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순교자 성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마태오 16,24
가톨릭교회는 해마다 9월을 ‘순교자 성월’로 지냅니다.
이 한 달 동안 우리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기꺼이 내어놓았던 우리 신앙의 선조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굳센 믿음과 삶을 본받고자 합니다.
✝️ 순교란 무엇일까요?
순교란 신앙을 지키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증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하느님과 하늘 나라에 대한 믿음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가족과 재산, 사회적 지위와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려놓으면서 “하느님을 따르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사실을
삶으로 증언하였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단순히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고한 희망에서 비롯된 신앙의 증언이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의 순교자 성월
한국 교회의 순교자 성월은 1925년 로마에서 거행된 조선 순교자 79위의 시복식을 계기로 시작되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이듬해부터 9월 26일을 ‘한국 치명 복자 79위 축일’로 지냈습니다.
이날은 기해박해(1839년)와 병오박해(1846년) 때 순교한 79위 복자 가운데 많은 분들이 순교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어 1968년에는 병인박해(1866년) 순교자 24위가 시복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84년 5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한국을 방문하셔서 이들 순교자 103위를 성인으로 시성하셨습니다.
또한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에는 우리 순교자들 가운데 새롭게 순교 사실이 밝혀지고
지역에서 오랫동안 현양되어 온 124위 순교자가 복자로 시복되었습니다.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는
103위 순교 성인과 124위 순교 복자, 그리고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수많은 신앙의 선조들을 함께 기억하고 있습니다.
🌾 ‘복자 성월’에서 ‘순교자 성월’로
1925년 79위 복자의 시복 이후 한국 교회에서는 자연스럽게 9월 한 달 동안 복자들을 특별히 공경하고 현양하는 신심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회가 공식적으로 ‘복자 성월’을 선포한 것은 아닙니다.
1984년 103위 순교자 시성을 계기로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복자 성월’이라는 표현을 ‘순교자 성월’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년 9월 20일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로 경축하며, 한국의 모든 순교자들을 특별히 기억합니다.
🕯️ 오늘 우리의 순교는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는 신앙 때문에 목숨을 바쳐야 하는 박해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순교자들의 신앙이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의 세상에서 복음의 가르침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작은 신앙의 증언이 될 수 있습니다.
정직해야 할 때 정직하고, 용서하기 어려울 때 용서하며,
나만을 생각하기보다 이웃을 먼저 돌아보고,
세상의 가치가 하느님의 뜻과 어긋날 때 복음의 길을 선택하는 것.
때로는 손해를 보더라도 사랑을 선택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기보다 기도하며,
어려운 순간에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놓지 않는 것.
이러한 작은 선택 하나하나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 속의 순교 정신’이 될 것입니다.
🙏 순교자 성월을 맞이하며
9월, 순교자 성월을 맞아 우리 신앙의 뿌리가 되어 주신 순교자들을 기억합시다.
그분들이 피 흘려 지켜 낸 신앙을 우리는 일상의 삶 속에서 이어 가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을 믿고 있는가?”
“내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있는가?”
순교자들의 굳센 믿음이 오늘 우리의 마음에도 다시 살아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 9월 순교자 성월,
순교자들의 믿음을 기억하고 그 믿음을 오늘의 삶으로 이어 가는 은총의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
(* 참고 : 2026년 가해 매일미사 9월 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