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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솔 최현배 선생의 ‘말씀들’
김석득 ․ 연세대학교 명예 교수
사람은 누구나 길고 짧은 한 삶을 살다가 영원한 잊음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다. 살아남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이 쌓은 공 덕과 얼일 것이다. 2011년 10월 19일(외솔 나신 날)에는, ‘외솔 기념관’(고향 울산 병영 에 있는)에 ‘외솔 최현배 선생 동상’이 섰다. 선생이 지은《나라 사랑 의 길》(1958년)을 한 손에 든 모습의 동상이다. 외솔 선생이 쌓은 공 덕과 얼을 길이 기리고 이를 뒷사람이 이어받는다는 뜻에서 세운 것 이다. 외솔 선생의 이러한 뜻의 표상은 이미 여러 군데 있다. 서울 장 충단 공원에 세운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1971)’, 연세대 안의 ‘외 솔 선생 얼굴상(1994)’과 ‘외솔관’, 외솔 선생을 모신 대전 국립 현충 원, 그 밖의 여러 곳의 표상들이 그것이다.
외솔 선생을 이와 같이 표상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외솔 선생 은 우리 근현대사 과정에서 큰 학문을 이룩하고, 겨레 정신사 형성에 이바지한 드문 은인의 한 분이요, 본이 되는 스승이시기 때문이다. 물 론 이는 모두 잘 알고 있는 터라, 여기에서는 이를 자세히 밝혀 논하는 일은 피한다(혹 이를 다시 살펴보려는 이가 있다면 글쓴이의《외솔 최 현배 학문과 사상》(2000)을 보기 바란다). 다만 외솔 선생의 삶의 깊은 세계를 싸안고 있는 얼 상징의 말씀들(어록)을 적어 보려 한다. 이 상 그분을 그리며 ․ 139 징의 말씀들은, 글쓴이가 1954년 대학 3학년 때부터 대학원을 거치면서 그리고 그 뒤 직접 들은 것이나, 들은 것이 외솔 선생의 글 안에 녹아 있는 것이나, 또한 글 안에만 있는 것을 찾아 살핀 것들이다. 그러나 글쓴이가 이들을 알뜰히 다 챙기지 못하고, 다만 몇 가지만 캐어 소개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그러함에도 이 몇 개의 말씀으로도 외솔 선생의 삶의 철학을 짐작할 수 있으니, 그것은 뒷사람들이 두고두고 삶의 양식 으로 삼을 만한 것이 되지 않을까 한다.
세월이 하 수상하다 싶으면 되뇌는 말씀이 있다.:
“사람이 사람이냐, 사람이어야 사람이다.”
이것은 세상이 매우 어수선하여 참사람됨의 노릇을 못하는 세상 사 람들에게 그 부도덕성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속 깊은 뜻을 안고 있다. 나아가서 이는 자연인 사람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온갖 사리와 사물에 까지 폭넓게 미치는 사람됨의 근본 뜻을 함께 안고 있는 말씀(어록)이 다. 이러한 절실한 뜻은 시대를 바라보는 외솔의 글에 잘 녹아 있다 (《민주주의와 국민 도덕》, 1953,《나라 건지는 교육》, 1963). 말은 사람 의 얼을 상징하고 또한 사람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힘(말의 힘)이 있 음을 증명하듯, 외솔 선생의 한 삶은 참사람됨의 위 말씀의 논리에서 벗어나지를 아니했다. 위의 말씀은 강단 안팎에서 필요할 때마다 강조 함으로써 후학들의 삶에 많은 반성의 영향을 주었다.
외솔 선생은 청년들에게 진취적 ‘이상’을 강조한다. : “이상은 청년의 생명이다.”
이것은 외솔 선생께서 역사적 현실 앞에서 부르짖으신 지론이기도 하다. 첫째, 외솔 선생은 겨레가 외세에 휘둘려 어려울 때 겨레를 다시 살리는 길을 청년의 이상의 힘에 호소한다. “청년아! 이미 살려는 뜻을 140 ․ 새국어생활 제21권 제4호(2011년 겨울) 떨치었거든 모름지기 앞으로 살아 나갈 이상을 세워라. …… 사람의 행 동은 목적을 가진 의식적 행동이다. 따라서 이상을 세우고 이를 실현하 기에 노력 분투하는 외에 무슨 할 일이 있을까?(《조선 민족 갱생의 도》, 1926, 1930에서)” 둘째, 외솔 선생은 또한 나라 안이 어지러워지매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흔들리는 세상을 직관하면서는 겨레의 희망이 요, ‘이상의 꿈이 있는 청년’에게 나라의 장래를 부탁․하소한다(《나라 사랑의 길》의 ‘청년에게 하소한다’ 쪽에서). 청년은 진취적 이상을 목숨 으로 여기라는 것, 그리고 그 목숨과 같은 이상의 꿈을 품고 있는 청년 에게 나라의 장래를 부탁한다는 것은, 오늘 그리고 영원한 내일의 청년 들에게 거는 큰 뜻의 말씀으로 새겨진다.
외솔 선생은 나라와 겨레의 세계화에 밝은 판단을 한다.: “제 나라를 구함으로 세계에 진출하라.”
외솔 선생은 결코 좁은 국수주의자가 아니다. 나라의 발전을 세계사 발전의 테두리 안에서 인식한다. 다시 말하면, 외솔 선생은, 우리나라의 발전은 먼저 우리나라 안의 역사적 현실의 발전에 기본을 두어야 한다 는 것이요, 다음으로 발전된 우리나라를 세계로 펼쳐 나아가되 우리의 세계화와 아울러 세계 발전의 일원으로 이바지해야 한다고 인식한다. 일찍이 외솔은 “세계를 구하려는 청년은 모름지기 먼저 제 나라를 구 하라. 제 나라를 구함으로 말미암아 세계로 진출하라(《조선 민족 갱생 의 도》에서).”라고 했다. 이것은 오늘과 내일의 일꾼인 청년들이 늘 밝 게 판단해야 할 국가 발전관이요, 세계화의 눈이다.
외솔 선생의 우리말 연구를 보는 눈은 겨레의 역사적 문화 창조의 언 어관이다.: “한 겨레의 문화 창조의 활동은, 말로써 들어가며, 그 말 로써 하여 가며, 그 말로써 남긴다(《우리말본》머리말, 1937).”
이는 겨레 문화의 역사다운 창조 활동은 실로 말이 있음으로써 가능 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기에 외솔 선생은, 외세의 의식적인 우리말에 대한 억압으로 말미암아 나라와 겨레의 목숨이 거센 바람 앞에 등불인 양 하늘거릴 때, 오히려 우리말의 연구와 우리말 지켜 펴기에 목숨 바 침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한 외솔 선생이매, 외솔은 우리말의 연구와 강의에서, ‘연구는 다만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니라 겨레 문화의 역사 적 창조를 위한 연구’라는 언어관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연구관은 연구하는 이나 제자들의 마음에 속속들이 스며들었다. 물론 이러한 말 연구의 눈은 있을 법한 다른 눈보다도 훨씬 설득력 있는 객관성을 띤 다. 외솔 선생을 영원히 기리는 표상에 이러한 언어관의 말씀을 밝힘글 (명문)로 아로새김도 그 까닭이다.
외솔의 말의 본질론은 ‘말의 힘’에서 비롯한다.: “말씨는 겨레의 표현 이요, 또 그 생명이요, 힘이다(《우리말 존중의 근본 뜻》, 1951).”
이것은 ‘말의 힘’의 본질을 밝힌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말씨가 움직이 는 곳에 겨레가 움직이니, 말씨가 일어나는 곳에 겨레가 일어나고, 말 씨가 시드는 곳에 겨레가 시든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오늘 우리는, 저 많은 누리 말들(5천∼6천 사이)이 힘 있는 말에 밀려 점점 없어져 감으로써(2주일에 1개꼴) 그에 담긴 다양한 누리 문화가 나라와 함께 운명을 달리함을 ‘말의 힘’의 논리(긍정과 부정의 기능)로 이해한다. 여 기에서 다양한 인류 문화의 이상은 점점 시들어가는 현상을 본다. 지난 날, 아니 오늘날까지도 겨레 다툼이 말씨 다툼으로 나타나는 사실을 우 리는 눈 바로 뜨고 보아야 한다. 외솔 선생은, 일찍이 말의 본질 곧 말 의 힘에 대하여 직접 강의나 글을 통하여 제자들뿐 아니라 그 밖의 많 은 이들에게 큰 깨침을 주었다. ‘말의 힘’, 이것은 외솔에게서 깨치는 말 철학의 보편 진리이다. 142 ․ 새국어생활 제21권 제4호(2011년 겨울)
외솔 선생은, 말의 힘 철학 아래 겨레말의 창조적 합리주의 순화론을 세운다: “사람이 말을 만들었음이 사실인 동시에 말이 도로 사람을 만듦도 또한 사실인 것 같이, 겨레가 겨레말을 만듦이 사실인 동시에 겨레말이 도로 겨레를 만듦이 또한 사실이다(《우리말 존중의 근본 뜻》, 1951).”
이것은 첫째, 외솔의 창조적 합리주의 철학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둘 째, 이는 또한 말의 힘 철학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다. 창조와 말의 힘 사상은 외솔로 하여금 ‘국어 순화’의 실천으로 나타난다. 국어 순화는, 우리 역사의 과정에서 그릇되게 물든 말과, 현실 사회에서 제멋대로 들 온말이나 바람직하지 못한 말의 잡초들을 솎아 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심는 등 말을 깨끗하게 다듬질하는 것이다. 순화의 사상은, 말에 인위적인 손을 대어서는 안 되며 있는 그대로 두라는 말의 ‘자연주의’ 와는 대립하는 ‘창조주의’ 철학과 말의 힘의 드러냄이다. 다시 말하면, 말의 순화는 말의 힘을 전제로 하고, 그 힘이 올바른 얼 문화 창조 쪽 으로 힘쓰도록, 사람에게 본디 주어진 새로움의 창의 능력을 발휘하는 언어관(훔볼트나 주시경 선생과 같은 언어관)의 실천이니, 그것은 이른 바 ‘말 다듬기’이다. 외솔 선생의 말 다듬기는 그 이론적 근거와 실천 방법에 물샐틈없다(《우리말 존중의 근본 뜻》). 일찍이 말 다듬기의 한 보기로 글쓴이의 학교의 오름길 계단에 새긴 ‘겨레(민족)(1926)’를 들 수 있고, 흐름의 쏠림으로 보면, 그것은 광복 뒤, 이 학교의 신문을 비 롯한 모든 학교의 신문, 아니 오늘날 뭇 언론 매체를 포함한 모든 말글 살이에 도도히 흘러가고 있다.
외솔 선생은 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치를 깨우쳐 준다.: “오른쪽 으로 굽어진 나무는 왼쪽으로 한껏 굽혀 놓아야 바로 서는 법이다.”
그릇됨을 바로 고치는 데는, 이 ‘자연 현상의 원리’를 터득하라는 것 그분을 그리며 ․ 143 이다. 또한 “아편 중독환자를 고치는 방법은 아편을 조금씩 줄여 주는 것보다는 큰 고통이 얼마간 있더라도 그것을 곧바로 끊어야 한다.”는 ‘ 병리학의 원리’를 깨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움을 좇아 구하는 철저한 의식 변화의 필요성을 힘주어 말한 것이다. 역사와 현실이 분별 없이 안겨 준 말글의 습관에 젖은 중독 현상을 고치는 방법도 위의 두 원리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유고《한글만 쓰기의 주장》, 1970). 위 의 두 가지 원리의 적용에 뒤따르는 말글 고침의 베풂(시술)에서, 외솔 은 늘 다음과 같은 말의 창조와 죽살이 현상을 깨우쳐 준다. “가령, 말 글을 새롭게 다듬되 다섯 개를 다듬으면 두 개쯤은 죽더라도 세 개쯤 은 살아남는다. 그러나 백 개를 다듬으면 여든 개쯤은 살아남고, 스무 개쯤은 죽는다.” 여기에는, 우리가 부리는 말을 창조하는 수의 생산 효 과를 계량의 이치로 깨우쳐 주는 참뜻이 들어 있다.
한글에 대한 외솔 선생의 인식은 우리에게 한글에 대한 긍지와 신념 으로 영원히 기억된다.: “한글은 우리 배달겨레의 정신문화의 최대의 산물이며, 세계 온 인류의 공탑이다(《한글의 투쟁》, 1954, 머리말).”
외솔 선생은 한글은 바로 우리의 목숨이라고도 인식한다. “한글이 목 숨(아리랑 연합회가 2010년에 발견한 ‘옛 방명록’, 1932)”이라고 쓴 것 은 이를 인식한 증거이다. 외솔 선생의 이와 같은 신념은 우리에게, 한 글은 우리의 정신 무기요, 이를 사랑하고 부리는 데에만 우리의 생명이 뛰놀며, 희망이 솟아나며, 행복이 약속됨을 깨우쳐 준다. 목숨으로 상징되 는 한글이 겨레 문화와 세계 문화에 끼칠 공헌을 일찌감치 내다본 듯, 외 솔 선생은 혹독한 감옥 안에서 연구한 ‘한글 풀어쓰기의 옥중 안’을 몰래 속옷에 간직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자 그것을《글자의 혁명》(1947)으로 펴냈다. 이는 사람의 몸의 구조와 움직임(두 눈의 자리 구조와 눈의 주 된 움직임 방향)을 지배하는 과학적인 두뇌 활동과, ‘착각의 원리’(같은 길이라도 세로는 가로보다 7분의 1이 길게 보이는 착각)를 들어, 이에 144 ․ 새국어생활 제21권 제4호(2011년 겨울) 합리적인 ‘가로 풀어쓰기’를 창안한 것이다. 한글의 ‘가로쓰기’와, 한글 의 ‘기계화’와, 나아가서 우리의 세로 문화에서 ‘가로 문화 이룸’의 기틀 은 이로부터 비롯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글의 과학화뿐 아니라 인류 에게 이바지하는 보람의 가치를 펴 나가는 세계화의 이상을 미리 꿰뚫 어 내다본 외솔 사상의 속뜻을 읽을 수 있다. 외솔 선생은 한글학회의 일을 보시던 때 ‘한글 기계화 연구소’를 만 들고, 공병우 박사가 한글 타자기를 만듦에, 이미 조사 연구한 ‘한글의 낱낱의 쓰이는 번수(《조선어문 연구》, 연희전문학교 문과 연구집 제1 집, 1930)’를 비롯한 한글의 이치를 깨우쳐 주는 등, 이미 ‘인문․자연 과학의 협동’의 길을 열어 놓기도 했다. 물론 외솔의 강의나 학문의 바 탕에는 이미 연역법이나 귀납법의 방법을 두루 쓰면서 논증하는 과정 에서, 철학이나, 논리학이나, 사회학이나, 심리학 등 다양한 이웃 분야 를 동원함으로써 학문 간의 엄격한 경계를 허물고 서로 융합․협동하 는 길을 열어 놓았다.
외솔 선생은 “투쟁은 만물의 어머니”라고 한다.
이는 인류 문화의 발전은 투쟁 가운데서 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외 솔 선생은 한글의 발전도 투쟁사의 하나로 본다. 그러므로 한글의 발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만나야 하는 외솔 선생의《한글의 투쟁》은 늘 치 밀한 논증으로 무장한다. 합리적 논증 없는 주장은 허공의 메아리로 사 라진다는 것이다.《한글의 투쟁》은 그것의 전형적인 논증의 결정체이다.
외솔 선생의 교육 원리의 기본 핵은 ‘자유’이다.: “자유에서 직관의 힘과 창의의 힘이 열린다.”
자유로움에서 개성이 자라고 창의의 문이 열린다고 보는 외솔 선생 의 교육 철학의 원리는 첫째, 있는 곳이 바로 배움의 곳(마당)이라고 그분을 그리며 ․ 145 보는 것이다. 가령, 학교, 사회가 모두 교육의 마당이라고 본다. 그러기 에 문과대학장 시절 외솔 선생은 등록금 연기 원서를 써 가지고 온 학 생을 앞에 놓고, 연기 원서의 네모 종이 안에 글월이 자리 잡아야 할 균형에서 비롯하여 그 글 표현의 알맞음을 살폈고, 때로는 어느 것이 더 좋은 표현일까를 서로 상의도 하는 한편, 대화 과정에서 학생의 말 쓰임에 바르지 못함이 있으면 바로 고쳐 주기도 한다. 그러다가 많은 학생들이 연기 원서 내는 시간을 놓치면 직권으로 연기 원서를 내는 날을 늦춰 주는 일도 생긴다. 외솔 선생의 교육 철학 원리의 둘째는, 인식의 근원은 자아이니, 사람은 제 스스로의 소산이며, 영원성의 자기 창조의 있음(존재)이라는 것이다. 곧 외솔 선생은 교육의 원리를 ‘자발 성’에 둔다. 강의 시간에는 짐짓 외솔 선생 자신의 주장에 대해 학생으 로 하여금 반론을 펴 보라고 한다. 또한 자유로운 야외 학습도 마다하 지 않는다. 모두 학생들의 창의와 합리적인 논리의 힘과 자발성을 이끌 어 내는 ‘직관의 힘’을 키우려는 것이다. 외솔 선생은 부총장 일을 볼 때 신입생의 무시험 제도를 만들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일 이요, 자유와 개성을 존중하고 창의성을 개발하려는 외솔 교육 철학의 실현이다. 위와 같은 교육 원리는 페스탈로치의 교육 사상과 일치하는 바가 있다(외솔의 논문 <페스탈로찌의 교육 사상>, 1927).
외솔 선생의 온 삶의 핵은 나라 사랑이다. : “‘나라의 이익은 곧 개인의 이익이 된다.’는 참이지만, 거꾸로 ‘개인의 이익은 곧 나라의 이익이 된다.’는 반드시 참은 아니다(《나라 사랑의 길》, 1958).”
이는, 나라의 이익은 필연적으로 개인의 이익에 연결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개인의 이익은 나라의 이익으로 반드시 연결되는 것이 아닐 수 도 있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이치에서 나라 사랑은 먼저 나라의 이익에 서 싹튼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외솔 선생은 ‘나라 사랑’의 개념에 대하 여 말한다. “나라 사랑이란, 어려울 때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146 ․ 새국어생활 제21권 제4호(2011년 겨울) 일이요, 보통 때는 신변의 작은 일, 작은 사물에 대한 사랑, 자기가 있 는 곳의 일에 충실함, 바로 그것이다(《나라 사랑의 길》,《나라 건지는 교육》들에 녹아 있음).”라고. 생각건대, 외솔 선생의 모든 금과 같은 말씀과 그 실천은 모두 나라 사랑의 핵에서 생성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외솔 선생의 모든 금 과 같은 말씀과 그 실천은 모두 마침내는 ‘나라 사랑’의 사상으로 돌아 가는(귀결되는) 것이다. 외솔 선생의 ‘외솔’은, ‘온 천지가 흰 눈으로 묻혔을 때도 홀로 푸른 소나무가 되리라(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에서 따온 뜻 깊은 상징의 아호이다. 외솔 상징의 뜻을 깊이 품고 있는 ‘외솔 최현 배’ 선생은 진리의 석학이요, 정의에 불타는 올곧은 나라 사랑의 선각 자이시다. 외솔 선생은 공과 사가 분명하여, 문교부 편수국 행정이나 학교 행정이나 교수 생활에 이르기까지 종이 한 장도 공과 사사로움 을 가리어 쓰셨으니, 그 나머지 일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한편 외솔 선생은 다정한 스승이시기도 하셨다. 제자들의 건강까지도 챙기시고, 그들의 앞길을 열어 줌에 정성을 쏟으셨다. 그리고 모든 청 년에게는 다음과 같이 일러 당부하신다. “불은 어두움을 쫓고, 소금은 썩음을 막느니, 그대들은 불과 소금이 되어 …… 이 나라를 밝히고, …… 이 나라를 깨끗이 하라. 오늘의 한배나라는 촛불로 타는 청년을 부르며, 소금으로 짠 젊은이를 기다린다(《나라 사랑의 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