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30 호감을 사다 시 23; 행 2:42-47; 벧전 2:19-25; 요 10:1-10
지난 주일 형이 목회하는 교회에 위임, 임직식이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순서 맡은 목사님들이 12분이나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현노회장은 물론이고, 전노회장이 과반 이상이어서 또 놀랐습니다. 시골교회에 그렇게나 많은 분들이 참석하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그 교회가 특별한지, 담임이 특별한지, 성도들이 특별한지, 아니면 노회관례가 그런지 아무튼 놀랐습니다. 후에 솔직한 형수님은 “잘 봐달라는 일종의 인사치례”라고 하는데, 그 이야기를 듣던 천안에서 목회하는 자형의 말이 재밌습니다. “사례비 10-20만원에 잘 봐줄까?” 어떤 분은 “1시간 30분이나 걸렸지만 기쁜 마음으로 달려왔다” 고도 하는데, 실망감이 클 것 같습니다. 돈으로 그 가치를 따질 수는 없지만, 최근 동향으로 현실감이 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기도, 설교, 축사, 권면 등에서 공통되는 한 문장이 있습니다. “목사를 중심으로 교회를 잘 섬기면 하나님의 복이 차고 넘칠 것” 이라는 것입니다. 돌아오면서 부정적인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임직은 이미 복을 받았기 때문이고,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잘 믿지 못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기득권과 지도자들은 다 복을 받은 것일까요? 그들을 향한 예수의 날카로운 지적이 스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 본문은 초대교회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믿는 사람이 모두 함께 지내면서...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초대교회의 특징은 사유재산 없는 공동소유, 공동분배에 있습니다. 다른 부분은 일반교회와 비슷합니다. 놀라운 것은 그 결과 사람들에게서 호감을 샀고, “주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초대교회가 될 수 없는 가장 큰 문제가 사유재산일 것입니다. 나의 것과 너의 것을 구분하면서 생기는 질투, 갈등, 경쟁 등이 밑바탕에 자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공동소유, 공동분배 즉, 필요에 따라 나누는 그 이면에는 배려와 이해, 사랑이 밑바탕에 자리합니다. 간혹 사유재산을 주장하지 않는 공동체가 있는데, 대부분 교주의 독점권한입니다. 신도들은 사유재산을 주장하지 않지만, 교주는 자기 권력을 강화하는데 이를 사용합니다. 오늘의 교회가 초대교회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누려는 마음, 이해와 배려가 있다면 사람들의 호감을 사지 않을까요? 또한 주께서 믿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시지 않을까요?
현실적으로 오늘의 교회는 호감을 사지 못하는 쪽입니다. 때문에 날마다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빠지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도 빠지는 이유가 그래서일까요? 이 문제는 차치하고, 세계적으로 교회는 호감보다 손가락질 받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가 교회의 이기심 때문일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사유재산의 문제일 것입니다. 나누지 못하고, 배려와 이해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는 혹자의 말처럼 “친구 아니면 적”일 뿐입니다. 세계 난민, 전쟁, 기근, 지진, 기아 등등의 이유로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경우에도 타종교, 이교라는 이유로 외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크게는 십자군, 십자군 전쟁은 이교도를 적으로 간주해서 잔인하게 죽입니다. 이교도는 사람이 아니기에 죽여도 전혀 무방할 뿐 아니라, 반드시 죽여야 할 대상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적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오롯이 친구에게서만 사랑입니다. 대형교회의 세습은 어마어마한 권력을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자손에게 물려주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몸이 아니라 자신의 사유재산일 뿐입니다. 교회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교주와 다를 바 없는 행태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 우리가 따르는 예수는 어떤 분입니까? 베드로전서 본문은 “본을 남겨 놓으”신 예수를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여러분이 그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시려고...그가 매를 맞아 상함으로, 여러분이 나음을 얻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이를 통해 우리가 고난 당하고, 매맞고, 십자가에 달리기 위한 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위한, 타자를 위한 고난, 매맞음, 십자가! 생각만 해도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 이르지 못한 교회, 손가락질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희생정신까지 요구하지 않더라도, 이기적 교회의 모습은 미래를 예측하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죄를 짓고 매를 맞으면서 참으면, 그것이 무슨 자랑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면서 참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입니다. 바로 이것을 위하여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 우리가 따르는 예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입니다.
복음서에 예수는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서 풍성함을 얻게 하려고 왔다” 그러나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려고 오는 것뿐이다.” 라고 합니다. 예수는 세상에 생명과 생명의 풍성함, 곧 정의와 평화를 위해 왔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러나 도둑은 훔치고, 죽이고, 파괴 할 뿐이라고 역시 분명하게 말합니다. 생명정의평화 대 죽임과 불의와 전쟁은 너무나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곳 소성리에 뿌리내리고 있는 사드는 어느쪽입니까?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전자를 한쪽에서는 후자를 외칩니다. 누구를 살리려고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누구를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까? 미국의 도감청 문제를 놓고, 미국이 보인 태도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친구가 친구를 도청하는가?” 이익에 따라 친구라고 했다가 그렇지 않으면 적이 될 뿐입니다. 동맹은 말뿐이고 “친구 아니면 적”일 뿐입니다. 온갖 불법을 동원해서 평화의 성지에 강제적으로 사드를 심는 모습은 그들의 태도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성리 주민, 지킴이, 연대자들은 그들에게 적으로 보이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짓밟고, 비웃는 태도는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을 향한 고난과 매맞음과 십자가는 생명을 더욱 풍성히 하는 예수의 본을 따라 사는 바로 생명의 사람, 정의의 사람, 평화의 사람일 것입니다. 설교제목처럼 호감을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성지를 지키려는, 사드를 뽑아 내려는 사람이 바로 그런 분들입니다. 침묵합니다.
230430 시 23; 행 2:42-47; 벧전 2:19-25; 요 10:1-10
시 23
1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아쉬움 없어라.
2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3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4내가 비록1)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위로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5주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6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의 집에서 영원토록 살겠습니다.
행 2:42-47
42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함께 음식을 먹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43사도들을 통하여 기이한 일과 표적이 많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44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면서,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45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 가졌다.46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마다 빵을 떼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47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벧전 2:19-25
19억울하게 고난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괴로움을 참으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20죄를 짓고 매를 맞으면서 참으면, 그것이 무슨 자랑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면서 참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입니다.21바로 이것을 위하여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여러분이 그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시려고, 여러분에게 본을 남겨 놓으셨습니다.225)"그는 죄를 지은 일이 없고, 그의 입에서는 아무런 거짓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23그는 모욕을 당하셨으나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난을 당하셨으나 위협하지 않으시고, 정의롭게 심판하시는 분에게 다 맡기셨습니다.24그는 우리 죄를 그의 몸에 몸소 지시고,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에는 죽고, 의에는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가 매를 맞아 상함으로, 여러분이 나음을 얻었습니다.25전에는 여러분이 잃은 양과 같았으나, 이제는 여러분의 영혼이, 목자이시며 감독이신 그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요 10:1-10
1"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넘어 들어가는 사람은, 도둑이요 강도다.2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양의 목자다.3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음성을 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서 이끌고 나간다.4자기 양을 다 불러낸 다음에, 그는 앞서서 가고, 양들은 뒤따라 간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5양들은 절대로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않고, 그런 사람을 보면 도리어 달아난다. 양들은 낯선 사람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6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를 깨닫지 못하였다.7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이 드나드는 문이다.8나보다 앞에 온 사람은 다 도둑이고 강도여서, 양들이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9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이 문으로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들어오고 나가면서 꼴을 얻을 것이다.10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려고 오는 것뿐이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서 풍성함을 얻게 하려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