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를 처음 꿈꾸던 시절에는
토스카나의 언덕과 베네치아의 물길이
마치 다른 세상의 풍경처럼 느껴졌습니다.
언젠가는 꼭 가보겠다고 마음속에 오래 품고 있었는데
막상 그 땅을 밟고 나니
생각보다 더 조용하고
생각보다 더 인간적인 나라였습니다.
피렌체의 새벽 골목에서는
청소차 지나가는 소리와 커피잔 부딪히는 소리가
르네상스보다 먼저 기억에 남았고
토스카나의 들판에서는
사람이 왜 자연 앞에서 겸손해지는지를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이탈리아는 화려한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낮은 곳에 시선이 머무는 나라였습니다.
작은 창문에 걸린 빨래
이름 없는 골목 화분
천천히 걸어가는 노인의 뒷모습
오후 햇살 아래 조용히 식사하는 사람들.
그런 평범한 장면들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어느 날은 시에나 근처 작은 마을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셨습니다.
정말 순식간이었습니다. 작은 잔 하나가 몇 모금 만에 끝났는데
그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의 삶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들. 붙잡을 수 없는 순간들.
그리고 그 짧음 속에서도
끝까지 향기를 남기려는 마음.
반대로
돌길을 천천히 걷던 오후에는
드립커피처럼 시간을 오래 우려내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인생은 어느 한쪽만으로 살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탈리아는 여행이 아니라 풍경으로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폴리에서는
복잡하고 시끄러운 거리 한가운데서도
사람들이 웃으며 살아가는 힘을 보았고
베네치아에서는
사라질지도 모르는 도시가
끝까지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시칠리아의 바다는 뜨거웠고
밀라노의 밤은 차가웠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든 도시 끝에는 사람 냄새가 남았습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죽음에 대한 생각도 조용히 따라옵니다.
높은 절벽길을 걷다가도
빠르게 달리는 차량 옆을 지나가다가도
문득 사람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를 느끼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메멘토 모리.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 말은 두려움보다
오늘을 조금 더 깊게 살아보라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그래서인지
이탈리아 여행 이후에는
풍경을 보는 눈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빨리 가는 것보다
누구와 걷는지가 중요해졌고
많이 보는 것보다
마음이 머무는 장면 하나가 더 오래 남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토스카나의 노을 아래에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결국
잠시 머물다 가는 여행자 같은 존재라고.
몸이라는 숙소에 잠깐 체크인했다가
언젠가는 조용히 떠나는 손님.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만큼은
조금 더 사랑하고
조금 더 걷고
조금 더 풍경을 마음에 담아야겠다고.
이탈리아는 제게 관광지가 아니라
삶의 속도를 다시 배우게 한 나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