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내 나이가 60대 후반에 있다
언제 그 많은 세월을 살았는지 생각하면 아득하기도. 금방 지나쳐간 세월같기도 하니 이 무슨 고르지 못한 감정의 모순인가.
그간 참 그지?같고도 한없이 황량한 인생을 살면서 여행이란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지나간 세월들이 언듯 아프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나만 그렇게 살아왔겠나싶어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다른이들의 고단한 삶에도 애처로움이 생기고 내삶도 그저 생각만큼 얄궂지만은 아닌 한 컷트의 질박한 삶이 된다
그렇다고 지금은 억세게 잘 살고있다고 볼 수도 없겠지만 ㆍㆍ^^
그동안은 일본. 서아시아의 성지순례. 베트남 단기선교 등 몇나라 정도를 가봤지만 신앙의 문제로 다가선 자리라선지 지금처럼 가슴이 설렌다기 보다는 그저 심정적으로 무겁고 막역함이 있었던 것 같다
어려서 어쩌다 영화를 보거나 동화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언젠간 가보고 싶었던 유럽의 거리 ㆍㆍㆍ나는 그런 곳에 언제나 가볼수 있을지 적잖이 희망하면서 그리워만 하던 그 거리거리들ㆍ
어릴 때는 알프스의 설원속에서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당차고 깜찍한 하이디의 삶에 반했고 하이디같은 친구를 갖고싶다는 소망을 떨치지 못했다
집없는 천사 레미는 프랑스 전역을 떠도는 방랑생활에서도 자신을 잘 돌봐주던 발브랑 아주머니를 그리워하며 희망을 잃지않고 온갖 어려움을 이겨 내고 마침내는 친어머니를 만났던 고아 소년 레미의 이야기에 소리죽여 가며 애면글면 눈물을 뚝뚝흘리던 시간도 있었다.^^
알퐁스 도테의 <별>은 그 얼마나 아름답고 순수한 이야기였던가 순수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단편이었다고 해야한다 -ㅡ별 얘기를 듣던 아가씨는 어느새 잠이 들어 그녀의머리를 목동의 어깨에 기댄 채 곤히 잠이 들어버리고 목동은 행여 아가씨가 깰까봐 움직이지도 못한 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만히 생각한다. "수많은 별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려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들어 있다" ㅡ
프랑스의 지방 프로방스 산속에 살던 한 목동의 순수함은 지금도 그렇게 아름답기를 나는 고대한다
당시엔 그 외에도 훌륭한 단편들이 참 많았다
용기와 신념의 여인 제인에어가 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걷고싶다 ㅡ운다는 것은 네가 약하다는 뜻이 아니다. 태어났을 때 부터 그것은 항상 네가 살아있다는 증거였다.ㅡ
AJ 크로닌의 <성채>는 영국의 의료현실의 여러 난관들이 마치 허물어지지 않는 바빌론의 성채와 같다고 오열하던 그 문제들은 지금 이 시대에도 많은 분야에 성채처럼 굳게 서 있음을 어이하리까.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 을 읽고 며칠밤을 잠못이루던 시간들도 있었지
“무엇 때문에 나 같은 것을 사랑하지?” .
“무엇 때문이냐고?
마리아! 어린아이에게 무엇 때문에 태어났느냐고 물어봐. 태양에게 무엇 때문에 비추느냐고 물어보란 말이야.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야.”’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때 내가 쓴 것처럼 표절한 글귀들이 특히 많았던 책이다 ^^
맑고도 무겁고도 이해가 힘든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나이가 많이 들어 다시 읽어본 독일인의 사랑은 그 표현의 가치가 이 시대에서 조차도 높은 수준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랑해서는 안되는 여인 로테를 사랑하며 괴로움에 가득찬 발걸음으로 여기저기 헤매었을 젊은 베르테르. 그의 죽음을 마냥 슬퍼해주며 나는 그 길을따라 끝없이 거닐고싶어 견딜 수 없을게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본 로마의 스페인광장. 그녀가 먹었던 젤라또아이스크림도 먹고싶다 ^^
애수에서 로버트테일러가 슬픔에 젖은 눈으로 비비안 리를 떠올리며 서 있던 비운의 워털루 다리.
고독과 외로움으로 견딜 수 없던 한 남자. 독일 빈 교외의 리히텐탈. 온밤을 함께 지냈던 창녀들과 작별하고 새벽부터 밀려오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홀로 번민하면서도 언듯 떠오르는 악상을 써내려가며 고적하게 거닐었을 슈베르트의 슬픔이 뚝뚝 떨어지는 리히텐탈의 거리거리들이여ㆍㆍ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향한 애틋한 심정을 간직한 채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브람스의 삶. 그의 음악이 비 오는 날에 들으면 왜 그토록 애잔하고 침울한지를 일찌기 알았던ㆍㆍ 마침내 서유럽의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을 맘껏 바라보며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행복감을 품고 한참을 그 곳에 서 있기를 나는 희망한다
희망한다.
꼭 그곳으로 가보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살았던. 그들이 바라보던 하늘 흙 바람 햇볕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들을 몸소 느껴보는 현장감은 어떨는지 ㆍㆍ너무 늦은감도 있지만 이 늦은 나이에라도 그립던 그 나라들을 직접 가서 볼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쁜일이랴ㆍㆍ가슴 설레는 건 이 나이에도 가능하니 말이다 ^^
앞으로는 딱히 가보고 싶은 나라도 없고 해외로는 이번이 마지막 여행이라고 결정하면서 나혼자만의 소박하지만 자랑이 넘치는 만족스런 여행이길 바라마지않는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려나? ㅋㅋ
니체는 여행자를 다섯 단계로 나누었다.
1단계
여행했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한 자
2단계
세상에 나가서도 자신만 보는 자
3단계
세상을 관찰해 무언가를 체험하는 자
4단계
체험한 것을 자기 속에 데리고 와서,
지속해서 가지고 있는 자
5단계
관찰한 것을 체험하고 동화한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행동이나 작품에서
반드시 되살려야 하는 자
나는 이 여행을 통해 여행자로서 어떤 단계에 오를 수 있을까?
글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