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 비 실
지금은 경비원들의 처우가 많이 개선 되어 법정 4시간의 수면을 보장 받지만 20년 전에는 경비
들의 처우가 굉장히 열악 했다.
최초에 나는 아파트 단지에
경비직으로 취직했다.
경비실은 정사각형으로 된 구조였다.
길이와 넓이가 각각 160cm인데 내 키보다 10cm 나 짧았다. 이런 구조로 설계된 것은 경비원들의 근무 태만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동마다 경비실이 두 곳이었다. 근무 중에는 반장과 아파트 입주자대표가 무작위로 순찰을 했다.
누가 졸다가 발각이 되면
야단을 맞았다. 순찰 중인 입주자 대표에게 발각 되면 반장이 야단 맞고 반장은 경비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자정 후에는 두시간 씩 교대로 취침을 했다. 경비실 길이가 키보다 작으니 잠자리를 따로 만들어야 했다. 이럴때면 사람의 키도 신축성이 있으면 좀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잠자리 매트는 쓰레기장에서 주어 온 스티로폼이었다.
그것을 양쪽 각에 맞춰 대각선으로
설치하면 겨우 발을 뻗을 수 있었다.
잠은 쏟아지는데 정작 잠을 자려고 누우면 이 생각 저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어렵사리
눈을 붙이면 교대자가 와서 문을 두드렸다. 이것이 경비들의 일상이었다. 이렇게 근무 조건이 열악한데도 동료들은 그 자리를 놓칠까봐 전전긍긍 했다. 동료들 중에는 실향민이 한 분 있었다. 4년제 대학을 나왔지만 나이가 많아 갈 곳이 없으니 경비를 서는 것이었다.
나는 한 달간 근무했는데
내 체력으로는 도저히 배겨 낼 수가 없었다. 나는 마침내 사퇴서를 내고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나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떠나는데 동로들은
내가 대단한 줄 알았다.
어떤 동료는 좋은 자리가 있으면 잊지 말고 불러 달라는 부탁까지 해 왔다.
내 코가 석자인지는 모르고.
그래도 내가 경험해 보니 조국은 기회의 땅이었다.
몇 번 직장을 잃었어도 다시 도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파트에서의 경험은 내가 자본주의를 사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받은 혹독한 훈련이 있었기에 그 후 어디에서도 잘 적응하며 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