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1,화요산문(63)/인생은 인연놀음/김용원
인생은 인연놀음이라는 말을 앞세우고 쓰다 보니 그 자체가 너무도 간데없는 진리라서 갑자기 식상해진다. 애초 우리가 태어날 때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는가부터 인연놀음이 시작된다. 또 어느 부모로부터 태어났으며 어느 시기에 태어났는가도 한삶의 구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종족분쟁이 끊일 새 없는 소말리아나 르완다 같은 나라의 가난한 농부 부모에게서 오늘 태어난 어린이와 사회보장제도가 잘돼 있다는 스웨덴이나 덴마크, 스위스의 의사 부모에게서 태어난 어린이는 태어날 때 이미 행복지수가 달라지는 인연놀음의 간극을 맞게 된다.
쓰다 보니 거창해졌다. 이번 이야기도 저번에 쓴 글에 이어 아주 작은 인연으로 인해 삶에 영향을 끼친 내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 노래하고 관계된 일이다. 오래 전 모 기업체에서 문예창작에 대한 동영상 강의를 맡은 적이 있는데, 거의 1년 가까이 촬영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꼴로 그들과 만나곤 했다. 그런데 한 동료는 심장판막 수술을 받은 사람이고(그는 2026년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다른 한 동료는 뇌경색으로 한쪽 발이 약간 불편한 사람이었다. 따라서 일이 끝나고 나면 대체로 나는 술집에 들러 컬컬한 목을 다스리고 싶은데 두 동료의 건강 때문에 그럴 형편이 못되었다. 그러자니 공연히 여기저기 찻집만 전전하며 수다를 떨다 헤어지곤 하였다. 그러다 보니 태생이 변덕쟁이인 나는 진력에 받치고 말았다.
그리하여 궁리 끝에 어느 날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하는 게 어떻겠느냐 제안을 했다. 그런데 의외의 반응이었다. 그들은 평생 노래라고는 한마디도 부른 적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군생활은 어떻게 했으며 기도와 찬송가가 주축인 개신교 교회활동은 어떻게 하느냐 물었다. (둘 다 기독교 신자였다) 대답인즉, 군에서는 노래를 하지 않는 대가로 불이익을 감수하면 되었고, 교회에서는 입술만 달싹달싹하면 그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태어날 때부터 음치라서 노래하고는 절대로 인연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날은 어이가 없어 일단 지나갔다. 그러면서 곰곰 생각해 보니 강의 녹화할 때는 목소리도 좋고 말도 잘하는데 왜 노래를 하지 못할까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생각다 못해 어느 날 나는 결단을 내렸다. 그제는 같이 노래를 즐긴다기보다는 왜 말은 청산유수로 잘하면서 노래는 하지 못할까 의문을 풀고 싶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만약 노래를 할 수 있게 한다면 그들의 삶에 꽃 한송이 꽂아주는 정도의 선행을 베푸는 결과가 될 터이니 그 맛을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진지한 표정을 꾸며내며 이렇게 제안했다.
“자, 지금은 대낮이라서 노래방에는 사람이 없어요. 또 음치라서 괴상한 소리가 나더라도 우리밖에 없으니 창피할 것도 없고요. 그렇다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한 번만 따라 해 보는 겁니다.”
그렇게 꼬득여 노래방에 그들을 이끌고 들어갔다. 그리고 마이크를 잡은 후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먼저 불러 보였다. (그때는 가을이었다) 그러고 나서 미친 척하고 하나씩 노래를 부르라고 했다. 우선 발을 굴러 박자를 맞추며 노래 가사가 나오는 대로 따라 하면 된다느니, 어쩌고저쩌고 블라블라 기본적인 기법을 얘기했다. 이윽고 노래가 시작됐다. 그런데, 그들 중 하나는 선천적으로 약간의 음치지만 못 들어줄 만한 정도는 아니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목소리며 음정까지 어느 정도 정확했다. 문제라면 너무 오랫동안, 아니 평생 노래를 부르지 않아 리듬 감각이 떨어진다는 것뿐이었다.
어쨌든 그날 자신감을 얻은 그들은 그 뒤로 걸핏하면 노래방에 가자고 했으며 최하가 3시간, 때로는 5시간 동안 노래를 한 적도 있었다. 나중에는 내가 진력이 나서 그들을 피할 정도였다. 물론 그들은 모임만 있으면 만난 사람들을 노래방으로 이끌어간다는 말을 전전으로 자주 들었다.
그런 반면 나도 그들과의 인연이 끈이 되어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낳게 한 것도 있었다. 심장판막 수술을 받았다는 그로부터는 정상인과 다름없는 건강을 되찾게 된 것은 인라인스케이트를 배우면서부터라는 말을 듣고, 그의 꼬득임에 이번에는 강의 마치고 오는 날 즉시 인라인스케이트를 사 들고 집에 와 밤에 몰래 나자빠지며 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로 제약이 있는 검도를 그만두고 한때 인라인스케이트 매니아가 됐었는데, 그 덕에 부실한 오른쪽 다리를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은 바 있었다.
돌이켜보건대, 시덥잖은 내 문예창작 강의를 듣고 그에 영향을 받아 시인이나 수필가, 소설가로 등단한 분들이 꽤 있다. 또 장애인을 포함하여 여러 사람이 초등학교 졸업장밖에 없는 등, 가방끈이 짧은 것에 포원을 삼고 있는 걸 조언하여 대학물을 먹게 한 사례도 있다. 이제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깊어지면서 얻어낸 결론은 역시 인생은 인연놀음이며, 누구를 만나 어떤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삶의 질과 방향이 달라진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요즈음 새롭게 인연을 맺게 된 SNS를 인격화시켜 그 대상에 넣어본다.
/어슬렁 #어슬렁김용원#인연놀음#노래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