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사람들이 말하리라.
“과연 의인에게는 결실이 있구나.
과연 세상에는 심판하시는 하느님께서 계시는구나.”
(시편58,12)
시작 부분(2절)에서는 신들의 그릇된 심판을 언급했으나 마지막 절에서는 하느님이 참된 심판관이심을 말함으로써 이 시편의 틀을 형성한다.하느님은 악인들을 진압하고 의인들을 구원하신다.이것은 하느님이 힘이 아니라 옳고 그름에 기초하여 세상을 운영하신다는 것을 의인들에게 확신시킨다.신들처럼 거짓을 행하는 자들의 뱀과 같은 행동을 언제까지나 방관하지 않으실 하느님이 계신다.‘의인에게 결실이 있다’는 말은 의인이 상을 받는다는 뜻이다.이사야 예언자는“‘의인들은 잘되고 자기가 한 일의 성과를 누리리라.’악인은 불행하여라!그는 잘못되리라.제 손이 저지른 대로 되갚음을 받을 것이다”(이사3,10-11)라고 한다.또한 사도 바오로는“사람은 자기가 뿌린 것을 거두는 법입니다”(갈라6,7)라고 한다.예수님도 하느님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루카18,7-8).
시편58편의 전체적 의미:시편 58편의 시인은 이 세상이 악인들의 악한 힘에 의해 지배받는다는 것을 알고 하느님께 그들을 벌하시고 모든 것을 올바로 세워달라고 호소한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의인이 보상을 받고 하느님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정하게 될 것이다.그런데 이 시편의 주요한 문제는 악인들에 대한 보복적인 태도다.이 시편 외에도59;23-25;109;137편 등이 원수들의 멸망을 간청한다.하지만 시편에서 원수들에 대한 표현은 거의 원수들에게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52;137편은 예외)하느님을 향해있다.시인들은 자신들이 원수들에게 복수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를 하느님께 맡긴다.그래서 하느님이 직접 조취를 취하시거나 인과응보의 원리를 작동하시도록 간청한다(테이트).이것은 믿음으로 하느님께 순종하는 자세다.58편의 시인은 하느님이 세상의 끔찍한 악을 외면하는 분이 아니시라는 점을 굳게 믿고 하느님의 정의가 실현되도록 기도한다.이런 점에서 이 시편은 하느님이 현존하시지 않는 것 같은 세상 안에서도,그리고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우리가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주님께 기도하도록 이끌어 준다.사도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여러분은 늘 성령 안에서 온갖 기도와 간구를 올려 간청하십시오.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인내를 다하고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며 깨어있으십시오”(에페6,18)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23-2 시편42-89편/바오로딸)
38. 예를 들어,다양한 생물들로 가득 차 있는 허파인 아마존과 콩고 분지나 대수층 帶水層 과 빙하를 생각해 봅시다.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지구 전체와 미래 인류를 위하여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열대림의 생태계는 매우 복잡한 관계를 맺는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어서 다 이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그렇지만 경작을 위하여 열대림을 불태워 버리거나 갈아엎으면,몇 년 안에 생물종이 사라지고 그 지역은 메마른 황무지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우리가 열대림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에는 균형을 잘 잡아야 합니다.커다란 세계적 경제 이익을 추구하는 세력들이 열대림 보호를 구실로 개별 국가의 통치권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사실,“다국적 기업들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하여 아마존을 국제화하자는 제안”이 있습니다.우리는 합법적 압력 수단을 동원하여 이 문제에 대한 여론을 불러 일으키고 비판적 협력을 해 준 국제단체와 시민 사회단체의 노력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이는 모든 정부가 국내외의 부당한 세력들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 나라의 환경과 천연자원을 보존해야 하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책임을 수행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39.주로 단일 작물을 재배하는 플랜테이션을 위하여 처녀림을 파괴하는 문제에 대한 적절한 분석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그런데 새로 심은 식물종이 제대로 동화되지 못하여 생물 다양성이 심각하게 손상될 수 있습니다.이와 마찬가지로 습지대가 경작지로 바뀌면서 이전의 엄청난 생물 다양성이 상실됩니다.일부 해안 지역에서 맹그로브 습지대로 유지되던 생태계가 가라져 커다란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40. 대양은 우리 지구의 대부분의 물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엄청난 수의 다양한 생명체도 품고 있습니다.그 생명체의 상당수는 여전히 미지의 것으로 남아 있으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게다가 강과 호수와 바다와 대양에 살고 있는 해양 생물은 세계의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리고 있느나,특정 어류의 급격한 감소를 가져오는 무절제한 포힉으로 위협받고 있습니다.잡은 물고기의 대부분을 버리고 특정한 어류만 골라내는 어업이 그치지 않고 지속되고 있습니다.일부 플랑크톤과 같이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해양 생명체가 특히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그러한 생명체는 바다 먹이 사슬의 중요한 요소이며,우리가 먹는 어류는 궁극적으로 그것에 의존합니다.
41.열대와 아열대 바다에서 우리는 육지의 거대 삼림에 비교되는 산호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이러한 산호초는 물고기,갑각류,연체동물,해면동물,조류와 같이 거의 백만 종에 달하는 생명체를 보호합니다.오늘날 세계 산호초의 대부분은 이미 황폐화되거나 지속적인 감소 생태에 있습니다.“누가 아름다운 세계를 광채나 생기가 없는 바다 묘지로 만들어 버렸습니까?”이러한 현상은 대부분 삼림 파괴,단일 작물 재배,산업 폐기물,특히 청산염과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하는 파괴적인 어업 방식에 따른 오염이 바다에까지 이르러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해수 온도 상승으로 더욱 악화됩니다.이 모든 것을 통하여 우리는 자연에 대한 모든 개입이 바로 알아챌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고,어떤 자원 착취는 궁극적으로 해저에 영향을 미치는 파괴로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2. 생태계의 기능을 더 잘 이해하고,환경의 중요한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변수들의 적절한 분석을 목표로 하는 연구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합니다.모든 피조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사랑과 존경으로 소중히 다루어야 합니다.살아 있는 피조물인 우리는 모두 서로 의존하고 있습니다.모든 지역은 이 가족을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멸종 위기에 놓여 있는 생물종들은 특별히 보살피면서 보호 계획과 전략을 개발하여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생물종들을 철저히 관리하게 해야 합니다.
Ⅳ.인간 삶의 질의 저하와 사회 붕괴
43. 인간도 생명권과 행복권을 누리며 고유한 존엄성을 지닌 이 세상의 피조물입니다.그래서 우리는 환경 훼손,현재의 개발 방식,버리는 문화가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44. 예를 들어, 오늘날 우리는 많은 도시들이 불균형적이고 무분별하게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이러한 도시들은 유독 가스 배출에 따른 오염뿐 아니라 도시의 혼잡,열악한 교통,시각 공해,소음으로 건강하게 살 수 없는 곳이 되고 있습니다.많은 도시들은 거대하고 비효율적인 체계를 갖고 있으며 에너지와 물을 지나치게 낭비하고 있습니다.최근에 건설된 지역들마저도 혼잡하고 혼란스러우며 녹지 공간이 부족합니다.우리는 시멘트,아스팔트,유리,금속으로 넘쳐 나는 세상에 살면서 자연과 물리적 접촉이 차단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습니다.
45. 일부 도시와 농촌 지역에서는 특정 공간을 사유화하여 사람들이 매우 아름다운 장소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고 있습니다.또 다른 지역에서는 인위적 평안을 누리고자 외부를 차단한 이른바’생태‘주거지를 만들기도 합니다.종종 우리는 도시의 이른바’안전‘지역에 아름답게 잘 가구어진 녹지를 발견하게 됩니다.그러나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 살고 있는,제대로 눈에 뜨이지 않는 지역에는 그런 곳이 없습니다.
46. 세계적 변화의 사회적 요인들 가운데에는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기술 혁신,사회적 소외,에너지와 그밖의 공공 서비스의 불평등한 분배와 소비,사회적 붕괴,폭력 증가,새로운 형태의 사회 폭력의 증가,마약 매매,젊은이들의 마약 사용 증가,정체성 상실이 있습니다.이러한 것들은 지난 두 세기의 성장이 언제나 통합적 발전을 이끌지 못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보여 주는 징표입니다.이러한 징표 가운데 일부는 현실적인 사회적 쇠퇴,곧 사회적 통합과 화합의 유대가 소리 없이 와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상입니다.
47. 더 나아가 매체와 디지털 세계가 어디에나 존재하면서 사람들이 현명한 삶의 방식을 배우고 깊이 생각하며 넉넉히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도록 영향을 행사합니다.이러한 상황에서 과거의 훌륭한 현인들의 말씀이 넘쳐 나는 정보의 소음과 혼란 속에 들리지 못하는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이러한 매체들을 우리의 가장 커다란 풍요를 위협하지 않는,인류의 새로운 문화적 진보의 원천으로 삼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자기 성찰,대화,사람들과 편견 없는 만남의 결실인 참된 지혜는 단순히 자료 축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자료의 축적은 결국 괴부하와 혼란을 일으켜 일종의 정신적 오염을 낳습니다.다른 사람들과 현실에서 맺는 관계는 그에 수반되는 온갖 도전들과 함께,인터넷을 통한 의사소통으로 대체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이러한 의소통은 관계를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거나 꾾어버릴 수 있게 합니다.그래서 다른 사람들이나 자연과 맺는 관계보다는 기계와 그 화면을 통해서 맺는 관계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형태의 꾸며 낸 감정들이 흔히 생겨납니다.오늘날 매체는 우리 서로가 의사소통을 하며 지식과 감정을 서로 나눌 수 있게 합니다.그러나 때로는 그 매체가 다른 사람들의 고통,두려움,기쁨,복잡한 개인적 체험을 직접 접하지 못하게 합니다.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이러한 매체가 흥미로운 기회를 마련해 주는 반면에,인간관계에 매우 우울한 불만을 야기하거나 외로움이라는 해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 개정판)
“지도자에 대한 과도한 열광은 결코 반길 일이 아니다.그건 순식간에 과도한 비난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국민 모두가 자신이 발을 딛고 서 있는 삶의 현장에서 수평적 조정.해결 능력을 키워나가는 걸 우리 모두의 과제로 삼지 않는 한 대통령 1인에게 ‘감당해낼 수 없는 일과 책임과 압박’을 주면서 열광하거나 비난하는 악순환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묘한 건 지도자들 스스로 국민은 늘 피해자라는 식의 국민 예찬론을 폄으로써 국민의 면책 심리를 강화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는 점이다.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엘리트만의 문제로 오인케 하는 건 일시적으론 국민을 열광하게 만들 수 있지만,열광의 소재가 고갈되면 국민이 보내는 환멸의 부메랑을 맞는 비운에 처하게 된다.언론과 국민도 지금과 같은 지도자 추종주의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지도자에게 과부하를 거는 현 방식으론 답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지금 우리는 지도자 추종주의 자체를 문제 삼을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채 지도자만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 288-289쪽/강준만 著)
“돈 떨어진 건달같이
봄날은 가네”(벚나무는 건달같이/안도현)
화창한 봄날에
이쁜 꽃처럼
행복한 날만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