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6편
시인은 1절에서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라고 노래합니다. 이 시인은 크게 두 가지 위험에 놓여 있는데 하나는 4절에서 보는대로 혼합주의적인 신앙에 굴복하라는 유혹에 노출되어 있고 또 하나는 10절에서 말하는 죽음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런 위험 속에서 이 시인은 한 가지를 분명하게 붙들고 있습니다. 2절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우리의 복은 우리 주님 그 분 자체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데 가서 복을 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주의 백성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랑의 고백을 하는 성도에게 주님은 3절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존귀한 자들이라고 하시며 하나님의 즐거움이 성도들에게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섬기는 신은 존재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처럼 우리를 사랑하시거나 바라보며 기뻐하는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5절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라고 노래합니다. 주님이 내 산업이요 내 소득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시인은 주님이 자신의 전부가 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6절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닫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요, 하나님이 불러주신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분이 줄로 일일이 재어서 나에게 주신 땅이다. 그 분의 손길이 닿아 있고 그분의 계획과 그분의 기대가 있는 땅이기에 우리는 무조건 감사함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이 시인은 자신을 훈계하신 하나님을 찬송하길 원했습니다. 여호와를 항상 자신 앞에 모시는 삶을 살기 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우편에 계시기에 흔들릴 수 없다고 고백하며 확신했습니다.
이런 확신 속에서 더 큰 위험인 죽음의 위험조차도 뛰어넘는 것을 봅니다.
10절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리라는 믿음입니다. 도리어 주님께서 그에게 생명의 길을 보이실 것이며 충만한 기쁨과 즐거움으로 그의 삶을 새롭게 하시리라는 확신을 갖습니다.
우리도 이와같은 귀한 믿음을 고백할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