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가 지난 8·15 광복절에 세계의 이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만을 부렸던 날, 책이 한 권 배달됐다. <비정한 총리 고이즈미>라는 제목의 이 책은 베일에 싸인 고이즈미의 가족사와 정치스타일을 까발린 내용이어서 단숨에 읽게 됐다. 고이즈미의 편협된 여성관도 드러나 있어 더욱 눈길을 사로잡았다.
저널리스트인 마쓰다 겐야가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뒤를 쫓으며 그의 사생활을 파헤친 이 책에는 고이즈미의 혈족(추잡한 사랑), 여제와 집사, 고이즈미 패밀리(정치와 돈), 암투에 대한 이야기가 속속들이 들어 있다. 특히 책 내용 전체를 아우르는 고이즈미의 ‘혈족 정캄는 고이즈미의 비정함을 대변해주고 있다.
“그 집은 옛날부터 피로 똘똘 뭉쳐진 집안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고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지요. 다른 사람들은 그저 그 집을 존속시키기 위해 필요한 존재들이었습니다. 피와 피로 얽힌 순혈주의 신봉자들로, 정치가 집안의 맥을 잇고자 고이즈미를 위해 식구들 모두가 팔을 걷어붙였던 모계가족입니다. 그 중에서도 고이즈미의 바로 손위 누나인 노부코는 고이즈미 정권의 막후 실력자로 여제(女帝)로까지 불릴 정도였습니다. 그 여자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준이치로는 없습니다.”
고이즈미는 22년전 이혼한 것으로만 세간에 알려져 있을 뿐 그의 진면목은 일본 정치가에서도 베일에 싸여 있다. 정치 파벌 내에서도 패거리를 만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람들을 가까이 두지도 않았다. 요즘 말로 ‘은둔형’이다.
책<비정한…>서 사생활 밝혀져
고이즈미의 과거 중 22년 전의 이혼과 4년간의 결혼기간은 정치가로서의 프로필에서 삭제됐다. 고이즈미 혈족이 관련 사실을 철저히 은폐했기 때문이다. 언론이나 소문에서도 고이즈미의 사생활이 오르내린 적이 없을 정도로 두꺼운 베일을 쳤다고 할까.
고이즈미는 지금까지 헤어진 전처 미야모토 가요코와의 결혼에서 이혼까지의 4년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총리가 되기까지 그의 프로필에 자녀는 2남으로 되어 있었다. 전처와의 소생인 첫째 아들 고타로와 둘째 아들 신지로는 고이즈미가 거둔 것으로 설명되어 왔다.
그런데 총리가 된 후 또 다른 진실이 밝혀졌다. 전처와의 사이에 셋째 아들인 요시나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이즈미는 셋째 아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이혼했는데 이혼한 전처가 임신 6개월이라는 사실을 꼭꼭 숨겨 당선됐기 때문이다. 헤어진 전처 가요코는 에스에스제약 창업자의 손녀딸이다. 고이즈미는 14살이나 적은 가요코(당시 대학 4년생)와 맞선을 본 지 이틀만에 청혼하고 6개월뒤 결혼했다.
고이즈미의 여성관은 결혼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고이즈미는 띠동갑을 넘어가는 나이 어린 여자를 좋아했고, 집안도 좋고 재산도 많아야 정치가의 아내로 완벽한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그 조건을 충족시킨 여자가 가요코였던 것이다. 고이즈미에게 사랑의 개념은 아예 배제된 듯하다.
누나의 꼭두각시…혈족정치
가요코는 결혼 후 고이즈미의 집안에 들어가 시누이 등쌀에 못 이겨 로봇처럼 희생양으로 살았다. 남편인 고이즈미가 시누이들의 말만 전적으로 따랐고, 가요코의 심정을 전혀 헤아리지 않았다.
또 여제로 군림했던 고이즈미의 누나 노부코는 동생 고이즈미가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신혼방을 마음대로 드나들었으며, 친정에서 정치 자금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요코를 천대했다. 책 말미에는 누나인 노부코가 고이즈미의 아내처럼 행동했다고 씌어 있기도 하다.
고이즈미에게 가족이란 혈족을 뜻했다. 어머니나 누나들이 가족의 전부였다. 아내와 아들은 철저히 남이었다. 가요코가 이혼을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나를 선택할 지 가족을 선택할 지 말하라”고 했을 때도 고이즈미는 “나는 가족을 택할 수밖에 없어. 왜냐하면 가족이 없으면 선거를 치르지 못하거든”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고이즈미의 ‘시스터 콤플렉스’는 비정한 성향을 넘어 정치관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노부코의 꼭두각시로 정치생명을 잇고 있는 고이즈미. 지은이는 고이즈미는 북한 정책에 대해 아예 관심이 없으며, 부시와 친하게 지내는 것도 부시가 무서워서 그런다고 비약해서 지적하고 있다. 60대 후반인 노부코를 비롯해 고이즈미의 비호인 혈족들이 세상을 떠난 후 고이즈미는 어떻게 존립할 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