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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29장 1-14절 본문을 토대로 "예레미야의 편지"라는 제목으로 설교 말씀을 선포했다.
오늘 본문은 그다음 단락에 속하는 말씀이다.
지난주 말씀이 예레미야가 보낸 편지 내용에 초점을 두었다면,
오늘 설교의 촛점은 예레미야의 편지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에 있다.
예레미야가 1,2차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들이 거짓 예언에 현혹되었기 때문이다(8-9)
포로로 끌려간 이들 가운데 자신을 예언자라고 자처하며 거짓 예언을 일삼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8)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
거짓 예언자들의 주장은? 조만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될 것이다는 메시지였다(28:1-3)
성전에서 하나냐와 예레미야간의 끝장 토론이 벌어졌다.
여기서 예레미야는 줄 곧 70년 후에야 포로 된 백성들이 해방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에 하나냐는 자신이 바벨론왕의 권력을 무너뜨렸다고 예언했다(2)
"2년 안에 해방된다"
이렇게 하나냐도 선지자이고 예레미야도 선지자인데 서로 다른 예언을 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하나냐의 예언이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을 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긍정적인 메시지를 지지한다. "잘 될 거야" "합격할 거야"
일제강점기 시절 1919년 3.1일에 삼일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때 누군가가 "우리 민족이 삼일 만세운동으로 인해 곧 해방된다"는 예언을 했다고 치자.
이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을 것이다.
이 메시지는 긍정적인 메시지이다.
하지만 그 예언은 틀렸다.
우리 민족은 이로부터 26년 후 1945년에 비로소 해방되었다.
지금 이 땅에 교회가 많다. 우스갯소리로 서울 강남에는 롯데리아 매장보다 교회 건물이 더 많다고 한다.
교회가 많다는 이야기는 자연히 목회자도 많다는 의미이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충실히 하나님의 메시지를 증거 하지만 그렇지 않는 메시지를 증거하는 목회자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수 없다.
여러분들은 진짜 메시지와 가짜 메시지를 어떻게 분별하는가?
두 가지 팁을 드린다.
1. 사람들의 지지와 호응을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여기는 것은 오해이다.
진리 여부가 지지율로 결정되지 않는다.
여론조사로 진리가 결정되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지지율에 민감하다.
지지율이 표심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치 분야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도 그렇다.
대중들의 지지를 받는 유명인이나 브랜드는 언터쳐블이 되는 세상이다.
그래서 셀럽들이나 기업에서도 대중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사투를 벌일 정도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치 않다. 즉 진리를 그렇치 않다.
예레미야 당시 백성들로부터 거짓 예언자의 메시지와 예레미야의 메시지 중 어느 메시지가 더 많은 지지를 받았겠는가?
당연히 거짓예언자의 메시지이다.
거짓 예언자들은 2년 안에 해방이 된다는 메시지를, 예레미야는 70년이 지나야 해방된다는 메시지를 전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언가를 수용할 때나, 진리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때 어떤 요인을 가장 크게 고려할까요?
그 사실이나 그 대상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라는 사실은 중요한 요인이 아니다.
당장 나에게 얼마나 이익이 되는가가 중요하다.
얼마 전 아주 흥미 있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어느 설문조사기관에서 전화로 300명의 대상들에게 "정치적 이념이 다른 사람을 자신의 배우자나 사위나 며느리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약 60% 정도의 사람들이 정치적 이념이 다른 이를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대중들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사실인가 사실이 아닌가 보다 정치적 이념이 같은가 아닌가에 더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성도들도 그렇다. 교회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다.
교회를 선택할 때 성도들은 어떤 요인을 가장 크게 생각하는가?
제 추측으로는 성도들은 자신이 편하게 교회생활을 할 수 있는 곳, 자신에게 유익이 될 수 있는 곳을 선택한다.
그래서 교회가 얼마나 큰가에 주목한다. 성도들이 얼마나 모이는가? 에 주목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성도들조차도 교회를 선택할 때 사람들의 지지율을 고려한다.
진리가 선포되는 강단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기는 경우는 드물다.
오해하지 마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에는 진리가 없다는 논리가 절대 아니다.
진리인가 아닌가는 사람들의 지지로 결정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지지율로 진리를 분별할 수 없다.
2. 진리 여부는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가 아니라 몸에서 나오는 행동으로 분별할 수 있다.
그 당시 거짓 예언자들의 족보는?
하나냐가 2년 설을 주장(28:1) 그 후 아합과 시드기야(29:21), 스마야(24)도 동일한 주장을 했다.
하나냐가 거짓예언의 선봉이다.
"족보"? 가문의 혈통과 계통을 기록한 책을 말한다.
우리나라 이단에도 족보가 있다. 크게 두 가지 갈래로 나뉜다.
통일교 교주 문선명과 시온파 교주 박태선이다. 대부분의 이단들이 이 두 가지 갈래에서 파생되었다.
우리나라 이단의 조상은 문선명과 박태선이다.
시드기야 시대에 거짓 예언은 하나냐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냐가 바벨론 포로 2년설을 주장했다.
하나냐(28:1) 이후 아합과 시드기야(21), 스마야(24)도 2년설을 주장했다.
그래서 이스라엘 교계에서는 2년 설이 대세를 이루었다.
백성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 당시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도 2년 설을 지지했다.
반면에 70년 설을 주장했던 예레미야는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예레미야만 다른 메시지를 전했다.
대부분의 선지자들은 설교 강단에서 2년 설을 주장했지만 예레미야만 전혀 다른 메시지를 전달했다.
예레미야가 목회를 했다면 교인들이 다른 교회로 모두 떠났을 것이다.
대중들이 외면했다.
오히려 거절당하고 치욕을 당했고 감옥에 갇혔고 구덩이에 빠지기도 했다.
이렇게 사람들은 진짜를 알아보지 못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 백성들에게 전달했지만 늘 돌아오는 반응은 박해와 비난이었다.
대중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진리를 전달했지만 지지를 받지 못했다.
왜? 사람들의 미음 속에 거짓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분 마음속에 어느 한 사람이 자리잡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오지 못한다.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고정되어 있다면 다른 생각이 들어오지 못한다.
그 당시 이스라엘백성들의 마음속에 거짓이 자리잡고 있었기에 그들은 진리를 진리로 인정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리와 비진리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닌 몸에서 나오는 행위로 분별할수 있다.
거짓예언자들은 2년 설을, 예레미야는 70년 설을 주장했다.
누구 말이 진리인지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
우리는 결론을 알기에 예레미야가 진짜 선지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 당시 이스라에 백성들이 판단하기에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약 성경책을 소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예레미야서를 읽을 수가 없었다.
이런 경우에는 그 사람의 행위를 보고 판단할 수 있다(22-23)
"그들이"? 거짓예언자 아합과 시드기야.
이들이 바벨론 포로생활 중에 성범죄를 저질렀다. "유부녀와 간음"
그리고 하나님은 이들이 거짓예언을 했다고 꼬집었다.
가짜 목회자에게는 도덕적 타락이 따라다닌다. 성문제와 돈 문제가 발생한다.
상대방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누구의 말이 맞는지? 어느 목회자의 메시지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분별하는 방법? 그들의 행위를 보고 판단하면 된다.
그들이 입으로 전달하는 메시지만 듣고는 진짜인 가짜인지를 분별하기 쉽지 않다.
대다수의 거짓선지자들은 돈문제와 성범죄에 연루되어 있다.
도덕적 타락이 뒤따른다.
오래전 약 23년 전에 제가 섬기던 교회 청년 한 명이 이단 교회에 등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청년을 만나러 주일 오후에 사상구청 옆에 있던 이단 교회를 방문했다.
대략 2-300명 정도의 성도가 예배실에서 오후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저도 그 자리에서 이단 목회자의 설교를 들었다.
신학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설교 내용은 전혀 없었다. 아주 평이한 설교였다.
이렇게 설교만 듣고는 그 교회가 이단이라고 판명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 목회자가 설교를 마치자마자 교회 앞에 세워둔 외제차에 승차했다.
서너 명의 보디가드가 그를 에워쌌다.
나중에 들은 정보로는 약 20년여 전 그 교회의 1년 예산이 10억을 상회했다.
그런데 이 돈의 약 80% 정도가 그 목회자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매우 혼란스러운 시대에 살고 있다.
교회도 많고 목회자도 많다. 대중매체를 통해 수많은 설교를 접할 수 있다.
한쪽에서는 이런 설교를 다른 한쪽에서는 전혀 다른 설교를 한다.
여러분은 교회와 설교를 어떤 기준으로 분별하는가?
대중들의 지지로 진리여부를 판단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얼마나 지지하는가로 진리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설교만으로 진리여부를 판단하지 못한다.
이단 중에도 멀쩡한 목회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말이 아닌 삶을 보고 판단할 수 있다. 목회자의 행위를 보고 그가 잔달한 설교의 진위 여부를 판단할수 있다.
목회자는 자신의 삶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내는 사람이다.
많은 수의 군중이 몰린다고 해서 옳은 것도 아니고, 듣기에 좋은 평강의 메시지라고 해서 옳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메시지가 옳은 것입니다.
왜 백성들은 분별력이 없는 것일까요? 거짓계시를 받는 백성들은 자기 안에 거짓이 있기 때문이다.
거짓예언을 받는 백성들도 거짓 계시를 전한 선지자와 동일한 심판을 받는다.
하나님이 그들의 악을 그들의 위에 부으시니 그것이 심판이 된다(렘 14:15~16)
진짜와 가짜를 분별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