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간 비와 눈의 연속이었는데 좀 맞아주어도 되는 정도가 아니라 폭우에, 폭설에, 강풍에, 거기다가 나름 제주도 입장에서의 한파까지. 한라산 전경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자주 저멀리서 서있어야 하는 웅대한 자태는 비구름이나 눈구름에 휩싸여 하늘 모양새와 별반 차이도 없어 빠르게 변하긴 했지만 그래도 짙은 먹구름 투성이였습니다.
어제 드디어 반짝 해가 드러나긴 했지만 주변에 켜켜이 쌓였던 눈들이 꽤 한참 갈 예정으로 보여 뭔가 야외활동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닙니다. 애꿎게 완이만 집에서 칩거, 실내놀이터도 저번 사건으로 희망을 버리고, 눈비오면 가려고 봐두었던 실내암벽훈련장이나 구경꺼리될만한 곳도 다 접었습니다. 적응하는데 며칠걸리고 그나마 안하겠다고 버티면 상실감에 또 속이 타버릴테니 말이죠.
그렇다보니 완이는 형아들 오고가는 시간이나 끝나는 시간에 맞춰 차타고 갔다가 수산한못 거닐다 온 게 근 일주일 활동의 전부였네요. 어제는 해가 반짝이라 모구리야영장 인라인이라도 태워보렸더니 인라인장에 눈이 녹지않고 그대로 쌓여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수산한못 산책으로 대체!
수산한못 세 바퀴 돌고는 준이와 완이만 태우고 집으로 먼저 와버렸더니 태균이 걸어오는 모습이 멀리서 잡힙니다. 조금이라도 더 걸어보라는 의미인 것을 태균이 잘 알겁니다. 이런 일로 섭섭해하거나 삐지는 일은 전혀 없으니 다행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연스런 요산결석들 배출에 힘써가며 엄마가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 밖에 없었습니다. 서울대분당병원의 수술기록을 살펴본 의사가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게 지금은 없지 않겠느냐 하는 의견이었습니다. 벌써 지난 월요일이었네요.
대신 병원에 자주 와서 CT를 찍고 신장 내 결석상황을 자주 체크해봐도 되겠느냐 하는 저의 제안을 흔쾌히 허락했다는 것. 아무리 환자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하는 의사지만 그래도 모험은 하지않으려는 그들의 속성이 있으니 의사가 마지막에 덧붙인 말, '32년을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데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사는 수 밖에 없죠.'
이 말은 장애를 가지고 있으니 너무 애닳게 치료하려고 하지 말아라 라는 현실자각적 멘트이면서 병원을 다녀보면 의사들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기본개념을 엿볼 수도 있죠. 사실 전혀 말못하는 발달장애 성인이 이렇게 신체질병을 치료해 보겠다고 병원을 다니는 경우도 드물 것이니 이들에게는 특별하지만 일반인에게는 잘 하지않을 포기적 측면을 어쩔 수 없이 내비추기도 합니다.
이제 다시 태균이의 요산 관리문제는 엄마의 몫으로 돌려졌습니다. 과거 간질이 그랬고, 심부전이 그랬고, 이제 심각한 신장결석 문제가 과제로 주어졌습니다. 모두다 심각한 질병들이지만 하나하나 풀어가는 재미도 있으니 태균이랑 즐겁게 심각한 문제도 웃으면서 풀어가 보려고 합니다. 다행히 엄마가 시키는대로 잘 따라와주더니 요로결석은 바로 해결되었는지 요즘 편안해하는 표정입니다.
지난 수요일 드디어 주민등록도 제주도로 옮겼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제주도민이 되고보니 이게 태균이와 저의 삶에 어떤 의미가 될 지 미래가 궁금해집니다. 준이를 동거인으로 올려보려니 준이 집의 협조받기가 참 어렵습니다. 전화통화도 어렵고 카톡으로 보낸 요청사항도 아예 잘라먹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엄마 대신 누나랑 상의하는 수 밖에 없는데 자주 이런 태도이니 답답하기도 합니다. 준이 삶에 외로움이 뚝뚝 묻어나지만 제가 개입하는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번 명절 때 며칠 집에 같이 있어보면 정신이 버쩍 돌아오겠죠.
지난 월요일, 두통대비 진료의뢰서도 받아왔고 경기약도 데파코트로 바꾸어 왔으나 머리쥐는 행동은 여전해서 이 참에 뇌MRI라도 한번 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한데 일단 가족들에게 그 임무를 넘겨줘 보아야겠습니다. 준이도 성인이 되어가니 건강보험 실비라도 하나해주려니 발달장애는 가입이 어렵다고 합니다. 태균이는 참으로 운이 좋은 케이스였습니다.
이번 명절, 태균이랑 저는 베트남 여행을 갑니다. 완이를 잘 끝낸 스스로 위안여행이기도 하고 마침 아시아나 마일리지를 써먹어야 하는 싯점이기도 해서 몇 달 전에 마일리지로 예약해 놓은 항공권입니다. 하노이하며 하롱베이를 놀러갈 예정인데 저는 거의 17년만의 베트남 방문입니다.
그 때는 대규모 하이퐁 개발프로젝트의 일원 중 교육담당 전문가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어울렸던 단체투어였는데 그 때 받은 베트남에 대한 인상은 바로 여기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한국과 비슷한 장유유서의 정서하며 대규모 논농사에 적합한 촉촉한 기후, 제가 좀 메말라 보이는 외모라 촉촉한 그 땅들이 어찌나 매력적이었는지!
이념전쟁격인 미국과의 긴 전쟁으로 기성세대가 너무 많이 희생되서 젊은 층들이 바글대는 그 나라는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과의 관계는 꽤 괜찮습니다. 한국 남성들이 필리핀이나 중국에서 했던 현지인 하대행위나 여성노리개 개념도 여기는 잘 먹히지 않는 정신적 자존감같은 것이 있어 보여서 또 좋았습니다. 프랑스의 식민지배 역사로 인해 예술성도 꽤 뛰어나다는 평가입니다. 아시아의 식민지배 역사만 보아도 대한민국은 여러가지로 왜 이리 불행한지...
이번주까지는 아무래도 휴식기간이 될 듯 합니다. 많은 부분 평온한 한주였던 것 같습니다.
첫댓글 벳남 여행 잘 다녀 오시길요.
준이씨의 형편이 잘 풀리기를 바래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