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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에 특별히 성령강림주일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의 제목은 “오직 성령 충만함을 받으라”입니다. 성령 충만하십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님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 내가 아버지께로 가면 반드시 너희에게로 다시 오리라 하셨는데 곧 성령님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한 것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삼위일체라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과 보혜사 성령님을 일컫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 삼위이지만 동등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지만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으로 오셔서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예수님은 육체로 오셨기에 장소와 시간에 제한되셨지만 성령님은 영이시니 제한됨이 없으십니다. 거기 계셔도 여기 계실 수 있는 분이고 저기 계셔도 여기 계신 분입니다.
성령 충만하라는 것은 한 마디로 성령에 붙들리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에 붙들려 사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성경은 거라사인 지역에 귀신 들린 청년을 소개할 때 그 청년이 귀신에게 붙잡혀 무덤가에 사는데 아무도 그를 힘으로 제압하지 못함을 기록합니다. 쇠사슬로 묶어놓아도 그것을 끊어버리므로 감당하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그 청년은 귀신에게 붙들린 것입니다. 말하자면 귀신 충만입니다. 예수께서 귀신을 제압하고 청년을 자유케 해주었습니다. 악한 귀신한테 붙잡힌 데서 풀어주었습니다.
우리가 주변을 보면 어떤 사람은 술에 붙잡혀 살고 어떤 사람은 노름에 붙잡혀 살고 어떤 사람은 육신의 정욕에 붙잡혀 살고 탐욕에 붙잡혀 사는 사람도 있고 게임에 붙잡혀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잠에 취해 아침인지, 저녁인지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거짓의 영에 붙들려 살아갑니다. 잘못된 신념에, 사상에 붙잡혀 일평생 헛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로지 복수심에 붙잡혀 원수를 갚겠다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엇에 붙들려 사느냐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어떠했을까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일지라도 세례 받을 때 성령이 임하고 충만했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다고 했습니다. 행10:38입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했습니다. 그러니 성령에 붙들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실지라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이끌렸습니다.
사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에 이끌리고 하나님 말씀에 붙잡혀 살았습니다.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한다고 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소망에 붙들려 살았습니다. 초대교회성도들은 성령에 붙잡혀 성령에 이끌리며 살았습니다. 우리는 무엇에 붙잡혀 살아가고 있습니까? 무엇에 이끌려 살아갈 것입니까?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의 영에 붙잡혀 사는 자입니다. 성도가 힘쓰고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성령 충만 받고 그 충만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의 본분이고 의무입니다. 할렐루야!
1.우리가 왜 성령 충만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해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7,18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라고 했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령으로 인도받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니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십니다. 고전2:10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영이 알듯이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영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우리를 지혜로운 자가 되게 하십니다.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진리 가운데 행하니 그가 바로 참된 지혜자가 아니겠습니까? 세상 유행에 좀 떨어지거나 새로운 지식, 정보에 좀 뒤쳐진다고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마땅히 행할 길을 알지 못하고 마땅히 알아야 할 진리를 알지 못하면 그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시고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세상 모든 지식을 다 알아도 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왜 사는지를 모르고 심판주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모른다면 어리석은 자가 아니겠습니까. 세상을 잘 몰라도 영생이 있음을 알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알고 영원한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그가 지혜자입니다.
성령님은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고 이러한 영적인 일과 지식에 확신을 갖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하고 확신을 갖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2.그리고 우리가 왜 성령 충만해야 하느냐면 15,16절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성령충만해야 세월을 아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을 아낀다는 것은 세월을 붙잡아두고 쓰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을 아끼는 것이 전혀 물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허비하지 않고 바르게 쓰는 것을 말하듯 세월도 낭비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허무와 고독 속에 인생이 무엇인지를 늘 생각만 하거나 과거의 추억에만 빠져 살아간다면, 빗소리만 들어도 낭만에 빠져 연장 썩는 줄 모르고 시간을 보낸다면 그것은 주어진 시간을 태워버리고 낭비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이러한 낭비가 없어집니다. 허송세월하지 않습니다. 이전에 전두환의 실세가 '쓰리 허'라고 했는데 (허삼수, 허문도, 허화평) 성도가 조심해야 할 '쓰리 허'도 있습니다. 허영, 허세, 허풍입니다. 여기에 빠지면 허송 세월하고 맙니다.
성령 충만하면 절망에 빠지거나 우울증에 걸리지 않습니다. 성령충만하며 생활도 충실하고 하나님께도 충성됩니다. 그러면 원하는 삶을 충족시키게 됩니다. 저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를 받으면서 우울증에 빠진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성령 충만한데도 절망하여 인생의 허무에 사로잡힌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성령 충만하면서 잠에 취해 사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언제나 시간이 모자라는 생각이 들어 아쉽고 주님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드리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대로 살려고 하던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하면 영의 소원을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내 육신의 때, 크로노스의 시간을 살던 사람이 카이로스, 하나님의 때를 알고 하나님의 타이밍에 맞게 살아가게 됩니다. 육신을 위해 살았던 사람이 성령으로 인해 자기 영혼이 하나님 앞에 설 때 부끄럽지 않도록 준비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하면 하루하루를 소중하고 알차게 보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억할만한 시간들로 채울 수 있습니다.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월을 아끼는 삶입니다. 할렐루야!
3.또한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신령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19~21절입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찬송하고 감사하고 복종하는 삶입니다. 한 마디로 신령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이 명령들을 이행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즐거움이 됩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게 합니다. 마음으로 노래하며 찬송하게 합니다. 감사하며 피차 복종하는 삶이 되게 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내 안에 주님이 주신 기쁨이 있어서 입술에 찬송이 울려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하시니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작은 일에도 감사하게 되고 기뻐하게 됩니다. 남을 탓하고 정죄하던 것, 허물을 보고 손가락질 하던 것들도 변하여 도리어 나의 연약함을, 작음을 깨닫습니다. 죄인됨을 깨닫습니다. 나 같은 죄인도 용서받았는데 하물며 저 사람이랴, 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생깁니다. 네 탓이라고 생각하던 마음이 바뀌어 내 탓이 됩니다. 뻑뻑하던 기계에 기름을 칠하면 부드럽게 잘 돌아가듯이 성령 충만하면 사람관계도 원만해집니다. 얽히고 맺힌 것도 풀어지고 소통이 일어나고 끊어진 관계가 다시 이어지게 됩니다. ‘너 때문에’라던 것도 ‘내가 충만하지 못하니 이런 문제가 생겼구나, 내가 기도하지 못해서 이렇게 되었구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성령 충만하면 주님의 모습을 닮아갑니다. 그래서 거룩함과 경건에 이르게 하고 우리로 주 앞에 온전한 자로 세워갑니다.
롬8:26에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위해 기도해주심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리하여 성령님은 우리 영혼을 만족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풍성케 하시고 마침내 우리로 승리하게 하십니다. 이 땅에서 성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믿음을 지키는 승리를 주십니다. 이것이 신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령 충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둘 다 보존된다고 했습니다. 새 것을 채우기 위해서는 낡은 것을 비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기 위해서는 내 생각, 내 계획, 내 것을 비워야 합니다. 내 것을 비우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으로 채우지 못합니다. 내가 비워드리는 만큼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히 채울 수 있습니다.
비운다는 것은 먼저 회개를 말합니다. 더러움을 씻는 것입니다. 우리 죄를 버리고 비우는 것입니다. 불순종의 삶을 돌이키고 뉘우치는 것입니다. 행2:38에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불순종한 것이나 알고도 믿음이 없어 행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새 것을 담기 위해서는 먼저 비우고 씻는 회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회개하면 회복되고 하나님께 항복하면 행복합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성령 충만하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모하고 말씀을 사모하고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일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에 붙들려 살아가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자에게 충만히 채워주시고 만족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사람은 충만할까봐 도리어 염려합니다. 내 자녀도, 내 남편도, 내 아내도 은혜 받고 충만하여 그래서 주님을 향해 열심 낼까 봐 두려워합니다. 뜨거울까봐 염려하여 적당히 했으면 좋겠다고, 지금 이대로만 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만 성령님은 책망하시기를 “너희는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 미지근하면 토해내치리라”고 했습니다(계3:15).
사모함은 간구함으로 나타납니다. 즉 사모한다면 기도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의 약속을 믿고 열흘 동안 마가의 다락방에서 함께 모여 기도했습니다. 아주 간절히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이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지 않으면서 사모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에 이끌리기를 사모한다면서 기도하지 않는 것은 모순입니다. 진실로 사모한다면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충만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충만한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잘 한다 해야 그게 정말 잘 하는 것이듯 하나님보시기에 충만하다 해야 그게 충만한 것입니다. 이만하면 충만하다고 스스로 생각하지 말고 늘 부족함을 느끼며 더 충만하도록 사모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불씨가 있어도 불이 붙지 않으면 연기만 납니다. 불이 확 붙어야 나무가 타듯이 하나님 앞에서도 내가 연기만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불이 붙기를 원하고 타오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초대교회는 성령 충만 받았을 때 연기만 모락모락 핀 것이 아니라 세상을 불태웠습니다.
우리도 성령 충만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회개하고 사모하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리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십시오. 충만을 유지하며 사는 것이 깨어 있는 신앙이고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고 기뻐하는 삶입니다. 그런 삶이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