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해서 집에 오기가 바쁘게 서둘러 저녁을 먹고 옷을 갈아입은 후 역으로 출발했다. 다음날은 3월 1일, 공휴일도 번갈아 쉬어야 했던 나의 근무조건을 생각한다면 일주일 전부터 말이 오가다 결정된 여수여행은 매우 빡빡한 일정이었다.
전라도쪽 차편이 그리 많지 않은데다 버스는 하루이상의 일정이라야 가능했다. 게다가 나의 동행은 천안출발이었고 우리는 조치원 역에서 밤기차를 타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되려 상행기차를 먼저 타야했던 것이다.
조치원역에서 자정이 넘어 밤기차를 타고 피곤을 이기지 못해 세시간 남짓 겨우 눈을 붙였다. 새벽 5시 10분 여수역에 내렸을 때는 온통 빗소리만 가득한 어둠이었다. 시간이 일러 우리가 돌아보기로 한 관광지들은 들어갈수 없는 데다 동행한 벗의 목적은 사진이라 카메라를 보며 더더욱 난감해할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한시간을 넘게 역에서 기다리다 동이 터올 무렵 우산을 하나 사서 겨우 출발할 수 있었다.
'우산속에서도 탐스러워 자꾸 손을 내밀게끔 만드는 오동도의 동백꽃 햇살에 반짝이는 초록빛이 감도는 다도해의 바다색은 남해임을 너무 뚜렷하게 드러내고 향일암과 금오산 정상에서 바라다 보이는 망망대해는 한없이 평온하기만 했죠.'
'오동도는 동백나무와 함께 여러가지 식물들을 심어놓아 색다른 운치가 참 좋았어요. 한쪽 모퉁이엔 야외음악당이라고 자그마하게 만든 공간도 있고 지압을 위해 맨발도 다니게끔 돌을 깔아놓은 곳도 걷는 사람이 지루하지않을만큼 다양한 모양과 무늬로 펼쳐져있구....
함께 여행한 친구는 동백을 처음 본다고 하더군요. 아직 동백이 활짝 피기엔 이주일정도 이른 편이라 실제꽃크기의 반정도 밖에 안 된 작은 꽃이었지만 그 강렬한 색상을 저도 부산을 떠난 후 참으로 오랜만에 보았어요.
그친구가 활짝핀 동백꽃을 보았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전 그냥 지금 꽃의 두 배 크기로 활짝 피었다고 상상해보라구 할수밖에 없었습니다.'
'향일암은 돌산도의 가장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여수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40여분을 가야했죠. 돌산대교를 지나서는 마치 산골처럼 비탈에 가꾼 텃밭이며 가구들이 보이더군요. 섬의 가장자리를 따라 굽이진 도로를 바다를 보며 한동안 더 달리고서야 향일암에 도착했어요.
요즘은 해돋이 명소로 사람들이 많았고, 그제서야 비가 그친 탓에 향일암에 올라 내려다본 바다는 그야말로 멋졌습니다. 남해바다라는 걸 초록빛을 머금은 반짝임으로 드러내는데 눈을 뗄수가 없더군요. 내친김에 금오산을 오르기로하구 (향일암에서 정상이 367m만 더 올라가면 되었거든요) 오르긴 했는데 워낙에 질퍽해서 조금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모퉁이를 돌때마다 바다를 보지않고는 못 견디겠더라구요.'
'그리고 혹시 여수에 가신다면 오동도 출입구 옆에 망원경이라고 써놓구 계단을 올라가면 팔각정이 있거든요. 거길 꼭 올라가보세요. 여수시내가 다 보이는 건 물론이고 바다도 정말 색다른 풍경이거든요.'
대구에 도착하자마자 여행의 흥분을 채 가라앉히지 못하고 쓴 글이다.
그날 우리는 비를 맞으며 오동도를 돌아본 후 아침을 먹고 남은 일정을 마치고 점심을 먹었다. 일정에 쫓기다 보니 전라도의 음식 맛을 느끼기 보다는 역과 터미널 근처에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
이른 출발 덕에 오후 3시쯤 버스터미널에서 10분 간격으로 각자의 집으로 출발할수 있었다. 그가 먼저 출발했지만 내가 먼저 도착해 잘 들어왔다는 소식을 전한 후 기억에 남는 좋은 여행이었다는 문자로 우리의 여행은 마무리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겁이 없었다.
처음으로 거짓말을 하고 다녀온 여행이기도 하다.
DAUM 매치매일이란 것이 잠시 존재했을 때, 나에게 날아온 한통의 메일로 시작되었던 이 여행은 아주 깔끔한 매너의 여행벗과 함께 할 수 있었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다.
이 여행이 없었다면 그 이후로 혼자하는 여행은 상상조차 못했을런지도 모른다.
그리고 삶의 응어리, 감정의 응어리가 터지는 듯한 동백을 볼때마다 가장 용감하고도 씩씩한 여행을 했던 그 날을 떠올린다.
동백소식
김복연
거제도에서 육천 평 땅을 일구며 사는 친구
밤잠을 자주 설친다는 전언이나
이제는 농사 짓기도 힘이 부친다는 노모와
세월없이 사는 그가
생전 그리울 것 없이 사는 그가
생선 반 토막 같은 소식을 보내올 때는
육천 평의 고요 안으로 넘어오는 붉은 만월
맞다 동백 숲이 제법 깊어졌을 때이다
섬과 뭍의 경계가 허물어져서
한마디로 섬 안팎이 환장해서
혼자 견디어 내기엔
너무 어둡거나 깊어지는 때인 것이다
첫댓글 여수는 저한테 너무나 낯선 도시에요. 과연 그런 곳이 존재하기나 한 것처럼. 한 강의 소설 "여수의 사랑"에만 존재하는 곳처럼 느껴지니. 진정 겁이 없는 자만이 떠날 수 있는 것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