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玄)의 가치론(價値論) (1)
1. 가치의 의미
우리는 자신 앞에 주어진 대상(물리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이 있을 때, 그것을 자신 내부로 수용해야할지 배척해야할지 결정을 해야 한다. 그리고 수용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위치에 두어야 할지 그 ‘값어치’를 평가해야 한다. 값어치가 높다고 판단이 되면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이며, 수용한 후에는 좋은 자리에 배치하면서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우릴 것이다.
가치(價値)의 순수 우리말은 ‘값어치’이다. 그래서 가치의 한자어(漢字語)는 값 가(價)와 값 치(値)이다. 가치(값어치)는 주체가 대상을 만났을 때, 그 대상의 값을 매길 때 발생한다. 따라서 가치는 주체가 정하는 대상의 값어치이다. 주체가 대상의 값을 매기는 행위를 가치평가라고 한다. 주체가 대상의 값을 보통보다 높게 매기면 평가절상(平價切上)이라고 하고, 낮게 매기면 평가절하(平價切下)라고 한다.
2, 가치의 기준
기치론 혹은 가치철학에서 가치평가를 할 때 기준이 되는 것이 진성미성(眞善美聖)이다. 진은 학문, 선은 도덕, 미는 예술, 성은 종교의 영역과 관련된다. 이 기준에 따라 진실이 거짓보다, 착함이 악함보다, 아름다움이 추함보다, 성스러움이 저속함보다 가치가 높다. 그리고 진실, 착함, 아름다움, 성스러움과 거짓, 악함, 추함, 저속함 중에서도 각각 등급이 있다. 이때의 등급은 시대와 장소의 제약을 받아서, 그 시대 그 장소에서 통용되는 보통의 가치기준이 있게 된다.
진선미성 중에서 성스러움은 종교를 믿는 자에게 가치의 기준이 되지만, 종교를 믿지 않는 자에게 가치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종교를 믿지 않는 자에게 성스러움은 착함과 중복되기 때문이다. 즉 종교를 믿지 않는 자에게 성스러운 자인 성자(聖者)는 크게 착한 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가치론에서는 종교의 영역인 성스러움을 제외한 진선미만 가치의 기준으로 인정을 한다.
3. 진선미 가치기준의 문제점
그런데 필자는 진선미(眞善美)보다는 미리선(美利善)을 가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진(眞)이 가치의 기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이(利)가 가치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진이 가치 기준이 되기 위해서는 진실이 거짓보다 더 가치적이어야 하는데, “전쟁이 일어났다.”는 말이 진실(혹은 현실)이라고 해서, 이 말이 꿈에 불과한 거짓(혹은 허상)인 것보다 더 가치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참과 거짓인 진위(眞僞)의 세계는 객관적 사실의 세계이지 주관이 반드시 참여하는 가치의 세계는 아니다.
그리고 주관이 대상의 값어치인 가치를 매기는 가치평가를 함에 있어서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이익과 손해를 가치론에서 뺀다는 것은 현실을 무시한 이론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미(美)와 착한 행위인 선(善)을 이야기 할 때, 순수한 미(美)와 선(善)을 방해하는 마음가짐이 바로 ‘이(利)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전제(前提)되기 때문이다. 즉 이(利)는 추(醜)와 악(惡)처럼 반가치(反價値)의 계열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4. 미리선(美利善)의 가치기준
미리선(美利善)은 정가치(正價値)이고, 추해악(醜害惡)은 반가치(反價値)이다. 정가치는 좋은 가치이고, 반가치는 나쁜 가치이다. 그러나 이 가치들은 상대적이다. 이익을 얻기위해 추함을 감내하는 것과 선을 행하기 위해서 손해를 보는 것은 좋고 바람직한 것이다. 반대로 손해를 보면서도 미를 추구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을 행하는 것은 나쁘고 바람직하지 않다.
미(美)는 좋다고 느끼는 감정이다. 반대로 추(醜)는 좋지 않(나쁘)다고 느끼는 감정이다. 이(利)는 미(美)를 지속시킬 수 있는 힘이다. 이(利)의 내용이 신체적(체력)이든 경제적(재력)이든 정치적(권력)이든 사회적(지위나 명예)이든 그것들을 소유하게 되면 건강과 의식주 생활이 확보될 뿐만 아니라 보다 좋은 문화와 예술의 생활을 지속적으로 즐길 수 있게 된다.
이(利)를 소유해야만 미(美)를 지속할 수 있음을 아는 것을 흔히 ‘철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철들은 사람은 추(醜)를 감수하면서도 이(利)를 추구한다. 예를 들면, ‘잠이라는 달콤함’을 참고(추를 감수) 시험공부를 열심히(이를 추구)한다. 이에 반해 철들지 못한 사람은 순간적 쾌락에 빠져(미를 추구) 건강을 해치거나 사회의 경쟁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한 힘을 기르지 못한다.(해를 지님) 철듬이 깊어지면 현명하게 된다.
선(善)은 이(利)를 지속시킬 수 있는 힘이다. 선은 남이나 공공(公共)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와 마음가짐이다. 선(善)을 추구해야만 이(利)를 지속할 수 있음을 아는 것을 ‘현명하다’고 한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은 해(害)를 감수하면서도 선(善)을 추구한다. 예를 들면, 의사로서 일을 할 때 환자들의 이익을 우선(선을 행)하며, 자신의 손해(노고와 금전적 피해)를 기꺼이 감수한다. 이 사람은 노고와 진정성으로 인한 신뢰가 쌓여서 그 사회에서 큰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성장해간다.
5. 가치전도현상(價値顚倒現象)
수단보다 목적이 가치가 크다. 그런데 현명하지 못한 사람은 목적보다 수단을 더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가치전도현상을 일으킨다. 칸트는 인간을 ‘목적적 존재’라고 하였다. 인간을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되며 반드시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가언명법과 정언명법] 예를 들면, 의사가 환자를 자신의 돈벌이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되며, 환자의 건강을 목적으로 진료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공자도 논어의 첫구절에서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않은가?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답지 않은가?”라고 하였다. 공자는 공부와 친구를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그 자체를 목적으로 여겼다. 그리고 군자는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출세)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현명하지 못한 사람들은 공부와 친구를 수단으로 여기며, 남들의 시선이나 사회적 평판을 좋게 하는 것(출세)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다. 공부를 출세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공부를 많이 할수록 인간성이 나빠질 가능성이 커진다. 자신이 공부한 만큼 남이 알아(사회가 인정해)주지 않으면 남이나 사회를 원망하기 쉽기 때문이다.
친구가 먼데서 찾아왔으면 그것으로 고맙고 기쁜일이다. 이것은 친구라는 인간 자체가 목적일 때 가능하다. 그런데 친구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나의 출세가 목적이라면 그 친구는 나에게 수단이 될 뿐이다. 그러면 그 친구가 나의 출세에 도움이 되는가 방해가 되는가에 따라 친구를 평가하게 된다. 공부와 친구가 그 자체로 목적이면 그곳에서 이미 기쁨과 즐거움을 누렸기 때문에,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원망할 일은 없는 것이다.
시험은 자신이 공부한 것이 어느 정도에 도달했는가를 알아보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목적이 되면 공부는 수단이 된다. 이것은 시험과 공부에 있어서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가치전도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 자체와 인생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고 남의 시선을 목적으로 삼는 사람에게도 가치전도현상이 일어난다.
차시예고
14회(09.11.) 이태호 (철학박사/통청인문학아카데미 원장) 현의 가치론(2) 15회(09.25.) 김상환 (문학박사/시인) 현과 음악미학(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