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이야기만 하게 되면 나는 화가 납니다. 나 같은 노인네가 수 없이
위정자를 비난하게 되고 정책에 불만을 퍼붓고 싶습니다.
내가 시골 태생이라서가 아니고, 우리나라의 농촌은 무엇이고 잘 되는 것이
없습니다. 소농구조에서 대농구조로 바뀌고 있는 현재는 더 빈 부의
대결구도로 가고 있습니다. 재력이 없거나 땅이 적은 사람들의 자녀는
농촌에 살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갖지 않습니다.
축산업과 낙농도 수입과 비용의 과다로 거덜이 났습니다.
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질병들이 축산업을 황폐화 시키고 있습니다.
원예업도 비용과 노동력으로 명맥을 유지합니다. 대표작물 쌀도 경쟁 작물에서
물러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농촌을 떠나는 사람들과 자본주의의 손길은
농촌을 점유한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우선 우리는 방대한 조직과 자금력을 가진 농협이 농민을 위한 농협이
아니라는데 이의를 제기 합니다. 지금 우리의 농협은 농민의 이름으로
이익을 내고 농민을 위한 정책이나 사업을 게을리 하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 농민이 필요한 것은 그 방대한 조직을 가지고 전국의 농산물 판매시장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야할 농협이 되어야 합니다. 그뿐이 아니라 생산 장려에서
농정 책이나 시장경제를 선도적으로 이끌어야할 농협의 조직과 자금력이
자기들끼리 놀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국회에 계류 되어 있던 농협법 개정안(경제과 신협사업부 분리)이 분과 위원회를
통과 하고 법사위를 무난히 통과 한다고 합니다. 당연히 국회 본회에서도
통과하리라고 봅니다. 우리 농촌이 발전을 못하고 잘살지 못하는 농촌으로
뒤진 것은 농민을 이끄는 행정관서도 청에서 부로 승격한지가 얼마 안 되었습니다.
방대한 농협조직은 변할줄 모르는 근본적인 문제는 농협법 개정에 관한
국민(특히 농민)적 노력이 적었다고 봅니다.
나는 70년대 이 나라의 산업에 역군이었습니다. 나는 자주국방이라는 위정자의
구호에 적극 동참한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나는 그 당시의 위정자에 정치구호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배고프고 가난한 국민을 위해서 정부는 무슨 일이던지
할 수 있다는 정치 신조가 마음에 와 닫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산은 전 국토에 60%나 됩니다. 헐벗고 황폐한 산은 홍수로
농토를 휩쓸고 있어 사방공사를 했습니다. 그때도 산을 관리 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나무를 연료로 썼기 때문에 나무가 남아나지 않았습니다.
사방 공사로 산림이 좋아진 것이 아니고, 산림보호에 법제화를 강력히 추진했고,
연료의 대안으로 연탄과 유류사용을 추진했기에 이룬 결과입니다.
그 덕으로 지금은 울창한 숲을 이루었지만 많은 목재를 수입해서 쓰는 우리나라의
산림은 그런 면에서는 경제적 가치가 전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수종 개량을
게을리 한 탓도 있을 것입니다. 또 산림을 자원으로 하는 정책의 부재라고도 보고,
안일한 관리에서 개발의 대안부재라고 봅니다. 우리나라 산림은 일제 때는 법으로
강력하게 규제해오다 해방과 더불어 나무를 연료로 하며 십년사이에 벌거벗은
민둥산이 되었습니다.
그런 산을 다시 지금처럼 만드는데 50년이 걸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산불로 많은 산림이 훼손되고 있지만 목재로서는 전혀 쓸모가
없는 나무들이 타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연료를 절감하고 산림을
경제 수목으로 대체하는데 국책이 수립되어야 수입이 있는 영림으로 바뀐다고
봅니다. 그 소득은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라는 것도 위정자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치열한 경쟁에서 뒤지는 다수의 사람들을 위해 일자리를 마련하고, 없는 사람들이
먹고사는 길을 열어주는 정책이 복지국가의 선결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산을 잘 이용하고 있는 지역을 들어 본다면 대관령, 서산 목장,
보성 녹차, 진영 단감농장 등 여러 곳이 있습니다. 그래봐야 지금도 개발을
기다리는 산은 전국토의 60%가 있습니다. 앞에 열거한 지방은 “환경을 무시하고 개발 된
것인가?” 라고 물으면 모든 사람들이 “아니요.”라고 답을 할 것입니다.
충분히 환경을 고려하고, 생산에 쓸모가 있어 개발되어야 할 우리나라 산지는
정치력의 부재로 존재합니다.
고속도로를 시작할 때 반대를 했습니다. 밥도 못 먹는 나라에서 고속도로는
무슨 고속도로냐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새로운 고속도로를 만들어도 차는
넘쳐 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그때에만 존재한 것이 아니고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개념이나 도전을 거부하는 세대는 언제나 있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거부하던 세대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받아
드리고 맙니다. 고속도로를 반대하던 사람들이 지금 고속도로가 좁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귀농에서 성공을 하려면 그리고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대체로 부단한 각오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이일마저 못하면 죽는다. 나는 지금 밥을 먹을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다. 나는 이 땅을 보다 좋은 땅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안하면 많은 식구들의 미래가 어렵게 살게 된다. 나는 이것저것 다해보았는데
땅(흙)을 믿는다. 나는 고향도 지키고 부모님의 유산도 지켜야 한다.
나도 무엇인가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 위에 열거한 것처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 중에 시골이 좋다. 농촌이 조용해서 좋다. 농촌의 풍경이 좋다. 농촌의 인심이
좋다. 나는 일하는 것이 좋다. 농업을 낭만적으로 생각하거나 일하지 않고 놀면서
산다면 삶의 방법 중 최상이겠지만 성공한 사람들의 노력에는 그런 낭만적인
생각은 지나가는 개에게 준지가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삶의 대책이 서고, 노후 여가선용을 위한 귀농이나 귀촌은 농민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말만 귀농이고 실제 삶은 여유 있는 삶을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분들을 보고 농사가 쉽다고 하거나 귀농이 별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더 큰 문제를 만드는 귀농이 됩니다.(계속)
첫댓글 무플방지 ~~
~~여유와 낭만만 있는 귀농도 농촌 인구수 증가에는 기여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