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를 찾아 보니 2001년 12월 7일이었습니다. 명동 은행회관 국제회의실에서 ‘보호구역과 지역사회’를 주제로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설악산 생태관광의 잠재력 평가, 생태산촌만들기 사례 발표... 이런 몇 가지 발표주제가 눈길을 끌어 시간을 내어 찾아 갔습니다.
아마도 심포지엄 거의 끝무렵이 아니었던가 해요. 조금은 졸립기도 하고 지루해져서 일어서려는데 한 교수님이 본격적인 주제 발표에 앞서 약간 분량의 영상물을 소개하고자 하신다며 회의장 분위기를 다듬으시더군요. 마치 정상유통이 금지된 오래된 필름처럼 매우 거칠고 화질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 다큐 영상물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것이 마음자락을 잡아 당겨 자리에 다시 주저 앉았습니다.
상영시간 약 5분. 상영이 끝나고 컴컴했던 실내에 불이 켜지자 짧은 순간 침묵이 흐르는가 싶더니 곧바로 청중석이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여기저기서 “계속 봅시다!”, “더 보여 주세요!”, “다른 발표자 분들도 양해를 해 주시죠?”, “봅시다!”하는 소리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모두들 가슴 뭉클한 감동과 어떤 충격에 휩싸여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합창을 하듯 계속되는 요구로 발표자는 발표를 진행하지 못했고 사회자는 그만 난감한 표정이 되었습니다. 힘들었던 영상물 필름의 입수과정을 소개하며 거듭되는 양해와 설득으로 분위기를 다잡고 나서야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지요.
화제의 발표자는 목포대 조경만 교수님이셨고, 발표의 주제는 [캐나다 Clayoquot Sound 생물권보전지역의 지역사회 참여와 협력]이라는 조금 긴 제목을 달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캐나다 온대우림과 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Clayoquot Sound는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 보통 BC라는 약자로 표기함. - 서쪽 끝에 있는 벤쿠버섬 서부 해안의 한 지명입니다. 캐나다 벤쿠버 온대우림에 대해선 자미샘이 연수 후기를 통해 너무 잘 소개를 해 주셨으니, 저는 4년전 그 날 화제가 되었던 영상물의 내용과 Clayoquot Sound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캐나다! 나무만 팔아도 족히 200년은 먹고 살 수 있을 거라는 말이 나올만큼 광활한 지역에 걸친 천혜의 원시림을 자랑합니다. 특히 벤쿠버가 속한 BC주의 온대우림은 나무를 베어 장사를 하는 임업인들에게 ‘녹색의 황금’으로 불린다지요? 동아일보 기사를 인용한 풀빛문화연대의 캐나다 연수 자료집에도 나와 있듯이 BC주에선 세계 침엽수 제재목 수출량의 약 35%가 생산되고 있습니다. 그 수출량의 대부분이 유럽으로 팔려나갑니다.
영상물의 화면은 한 무리의 여인들이 트럭과 불도저, 전기톱 등 각종 연장이 널브러진 산비탈에서 벌목관계자들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들과 대치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경찰로 보이는 사람들도 많이 보이구요. 5분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 묶여 편집된 장면들은 Clayoquot 저항운동의 이미지를 축약시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수백년된 거대한 나무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광활한 숲과 계곡, 전기톱의 굉음과 수선스러운 움직임들, 아슬아슬 나뭇가지에 매달린 여인, 그리고 그를 끌어내리려는 남자들, 높다란 나무 위에 아예 캠프를 차리고 시위하는 사람, 방해꾼들을 헤치고 그 캠프로 먹거리를 제공하는 주민들, 연속되는 가두시위, 인디언 저항운동가들의 결의, 이미 대부분이 잘려나간 생나무 그루터기를 붙들고 오열하다 강제로 땅바닥을 질질 끌려가며 절규하는 여자, 바리케이트같이 쳐진 쇠사슬, 벌채된 나무들의 시신이 끝없이 나뒹구는 죽음의 땅, 사랑하는 사람을 안 듯 달려가 나무를 품는 여인들....
1979년 처음 Friends of Clayoquot Sound가 설립되면서 시작된 저항운동은 1989년 주정부 모라토리움 선언 - 그린피스 개입 등으로 가파르게 전개되다 1993년엔 무려 900여명의 사람들이 연행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는데,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환경운동 때문에 체포당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 수많은 기록과 회고담을 낳으며 이 사건은 후에 캐나다 환경운동의 징표로 알려졌습니다. - 이 때의 저항운동가들을 중심으로 시민불복종 운동이 전개되었고, 일대의 주민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환경의식을 높이며 지속적으로 운동에 참여할 에너지를 얻었습니다. 당시의 참여자가 만든 ‘Fury for the Sound'라는 다큐 영상물은 오늘날 환경다큐멘터리의 바이블이라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심포지엄 때 소개된 영상 화면에서도 드러나듯이 저항운동의 중심엔 언제나 여성이 있었고 그 활약 또한 매우 두드러졌는데, 남성보다는 여성과 자연 사이에 보다 긴밀한 정신적 유대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왜 여성이 그토록 숲을 지키려 했는가?’하는 담론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지난한 투쟁과 협력 끝에 Clayoquot Sound는 지난 2000년 BC주에서 최초로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러나 Clayoquot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고 해서 일대의 숲이 완전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숲의 연구, 교육, 연수를 위해 기부되거나 투자된 돈이 실제로 어떻게 쓰여지는에 대해 UN은 어떤 통제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고, 생물권보전지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통제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다만 유네스코에서 생태학적 중요성을 인정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지역사회의 역할과 실천을 촉구했다는 데에서 의미를 찾습니다.
Clayoquot Sound를 둘러싼 생태계 파괴와 저항운동, 기업과 정부와 환경운동가들, 그리고 주민들 사이의 갈등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숲의 벌채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솎아 베어 내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고성능 면도기로 수염을 밀어버리 듯 모두 베어버리는 이른바 'Clear cut'라 부르는 벌채방식도 커다란 잇슈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처럼 캐나다 온대우림의 벌채가 끊이지 않는 것은 주로 1차산업에 의존하고 있는 캐나다의 경제구조 때문이고, 그에 따른 저항운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은 캐나다 사람들에게 숲이 커다란 생태학적 가치와 의미를 제공하며 장기적으로 경제적 생존의 터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유년기부터 숲을 대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숲에 대한 인지적, 정서적 친밀도가 대단히 높고, 인디언 사회에서는 종교적 성소(聖所)의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근래에 주목 받기 시작한 캐나다의 자연체험교육 사례들은 이러한 독특한 생태문화적 환경과 지속적인 저항운동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일부 숲체험 교육자들이 캐나다 온대우림에서의 체험교육 기법과 인프라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뱀필드 센터와 그 쪽에서 활동하셨던 탁광일박사님이 언론과 방송에 소개되면서 본격화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전까지는 주로 독일이나 스위스같은 유럽, 혹은 미국식 체험교육 기법을 모방하는 경향이 강했고 가까이로는 일본의 사례가 모델이 되곤 했지요.
여러 가지 필요성이 대두 되었겠지만, 이번 숲해설가들의 캐나다 온대우림 연수 또한 보다 차별화된 숲체험 교육기법의 다양화와 창조적 발전이라는 과제 위에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현장 교육자들의 고민이 그 바탕이 되었다고 보여집니다.
첫댓글 좋은 자리에 못 가봐서 안타깝네요.
인도의 칩코 운동도 여성중심의 운동이었지요. 지율스님만 뵈어도 그렇잖아요. 에코페미니즘 같이 공부해보면 좋겠어요. 그나저나 이련샘, 정리 참 잘하셨어요.
이련님의 긴 글을 처음 읽네요. 카페 가족들끼리 책 만들어도 되겠어요. 그렇찮아도 언젠가 출판기획하는 사람이 그런 제의를 한 적이 있었지요. 중앙랜덤 쪽에서도... 이럴게 아니라 추진 한번 해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