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리는 순간 대상과 아는 마음만 있기 때문에 바라는 마음이 붙으면 바로 생각으로 떨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이러고 저러고 할 것이 없이 그냥 알아차리면 그것은 바램이 없는 상태가 됩니다."
묘원스님께서 '소망과 알아차림'에서 주신 지혜입니다. 저의 경험상 한때 제가 자살하고 싶은 욕구가 실제로 강하게 일어나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을 때, 순간 사탄이라는 느낌이 강했고, 저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외쳤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아 물러가라'하고 반복을 했습니다. 그 후에 제가 안 것은 악마는 우리가 알아보고 직시하면 즉시 도망간다는 지혜였습니다. 순간적으로 일어났었던 일이었습니다.
사탄은 그 후에 무장을 하고 군대처럼 막강한 조직력으로 다가오기에 제 자신이 무장을 하고 있어야 함을 또 실감했지요. 그래서 그 후에 위빠사나를 하게 되어 감사하지요. 그러나 그것은 아주 특수한 경우였지만, 저의 못된 습관들은 한 번 깨달았을 지라도 여간해서 고쳐지지를 않는군요. 그래서 저는 오늘 하루를 잘 깨닫자, 하고 살았는데 이 곳에서 지금 이 순간 'here and now'가 중요함을 다시금 각성하게 됩니다.
이 체험에서 궁금한 것은 그 사탄이라는 느낌이 위빠사나의 '알아차림'인지요? 그리고 사탄이 어떤 위력이 있는 지를 아는 것이 '대상과 아는 마음'인지요? 그간의 저의 악과 선에 대한 지식이 사탄을 알아차린 것도 같습니다. 종교가 다른 제가 이렇게 자주 뵈어도 되는 지요?
< 답변 >
경전에서는 생명이 사는 세계를 크게 여섯 가지 그룹으로 나눕니다.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 인간계, 천상계입니다. 이 중에 천상계는 색계와 무색계로 구별합니다. 이상과 같은 여섯 가지의 세계를 의식 수준과 과보에 따라 더 세분화해서 분류하면 31개가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이 사는 세계는 모두 31천이라고 합니다.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의 세계는 불선업의 세계로 4악도에 해당합니다. 이 세계에서 사는 생명들은 고통만 있으며 자신의 업에 의해 수명이 결정됩니다. 그래서 그 업의 과보가 끝나면 다음 생을 받습니다. 천상계는 여러 가지 종류의 세계가 있는데 행복만 있으며 세계마다 수명이 다릅니다. 그곳에서 수명이 다하면 다음 생을 받습니다.
그리고 인간계입니다. 인간은 수명과 업의 과보가 함께 작용하며 행복과 불행이 함께 있습니다. 수행은 인간계에서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며 인간만이 노력에 의해 다음 생을 결정할 수가 있습니다. 이 의미는 인간이 원래 타고 태어나기는 했지만 노력에 의해 삶을 반전시킬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기는 매우 어려우며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선업의 과보를 받아서 태어난 것입니다.
이상 31천을 통털어도 귀신이라고 하는 생명이 사는 세계는 없습니다. 중국에서는 귀신을 아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귀신이라고 하는 것이 아귀라고 말해도 이 아귀가 인간과는 무관한 파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과 교통을 하고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하는 귀신과 실재하는 아귀와는 다릅니다. 아귀는 네 가지 종류의 아귀가 있습니다. 저마다 먹고사는 방법이 다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귀신이라거나 악마는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입니다. 인간은 오온으로 구성되어서 정신과 물질이 있는데 이 중에 정신계의 영역에는 수, 상, 행, 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상(想)의 역할이 기억, 인식, 표상작용 등을 합니다. 우리가 눈을 감고 무엇을 볼 때 실재하는 것을 보는 실상이 있고, 실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으로 꾸며서 보는 것이 허상입니다.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이 허상은 집중의 상태에 따라서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근본집중과 근접집중과 찰나집중이 있는데 근본집중과 근접집중의 상태에서 허상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심약하거나 허약한 체질로 인한 병적 증상이 있을 때도 착란, 착시 현상에 의해 허상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샤먼의 경우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런 모든 것들을 오온의 상이라는 것이 합니다.
이 허상은 과거의 정보와 기억에 의해 형상화됩니다. 가령 서양의 귀신과 동양의 귀신의 모습이 다른 것도 정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려서 동화책을 읽었거나 옛날 얘기를 통해서 들은 대로 귀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허상은 한번 보게 되고 두 번 보게 되면 그만 사실인 것으로 확신을 갖습니다. 그래서 산신령이나 몸주가 생깁니다. 이는 모두 자신이 만든 형상에 불과합니다.
집중의 상태가 아니어도 자신과 자신이 대화하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알아차림이 약해지면 자신의 마음이 자신과 대화를 하게 됩니다. 이때 이것을 잘못 알게 되면 허상을 실상으로 보기 마련입니다. 경전이나 성경에서 말하는 악마나 마구니 등등은 모두 여기에 해당합니다. 설령 이런 생명들이 유사한 형태의 다른 생명으로 존재한다해도 인간과는 무관하다고 아셔야 합니다.
그러나 초능력이 있는 특별한 사람은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을 볼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라한의 수준에서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은 다른 존재와는 무관한 세계에 산다고 아셔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귀신이나 악마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논쟁은 답이 없으며 무익한 것들입니다. 다만 이것들이 허상이건 실상이건 나타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 입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날 때는 자신의 몸으로 돌아오는 것이 필요합니다. 경전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몸의 느낌을 알아차리면 초자연적인 형상이 나타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귀신이나 악마가 나타났을 때 자신의 몸으로 돌아와서 몸의 호흡이나 느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자신의 몸에 집중하지 않고 대상에 빠지면 대상에 휘둘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느 상황에서나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일입니다.
첫댓글 저는 비구가 아니고 재가자입니다.
재가자와 비구가 어떻게 다른지요?
재가자는 스님이 아닌 사람을 말합니다. 비구는 불교의 남자 스님을 말하며 비구니는 여자 스님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