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方[5143]조지겸(趙之謙),대련書
조지겸(赵之谦,1829년 8월 8일 - 1884년 11월 18일)은 한족으로,
절강 회계(현재 소흥) 출신입니다. 초기 자는 익보(益甫), 호는 냉군(冷君)이며,
이후 자를 회숙(撝叔)으로 고치고, 호를 비암(悲庵), 매암(梅庵), 무문(无闷) 등으로
불렀습니다. 청대의 유명한 서화가이자 전각가로,
오창석(吴昌硕), 여양옥(厉良玉)과 함께 “신절파”의 세 대표 인물로 꼽히며,
임백년(任伯年), 오창석과 함께 “청말 3대 화가”로 일컬어집니다.
어려서부터 독서와 서예를 익혀 박식하고 기억력이 뛰어났으며,
서화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과거에 세 차례 응시했으나 모두 낙방했고,
44세에 『강서통지(江西通志)』의 총편집을 맡았으며 파양, 봉신, 남성의 지현을 지냈고,
근무 중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지겸은 청년 시절부터 경학, 문자 훈고학, 금석학에 매진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특히 서화와 전각에 정통했습니다. 그는 선인과 동시대 여러 유파의 명가들에게서 배우되, 그들에게 얽매이지 않고 창의적인 도전을 이어갔습니다.
그의 회화에서는 “해상화파”의 선구자로서, 글씨와 도장을 그림에 융합하여 창조한
“금석화풍”은 근대 화훼화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서예에서는 청대 비학 이론의 가장 강력한 실천자로, 그의 위비체 서풍은
비파의 기법 체계를 한층 완성시켰으며, 청나라 시대에 있어 진정으로
정서, 행서, 전서, 예서 등 여러 서체에서 비파 학습의 모범을 보인 최초의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전각에서는 전인들의 기법을 폭넓게 습득하고 융합하여
“인외구인(印外求印)”의 방법으로 등석여(邓石如) 이후의 “서에서 인이 나온다”는
창작 방식을 창의적으로 계승하여 전례 없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습니다.
[출처] 청나라 서예 전각가 조지겸(赵之谦)|작성자 진소왕태극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