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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 장로들에게 고별 설교하는 바울.
(사도행전 20장 < 2 >)
열 가지, 진리를 듣는 것보다 들은 한 가지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실천한 진리가 바로 자신의 삶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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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이
오순절이 이르기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위해 에베소에 들르지 않고 그냥 지나가기로 작정합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이 굳이 오순절이 이르기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고자 한 것은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의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모금한 연보를 전해주는 일이 급했기 때문입니다.
이 연보는 단순히 어려운 교인을 돕는
구제가 아니라 이방인 교회와 유대인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것을 가르칠 수 있는 의미의 연보였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오순절에 그것을
가르치기 위해 서둘러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에베소를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불러서 부탁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에베소에서 어떻게
무엇을 위해 일했던가를 말하면서 그것을 기억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일할 것을 장로들에게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탁과 권면은 오늘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부탁인 것입니다.
1. 복음 사역에 대한 사도 바울의 자세.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사도행전 20 :20-21)
유익한 것은 공사를 가리지 않고
어디에서든지 그들에게 전하였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파할 때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여 부지런히 전하였습니다.
'공중 앞에서'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던 회당이나 두란노
서원을 뜻하며 각 집에서'란 그들의 필요를 따라 바울이 심방한
에베소 교인의 집이나 또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을 의미합니다.
. 따라서 강단에서 왜 선포적인
설교와 동시에 한 사람, 한 사람을
개인적으로 살피고 권면하고 가르치는 심방의 필요성이 강조됩니다.
공적인 설교만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여 심방을
태만히 하는 목회자는 자신이 증거한 하나님의 말씀이 삶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열매맺는가를 살피지 않은 게으른 종이 됩니다.
2. 성령의 지시에 따라 선교 사명을 수행함..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사도행전 20 :22-23)
바울은 성령에 매여서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자신이 짊어져야 할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바울은 앞에 일을 고난을
확실하게 예견하고 있었으나 하나님의 뜻에
의한 성령의 지시로 가지 않을 수 없는 당위성 속에서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이 일을 위해
자발적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성령께서는 바울에게 결박과 환난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이 친히 성령의 지시를 받았을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바울이 통과해 지나가는 도시에서마다 성령이
예언자들을 시켜 그가 예루살렘에서 당하게 될 운명을 말해주었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는 바울의 앞에는 지금까지 당했던 어떠한
어려움보다도 더 심한 상황들 곧 문자 그대로 실제적인 투옥과
견딜 수 없는 극심한 환난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을 위해 사는 사도 앞에 놓여진 현실이었습니다.
3. 교회를 향한 바울의 당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사도행전 20 :24-25)
바울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끊임없이 그리고 오로지 주를 위해 충성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현실 앞에서 바울이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생명이 참으로
귀한 것이로되 자기 생명이 자기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생명에 대한 맹목적인
애착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자기 생명 때문에 자기 생명의 존재 이유를 잃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관심밖에 둠으로써
자기가 존재하고 있는 그 거룩한 목적을 완성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가 살아있는 유일한
목적은 주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다 마치는 데 있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전한
주제도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전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 세상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다시 보지 못할 줄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면
죽을 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다시 만날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사도행전 20 :26-27)
바울은 또 그들이 더 이상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 같다는 예언적 발언을 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의 얼굴을 세상에서 다시는 보지 못할 것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가 로마로 압송될 것이며
이제는 로마와 또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서바나 전도에 힘쓸것입니다.
바울은 또 자신이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다고 증거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모든 뜻을 거리낌 없이 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에스겔 3 :18)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
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 하리라"
(에스겔 3 :19-).
바울은 하나님의 뜻
곧 복음을 다 전하였으므로
그들의 생명에 대해서 깨끗하다고 한 것입니다.(책임없다는 의미)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움을 받은 자가 경비를 소홀히 하여 백성
에게 화가 임하면 그 피가 파수꾼에게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에스겔 33 :1~7-참조)
그러나 파수꾼의 간절한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악행을
거듭하면 그는 죄악 중에서 죽고 파수꾼의 생명은 보존되었습니다.
(에스겔 33 :8~9-참조)
바울은 모든 사람의
생명에 대해서 책임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그들에게 전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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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20 :28)
너희는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가리킵니다.
지금까지 그들 가운데서 자신이 어떻게 행하였는가를
말한 바울은 이제 그들에게도 사도 바울과 같은 수고를 당부합니다.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사도행전 20 :29-31)
바울이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와 같은 이단의 무리가
들어와 양떼를 아끼지 아니할 것입니다. 흉악한 이리가 교회에 들어
온다고 에베소 교회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예견하고 있습니다.
흉악한 이리가 외부로부터 침입해서 양떼를
해칠뿐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사단이 역사합니다.
에베소 교회 자체에서도 교회를 파괴하는 세력이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에베소 교회에는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이
들어왔고 니골라당이라는 이단이 생겨 분열을 획책하기도 했습니다.
니골라당은 음란한 세력이요
영지주의자입니다. 장로는 이런
사단의 무리에서 양들을 지키기 위해서 삼가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4. 바울의 모범.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사도행전 20 :32)
이제 그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바울은 그들과
교회를 하나님과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했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교사요 권면자요 책망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깨어 있는 삶은 주님의 말씀을
믿고 말씀에 맡기는 삶입니다.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고 성경을 열심히 읽고 배우고 묵상해야 합니다.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교회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몸된 교회를 친히 다스리고
계십니다. 부활의 주님이 다스리는 그 방법은 오직 말씀으로입니다.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
하였고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사도행전 20 :33-35)
바울의 모범적 사역은 그가 물질적
탐심을 가지고 일하지 않은 점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는
스스로 일함으로 자신의 필요와 자기 동행자들의 필요를 충당했습니다.
바울은 게으르지 않았고 교인들에게
물질적 부담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본을 보임으로 장로들도 궁핍한 자들을 돕는 자들이 되게하려 했습니다.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저희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니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사도행전 20 :36-38)
바울은 모든 권면을 마친 후 무릎을 꿇고 에베소 교회
장로들과 함께 엎드려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그들에게는 피차
뜨겁고 진실한 사랑이 있어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울었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복음 사역에 대하여
책임감을 다한 넘치는 자신감으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권면하며 뜨겁고 진실한 사랑으로 석별의 정을 나누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깨어 있는 삶은 주님의 말씀을
믿고 말씀에 맡기는 삶인줄 믿습니다.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고 성경을 열심히 읽고 배우고
묵상할 때 우리를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권면과
부탁이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줄 깨닫고 말씀 안에서 순종하며 부르시는
그날 까지 주님을 따라가는 우리 모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4. 8. 4. -샬롬- 예수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