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저희 팀에 인턴이 들어왔습니다. 제가 LG전자에 입사한 지 어언 2년 만입니다. 그동안 회사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이 직장 상사였습니다. 회식 메뉴 선정이나 회식 장소 예약, 회의실 예약, 대차 끌기 같은 잡무는 오롯이 제 몫이었지요. 그런 제게 후배가 생긴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복된 소식이었습니다. 그동안 막내로 일하며 제가 반면교사 삼았던 사람들과 제게 본이 되었던 선배들의 모습을 되뇌며 ‘나도 후배들에게 근사한 선배가 되리라’ 다짐했습니다.
취업 준비 기간과 신앙, 그리고 세상을 보는 눈
문득 취업하기 위해 준비하던 대학교 4학년 시절이 생각납니다. 신앙의 우여곡절을 겪고 새로운 성경적 가치관을 정립하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보수적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왔는데요. 어느 순간 세상을 향한 교회의 이율배반적 모습이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성육신 사랑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에 큰 회의를 느꼈습니다. 이를테면 목회자의 부패,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 자본주의 논리에 잠식당한 교회의 모습 말이지요.
그렇게 신실한 ‘교회 오빠’에서 삐딱한 반골 청년으로 변하며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무엇보다 이전까지는 전혀 와닿지 않던 성경 말씀이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마태복음 20장에 나오는 ‘포도원의 품꾼들’ 이야기인데요. 그동안 저는 이 말씀을 듣고 읽으며 그저 오늘날 경제 상황과 일말의 상관이 없는 하나의 은유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일하기 시작한 부지런한 일꾼과 오후 다섯 시까지 빈둥거리던 게으른 일꾼들에게 같은 품삯을 주다니! 불공평해. 이거 순 공산주의 아닌가’ 하며 말이지요. 돌이켜보면 이 말씀을 그저 문자 그대로 이 시대에 적용하면서 생기는 맹목적인 두려움이 다양한 성경 해석을 받아들일 여지를 막았던 것 같습니다. 그랬던 제게 어느 순간, 이 말씀이 이전과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 무렵 저는 취업전선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저는 어느 기독교 학교의 전자공학과를 졸업했습니다. 학교에서 만나는 모든 교수님이 기독교인이었지요. 그중 수업 시간마다 “좋은 공학도는 돈을 많이 버는 공학도이다. 돈을 벌지 못하는 기술은 무가치하다”라고 말씀하시던 교수님도 있었습니다. 물론 학과의 모든 교수님이 그런 생각을 갖고 가르침을 주신 것은 아니겠지만, 학과에 깔려 있는 보편적인 풍조가 그랬습니다. 당연하게도 대다수 학생의 꿈은 대기업이나 공기업 취직이었지요. 저 역시 아무리 신앙관에 변화를 겪었다고 해도 다른 학생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탐욕이 이끄는 힘은 강했습니다. 입으로는 소위 ‘맘몬’으로 묘사되는 황금만능주의에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며 떠들어댔지만, 가능하다면 대기업에 입사하고 싶었습니다. 제 뒤를 쫓는 학자금 대출이 이상을 빼앗으며 타협하는 데 정당성을 부여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지원할 수 있는 대기업이라면 모조리 다 입사지원서를 제출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여러 대기업 중 가장 입사하고 싶었던 회사에 취업했습니다. 어느 정도 네임밸류가 있으면서도 대외적으로 이미지가 좋은 회사였지요. 주변에 취업 소식을 알렸을 때 어떤 사람들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입사했다’며 축하해주었고, 어떤 사람들은 ‘돈 많이 주는’ 대기업에 취업한 것을 축하해주었습니다. 저도 LG전자가 재벌 총수의 불법 세습(증여)을 위해 분식회계를 하거나 산업재해에 대한 책임을 은폐하는 회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나름대로 떳떳하게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나치 시절 히틀러의 폭주에 쓴소리하지 못하고 ‘그저 시키는 일만 따랐던’ 부역자 아돌프 아이히만은 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하며 말입니다.
깨진 기대와 다짐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인턴사원들을 보며 느닷없이 ‘많고 많은 회사 중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발생한 취업난 때문에 차선으로 이곳에 온 사람도 있을 테고, 저처럼 LG의 윤리적인 이미지가 좋아서 간절한 마음으로 지원한 사람도 있을 겁니다. 각자 여러 이유로 이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썼을 것이고, 수많은 경쟁을 통과했으니 이렇게 인턴 기간을 거치고 있겠지요.
처음 인턴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겐 이런 바람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비록 S전자에 비해 연봉도 적고, 영업이익도 현저히 적지만 비교적 도덕적인 회사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을 그들과 공유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네 표현을 빌리자면 ‘정도경영’의 자부심입니다. 쉽게 말해 언제든지 더 많은 연봉을 주는 회사로 건너갈 준비를 하면서 일하는 선배가 아닌, 돈 이상의 고귀한 가치를 좇으며 정직하게 ‘열일’하는 한 명의 반례가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상투적인 표현으로 ‘예수쟁이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한 영향력’ 있는 선배를 마음속에 그렸습니다.
그러나 제 기대와 다짐은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LG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동학개미운동’이라 불리는 주식투자 열풍과 다가올 재보궐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이 펼치는 각종 흑색선전이 대부분의 매체에서 뉴스거리가 되고 있을 때,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신입사원 연수를 받았던 그 건물이 뉴스에 나오는 걸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당시 트윈타워 마천루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자아도취에 빠졌던 저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LG트윈타워에서 전면 파업 중인 청소노동자들 (사진: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해결을 위한 노동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지난해 추운 겨울부터 지금까지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트윈타워 앞에서 농성하고 있습니다. 청소노동자 80명 전원이 해고 통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고용주 측에서는 청소 품질 저하를 이유로 들고 있지만, 노동자 측 주장은 다릅니다. 노조를 결성한 탓에 보복성 집단해고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갑론을박 가운데 LG는 본인들은 그저 원청이고, 청소업체 계약·관리는 하청인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S&I)에 위탁했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S&I는 청소 품질 등 여러 이유를 들며 청소 용역업체인 지수INC와의 계약을 해지했다고 이야기하는 상황입니다. 과연 원청인 LG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일까요? LG가 100% 출자한 자회사인 S&I와 지수INC의 지분을 구광모 회장의 고모들이 전부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번 사태가 ‘반노조’ 정서를 이용한 기업의 횡포라는 주장에 더욱 힘을 싣게 합니다. 한국 노동시장의 오랜 병폐인 ‘일감 몰아주기’와 ‘하청에 재하청’ 문제 역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이 회사는 다를 줄 알았던 것은 제 순진무구한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실망스러웠던 것은 민주적이지 않은 LG그룹의 대응입니다. 회사는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들의 집단 투쟁 행동에 코로나19 방역이라는 그럴듯한 궤변으로 난방을 끊고 음식을 빼앗는 등 인간의 기본권도 존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휴대폰 사업 담당 MC사업본부가 매각된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투쟁을 벌이고 있을 때, LG전자는 각종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를 휩쓸었습니다. 청소노동자에 관한 내용이 아닌 ‘LG전자가 휴대폰 사업을 매각할 수 있다’는 이슈였지요. 이슈가 확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별안간 LG전자의 휴대폰 사업을 담당하는 MC사업본부의 CEO 권봉석 사장은 사내 메일을 통해 모든 구성원에게 ‘필히 고용을 유지할 테니 동요하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한쪽에서는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밤새 농성하며 투쟁하고 있을 때, 다른 한쪽에서는 사업본부 매각에도 고용 유지를 약속받는 상황이 아이러니했습니다.
두 사건을 마주하는 직장 동료들의 태도를 보면 “타인의 불치병보다 자신의 감기가 더 아프다”는 우스갯소리가 떠오릅니다. 이를테면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나누는 얘기는 대개 주식, 부동산 투기 같은 재테크 또는 회사 소식 정도로 한정되곤 합니다. 거의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해온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사연보다 우리 사업본부가 올해 성과급을 얼마나 받느냐가 더 큰 관심사이고, ‘우리 목소리를 들어 달라’며 끼니도 거르며 차디찬 바닥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청소노동자들의 슬픔보다는 그저 MC사업본부 임직원들은 과연 어느 팀으로 흩어지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합니다. 그뿐 아니라 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사태와 관련하여 사측의 올바른 대응을 촉구하는 EP(Enterprise Portal: 회사의 각종 정보와 업무를 지원하는 기능을 하는 기업 내 웹사이트)의 게시글은 추천 수보다 반대 수가 더 많고, 청소노동자들을 그저 더 많은 임금을 받기 위해 떼쓰는 ‘귀족 노조’로 깎아내리는 댓글도 제법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은 타인의 신음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자본의 잣대로 옳고 그름을 따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는 말은 케케묵은 잔소리가 되어버리지요. 노동은 그저 돈을 버는 수단으로만 여겨지고 많은 임금을 받는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한 능력자로, 적은 임금을 받는 사람들은 성실하지 못했던 패배자로 여겨집니다. 과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시선은 앞서 언급한 ‘세상’의 관점과 얼마나 다른가요?
다시 포도원의 품꾼들 비유를 생각하며
마태복음 20장의 ‘포도원의 품꾼들’ 비유를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이전까지 저는 부지런한 일꾼과 게으른 일꾼에게 동일한 임금을 주었던 포도원 주인의 너그러움에 더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 관점으로 말씀을 묵상하면서 능력주의의 오류에 빠졌던 것 같습니다. 근면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필연적 불평등을 자본주의사회에서 당연한 원리인 것처럼 여기며 말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척’하였지만 실은 불평등으로 발생하는 책임과 보상을 온전히 하나님 몫으로 떠넘긴 것이지요. 제 출세와 안녕 역시 간절히 바라면서 말입니다.
이제 저는 일자리를 얻지 못했던 사람들의 처지와 아픔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비유 속 포도원 주인은 일꾼들에게 “왜 더 열심히 일할 준비를 하지 않았느냐” “왜 남들보다 더 일찍 나오지 않았느냐”며 책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그저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일하게 했고 그에 상응한 품삯을 주었을 뿐입니다.
LG는 청소노동자들의 한 끼를 빼앗고, 외부의 다른 이들은 한 끼에 마음을 실어 청소노동자들에게 응원을 전합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확산된 ‘한 끼 연대’가 그것인데요. 농성 중인 청소노동자들에게 LG트윈타워 구내식당 식권값인 5,500원을 후원하는 개인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모든 일꾼에게 동일한 품삯으로 준 ‘한 데나리온’과 ‘한 끼 연대’에 담긴 긍휼의 마음에 LG 직원으로서 부끄러움이 배가됩니다.
저는 이 포도원 주인의 태도와 ‘한 끼 연대’가 보여준 연대의 마음이 故 구인회 LG그룹 창업회장이 생전에 강조한 ‘인화’(人和) 정신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하는 것이 아닌 상생하는 인간존중의 정신을 뜻합니다. 인화 정신은 신입사원 교육 때부터 근래 CEO 신년사에서까지도 지겹도록 강조받아왔지만, 그 실체를 LG 내부에서 발견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따뜻한 구내식당에 앉아 회사에서 제공하는 식대로 점심밥을 먹으며 “다 먹고살자고 일하는 것인데 밥이 맛없다”며 불평하는 ‘인화 실종’의 모습은 쉽게 볼 수 있었으나, ‘한 끼 연대’와 같은 인간 존중의 감수성을 목격하는 일은 어려운 것이 회사생활의 현실이지요.
LG는 저의 첫 일터입니다. 취업준비생 시절 가장 일하고 싶던 회사였지요. 외부에서 흠모하던 ‘착한 기업’ 이미지와 다른 모습을 내부에서 목도하게 될 때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애증의 마음이 더 큽니다. “악인에게 ‘네가 옳다’ 하는 자는 백성에게서 저주를 받고, 뭇 민족에게서 비난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악인을 꾸짖는 사람은 기쁨을 얻을 것이며, 좋은 복도 받을 것이다. 바른말을 해주는 것이, 참된 우정이다”라는 잠언 24:24-26(새번역)을 되새기며,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사측의 올바른 대응과 고용승계 이행을 촉구하는 ‘애정 어린’ 마음으로 창업주의 표현을 빌려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기업은 사람이 사람을 위해서 하는 활동이다. 기업을 하는 데는 내부의 인화가 무엇보다 서야 한다. 인화로 단결하면 무엇인들 불가능하겠는가. 만사가 모두 잘되더라도 인화가 깨지면 결국 망하게 되는 것이 세상의 도리이다.
- 구인회 LG 창업회장
익명
LG전자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3년차 직원.
첫댓글 인간의 기본권도 존중하지 않는 모습..ㅜㅜ
‘한 끼 연대’에 담긴 긍휼의 마음이 그들에게는 없는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