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솔산 전투" 개요
이 전투는 UN군이 중공군의 5월 대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작전을 펼치던 1951년6월4일부터 휴전회담이
시작된 동년 7월10일까지 중동부전선의 미 해병 제1사단에 배속된 한국 해병 제1연대가 '양구'의
북동방 25km에 위치한 '대암산', '도솔산' 및 '대우산'을 연하는 1,000m 이상의 고지군에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이 전선의 전략적 요충지인 '해안분지'(Punchbowl)를 고수하기 위하여 완강히
저항하는 북한군 제12사단을 혈전 끝에 격멸시고 점령한 공격전투이다.
중공군은 1951년4월22일, 수도 서울을 세번째 탈환할 목적으로 참전이래 최대 규모의 전투력을 투입하여
4월 공세를 펼쳤으나, 오히려 막대한 손실만 입고 실패하게 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하여 1개월도 채 못된
5월16일 주공을 '양구'-'인제' 방면에 집중 투입하여 이른바 5월 대공세의 포문을 열었다.
중공군의 공세 초기에는 미군에 비하여 전투력이 약한 한국군의 방어지역을 집중공격함으로써 '현리'
일대에 종심 깊은 돌파구를 형성하였고, 또 선두부대의 일부는 '속사리'(DS 5665)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할 수록 그들의 병참선이 연장됨에 따라 전투력도 한계에 도달하였고 반면에
UN군의 방어력은 강화되었다.
이로 인하여 중공군의 5월 대공세는 공격개시 1주일 만에 778고지(Bunker 고지) - '한계, - '풍암리' - '
속사리' - '주문진'을 연하는 선에서 일단락되었다.
이를 계기로 다시 주도권을 장악한 미 제8군은 중공군이 철수할 기미를 보이자 5월23일부터 즉시
공세작전으로 전환하였으며, 이 작전에서 미 제10군단은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고 5월 말에는 4월
공세 이전의 '화천'저수지 - '양구' - '원통'선까지 진출하였으며 우인접 한국 육군 제1군단도 '간성'까지
진출하는 등 전군이 Kansas선을 재확보하였다.
UN군측은 전쟁 전의 현상을 회복하게 되자 다시 본격적으로 공산측과 휴전협상을 모색하는 한편
군사작전을 Kansas선의 유지를 위한 국지적인 공격작전으로 전환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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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여기서 부터 산행해야 하는곳인데 바라보고 못올라 간데나?.
03.▼작은 돌산령 여기서부터 산행시작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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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도로옆에 전적비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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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양구군 동면 사무소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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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코앞에 도솔산을 바라보고 올라가지 못하니 착잡 하네요...
22.▼저멀리 대암산능선이 광치령까지....
23.▼정상을 포기 하려니 아쉬움만이 가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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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보이곳이 작은 돌산령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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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아쉬움을 남기고 무사 산행에 감사 드린다. 정상은 다음기회가 오면은 답사 해보렵니다.]
첫댓글 도솔산산행 함께하지못해서 아쉽네요,,, 사진 잘보고갑니다. 수고많으셨구요,,,,,,
함께하지 못해 아쉽지만 언제 시간을 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