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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입은 한 여자
(계 12: 1-17)
= 교 회 론 =
요 약
해 입은 교회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참 교회의 모습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최대 걸작품이며, 그리스도와 연합되며, 오직 하나이고, 승리한 무리요, 그러나 아직 해산 수고의 사명이 있다.
그런데 대적자가 있으니 곧 사단으로 꾀는 자요, 지모지략이 완벽하고, 기만으로 왕권을 행사하려 하고, 믿음을 파괴하고, 구원 사역을 방해하고자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혼을 하늘에 속하게 하시고, 깨뜨리는 권세와, 승리와 영광과, 은사적 도움과, 왕적 권세를 주시고, 참소를 이기게 하신다.
그리고 박해를 주어도 은사로 양육하시고, 교만과 탈선을 주어도 육체적 안전장치를 주시며, 그러나 가장 큰 약점은 평탄과 풍부 속의 안일의 시험이다.
설 명
<교 회>
1. 교회의 모습
① 최대의 걸작품
② 그리스도와 연합됨
③ 오직 하나
④ 주 안에서 승리한 무리
⑤ 사도적 교리 계승
⑥ 사명을 향한 해산 수고
2. 교회를 시험하는 사단
① 괴이한 악의 존재
② 꾀는 자
③ 지모지략 완벽
④ 왕권 가장
⑤ 믿음을 파괴함
⑥ 구원사역 방해
3. 교회에 주신 특별은총
① 하늘에 속한 영혼
② 깨뜨리는 권세
③ 승리와 영광
④ 은사적 도움
⑤ 왕적 권세
⑥ 참소 이김
⑦ 지상 성도들도 그 은혜를 누림
4. 사단의 공격과 하나님의 보호
① 박해 - 은사적 양육
② 교만과 비진리 - 육체적 안전장치
③ 안일 - 가장 취약점
(본 문)
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4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 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12:17)
(강 해)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해를 입은 한 여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일곱째 천사의 나팔이 시작되면서 이 나팔의 내용인 일곱 대접 재앙이 전개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반드시 깨닫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항을 일곱 개의 삽경을 통해서 계시하십니다.
그 일곱은 참고적으로 해 입은 여자,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땅에서 올라온 짐승, 육백 육십 육, 십 사만 사천, 세 천사의 경고, 그리고 두 종류의 추수입니다.
이 부분 역시 문자적으로는 난해하지만 신령한 의미로는 현실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귀한 메시지를 들려줍니다.
여기에 대한 대략적인 의미는 교회론, 육체론, 세속론, 미혹론, 성화론, 회개론, 추수론 등입니다.
이 삽경들은 서로의 연관성을 가지고 순서적으로 배열된 계시입니다.
오늘 본문의 해를 입은 한 여자는 참된 교회의 상징입니다.
성경에서 여자는 교회의 상징으로 늘 쓰입니다(갈4:26, 엡5:32-33, 벧전5:23. 계19:7, 계21:9, 요3:29).
아담이 깊이 잠들매 하나님께서 거기서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는데 이 그림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교회가 탄생되는 귀한 예표입니다(갈4:26-28).
그리고 한 여자만을 만드셨으니(말2:15) 이 역시 교회의 귀한 예표입니다(엡2:15-22).
그러므로 본문은 해 입은 여자를 통해서 참된 교회를 다각도로 보여주며, 교회의 탄생과 사명과 보호와 완성이 하나님의 특별은총으로 이루어짐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성도는 이 교회의 일원이요 지체이므로 여기에 나타난 진리들을 자신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먼저, 그리스도 교회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최대의 걸작품입니다.
1절에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했습니다.
여기 교회를 소개하면서 하늘의 이적이라 함은 교회는 하늘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지상의 성도들도 영적으로는 모두 하늘에 속해 있습니다. 그리고 큰 이적이라 함은 가장 큰 이적인 예수님의 성육신과 죽으심과 사심을 통해 만드신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구약의 최고의 이적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이요, 신약의 최고의 이적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사실 다른 이적들은 모두 이것을 예표하기 위한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창조 이후 첫 번째의 기적이 남자에게서 여자를 창조하심인데 이것이 교회의 예표입니다.
그 후 성경에 무수한 이적과 기사와 말씀이 있지만 그 모든 것이 구원사적인 사건이요, 이 구원사는 결국 죄인 구원과 연관되고 이 구원은 결국 교회를 만드심에 귀결된다는 점에서 교회란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큰 이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모습이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하신 최고의 걸작품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그리스도와 연합된 영광된 존재입니다.
다시 1절에 “해를 입”었다고 했습니다.
해는 그리스도 혹은 하나님을 상징하며(눅1:78-79, 마4:16, 시72:5-17, 시89:36, 시84:1), 해를 입었음은 그리스도와 연합됨을 뜻합니다. 또는 해가 지극한 영광을 상징하기도 합니다(Ladd). 지상 부부의 한 몸 됨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예표합니다. 그래서 엡5:31-32에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와 하나되어야 하고 그를 입어야 합니다.
롬13:14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했고, 갈3:27에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했습니다. 이 사실을 확신할 때 나는 감추어지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의 인격에 나타나게 됩니다.
3. 교회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오직 하나입니다.
그리고 “한 여자가 있는데” 했습니다.
여기 한 여자는 교회의 유일성을 암시합니다. 엡2:15에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라고 하셨으며, 엡4:3-6에도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痴治철鏶?했습니다.
4.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세상을 이겼습니다.
다음에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했습니다.
고대에 있어서 무엇을 발아래 둠은 승리의 표시였습니다. 그래서 시110:1에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달은 커졌다 적어졌다 변천하는 것으로 달을 일시적인 세상의 풍조를 반영합니다. 성도는 이미 예수 안에서 볼 때 세상을 이긴 자입니다(요16:33, 요일5:4, 히11:38). 바로 그 모습을 본문에 보여줍니다. 요일4:4에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신부된 교회인 우리들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아야 합니다.
5. 선지자들과 사도적인 교리를 계승받아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했습니다.
성경에서 야곱의 아들들을 열두 별로 표시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국기는 별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 열두 별의 면류관 속에는 하나님 백성들의 선택과 구원과 승리와 영광 등의 내용이 다 ?榕?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스런 택한 백성임을 묘사함입니다. 여기 12의 수는 중요한 교회의 수입니다. 사단은 이 수를 깨려고 구약에는 단 지파를 신약에는 가룟 유다를 타락시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갑절의 복과 신약에서 맛디아를 예비하셔서 그것을 이기셨습니다. 12지파의 막내 베냐민을 낳을 때 라헬이 그 험한 에브랏 길에서 난산으로 죽어가면서 얼마나 고통했습니까? 12수가 그냥 만들어지는 것 아닙니다. 참 교회는 고난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혹은 열두 별이니 이는 사도와 선지자들을 암시하는 숫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면류관을 썼음은 왕적인 계승이나 승리자가 받는 것으로 교회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전한 복음 위에 견고히 선 승리적이요 영광스러운 교회임을 암시합니다. 엡2:20에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6. 전도와 성화를 위해 해산의 수고를 합니다.
2절에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했습니다.
여기 아이를 배어 애써 부르짖음은 성화를 향한 부르짖음 혹은 전도를 위한 교회의 노력을 암시합니다. 이 부분은 교회가 메시야를 낳는다는 것은 내용상 문제가 있으므로 객관적으로는 신약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을 믿음으로 낳는 것을 상징하기도 하고(강병도), 주관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 받고자 하는 성도들의 믿음의 노력으로 이해됩니다. 그래서 갈4:19에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했습니다.
그럼, 교회를 시험하려는 사단의 존재는 어떤 것입니까?
1. 상상할 수 없는 짓을 하는 존재입니다.
3절에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했습니다.
여기 용은 사단인데 그의 존재와 하는 일을 설명하기 앞서 1절의 그리스도의 교회와 대조시키며 또 다른 이적이라고 표현합니다. 그 이유는 그 만큼 사단은 거대한 조직과 능력과 수단과 악한 계획을 가지고 상상할 수 없는 악한 짓을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에 이적이라 함은 그가 공중 권세를 잡은 자였음을 상징합니다.
2. 한 큰 붉은 용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라고 했습니다.
한 큰 붉은 용이라는 문구에는 약 네 가지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데 하나란 우두머리 즉 사단의 단일성을, 크다는 것은 그가 하는 일의 거대성은 물론이요 하나님 나라의 큰 일을 방해하는 세력임을, 붉음은 잘못된 거짓 사상을, 그리고 용은 “용처럼 말하더라”(계13:11) 한 대로 그 방법이 놀라워 천하를 꾀는 보통 존재가 아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대적자로서 이러한 사단이 모습에서 성도를 변질시키려는 그 흉계가 엿보입니다.
2. 머리가 일곱입니다.
그리고 “머리가 일곱이요” 했습니다.
여기 7은 사역의 완전수로서 머리가 일곱임은 세상적인 지모지략이 완벽에 가까울 만큼 뛰어난 존재임을 가리킵니다. 머리가 일곱이라는 표현은 나중에 인간의 본능을 표현할 때 나오는데 가르쳐 주지 않아도 다 알아서 행하는 본질적 지능성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사단의 사악한 본질은 스스로 혹은 누구도 바꾸거나 교육시킬 수 없으며 변화되지 않는 존재입니다.
3. 뿔이 열입니다.
그리고 “뿔이 열이라” 했습니다.
성경에서 대개 뿔은 권세와 능력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10이 만수라는 점에서 뿔이 열임은 사단의 막강한 세력을 가리키고, 아울러 또한 10이 시험의 수도 된다는 점에서 사단이 교회를 시험하기 위해 온갖 권세를 다 동원함을 보여줍니다.
4. 머리에 일곱 면류관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했습니다.
사단은 일곱 머리에 일곱 면류관을 썼는데 7은 사역의 완전수요 면류관은 왕권을 상징합니다. 즉 사단은 아담의 왕관을 빼앗아 합법적인 세상임금 행세를 했음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사단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눅4:6)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로 승리하사 사단의 권세를 빼앗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마지막 아담으로 오사 아담의 실패를 회복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사단은 지금도 진리를 모르는 자들에게 세상임금 행세를 하려 합니다. 그러나 왕이란 일단 쫓겨나면 백성보다 못한 것입니다. 마치 시므이의 악함과 착각이기는 하나 피난길에 오른 다윗을 개라고 저주한 것과 흡사합니다. 그러므로 승리의 복음에 서서 사단을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5. 꼬리로 별 삼분의 일을 던졌습니다.
4절에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했습니다.
사단이 그 꼬리로 별 삼분의 일을 땅에 던짐은 일차적으로 일부 천사의 타락을 암시한다는 설이 있습니다(벧후2:4, 유1:6). 그리고 이 사단의 부하가 된 천사들을 귀신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사단은 주로 별만을 공격합니다. 왜냐하면 별을 공격해야 희망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는 천사를 타락시켰고, 이차적으로는 지상의 별인 주의 종들을 주요 공격 목표로 삼습니다(행20:30, 계2:20). 그래서 두아디라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주의 종들을 세속화시키거나 이단사상으로 감염시킵니다. 여기 주의 종이란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모든 자들입니다.
그리고 3분의 1을 던짐에 관해 분량적인 의미로만 보지 마십시오.
여기 3분의 1은 온전한 성립수를 파괴하려는 것으로 3분의 1만 파괴되어도 정상수의 성립요건은 상실되어 전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숫자만 파괴된다는 뜻이 아니라 내용적인 타락을 그렇게 묘사한 것입니다. 이는 재앙으로 3분의 1이 죽는 영적 변화의 상징과는 대조적입니다. 사단이 꼬리를 사용하여 3분의 1을 던졌는데 꼬리가 기사와 이적의 상징임을 볼 때 이것은 사단의 온갖 미혹을 뜻합니다. 이 기사 이적은 실재적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적은 마음속에 온갖 요술을 부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미혹적 온갖 생각과 환상을 줍니다. 이 꼬리로 해함을 교리에 적용했을 때는 온갖 이단 사상을 일으킴이요, 신앙에 적용했을 때는 의심함입니다. 이 의심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실재를 경험치 못하며 하나님께서 역사 하실 수도 없습니다(약1:6-8). 마치 하와를 꾀어 결국 영광된 자리에서 끌어내림과 같이 의심을 주어 성도들을 영광된 축복에서 끌어내리고자 합니다.
6. 사단은 적극적으로 구원의 역사를 방해합니다.
여기 4절에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했습니다.
낳은 아이를 죽이려 한 것은 일차적으로는 헤롯이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던 데서 사단의 음모가 드러나며(마2:13-18), 바로 왕이 이스라엘의 영아들을 낳는 순간 죽이려 한 것에서도 그들의 음모가 나타납니다. 이처럼 사단은 그와 동일하게 성도들의 중생 및 성화를 방해코자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바로 왕이 방해해도 결국 점점 더 큰 이적으로 홍해를 건너고 말았고, 아무리 광야의 험한 상황이 고통스러워도 도리어 그것이 믿음의 연단 되어 믿음으로 요단을 건너고 말았듯이 자기 백성을 향한 여호와의 열심을 막지 못합니다.
그럼, 교회를 향하신 특별은총은 무엇입니까?
1. 성도의 영혼을 거듭나게 하심입니다.
5절에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했습니다.
여기 여자의 해산은 앞서 언급한 대로 교회가 믿음으로 낳는 언약의 자손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갈4:26-28에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낳음은 성화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중생의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2. 악의 세력을 깨뜨릴 능력을 주셨습니다.
5절에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했습니다.
시편 2편의 기록에 이 철장 권세는 문자적으로는 다윗에게 장차는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 성도들에게도 이 권세가 주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계2:26-27에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 장차라고 했는데 이는 궁극적으로는 역사의 종말에를, 신령한 관점에서는 믿음 안에 견고히 서는 때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믿음에 견고히 설 때 모든 악을 산산조각 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계2:26의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자”에게 이 철장 권세를 주신다는 조건적 의미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김이란 사단의 미혹에서 승리함이요, 하나님의 일이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요6:28-29). 이렇게 믿음에 설 때 악의 세력들을 부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3. 승리와 영광의 위치에 있게 하심입니다.
다시 5절에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했습니다.
여기 아이의 승천은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는 복음에 입각한 사실로 중생한 영혼은 하늘에 속한 영역에 있습니다. 그래서 골1:13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湧? 나라로 옮기셨으니” 했고, 엡2:6-7에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적 주소는 천국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예수님의 복음을 확신할 때 영혼이 영성을 입어 거룩함과 생명적인 삶이 이루어집니다.
4. 은사적인 특별한 도움을 입게 하십니다.
6절에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 천 이 백 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했습니다.
일반적인 관념으로 양육이란 아이가 받는 것이지 산모가 받는 것이 아닌데 왜 아이는 올라가고 여자가 양육을 받을까요? 그래서 묵시문학인데 그러므로 결국 아이나 여자나 전 인격이라는 틀에서 보면 하나입니다. 교회론적으로 볼 때 아이가 교인이라면 여자는 교회요, 신령한 측면에서도 아이가 거듭난 영혼이라면 여자는 신앙입니다. 새 생명으로 거듭난 영혼은 사실 천부적인 하늘이 성향을 지니고 있기에 훈련의 영역이 아니오 훈련의 영역은 우리 믿음입니다.
그럼 믿음의 훈련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기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지나 여기에 동원된 약 두 가지는 연단의 환경과 성령의 은사입니다.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여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양육 받음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광야의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의 선물인 은사의 도움 속에 신앙의 훈련받는 특별 은총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연단을 암시하는 광야가 나오고 은사적 사역을 의미하는 1260일이 나옵니다.
광야는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믿음과 순종의 훈련을 받았던 곳이요, 1260일은 삼 년 반 혹은 마흔 두 달로서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사역하신 기간을 암시합니다. 대개 박해를 지칭할 때는 마흔 두 달이라는 표현을 써서 그 박해가 간헐적임을(2절), 예언은 1260일이라 하여 그 양육이 섬세하고 지속적임을(3절), 한 때 두 때 반 때는 1260일과 같은 의미이긴 하나 그리스도 공생애적 사역을 암시하는 특별한 도우심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성령께서 육체에도 임하여 은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공생애적인 그 사역을 동일하게 하시고 계십니다. 혹자는 예비처를 페트라로 보나 페트라에 많은 성도들이 운집할 수도 없거니와 병기의 발달로 물리적 피난처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혹시 이방인들이 그렇게 주장할지라도 우리는 여호와가 우리의 피난처요 산성이라고 해야 할텐데 그것이 아쉽습니다.
5. 성도에게 왕적인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7-9절에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 했습니다.
여기 하늘에서 사단과 그의 사자들이 추방당함은 광의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승천의 결과를 보여주나, 협의적으로는 성도들이 중생하여 영혼이 하늘에 속하여 그 구원의 감격과 승리적 권세를 노래할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왜냐하면 미가엘의 전쟁은 근거 없는 단독 전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승리적 기반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사는 그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부리는 영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전에는 악한 영이 정복했으나 이제는 예수와 함께 하늘에 앉히신 그 공로 앞에 사단은 거점조차도 상실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승리 복음에 서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내어쫓긴 사단을 “큰 용, 옛 뱀, 마귀, 사단,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한 것을 보아 그 동안 얼마나 속고 살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여기 사단은 ‘대적자’라는 뜻이요, 용 역시 하나님의 대적자요, 옛 뱀이란 꾀는 미혹성을, 마귀는 ‘고소자, 비방자’를 뜻합니다. 그러나 이 악한 사단이 자기 사자들과 함께 모두 철수했으니 얼마나 심령이 평안하고 고요하겠습니까? 이 사실을 믿고 찬양할 때 아직도 승리자로 기만하며 머물던 악의 영들은 일곱 길로 도망칠 수밖에 없습니다.
6. 하나님의 특별은총으로 사단의 참소도 그칩니다.
10-11절에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했습니다.
아는 대로 욥이 사단의 참소에 걸려 얼마나 고난을 당했습니까?
그런데 그리스도의 공로로 이제 이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습니다. 이 말씀으로 볼 때 지금 천국에는 사단이 존재할 수도 가까이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10절을 보면 마치 일곱째 천사의 나팔의 결과로 사단이 추방당하는 것으로 보임은 어쩐 일입니까? 그것은 여기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다는 말씀처럼 성령께서 임하시면 예수님의 공로가 적용됨을 보여줍니다. 이 때 해결되는 것은 사탄의 지배와 참소 즉 양심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충만은 예수 보혈이 믿어지게 하시고 승리의 십자가로 인한 사단의 패배가 현실로 다가오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신자일지라도 성령 충만하기 전에는 사단이 마음을 괴롭힙니다.
그래서 의심과 불안과 죄악으로 가득하게 합니다. 즉 사단이 천국의 보좌 하나님 앞에서는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각인의 마음에 베풀어진 하나님 보좌 앞에서 온갖 참소로 양심을 괴롭혔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강력하신 은혜로 우리의 심령이 장악되어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흐르는 하나님 나라로 충만할 때 비로소 우리 양심에 참소하는 사단의 소리조차도 사라집니다. 그 증거가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한 말씀입니다.
이처럼 사단의 참소는 보혈로 이깁니다.
범죄 했다면 보혈 공로를 의지하시면서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회개해야 함은 당연하나 보혈 공로는 회개 전에도 후에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이깁니다. 그러므로 사단이 가책을 줄지라도 용서의 복음에 서서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롬14:22에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그리고 사단을 이기려면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이 아닌 내가 나타나고 성령이 아닌 내 생명 내 의가 나타나면 안됩니다. 그리고 주님보다 나를 사랑하여 주를 부인하면 실패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히 승리하는 길은 철저히 나를 십자가에 내어주는 것입니다.
욥의 교훈을 우리에게 적용해 본다면 양심에 사단의 참소가 계속되면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우리의 심령은 마치 욥의 악성 피부병처럼 괴롭기 그지없습니다. 이 현상을 이미 황충 재앙에서 보았고, 육육육을 받은 자에게 나타날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보혈과 진리와 십자가의 은총을 기초로 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통해 성령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충만해야 합니다.
7. 지상 성도는 영육 간의 처한 현실이 다릅니다.
12절에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했습니다.
문자적으로는 천상 성도의 즐거움과 지상 성도의 위험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각 개인에게 적용했을 때 하늘과 땅과 바다는 여러 영역에 속한 인격을 나타냅니다. 지상 성도는 한 인격이지만 영은 하늘에 속했고 육신은 지상에 속한 이중성을 가집니다. 박형룡 박사의 교의신학 인간론을 보면 인간은 구성적으로는 영과 육의 이분이지만 작용적으로는 삼분 혹은 그 이상이라고 했습니다. 여러 심리적인 현상을 가르치면서 작용적인 언급을 삼분설로 오해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늘에 속한 자들이 즐거워하듯 은혜 안에 사는 성도의 영혼은 사단이 손댈 수조차도 없습니다(엡2:5-7, 골3:1-3). 우리의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 사람은 날로 새롭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마음과 몸은 아직 지상에 처해 있기에 계속하여 원수 사단의 시험에 노출됩니다. 여기 마귀의 큰 분노는 성도를 시험에 넘어뜨리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 다음, 사단의 공격과 하나님의 보호는 무엇입니까?
1. 교회를 박해하나 은사적 능력으로 특별한 양육을 받습니다.
13-14에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라고 했습니다.
본 절은 6절 이하에서 연속되는 사건입니다.
그러니까 7-12절은 일종의 삽경입니다. 그리고 본 절은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광야생활이 그 배경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5절과 같이 “아이” 혹은 “아들”이 아니라 남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성장을 암시하고 철장 권세를 강조하려는 의도입니다. 즉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한 이유는 결국 남자로 인한 위협 때문입니다. 이처럼 신앙이 발동만 걸리면 속 사람이 강력한 능력을 입고(엡3:16) 나를 변화시킬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사단이 싫어할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큰 독수리의 날개 역시 성령의 강하신 권능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출19:4에 “내가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다” 고 했는데 이것을 출32:11이나 신4:37이나 행13:17에서 “큰 권능으로”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40:31에도 새 힘을 독수리의 날개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뱀의 낯을 피함이란 뱀이란 꾀이는 속성인 점을 감안할 때 이것을 피함이란 곧 신령한 지도를 받게 됨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이 양육이란 어떤 것일까요? 1260일 혹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양육입니다. 즉 6절에서는 1260일 동안 양육한다고 했는데 동일한 사건을 여기 14절에서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표현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미 언급한 대로 1260일은 매일 매일 섬세한 섭리로서 지도와 인도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란 구속사적 성취의 때로 그리스도의 공생애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적과 말씀 달리 표현하면 성령 은사와 교회를 통하여 믿음 주심입니다.
2. 세속의 미혹과 교만과 진리 변질을 시도합니다.
15-16절에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했습니다.
여기 용은 미혹자요 대적자요 꾀는 자라는 점에서 그가 토한 물 역시 무엇인지 짐작하게 합니다. 물의 부정적인 의미는 세속적인 사랑과(잠5:15, 9:17) 이단사상(약1:27) 등입니다. 그래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갖 미혹에 빠져 이방신을 섬기거나 온갖 죄악으로 범죄했습니다. 이처럼 사단은 성도로 하여금 바른 지도를 받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이단 사상과 세속으로 미혹합니다. 주의 뜻대로 살아보려는 사람일수록 더욱 이단의 위험이 큽니다. 반디로 은사로 충만할 때 무슨 특별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땅이 입을 벌려 여자를 도와 물을 삼킴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신앙의 안전장치 즉 육신적인 시련을 통하여 더욱 경건한 신앙을 갖게 하심입니다. 그래서 고후12:7에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自高)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하였습니다. 죤 칼빈도 대신학자요 대설교가로서 더욱 겸손할 수 있었던 것은 평생토록 치명적인 천식 등의 고통 때문이었습니다.
3. 육신적인 안일로서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17절에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했습니다.
여기 여자의 남은 자손이란 육신을 뜻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육신 가진 생활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지 이원론을 말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란 하나님 경외하는 삶을 강조한 것이고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란 성령 충만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 삶을 해치는 가장 강한 방법은 안일입니다.
그래서 용은 바다 모래 위에 섰습니다. 즉 바다가 세상이라면 모래는 안일입니다. 그러니까 바다 모래는 육신적인 안일입니다. 이 안일은 안식과 구분되는 것으로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 육신이 추구하며 머물기 원하기를 원하는 것이 안일이기 때문에 날마다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키지 않으면 신앙은 침체해 버립니다.
바울이 탄 배가 광풍에 밀려가면서도 스르디스 즉 모래 바닥에 걸리지 않도록 보물들을 던지며 배를 가볍게 하였던 것처럼 육신의 안일무사주의야말로 가장 경계할 사항입니다.
대체로 고난보다 평탄과 풍부가 더 큰 위험 환경입니다.
초대교회가 로마의 무수한 박해 가운데서는 그 순수함과 능력을 유지했으나 콘스탄틴 대제의 기독교 공인과 국교 채택으로 기독교는 방심하다가 생명력을 잃고 부패의 길을 걷고 말았던 것도 태평으로 말미암은 안일무사의 시험이야말로 성도의 가장 취약점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사단은 박해로도 그 무엇으로도 안되니까 그가 쓰는 최후의 가장 강력한 방법을 쓰는데 그것이 육신적인 안일입니다. 이 방법에 넘어진 교회가 바로 아시아 맨 나중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 방법이 암시하는 것은 이 방향의 훈련이 많이 필요함을 시사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화를 경험한 이후에도 날마다 죽었고 날마다 자기 육체를 쳐서 복종시켰으며 전천후 신앙인 일체의 비결을 배웠습니다(빌4:12).
<결론>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 은총을 감사합시다.
그리고 사단의 방해와 성도의 취약점을 기억합시다.
우리 모두 예수 안에서 놀라운 은혜를 받았으니 신앙의 발동 걸어 강력한 영의 사람이 되어 크고 귀히 쓰임 받는 사역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