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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한상원목사
PW : 믿음 BIW : 경각심을 주어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단호하여 경각심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식사 기도의 효능
미국의 의사 존 자웨트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사 기도를 드리고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연구해 봤습니다.
이들을 연구했더니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없는 세 가지 특이한 물질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① 첫 번째 물질은 연구자인 존 자웨트도 완전히 규명할 수 없는 일종의 신비한 백신 (Vaccine)인데, 그것은 모든 질병을 예방해 주는 효능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이 같은 주장은 결코 그 사람만의 주장이 아닙니다.
이 기도 백신이 질병을 예방하고 인간의 면역 기능을 향상시킨다라는 보고서는 현재까지 계속 발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② 두 번째 물질은 항독소(Antitoxin)라는 물질입니다.
이것은 항체 역할을 담당하여 각종 질병의 진행을 억제시켜 주고, 병균의 침입을 막아주며, 살균해 주기 때문에 질병의 예방과 아울러 치료에까지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③ 세 번째 물질은 안티셉틴(Antiseptin)라는 물질입니다.
이것은 방부제 구실을 합니다.
이 방부제는 위장 내에서 음식물이 이상발효 하거나 부패하는 것을 방지해 주고, 소화 흡수를 도와서 사람들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작용을 한다고 합니다.
물론 식사하기 전에 기도하고 계시지만, 앞으로도 성도님들은 식사할 때 꼭 감사기도 드린 후에 식사하시면 좋겠습니다.
감사기도 드린 후에는 반찬 투정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감사기도 한 식사에 반찬 투정 부리는 것은 감사 기도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무슨 밥을 주시든, 무슨 반찬을 주시든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언제 어디서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의식을 뛰어넘으시는 하나님께서 은혜와 평안과 축복으로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굳건하게 지켜 주실 것입니다.
식사기도를 생활화하는 신앙인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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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만남이다.
누구를 어떻게 만나는가에 따라서 축복된 사람이 되는가.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이 되는가. 하는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독일 문학자 한스 카롯사(Hans Carossa, 1878-1956)이라는 사람은 “인생은 너와 나의 만남이다.”라고 말한다.
부모 형제와의 만남, 스승과의 만남, 이웃들과 벗들과 친구들과의 만남, 좋은 책과 만남,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과의 만남, 갖가지 종류의 만남이 있다.
만남 중에 만남이라면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장 싫어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도록 온갖 방해물을 설치해 두는 경우가 많다.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유혹하고 미혹하는 것들로 가득차 있다.
어디를 보아도 하나님을 믿도록 도와주는 것은 없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하나님을 떠나서 믿지 못하도록 유혹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을 뿐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떠나면 살기가 너무너무 편하고 좋은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굳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의 온갖 신들을 섬기라고 유혹하지 않아도 저절로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의 신들을 섬길 수 있는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여호와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못하게 된다.
정말로 하나님을 제대로 믿으면서 살려고 하면 그만큼 고통과 시련이 뒤따라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영성, 영력, 영권이 살아 있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착하게 되면 어떻게 하면서 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은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어떻게 하면서 살라는 말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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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가나안의 문화를 탐닉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사람은 호기심의 존재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수없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말씀을 들었지만, 가나안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가나안 사람들이 믿고 살았던 바알 하나님, 아세라 하나님은 어떤 신이었을까? 바알과 아세라신은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여호와 하나님과 어떤 점이 다르고 같을까를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 충동심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신명기12;29-32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쫓아낼 그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절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여 거기에 거주하게 하실 때에, 너는 스스로 삼가 네 앞에서 멸망한 그들의 자취를 밟아 올무에 걸리지 말라. 또 그들의 신을 탐구하여 이르기를 이 민족들은 그 신들을 어떻게 섬겼는고, 나도 그와 같이 하겠다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는 네가 그와 같이 행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은 여호와께서 꺼리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그들의 신들에게 행하여 심지어 자기들의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들에게 드렸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가나안 족속들이 섬기던 신들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신들이다.
자기 자식을 불에 태워서 신에게 바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암몬 족속이 섬기는 몰렉, 밀곰이나 모압족속이 섬기는 그모스신은 어린아이를 재물로 바치라고 요구하는 신이다.
정상적인 진리, 지식으로 사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자기 자식을 불에 태워서 신에게 바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기 자식을 그들이 섬기는 신에게 제물로 바쳐서 불에 태워죽이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어느 누구보다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런 신들을 섬기는 이들을 가증하게 여기시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여성이라면 어떻게 자기의 가장 소중한 몸을 정명석이라는 짐승에게 바치기 위해서 줄을 설 수 있을까?
한두 명이 아니라 수백, 수천의 젊은 여성들이 정명석이라는 짐승에게 자신의 소중한 몸을 바치기 위해서 줄을 선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것이 사실이다.
정명석과 성관계를 맺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어떤 여성들은 성추행, 성폭행이라는 단어를 아주 쉽게 사용하면서 뭇남성들을 성범죄자로 만들면서 정명석이라는 사람이 저지르는 범죄에는 눈을 감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금지시키고 있는 가나안 문화는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어떤 문화를 의미하는 것일까?
세상에 난무하고 있는 온갖 종류의 문화들을 가리킨다.
2022년 10월 29일에 이태원에서 벌어진 할로윈데이(Halloween Day)참사는 대표적인 가나안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귀신 놀이하면서 온갖 추악한 행위를 일삼은 것을 축제라는 미명으로 행하는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면서 벌어진 이태원 참사 사건이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할로윈데이를 즐기려고 이태원에 갔다가 참사를 당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어느 교단에서는 교단 차원에서 이태원 참사 위로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과연 그 위로 예배를 예배로 받으셨을까 하는 의문이 앞선다.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이 하마스의 공격을 받기 전에 커다란 불상을 세워놓고 온갖 음란의 작태를 벌리는 것도 가나안의 문화이다.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이라는 미명아래 동성애법을 만들려고 하는 것들도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다.
대법원에서 성전환수술을 받지 않아도 자기 자의적으로 성을 바꿀 수 있는 법안을 만들려고 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은 일이다.
이처럼 세상의 문화는 달콤함과 재미와 쾌락을 제공해 준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피폐함과 영적인 곤고함과 갈증을 가져온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종류의 문화를 성경의 눈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고 관찰하고 무엇이 옳은 것인지 그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② 가증한 행위를 엄단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자고 미혹, 유혹, 꾀는 자들을 용서하지 말고 죽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떠나서 배교하도록 유혹하는 것들은 어떤 경우가 되었든 반드시 죽임으로써 희생양을 삼아서 경각심을 가지도록 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유혹하지 않아도 저절로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죄악들, 세상의 온갖 신들을 좇아가는데 유혹까지 한다면 얼마나 많은 배교의 행위가 일어나겠는가?
하나님께서는 1-5절에서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며 그를 경외하며 그의 명령을 지키며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를 의지하며, 그런 선지자나 꿈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에게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게 하려 하며,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령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라고 말씀하신다.
6-10절에서도 “네 어머니의 아들 곧 네 형제나 네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가 가만히 너를 꾀어 이르기를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 곧 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민족 혹 네게서 가깝든지 네게서 멀든지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에 있는 민족의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할지라도, 너는 그를 따르지 말며 듣지 말며 긍휼히 여기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덮어 숨기지 말고,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죽일 때에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 그는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너를 꾀어 떠나게 하려 한 자이니 너는 돌로 쳐 죽이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신령한 자처럼 행세하면서 선지자 노릇하고, 예언자 노릇하는 이들과 꿈을 꾸었다고 하면서 미혹하는 꿈꾸는 자들을 죽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심지어는 형제, 자녀, 배우자, 생명같이 여기는 친구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떠나도록 미혹하는 이들은 돌로 쳐서 죽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12-16절에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거주하게 하시는 한 성읍에 대하여 네게 소문이 들리기를, 너희 가운데서 어떤 불량배가 일어나서 그 성읍 주민을 유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한다 하거든, 너는 자세히 묻고 살펴보아서 이런 가증한 일이 너희 가운데에 있다는 것이 확실한 사실로 드러나면, 너는 마땅히 그 성읍 주민을 칼날로 죽이고 그 성읍과 그 가운데에 거주하는 모든 것과 그 가축을 칼날로 진멸하고, 또 그 속에서 빼앗아 차지한 물건을 다 거리에 모아 놓고 그 성읍과 그 탈취물 전부를 불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지니 그 성읍은 영구히 폐허가 되어 다시는 건축되지 아니할 것이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 앞에서는 가증한 행위를 일삼는 성읍까지도 파괴시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말씀하고 계시지만, 실상은 그렇게까지 단호하게 엄단할 수 없는 일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도와주고 이롭게 해준 이들이고, 내 가족들, 식구들, 나의 피붙이들이기 때문이다.
성읍을 몰살시킨다면 그 성읍 안에서는 한두 사람이라도 의롭게 살면서 오직 여호와만을 사랑하며 섬기는 신실한 이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교 지역에도, 북한 땅에도 숨어있는 신실한 신앙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 성읍을 몰살시킨다면 의롭게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이들도 피해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나중에는 너무나 잔인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6.25한국전쟁 때나, 제주 4.3사건 때나 여수 순천 반란 시간 때에도 죄 없는 국민들이 얼마나 많이 피해를 입었던가.
이렇게 한 성읍을 몰살시킨다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행위이다.
그들에게 적어도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로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을 용서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자비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나의 식구들, 가족들, 내 피붙이들이고, 나에게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고 유익을 준 이들을 어떻게 죽일 수 있겠는가?
내 이웃들, 내 친구들, 내 동료들을 어떻게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그렇잖아도 세상에 살인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이들에 대한 각종 뉴스를 보면서 끔찍하기 짝이 없는데 어떻게 이들을 죽이면서 엄단할 수 있단 말인가?
절대로 죽일 수 없다. 죽여서도 안 된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반인륜적인 악한 행위가 된다.
우리들이 그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죽이면 또 다른 복수의 씨앗이 뿌려지게 된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게 된다.
그러니 좀 더 이해하고 용서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은 너무나 단호하게 그들을 죽임으로써 경각심을 일깨워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③ 하나님을 온 몸과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제대로 사랑하며 섬기는지 아닌지를 시험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선지자, 꿈꾸는 자들에게 이적과 기사를 주어서 행하도록 하면서 하나님을 떠나서 다른 신들을 섬기자라고 제안하며 유혹하는 것은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온전하게 하나님만을 섬기고 있는지, 아닌지 그 여부를 알아보려고 시험하는 것이다.
3절에서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얼마나 신실하게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로 살려고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시험장으로 끌고 가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시험하시는 그 시험에 걸려 넘어지면 하나님을 거역하고 떠나서 대적하게 되는 것이다.
시험에 걸려서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되고,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하는지를 알아보려는 그 시험을 이기고 통과하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의 품안에서 살게 된다.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몇 곱절로 받아누리게 되면서 그야말로 대박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징계와 심판과 처벌을 받음으로 쪽박신세가 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모든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받으면서 대박을 터뜨릴 것인가 하는 것은 순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13절에서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같은 악을 다시는 너희 중에서 행하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17-18절에서도 “너는 이 진멸할 물건을 조금도 네 손에 대지 말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그의 진노를 그치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를 더하사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심 같이 너를 번성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서 정직하게 행하면 이같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서 희생양으로 삼고 엄단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니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절개를 굳게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행위는 엄밀하게 처단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굳게 지킬 수 있도록 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 앞에서는 좋은 게 좋은 일일 수 없다.
하나님 앞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율례와 법도과 규례와 계명이라는 엄밀한 기준을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의 편에 설 수 있을 때가 좋은 일이 되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 편에 설 수 없을 때는 어떤 경우가 된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요 가증한 행위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증한 행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단호하게 엄단을 내림으로써 다른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보여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 신앙인들도 삼위 하나님 앞에서 신앙의 절개를 지키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신앙의 절개를 지키면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신뢰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오직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신앙의 절개를 지키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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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행위들을 엄단하면서 다른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보여주라고 말씀하셨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어떤 가증한 행위들을 엄단하기를 원하고 계실까?
하나님께서 엄단하라고 말씀하시는 가나안의 문화, 전통, 습관, 사고체계, 신앙은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는 어떤 것들을 엄단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이미 신앙인들의 삶과 뇌리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무엇을 뽑아내는 결단을 해야만 오직 삼위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당하여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기는 신앙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가장 먼저 삼위 하나님을 향한 신앙에서 떠나도록 만들어내는 의심, 불신, 원망, 불평, 짜증, 미움, 시기, 질투와 같은 죄악의 뿌리는 더 이상 용납하지 않고 단호하게 뽑아내야 하는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17-21에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갈라디아서 5:22-24절에서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친동생이신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서 3;14-16에서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라고 말씀하신다.
아울러 야고보서 3:17-18에서는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신앙인들은 세상의 가나안 문화를 쫓아가려고 하는 육신의 소욕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복음으로 죽여야 한다.
우리들은 세상에서 오는 지혜, 땅 위의 지혜, 정욕적인 지혜, 귀신으로부터 오는 지혜, 시기와 다툼이 일어나는 지혜를 예수님의 십자가 권능으로 죽여야 한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떠나고 세상에 물들도록 유혹하는 모든 근원들, 뿌리들을 예수그리스도 십자가의 보혈과 복음으로 죽여야 한다.
그런 후에 성령을 통해서 주시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지혜, 화평케 하는 지혜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죽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조금의 미련이라도 가지지 말아야 한다. 눈꼽만큼의 미련도 두지 말아야 한다.
죽여야 할 육체의 욕망을 죽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서 주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축복의 지혜를 얻을 수가 없다.
죽여야 산다. 죽이지 않으면 살지 못한다. 죽일 때 사는 길이 열린다.
믿음으로 받은 축복은 죽이는 것이다. 믿음으로 받는 축복은 죽일 때 받는 것이다.
믿음으로 받는 축복은 죽임으로서 얻어지는 것이다.
축복을 기대하는 신앙인, 축복을 사모하는 신앙인, 축복을 갈망하는 신앙인들은 세상의 모든 것들, 가나안 땅의 모든 것들을 죽이는 사람이다.
축복을 기대하는 신앙인, 축복을 사모하는 신앙인들, 축복을 갈망하는 신앙인들은 세상의 문화, 가나안 문화들을 죽이고 성령을 통해서 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열매와 권능을 사모하는 사람이다.
신앙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죽이라고 명령하시는 육체의 소욕, 육체의 욕망, 육체의 죄악을 좇아가려는 마음, 가나안의 풍속들을 미련없이 죽여야 한다.
가나안의 문화들과 세상의 것들을 죽이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은혜, 능력, 권능, 영력, 영권을 받아 가지게 하신다.
축복은 죽임으로서 살고, 죽임으로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을, 가나안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축복의 보따리를 받게 된다.
축복의 보따리에는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경험, 하나님께서 동행하시고 역사해 주시는 권세가 들어 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릴 영생이 들어 있다.
오늘 우리들이 찾아야 할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단호하여 경각심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신뢰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올곧게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와 역사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나기 http://cafe.daum.net/GRACEOFJES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