나에 백부이시다. 내 친구 고등학교 동기인 박선기의 친 아버지이시자 해병 2사단장 시절부터 애기봉에 자주 올라오셔서 맛있는 음식도 주시던 자상하신 학자이자 군인이셨다.
1991년 25사단장 김무웅 장군, 육본에 연락해봤나? 아니 내가 직접 김진영 총장님을 만나 뵈러 가겠다. 그 보고서 가지고와? . . . . . . 군수참모? 내가 책임 질테니 다이너 마이트을 가지고 와서 그 시추공에 넣고 폭파해라! + 김무웅 장군! 육사20기 하나회 선두 주자이자 차기 육참총장이라고 내외 안팍에서 공인되신 분이셨다. 연천땅굴은 6개가 침투했다. 아미리 구미리 고랑포리등 아미리의 남침땅굴을 분명하다고 증거를 찾았으나 절개를 하는데 막대한 비용을 육본에 보고하자 거절 되었다. 당시 김무웅장군은 땅굴을 절개 못한다면 훼파하라!고 명령을 내리셨다. 우리는 망연자실했다. 우리의 노고와 공로는?하고 작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난 남침땅굴이 발견 않되도 중요하지 않다!” 훼손하고 파괴해서 무용지물로 만들면 된다. 걱정할 필요없다고 당시 자신 만만 하셨다. 그 후 합참의 꽃이라고 불리는 한미 합동 야전군 부사령관으로 영전되셨다. 우리는 수도군단장이나 수방사령관으로 가시는 것으로 소문이 무성했다. 그후에도 땅굴에는 지대한 관심으로 전방에 “블랙 버드”라는 정찰기를 미군에 협조해 땅굴작업에 흔적을 남기는 버럭처리를 촬영하고자 보내기도 하셨다.
2,3,4땅굴을 찾앗지만 이렇다할 버럭은 북쪽에 정찰된바가 전혀 없었다.
고로, 탐지과의 버럭 처리 문제의 전제가 되는 장거리 남침땅굴의 부인설은 어부성설이다.
1992년 월간 조선 조갑제 편집부장, 난 처음 당신을 의심했다. 당신들이 남침땅굴을 이용해서 안보를 내세워 여당의 편을 드는 공작음모를 하는 줄 알았다. 이 자리서 사과 한다.당신들은 정말 애국자다. + 당시 언론에 알릴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찾아 간곳은 월간 조선의 조갑제 부장님이 였다. 그 후 조갑제 부장은 자신의 모든 기력을 총동원해 우리가 청음한 녹음테잎을 가지고 일본까지 건너가서 쓰지기 마쯔미 박사에게 갱도 안에서 녹음 된것이 확실 하다는 결과물을 월간 조선에 1년이나 연재 하였다.
1992년 노동부 장관 최병렬, 나는 민간인이 남침땅굴이라고 제출한 그 소리가 암반이 부식되면서 나는 소리라고 믿지 못하겠습니다. 더 정밀하고도 과학적 조사가 이루어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정원식 국무총리시절 국무회의에서 김진호육참정보부장의 땅굴 소리의 청음이 암반이 부식되면서 나는 소리라고 일축했을 때, 항변 하셨다.
나는 당시 원박 쓰리최라는 말이 정보요원들간에 무성이 오간 말들을 알고 있었다.
이는 원박은 박철언씨이며 쓰리최는 최병렬, 최성락, 최시중씨 였으며 이는 노태우대통령의 신임과 봉황의 마음을 움질일수 있는 분들이라고 하여 은사인 최성락 교수님을 찾아가 남침땅굴의 위급함을 설명하고 최병렬 장관님께 찾아가 하소연 했다.
최근 서울 강남에 모 호텔에서 당시에 이야기를 술안주 삼아 찾아뵈었다.
당장 사위가 국정원검사라고 하시며 열정으로 전화를 거시며 알아보라고도 하셨는데,대답 은 국정원은 정보를 서비스 하는 곳이지 판단하여 결정을 내리는 곳이 아니라며 곤란하다고 하는 답을 들었다. 첨가하여 국방부 합참장군들은 죽어도 아니고 대적 경계에 빈틈이 없으니 걱정마시라는 권고를 받으셨다 한다.
1993년 육군 정보 참모부 차징 이향수 장군, 이버러지 같은 놈들아? 이 꽁짜로 밥먹는 놈들아! 왜 허위보고하고 거짓말만 하는 거야! 너희들 전시에는 즉결 처분이 야 알겠어?- 육본 정참부 소속 땅굴 탐지과 지하 벙커에서 권총을 빼어 들고 탐지과장 김영대 대령 심원흠 부이사관등 탐지과 전원이 있는 상태에서 소리를 지르 셨다. 아~ 근데 민원인인 이창근이는 이향수 장군 옆에 서있었다.
탐자과요원이 질책을 받는 자리에 내가 있었으니 나를 좋게 보았을까? 탐지과 요원들이... .
1993년 육군 참모 총장 이진삼대장, 아~ 이놈들 난 이것을 감찰조사로 밝히겠다. 야? 합수부장 바꿔? + 이진삼 대장. 부여의 은산면에 집안 어른신의 먼 친척이라서 소개를 받아 찾아뵈었다. 남침땅굴의 갱차소리부터 녹음 된 소리를 들려 드렸으며 남침 땅굴이 후방 깊숙한 곳까지 왔습니다.라고 하니 의자 자리에 머리를 떨구시며 눈 감고 한참을 숙이고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시다가 자리를 박차시며 하신 말이다 먼곳을 한참 바라 보실땐 정적마져 흘렀다.
1994년 최세창 국방부장관 과학기술보좌관 윤여길박사, - 국방부 예산으로라도 남침땅굴을 밝혀야 합니다. 남침땅굴을 주장하는 민원인들의 말이 맞습니다. 육본이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 우리를 이진삼대장의 지시로 조사해간 합수부 장령 3인은 결론을 못내고 찾아간 곳이 윤여길 박사님이셨다. 육군은 절대로 남침땅굴이 아니라고 하는데 저희가 만나본 민원인들의 증언과 증거들은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데 뭐라고 결론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보좌관님께서 판단을 내려 주십시오. 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후, 2달간 집중적으로 윤여길 박사님은 조사를 하시고 우리가 주장 하는 곳에 추운 겨울 새벽이든 늦은 저녁이 든 같이 하시며 내린 결론이며 이를 최세창국방부 장관께 직보했다.
최세창장관은 예산이 없어서 확인 못한다는 육본의 답에 “국방부예산을 들여서라도 확인 하라고 장관령”을 내린다. 아~ 근데 정권 말기이자 장관이 바뀌었다.
동년, 육군본부 정참부 땅굴 탐지 정보분석관 정희만 중령, 탐지과는 남침땅굴을 찾을 수있는 객관적 판단을 내닐수 없으며 현재의 탐지과는 절대로 남침땅굴을 찾을 수 없습니다.
- 내게 아침 일찍 전화가 왔다. 이창근씨 입니까? 정지용씨도 같이 있습니까? 네, 만납시다.
이형? 난 오는 전역계를 내고 전화하는 거요? 한번 만납시다.+ 경동호텔 커피숖에서 만났다. 땅굴의 핵심부서의 차상급 고급 육사 출신 장교가 내게 2천 5백만원을 주며 연천 땅굴을 찾는데 써달라며 왜? 육본 정참부가 땅굴을 못찾는지 이유를 설명했다. 난 감사하게 생각하며 영수증 아닌 영수증을 써드리며 돈을 냉큼 받고 우리에게 이야기 하는 것 보다 언론인인 조갑제 부장님의 연락처를 드리며 그곳에 가서 말씀을 해달라고 오히려 부탁했다.
그 후, 월간조선에는 무명의 이름으로 대서 특필 되었고 정 중령은 전역하고 뉴우질랜드로 이민 가셨다.
1995년 안현교회 김지길 감독, 이말 이 사실이라면, 이 나라의 운명과 하나님의 나라는 끝입니다. 모든 자료를 주세요? 제가 직접 김영삼 대통령께 말씀 드리겠습니다.- 나는 평소 알고 지내던 교회연합신문의 기자인 이용섭형과 땅굴에 대한 집중적인 논리 싸움과 기싸움을 할때였다. 그런 중 동아일보 해직기자인 이태호형님의 소개로 안현교회 김지길감독님을 종로5가의 남선교회 지하 커피숖에서 뵈었다. +이때부터 비밀 두더지 작전이 시작 되었다.
김영삼대통령의 특명이 떨어졌다. 난 먼저 김지길 감독님을 알아 특명을 도출해낸 기득권이 있었고 정지용형은 전 보안사 대공 수사 반장이란 특권이 있었다.
난 오로지 연천땅굴과 의정부 가능3동 이국진씨집을 고집했고 지용형은 동두천시 광암동을 선택했다.
결론은 경찰관 출신인 이준선생님 중재로 광암동이 선택됬고 난 비선으로 물러섰다.
결론은 또다시 안기부가 은폐했다니 고의로 뭍었다니 호텔에 감금했다니 하는 소리를 들으며 분괴했고 난 지용형과 두 번째 의절을 해야만 했다.
이 후, 권영해부장님이 영어에 몸이 되신후에는 모든 것이 좌절되고 포기 되었다.
난, 남침땅굴 다신 않한다 했다.
1996년 현대 그룹 총수 정주영 회장, 오장군? 저분들이 하는 땅굴이야기가 맞는 말이오? 오장군은 대장 출신인데 한번 말해봐요? 제가 육본에 알아보겠습니다.- 나는 지용형이 오라고 해서 관계개선도 할겸 나갔다. 간곳은 현대 사옥이였고 맨 윗층의 회장실로 갔다. 지용형의 정씨 종친의 후원 일인자였던 정주영회장을 실물로 보는 첫 경험이였다.
1997년 전 대통령후보 김대중, 그렇다면 그 건 국방부일이고 국방부에 질의를 해보는것이 가장 좋은 것이지. 난 마포의 성지 빌딩에 전 보안 사령관 강창성의원을 찾아 뵙고 남침땅굴의 심각성을 말씀올렸다. 강창성의원은 김대중총재를 당사에서 찾아뵙고 같이 점심을 먹었다. 땅굴문제를 말씀올렷으나, 남침땅굴의 문제가 당의 유무의 득실론으로 생각하고 대담했다. 참으로 애석하다못해 우리를 여당의 주빨정도로 판단했다.
첫댓글 남침 땅굴 심각합니다 저역시 이문제에대해 여러번 트윗애드온즈에 글을올렸고 15년간 시추 안해서 지금은 남한 전체까지 파고들었다 주장 했습니다 예전70년대 땅굴은 착암기와 다이너 마이트및 인력위주로 작업했지만 15년전부터 김대중정권을 무력화시킨 북한은 스위스에서 수입한MD기계로 지하 200m 로 파고 들어온 정황이 있습니다 이기계가 북한에 무려 300대나 들여갔다는 정보도 있습니다 심각합니다 하루 빨리 남침용 땅굴 찾아내야 합니다 제가 두번째로 걱정하던 일이며 꼭 실행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