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으로 국경 허문 '눈에 띄는 며느리' 의외로 많아
얼마 전 국내 최고 재벌가의 며느리가 된 한 탤런트의 파경 소식이 전해져 세간의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연예인과 재벌의 혼사라는 점에 서 결혼 당시부터 화제를 뿌렸던 이 결혼은 재벌과 재벌 또는 재벌 과 권문세가의 결합으로 이뤄져 '그들만의 친족'을 형성하는 것이 일 반적인 재벌가의 결혼 풍토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
재벌가끼리 이뤄지는 혼사는 서민에게는 먼 나라 얘기나 다름없는 무의미한 소식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뜻밖의 인물이 결혼을 통해 재벌가문으로 흡수되는 경우가 다수 있어 눈길을 끈다.
재벌가의 사위-며느리가 지닌 특징 중 하나는 의외로 국제 결혼이 많고, 그 중에서도 일본인 출신이 많다는 것이다. 대부분 대기업 오 너 집안은 유교적 가풍을 지니고 있어 국제 결혼이 드물 것처럼 생 각되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
▲삼성-롯데, 일본인 많이 맞아들여
삼성에서는 4명의 일본인이 한 식구로 받아들여졌다. 창업주인 고 이 병철 회장은 고 박두을 여사와의 사이에서 낳은 3남 5녀 외에 2명의 자녀가 더 있는데, 이들이 바로 일본인 아내에게서 얻은 자식이다. 두 사람은 삼성가의 공식적인 막내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59)과 열 살 터울인 이태휘 전 CJ 상무, 그보다 아홉 살 아래인 이혜자씨로 현재는 모두 일본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피가 반반씩 섞인 두 사람은 모두 일본인과 결혼 했으며 이병철 회장 타계 전까지 한국에서 거주했으나 이 회장이 사 망하자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 이병철 회장의 부인 고 박두을 여사는 조선 시대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의 후손이다.
삼성가에 들어온 또다른 일본인은 이건희 회장의 형이자 새한그룹 창업자인 고 이창희 회장의 부인 이영자씨. 이영자씨는 일본 미츠이 (三井)물산 중역 출신인 나카네쇼지(中根正司)의 딸로, 결혼 전 이름 은 나케네 히로미였으나 결혼 23년 만인 1986년 한국식 이름으로 개 명했다. 고 이 회장의 일본 와세다대학 유학 시절 만나 결혼한 두 사 람은 삼성에서 독립한 고 이 회장이 새한그룹을 일으키는 등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1991년 이 회장이 백혈병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지난해에는 새한그룹마저 부도를 내는 등 말년에 불운이 이 어지고 있다.
재벌가의 일본인 며느리를 말할 때 롯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룹의 출발점 자체가 일본인 롯데는 신격호 회장이 결혼 1년 만에 홀로 일 본으로 건너가 일본인 시게미쯔 하츠코(中光初子)를 또다른 아내로 맞아들임으로써 후손은 모두 일본인의 피가 섞이게 됐다.
신 회장의 2남 1녀 중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은 신 회장과 본처인 고 노순화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신동주 일본 롯데 전무와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은 하츠코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이들 중 신 동빈 부회장의 아내, 즉 둘째며느리는 신격호 회장이 가장 공을 들여 맞이한 흔적이 역력하다.
▲'행운의 사나이'된 평사원 사위
롯데의 차기 대권주자로 강력히 거론되고 있는 신 부회장의 아내는 일본 황실의 며느리 후보에까지 올랐던 마나미(眞奈美)로, 후쿠다(福田) 전 일본 수상까지 중매에 나서 결혼을 성사시켰다. 마나미는 일 본의 귀족 가문인 요시마사(大鄕淡河) 가문의 딸로, 귀족학교인 일본 학습원 대학을 나왔다. 일본에서 열린 두 사람의 결혼식에는 당시 수 상이던 나카소네(中曾根)-기시(岸) 전 수상-후쿠다 전 수상 등 3명의 전-현직 수상이 참석했다.
2000년 사돈을 맺은 LG와 금호그룹에는 각각 중국인과 미국인 며느 리가 한 사람씩 있어 눈길을 끈다. 재계에서도 가장 유교적 가풍을 지녔다는 LG그룹에서 외국인을 며느리로 받아들인 것은 매우 이채로 운 일로, 구자훈 LG화재 회장의 아내 임방임 여사는 중국인이다. 금 호그룹에서는 박성용 명예회장이 미국 유학 중 만난 박 마가릿 클라 크(Magaret Clark:한국명 박말연)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박 여사는 창업주인 고 박인천 회장이 별세한 뒤 홀로 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 '푸른 눈의 효부'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엄격하기로 소문난 삼성가에도 사위와 며느리 중 의외의 인물이 다 수 있어 이채를 띤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이혼한 탤런트 고현정씨로 고씨는 이명희 신세계 그룹 회 장의 장남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과 결혼했었다. 결혼 발표 당시 재계에 서는 "귀족주의를 표방하는 삼성가에서 연예인을 며느리로 받아들인 것을 대단히 파격적인 일"이라며 놀라움을 표했다. 두 사람의 결혼은 당시 삼성그룹의 임직원들이 대거 동원돼 고씨에 대해 조사를 진행 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수많은 뒷얘기를 남겼었다.
삼성가의 장녀(이병철 창업주의 장남인 이맹희 전 CJ 고문의 장녀)인 이미경 CJ 상무는 이혼 후 전 남편이 화제를 모은 케이스. 이 상무는 김석기 전 중앙종금 사장과 결혼했다가 이혼했는데, 김 전 사장은 이 혼 후 연극배우인 윤석화씨와 재혼해 화제를 모으더니, 1999년에는 골드뱅크 주가조작 사건에 휘말려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수배 중인 김 전 사장은 현재 해외에 체류 중이며 윤씨는 국내에서 연극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장녀 이부진씨 역시 깜짝 결혼 발표로 세상을 놀라게 한 경우다. 국내 최대 재벌의 장녀인 이씨가 '간택'한 인물은 삼성물 산 평사원 출신인 임우재씨. 결혼 발표 당시 삼성물산 동경지사 주재 원으로 근무 중이던 임씨는 명망 있는 가문 출신도, 명문대 출신도 아닌 말 그대로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4년간 연애 끝에 재벌의 사 위가 된 이 '행운의 사나이'는 현재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을 준비 중 인 것으로 알려졌다.
▲권문세가와 결합한 혼사도 많아
두 사람은 임우재씨가 에스원에 입사했던 1995년 신입사원 자원봉사 활동에서 첫 인사를 나눴고 1996년 이건희 회장이 서울 한남동 자택 근처에 문화타운을 세우기 위해 조직한 기획단에 부진씨는 기획팀의 일원으로, 우재씨는 보안 담당으로 참여하면서 교제를 시작했다.
권력과 결합한 혼사도 다수 있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씨를 아내로 맞아 대통령의 사위가 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 이밖에도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의 동생인 이동 보 코오롱TNS 회장의 아내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장녀 이예리씨 며,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아내 김영식 여사는 김태동 전 보사부 장 관의 딸이다. 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맏딸 김선정씨를 시집보 낸 곳은 김준성 전 부총리(현 이수그룹 회장) 집안이며, 운수재벌인 한진그룹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아내 이명희씨는 교통부 차관을 지낸 이재철 전 중앙대 총장의 장녀다.
한꺼번에 3곳의 재벌과 사돈이 된 전직 정치인도 있다. 현재 롯데장 학재단 이사장으로 있는 노신영 전 국무총리는 삼성, 현대, 풍산그룹 자제와 아들-딸을 결혼시켰다.
장남 노경수 서울대 교수는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맏딸 정숙영씨와 결혼했고, 차남 노철수씨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인 홍라희 여사의 동생 홍라영씨와, 둘째딸 노혜경씨는 류진 풍산그룹 회장과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