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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무림(靑春武林) ] 제 11 장 군림대회.-1
그리고 홍무 15 년 십월 십일!
이글이글 검붉게 타오르는 조양(朝陽)속에...!
먼동이 트자 급기야 중원 무림 최대의 사안이자 행사 중 하나인 군림대회가 시작되었다.
장소는 철기보의 앞에 펼쳐진 드넓은 벌판!
이곳의 비무대에서 각 방파의 추천을 받아 달려온 참가자들이 치열한 접전을 펼칠 시간이 다가 온 것이었다.
“와아아아...!”
따당... 따당... 땅...!
벌판은 그야말로 인산인해.
도처에서 몰려온 군웅들로 인해 대회가 시작되기도 전인 새벽부터 입추의 여지도 없을 만치 인파로 꽉 들어차 있었고 도처에서는 함성이 수시로 일어나며 각양각색의 폭죽이 제멋대로 터지며 화려하게 불꽃을 튀겼다.
뿐이랴!
덩덩덩덩...!
“으아아아아...!”
두다당... 두다다당...!
사방에서 일어나는 북소리, 장단에 맞춰져 용탈을 든 인물들이 춤을 췄고, 보다 신에 겨운 인물들은 비무대 위에 멋대로 미리 올라가 먼저 손속을 겨루며 농담외침으로 흥을 돋궜다.
“나오너라! 나 무명소졸 천하무적 오졸개다! 한 판 뜰 호걸 나와라!”
“크하하... 네가 그 이름 높은 오졸개냐? 나는 천하유적 왕따시다! 화끈하게 놀아보자!”
“우하하하... 그래, 니네들 잘났다! 아무나 이겨라!”
그야말로 완전한 축제 분위기!
“엿 사시오, 엿이오, 엿 먹으시오, 엿들 드시오~!”
“자자, 싸다! 떨이! 한개 한 푼 하는 꿀월병이 열개에 열 푼!”
여기에 온갖 장사치들과, 무림인 외에도 행사를 지켜보고자 몰려든 일반인들로 인해 그야말로 사방은 북새통을 이루었다.
시작은 진시(辰時).
반면 정작 대회에 출천하는 인물들은 터질듯 표정이 굳었다.
문파의 명예와 개인의 이름을 건 승부...!
비무방식은 도전자들이 각각 홍, 청으로 나눠 사방 일백 자의 규모로 된 비무대 위에서 각기 목검과 목봉 등 자신에 맞는 병기로 기량을 겨루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상대를 비무대 밖으로 밀어내거나 쓰러뜨려 승부를 가리는 것! 정확히 일백 명이 남기까지 격돌하게 되어 있었다.
대회를 주관하는 것은 유목공 이하, 소림(少林)을 비롯한 칠대문파(七大門派)의 장로(長老), 혹은 문주(門主)급 이상의 인물들로서 무림 각파의 명숙들이었다.
참석한 방파는 모두 사백여 개, 각 파의 최종 백 명을 가리는 것이니 대표들은 두 번 이상 상대를 물리쳐야 하는 것이었으며, 청홍을 가리는 것은 제비뽑기로 했기에 상당한 운도 작용을 하고 있었다.
어떤 상대와 부딪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사도횡의 경우는 상당히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는 청군에 속해 있었는데, 첫 싸움에서는 스물 한 번째였고 상대는 광동 무위보(武威堡)의 벽운검 이대기(李大器)라는 인물로서 최강에 속한 인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최강이라 할 수 있는 인물들은 역시 무림최대의 후기지수라고 할 수 있는 삼랑일연(三郞一燕)!
즉, 서문한랑을 비롯 옥수검 황보선과 남해검문(南海劍門)의 철기린(鐵麒麟) 장청(張晴), 사천당가(四川唐家)의 독비접(毒飛蝶) 당삼화(唐三花)를 꼽을 수 있었다.
그밖에 특징이 있다면 아무리 천하의 대소사를 논할 막중한 지대한 위치를 차지하는 대회라 할지라도 각파 최고수라 할 수 있는 수뇌(首腦)들은 여하한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
아무리 지위가 탐난다 해도 문파를 이끄는 수뇌가 직접 참가해 패배할 경우라면 개인의 지위나 명예는 물론, 방파의 이름까지 한꺼번에 먹칠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에 각 방파에서는 가장 뛰어난 제자나 인물들을 지명, 그를 대표로 내보내곤 했던 것.
이런 점을 보면 문주이면서도 직접 대회에 나선 사도횡의 경우는 또한 크게 파격적인 일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정 진시!
출전자들은 각자 홍, 청으로 갈라진 마련된 자리에 앉고, 급기야 이를 주관하는 각파의 명숙들이 유목공(流木公)과 더불어 귀빈석에 나타났다.
두웅... 두웅...!
지축을 흔드는 북소리.
비무대 위에서 직접 겨룸을 판결하도록 되어있는 주심관의 쩌렁쩌렁한 음성이 벌판 가득히 퍼져나갔다.
“주목해 주십시오! 이제 곧 백대봉공을 선출하는 무림맹의 제 칠회 군림대회가 시작되겠습니다! 출전한 방파는 도합 사백팔 개로서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최종적으로 일백 개 방파가 남기까지 비무를 계속함을 알려드립니다! 더불어 맹주님의 간단한 개회 말씀이 있겠습니다!”
“와아...!”
순간 광활한 벌판에 엄청난 함성이 일어나 지축을 뒤흔들었다.
더불어 태사의에 앉아 있던 유목공이 천천히 일어나 함성을 토하는 군웅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몰려온 군웅들은 먼발치에서나마 천하맹주를 보고자 저마다 고개를 빼고 발끝을 곧추세웠다.
‘시작이군!’
훤백은 대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비무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철기보의 성벽 위에서 황보소미, 곽나영, 도천등과 함께 모든 것을 주시하고 있었다.
유목공의 부드럽고도 잔잔한 음성이 좌중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불원천리... 이처럼 맹의 대사(大事)에 참석코자 달려와 주신 동도들께 먼저 심심한 감사를 표하는 바이오.”
천리전음(千里轉音)...! 잔잔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음성은 벌판의 구석구석까지 또렷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처음 무림맹이 출범한 해에서부터 시작된 대회가 어느새 일곱 돌을 맞이했으니... 미흡한 유목, 참으로 감회가 새롭기도 하구려. 특히 천하동도들의 막중한 사랑을 입어 이십여 년 간 무림맹을 이끌어왔으되, 더 이상 이 막중한 업무를 짊어지기에는 힘에 부친다 여겨 은퇴를 생각하는 터이기에 더더욱 그러한 기분...! 유목은 이제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다음 대회 전 까지 맹주의 직에서 물러날 것이올시다.”
웅성웅성...! 순간 벌판에 커다란 술렁임이 일어났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천하웅주 유목공!
오래전에 천명했던 은퇴성명을 그가 마침내 이 자리를 빌려 시한까지 확실시 한 것이었다.
하나 유목공은 조금도 아쉬움이 없다는 듯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모아 둘러가며 포권지례를 취해 보였다.
“허허... 참으로 기쁜 일이지...! 이 척박한 땅에서 태어난 미흡한 무사가 오랫동안 천하를 다스리고 이렇게 작별을 고하게 되었으니...! 따라서 이번 군림대회는 무림맹의 존속여부와, 특히 차기 맹주의 선출에 까지 영향을 끼칠 대회가 됨으로 어느 때보다 의미가 더 깊다고 할 수 있는 터! 이 개회 선언사는 유목이 여러분께 마지막 인사를 올리는 자리가 됨과 동시에 중원 무림에 새로운 장을 여는 대회가 되는 것이오. 오랫동안 필부를 아껴주신 여러분께 새삼 고개 숙여 깊이 인사를 드리면서, 제 칠 회 군림대회의 시작을 선포하는 바이오!”
“와아아아아...!”
펑... 펑...!
따다다다다당...! 따당!
찰나 도처에서 다시 천지가 무너질 듯한 함성과 박수소리, 축포, 폭죽들이 한꺼번에 터져 올랐다.
두웅... 두웅...!
더불어 장내에는 연거푸 웅장한 북소리가 울려 퍼졌고, 계속해서 심사관의 외침이 터졌다.
“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겨룸은 사천당가를 대표하신 독비접(毒飛蝶) 당삼화(唐三花), 당여협과 천검문의 대화검협(大和劍俠) 신옥(申玉), 신대협입니다. 두 분께서는 대(臺) 위로 올라와 주십시오!”
“와아아-아아-!”
따다다당...!
사방에서 폭죽이 터지고 평원 전체를 뒤흔드는 함성이 일었다.
동시에 청, 홍의 양 진영에서 마침내 하나씩의 인영들이 쫙! 몸을 솟구쳐 비무대 위로 내려섰는데...!
“으아아아...!”
“독비접 당삼화-!”
“삼랑일연(三郞一燕)이다!”
찰나 도처에서 더욱 큰 외침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삼랑일연! 어떤 노강호들에게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고 일컬어지는 무림최대의 후기지수들!
공교롭게도 첫 접전이 바로 이들 중 하나인 사천당문의 독비접 당삼화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었다.
“히히히... 공교롭기는 뭘! 대회의 열기를 더하기 위해 일부러 첫 판은 그렇게 해둔 건데! 다만 신옥이 잘못 걸렸군?”
성벽위의 도천이 크게 웃었다.
한데 비무대 위에는 실로 뜻밖의 광경이 있었다.
일연(一燕)으로 불리는 만큼 삼랑일연 중 유일하게 여인의 몸인 당삼화!
본즉 그녀는 흑의경장을 가뿐하게 차려입고 있었는데 바로 지난 저녁, 훤백과 서문한랑의 겨룸이 있은 후 정체불명의 거지노인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던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흑의처녀가 아닌가?
또한 그녀와 동행했던 거지노인은 이 대회를 주관하는 칠대문파의 장로, 무림 명숙들과 함께 주최석에 앉아 형형한 시선으로 이를 주시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역시 나타날 때 보여줬던 기도만큼 대단한 신분의 인물들임이 분명했던 것이다.
“와아아...!”
“당삼화! 당삼화!”
군웅들은 이 아름다운 처녀에게 거의 폭발적인 호응을 보였다.
하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삼화의 상대로 올라온 천검문의 대화검협(大和劍俠) 신옥(申玉)은 자연히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상대를 만난 것이었다.
당삼화가 미려한 자태로 먼저 포권을 취해 보였다.
“신대협의 혁혁한 명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귀가 따갑게 들어왔던 터, 오늘 이렇게 가르침을 받게 되니 일생의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높은 가르침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신옥도 마주 포권을 취해보였다.
“당여협의 높으신 명성을 들어왔소. 이렇게 뵙고 보니 기쁘기 한량없소이다.”
문파의 명예를 걸고 나온 인물들인 만큼 역시 태도가 담백했다.
둥-!
“시작하십시오!”
그럽자 곧 심사관의 입에서 시작의 외침이 터졌고, 당삼화와 신옥은 마침내 천천히 병기를 들어 서로를 겨눴다.
둘 다 손에 쥔 것은 한 자루의 목검.
하지만 이 싸움에서 신옥이 주의할 것은 결코 목검이 아니었다.
본시 사천당문은 극독(劇毒)과 암기(暗器)로 천하에 명성을 떨쳐온 문파였고, 당가의 암기란 제 아무리 신법이 뛰어난 고수라도 쉽사리 피해갈 수 없는 것으로 평판이 자자했다.
‘어려운 상대...!’
따라서 목검보다 언제 어느 때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판국이었기에 신옥의 긴장감은 암기에 더 맞춰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그가 잔뜩 긴장한 채 몸을 사리자 당삼화가 곧 명쾌한 음성으로 외쳤다.
“선수를 양보하시려는 듯하니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먼저 공격을 하겠어요!”
선공(先攻)!
더불어 당삼화의 몸이 허공으로 둥실 떠오르는가 싶더니 그 즉시 비무대 위에는 엄청난 검기가 일어났다.
“당가협검(唐家俠劍)! 건곤취양(乾坤就養)!”
콰아아앗-!
떠올랐다 싶은 순간, 당삼화의 몸이 온통 희뿌연 검영에 휩싸인 채 아래쪽의 신옥을 향해 빛살처럼 쏘아져 간 것이다.
하나 이런 것은 결코 신옥을 위협할 수는 없었다.
분명 그녀보다는 부족한 명성이었을지언정 그 역시 여기에 오기까지는 실로 적잖은 명성과 무공을 지녔을 게 분명한 터!
“뇌섬(雷閃)-!”
츠와아앗-!
당삼화의 공세가 시작되자 즉시 눈에 섬전 같은 신광을 떠올리며 벽력대갈과 함께 목검을 위로 쳐올려 당삼화를 무찔러 간 것이다.
찰나 그의 목검이 희뿌연 검기를 뿜으며 당삼화의 검영속을 일직선으로 꿰뚫고 들어갔다.
당삼화의 무수한 검영 속에서 허점을 찾아 맞받아쳐간 것임이 틀림없었다.
일종의 쾌검수!
“호오-옷!”
당삼화는 부지불식간에 신옥의 목검끝이 훅, 자신의 검영 속으로 파고들자 벼락같이 허공에서 몸을 뒤집어 차륜맹전! 마차바퀴가 급회전하듯 핑핑, 뒤로 곤두박질쳐 피해갔다.
선공은 그녀였으나 이로서 방어태세로 들어가게 된 것!
신옥이 기회를 놓칠 리 만무했다.
그는 촌각도 지체 없이 즉시 찌르던 수법을 가르기로 전환시키며 허공으로 몸을 날려 당삼화를 덮쳤다.
“천검뇌전(天劍雷電)! 파광(波光)!”
콰츠츠츠-!
신옥의 목검에서 무수한 검영이 쏟아져 나와 당삼화의 물러서는 몸에 벼락같이 퍼부어졌다.
“저런...!”
“뭔가! 위험하다!”
“우우...!”
찰나 군웅들 사이에서 분분한 경악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시작되기 무섭게 두 사람의 접전이 너무 치열하게 전개됐을 뿐만 아니라, 쾌승을 거두리라 여겼던 당삼화가 예상과 달리 너무 일찍 수세에 몰려버렸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병기가 목검이라 하더라도 진력이 실린 이런 공격은 진검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당삼화 역시 결코 녹녹하지는 않았다.
“차앗-!”
신옥의 검기 덩어리가 순간에 밀려오자 그녀는 오른 발끝으로 살짝 바닥을 차고 즉시 허공으로 솟구쳐 재차 살수를 피해갔다.
그런들 신옥이 잡은 선기를 놓칠 리 없지 않은가?
“벽력뇌정(霹靂雷釘)!”
그는 당삼화가 허공으로 솟구칠 줄 예측한 듯 목검을 거두며 즉시 왼손을 쭉 뻗어 장력을 격출해 냈다.
와르르릉-!
“훕...!?”
즉시 산악이라도 갈아버릴 듯한 장력(掌力)이 일어나 당삼화를 덮쳤고, 찰나 허공에 몸을 띄운 당삼화의 안색이 홱, 일변했다.
시작하자 쫓기게 된 형세도 불리했지만 보다 신옥의 손속이 너무도 악랄했기 때문이었다.
이만한 고수들이 전개하는 수법이란 어떤 것도 막중한 내공이 실려 있어, 일단 격중 되면 죽지는 않는다 해도 최소한 피를 토할 정도의 중상을 면치 못할 위력이 있는 것이다.
특히 목전에 닥친 상황도 극히 불리했다.
검세를 피하고자 허공에 몸을 띄운 상태였기에 장력을 피해 다시 비켜간다 해도 중심을 잃을게 분명했다.
그럼 잇달아 퍼부어질 신옥의 다음 공격을 방어하기란 더욱 어려워지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정면으로 장력을 맞받을 경우라면, 발붙일 곳이 없는 허공에서의 격돌이라 크게 뒤로 튕겨져 나가 비무대 바깥에 떨어질 위험성이 높았다.
“호오오옷-!”
이에 당삼화는 대갈일성과 함께 벼락같이 천근추(千斤錐)! 혼신의 공력을 발끝에 끌어 모아 급급히 몸을 아래로 떨어트리는 한편, 남은 공력으로 장력을 날려 쏘아오는 신옥의 장력을 향해 맞섰다.
쾅-!
“와앗...!”
찰나 장내에는 그야말로 귀가 먹먹해 질 정도의 엄청난 굉음이 터지고, 장력의 격돌로 인해 폭풍 같은 경력의 회오리가 군웅들에게까지 휘몰아쳤다.
“앗...!”
“크흐...!”
그러한 속에 두 사람은 모두 답답한 신음과 뾰족한 비명을 토하며 중심을 잃고 말았다.
신옥은 흡사 철퇴로 가슴을 두들겨 맞는 듯한 충격을 받고 세 걸음을 뒤로 물러섰고, 당삼화는 기혈이 역류되어 목구멍까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동시에 다섯 걸음이나 뒤로 밀려 났으니 당삼화가 더 크게 손해를 본 것 틀림없었다.
천근추의 수법으로 무게 중심을 발에 실어 신속히 몸을 아래로 가라앉히던 중이었기에 비무대 밖으로까지 밀려가지는 않은 것이 다행이랄까.
아슬아슬하게 비무대의 끝자리로부터 한자 정도 간격으로 몸을 정지시킬 수 있었던 것.
그러나 신옥이 이를 좌시할 리는 없었다.
비록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하나 그다지 상세가 심한 편이 아니었기에 그는 당삼화가 비무대 끝에서 몸을 정지시킴을 확인하자 즉시 몸을 허공으로 뽑아 올리며 무지막지하게 목검을 휘저어갔다.
“분광벽전(分光碧電)-!”
츠와와와와왕-!
순간 신옥의 목검에서 지금까지 있었던 그 어떤 것 보다 강렬한 검영의 회오리가 사방 칠, 팔 장을 새카맣게 뒤덮으며 당삼화를 향했다.
“위험하다!”
“우왓...!”
군웅들의 안색이 일변하며 도처에서 경악의 외침들이 터져 나왔다.
형세를 보면 일장의 격돌로 적잖은 타격을 입은 채 비무대 끝까지 밀린 당삼화가 금시 피를 토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나 그것은 기우!
“하앗...!”
금시라도 바닥에 주저앉을 듯 몸을 휘청대던 당삼화는 이 역시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신옥의 검기가 폭풍같이 휩쓸어 오는 순간, 또 한 번 바닥을 차고 솟아 허공에서 연속으로 핑핑핑 회전, 검기를 피하는 동시에 그의 뒤편으로 넘어간 것이었다.
“훕...!”
그러자 크게 당황한 것은 신옥!
분명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는 당삼화를 확인하고 그고 결정적 공세를 가한 것인데, 뜻밖에 당삼화가 다시 피해냈을 뿐 아니라, 등 뒤로 넘어가 위치까지 바뀌어져 버린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비무대의 끝에, 당삼화가 오히려 중심에 서게 되는 형태가 된 것이었다.
‘위험하다!’
이에 신옥이 가슴 철렁함을 느끼며 몸을 돌린 순간,
투툭-!
“앗...!”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당삼화가 가볍게 쌍장을 뻗어 신옥의 앞가슴을 밀쳐내듯 가격해 버렸던 것이다.
이에 신옥은 미처 중심을 잡을 수가 없어 크게 몸을 휘청하며 결국 비무대 아래로 내려서고 말았는데...!
“와아아아아...!”
“역시 당삼화다!”
찰나 도처에서 또 한 번 사위가 허물어질 듯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것으로 첫 번째 접전은 당삼화의 승리로 결정이 지워진 것!
하지만 군웅들의 외침은 단순히 당삼화가 승리함으로 터진 게 아니었다.
정작 경탄이 터진 까닭은 바로 당삼화가 보인 손속의 인정 때문이었다.
신옥의 경우는 당삼화에 맞서 최후의 일격까지도 전혀 상대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무지한 살수를 퍼부었다.
따라서 만약 당삼화가 조금이라도 앙심을 품었다면 신옥을 밀어낼 때 분명 손에 보다 강한 내력을 실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신옥은 피를 토할 만치 극심한 상세를 입고 패배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삼화는 가볍게 신옥을 바깥으로 밀어내는 데에서 접전을 마무리 지은 것이다.
“와아아아...!”
이에 군웅들의 환호는 자연히 더욱 커졌고, 둥-! 북소리가 울려 퍼지며 주심관의 보다 큰 외침이 벌판을 흔들었다.
“일차접전에서 사천당가의 당삼화, 당여협이 승리했음을 알립니다! 신옥대협께서는 최선을 다해 선기를 잡으셨으나 간일발의 차이로 안타깝게 패하시고 마셨으니 두 분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와아아아아...!”
“신옥도 잘했다! 실로 아슬아슬했다!”
따당... 따다다당...!
그러자 장내에는 거듭 엄청난 함성과 폭죽 터뜨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일었다,
이러한 속에서 당삼화는 신옥과 다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양보해주신 덕분에 간신히 일승을 거둔 것 같군요. 크게 배웠습니다.”
하나 신옥은 벌겋게 달아오른 표정으로... 고개조차 들지 못한 채 어둡게 포권을 취해보였다.
“당여협을 만나 몸도 마음도 함께 패하고 말았구려. 거듭된 살수...용서하기 바라오. 부족한 실력에 문파의 명예가 걸렸던 터인지라...! 선물하신 침엽(針葉)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평생의 교훈으로 간직하겠소.”
이어 그는 무겁게 등을 돌려 장내에서 떠나갔다.
패자의 쓸쓸함이 서린 모습...!
떠나가는 그의 장중(掌中)에는 대여섯 개의 소털같이 가느다란 은침이 쥐어져 반짝이고 있었다.
“흥, 정말 너무 간신히 이겼군?”
지켜보던 곽나영이 눈 꼬리를 세웠다.
“당삼화, 삼랑일연의 명성치고는 너무 허약한 것 같은데? 마지막에 순간적으로 위기를 넘긴 재치가 조금 눈에 뜨이지만 신옥의 내력이 조금만 더 강했더라도 패할 뻔 한거잖아? 나와 붙어도 막상막하 밖에 안 되겠어.”
곽나영과 싸워도 막상막하...!
“히히히... 웃기려고!”
도천이 무슨 소리냐는 듯 순간 크게 웃었다.
“그렇게 봤다면 눈이 삔 거지!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구! 삼화는 이 싸움에서 크게 양보를 했단 말씀이야? 우선 첫 수에서, 공격을 해갈 때부터가 그래. 당삼화는 전력을 다하지 않고 일부러 허술히 목검을 날려 신옥에게 공격의 기회를 넘겨줬던 거다! 만약 실력대로 밀어 붙였으면 신옥은 항거할 겨를도 없이 패하고 말았을 걸?”
“무슨 소리야, 그게?”
곽나영의 표정이 크게 의아하게 변했다.
“이런 중요한 대회에서 선수를 양보했다고?”
“히히히... 그만치 당삼화의 실력이 뛰어난 거지. 뿐만 아니라 승부는 두 번째 공격을 피해 허공으로 몸을 솟구칠 때 이미 났었어! 당삼화는 피해 가며 소매 속에 숨기고 있던 은침 여섯 개를 날렸거든. 그것들은 정확히 신옥의 각 요혈들이 있는 부분의 옷깃에 꽂혔고 결국 신옥은 그때 벌써 싸움에서 패했던 것이지!”
신옥이 떠나가기 전에 무거운 한탄과 더불어 한 말!
장중에 감추고 있던 은침이 바로 그것이었던가...?
곽나영은 눈이 휘둥그레져 옆의 황보소미에게 시선을 돌렸다.
“황보소저, 우리 대머리 말이 사실이야?”
황보소미 역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당소저는 확실히 두 번째 공격을 피해가면서 은침을 쏘아냈어. 워낙 빨라 사람들이 못 봤을 따름이지.”
곽나영의 크게 표정이 굳어졌다.
“그렇다면 신옥은 패했으면서도 왜 계속 공격을...? 그는 연거푸 살수를 전개했는데, 만약 그러다가 당삼화가 다친 후 패배가 밝혀지면 그 수치심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던 훤백이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아마... 나중에야 침엽에 당했다는 것을 알았을 거야. 워낙 처음부터 움직임이 격렬했으니 피부에 꽂히지 않은 다음에야 맞았는지도 모를 일이었겠지. 또 설령 알았다 치더라도 그의 입장에서는 계속 몰아칠 수밖에 없었을 거고. 그렇듯 이 대회에는 말 그대로 각자 문파의 명예가 걸려있거든. 이런 상황에 시작하자 말자 허술하게 싸움에 패해버린다면 몸담은 문파에 크게 먹칠을 하는 꼴이 되잖겠어.”
도천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이런 상황에서는 나라도 그랬을 거다. 주심관 등, 가까이서 본 명숙들도 사실을 눈치챘을 것인데, 그래도 고충을 알기에 모른 척 입을 다물고 있는 거야. 구태여 밝히지 않아도 당삼화가 이긴 것으로 됐으니까.”
비로소 고개를 떨구고 사라져간 신옥의 처참한 심정을 알 것 같았다.
그야말로 완패...! 패한 몸으로 밀어 붙여 간신히 문파의 명예를 지키긴 했으나 정작 본인의 마음이야 오죽했겠는가?
훤백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좋은 여자야. 그러나 당소저도 그다지 잘한 것은 없다고 봐. 상대를 너무 얕본 것 같거든. 그러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실제 크게 위험하기도 했어. 임기응변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넘기긴 했지만 허공에서 장력을 받았을 때 중상을 면치 못할 뻔 했잖아?”
도천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히히... 이것으로 당삼화도 크게 깨달은바가 있겠지. 내색만 않을 뿐, 사실 그 장력으로 적잖은 내상을 입었을 테니까. 승부란 역시 인정을 남길게 아냐.”
훤백은 휙, 고개를 저으며 화제를 바꿨다.
“형, 그런데 혼천소마는 어찌된 거야? 아직 아무 소식도 없어?”
도천의 얼굴에 난감한 빛이 떠올랐다.
“도무지 무슨 흉계를 꾸미는 건지, 서찰과 달리 전혀 움직임이 없거든? 집회의 흔적 같은 것도 전혀 보이질 않고... 끝까지 희롱 당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단 말야. 진짜 잠적해 버린 건 아닐까?”
훤백은 고개를 갸웃했다.
“혼천소마가 그렇게 허약했었나...? 혹시 다른 곳에서라도 나타났다는 정보 같은 거 없었어?”
“없어. 모조리 실종된 거야. 때문에 경계령도 오늘이 고비가 될 것 같은데, 오늘 이후로도 문제가 없다면 서찰 건은 백지화되기 쉬워. 척살령이 내려져 있으니 추적은 계속 되겠지만.”
확실히 집회날짜가 많이 지났음에도 문제가 없다면 경계령은 철회될게 분명한 것이었다.
“와아아아...!”
평원에서는 계속해서 천둥치듯 함성이 터지고 있었다.
이야기 중에도 비무대에서는 쉴 새 없이 백대봉공에 도전하는 인물들의 신기가 펼쳐졌고, 대결이 이어지며 연거푸 승패가 거듭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지 약 반시진 후, 주심관의 외침이 훤백 등 모두의 귀를 자극했다.
“다음은 광동 무위보의 벽운검(碧雲劍) 이대기(李大器), 이대협과, 하남 금우부의 독보창 사도횡, 사도부주의 겨룸이 있겠습니다. 두 분 대위로 올라와 주십시오!”
“와아아아아...!”
“독보창 사도횡이닷!”
찰나 또 한 번 벌판 전역을 들썩이는 함성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스룰 한 번째의 접전, 사도횡의 차례가 된 것이었다.
훤백은 일순 긴장되는 심정을 금치 못했다.
“이대기는 어떤 인물이야? 강해?”
도천은 고개를 저었다.
“무위보라면 그리 강하다 할 수는 없어. 가장 강세인 것은 역시 지난 백대봉공들의 방파라 할 수 있는데, 무위보는 한 번도 여기에 속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출전자 중에 약자는 없으니 조심해야 될 거야.”
“사도횡! 사도횡!”
“와아...!”
비무대 위에는 어느새 사도횡과 이대기가 올라가 있었다.
사도횡은 현 무림의 떠오르는 태양 같은 존재로 알려져 있었기에 대단한 연호를 받고 있었고, 두 사람은 각기 장봉과 목검을 든 상태였다.
도천이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히히히... 친구, 역시 별호대로 창을 들었군. 꽤 까다롭겠어. 현재 활동하는 고수들 중 창을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드문데! 저 친구 창 잘 써?”
훤백은 잘라 말했다.
“나도 잘 몰라. 사도형의 성품만 보고 사귄 것이지 실제 싸우는 것은 한 번도 본적이 없어서... 별호가 독보창이니 뭐 잘하겠지.”
실로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사도횡 본인이 말했듯 분명 훤백은 쓰러져가던 금우부를 일으켜 세운 실질적인 주역이다.
한데 그가 사도횡의 무공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니?
“무슨 소리야, 대체...?”
이에 도천은 크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러나 곧 웃음으로 떼웠다.
“히히히...! 그렇군. 역시 그게 더 너다울지도!”
괴상한 일이긴 했지만 훤백의 성격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이었다.
“두 분 인사 하시고 겨룸을 시작하십시오!”
이때 심사관이 올라온 두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고, 두 사람은 즉시 서로를 향해 포권을 취해보였다.
“무위보의 이대기, 부주께 인사드리오이다. 혁혁한 명성 익히 들었거니와 손속에 사정을 베푸시기 바랍니다.”
나이는 이대기가 대여섯 살 가량이 많았다.
하지만 사도횡은 한 방파를 이끄는 수뇌였기에 정중한 예의를 보인 것이었다.
이에 사도횡 역시 깎듯이 예를 취했다.
“높으신 가르침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헛헛... 별 말씀, 그럼 시작하시지요.”
두 사람은 곧 서로에게 병기를 겨누었다.
장봉(長棒)대 목검! 확실히 좀 드문 경우의 겨룸이었다.
기실 천하에는 많은 고수들이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대다수가 도나 검이었고 장창을 병기로 쓰는 이는 상당히 드물었다.
결코 검이 창보다 강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까닭은 자유분방한 무림인들이 들고 다니기에 창은 너무 번거롭다는 것이 첫째 이유.
창이란 비단 길이가 길 뿐 아니라 어디를 가건 너무 눈에 띄어 여간 귀찮은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검은 간편히 어깨에 두르거나 허리춤에 차면 그만이었고, 감추고 싶을 때는 간단히 천 조각을 휘감으면 그뿐이다.
이런 면에서 무림인들은 짧은 검이나 도(刀)를 창보다 더 선호해 오랫동안 수련해 왔지만, 그러나 실제 병가(兵家)에서는 검보다 창(槍)을 훨씬 더 선호하는 게 사실이었다.
이르자면 중원 병가의 역사는 창의 문화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창법의 오묘함이 극에 달해 있었던 것.
한 치가 길면 한 치가 더 강하다, 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다.
따라서 도천의 말처럼 이대기는 대단히 까다로운 상대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만큼은 그중 가장 편한 인물일수가 있었는데, 그는 무위보를 대표해 나온 사람이지만, 사도횡은 그 자체가 문주인 셈이었으니 이런 경우라면 져도 전혀 부담이 없다.
반대로 사도횡은 패하게 되면 문파 자체를 완전히 먹칠하는 꼴이 됨으로 입장이 실로 크게 다른 터이었다.
그래선지 이대기는 곧 목검을 비스듬히 옆으로 빗겨든 중단으로 여유 있게 기회를 노렸고, 사도횡은 훙-훙-! 대여섯 번 풍차처럼 장봉을 허공에 휘둘러 보인 후 학같이 한 발을 들고, 창대를 가슴 앞에 비스듬히 잡은 채 끝으로 바닥을 가리키는 형세로 이대기를 주시했다.
차갑게 빛을 발하는 회색빛 눈!
“저거...!?”
일순 도천의 얼굴에 크게 의혹의 빛이 떠올랐다.
“지남침(指南針)이란 것이잖아! 저 친구 이제 보니 창을 쓸 뿐 아니라 십팔반무예(十八般武藝)를 수련한 것 같은데?”
무림인이 십팔반무예!
사실이라면 또한 크게 이례적인 일이었다.
본시 십팔반무예란 무림인들이 아닌 군부의 십팔만금군들이 수련하는 정통병가의 수법이었다.
비교하자면 무림의 창검법은 변화가 많고 오묘한 수법을 위주로 했지만 병가의 무예란 전장(戰場)에서 사용되는 것인 만큼 변화보다는 그야말로 철저한 살상용(殺傷用)에 주를 둔 수법!
까닭은 같은 무반의 길을 걸으면서도 서로 다른 양상을 가진 전투조건에 있었다.
이르자면 병부의 접전이란 대다수가 천군만마가 밀고 밀리는 전쟁터의 싸움이었기에 구태여 변화무쌍하고 현란한 술수가 필요치 않았을 뿐더러 보다 단숨에 상대의 공격과 숨통을 끊고 들어가는 외적(外的)인 힘의 무공을 선호했다.
반면 무림인들은 거의가 개별적인 싸움이었기에 변화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으며, 이에 병가의 무공을 도외시했던 것이다.
한데 사도횡이 군부의 십팔반무예를 수련했다니...!
하나 훤백은 곧 까닭을 알 수가 있었다.
도천의 말대로 그가 정말 십팔반무예의 창법을 배웠다면...! 까닭은 오직 하나였다.
지난 금우부의 무력함에서 기인된 것!
다시 말해 훤백이 나서기 전, 지난날의 금우부란 영지조차 없이 유명무실했던 최악의 방파중 하나!
시조는 화산파의 속가에 속했지만 그나마 직계가 아니라서 높은 술수(術數)가 이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술수에 굶주렸던 사도횡은 차라리 십팔반무예 쪽으로 실력을 다져갔던 게 분명했다.
웅성웅성...!
마침내 지켜보던 군웅들도 이 사실을 눈치챈 것 같았다.
“저 자세... 분명 군부의 십팔반무예 맞지?”
“특이하네 그려, 설마 이름 높은 사도횡이 군부의 무예를 수련했을 줄은...! 엄청 진귀한 대결을 보겠는 걸?”
이로 인해 모두의 눈은 급기야 호기심으로 번쩍이기 시작했고, 군부와 무림의 무예가 마주선 비무대 위에는 말 그대로 실로 보기 드문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하지만 대치하기를 꽤 오랜 시간...!
‘이거 정말 난처하군...!’
이대기는 지남침의 자세로 요지부동(搖之不動), 꼼짝 않고 학(鶴) 발로 선 사도횡을 향해 선뜻 선공을 전개하지 못했다.
아닌 게 아니라 난처했다.
처음 부딪치는 십팔반무예라 해도 같은 검이라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상대가 봉하고도 워낙 긴 장봉을 잡고 있는 터라...!
자칫 선공을 한답시고 짧은 검으로 잘못 짓쳐갔다가는 크게 낭패를 당할 수 있는 입장에 처해진게 이대기였다.
그렇다고 섣불리 장력을 날릴 수도 없었다.
장력이란 막강한 경력을 동반하는 것이라 선공으로 사용하기엔 부담이 없지만 그만치 힘이 소진된다.
뿐 아니라 상대가 같은 장력으로 마주쳐 올 경우라면 모르되 피하고자 하면 오히려 허를 드러내 상대에게 바로 역습의 기회를 줄 수도 있었다.
‘안되겠군. 역시 저 자세부터 깨트려야...!’
이에 이대기는 급기야 천천히 사도횡을 중심으로 옆걸음질을 하며 사도횡의 중심부터 흐트리고자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전혀 빗나갔다.
한발 한발...!
분명 자신이 사도횡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몸을 옮기고 있음에도 사도횡은 여전히 학형(鶴形), 한자리에서 말뚝을 박은 듯 꼼짝 않고 외다리로 서 있기만 하는 게 아닌가?
눈(眼)!
오로지 회색빛 눈동자만이 뱀처럼 날카로운 빛을 발하며 그의 움직임을 따라 조금씩 돌아가는 정도였다.
‘무시하는 것인가?’
마침내 이대기는 욱, 하는 결기가 치솟았다.
기실 이 무렵 그는 이미 사도횡의 좌측을 지나 이제 한 발만 더 움직이면 뒤편으로 돌아설 수가 있는 위치까지 가 있었다.
따라서 아무리 눈동자가 돌아간다 해도 앗, 하는 사이에 자신의 모습은 곧 시야에서 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뒤를 완전히 내어주겠다는 듯 사도횡은 꼼짝 않고 있었던 것이니...!
“좋다! 어디 한 번 견뎌봐라!”
순간 이대기의 신형이 번쩍, 사도횡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느릿하게 한 걸음씩 움직이던 걸음을 순간적으로 홱, 이동해 사도횡의 뒤로 돌아간 후 번개같이 몸을 솟구치며 사도횡을 내리덮친 것이다.
“벽운검!”
콰아아앗...!
순간 그의 몸은 완전히 검영으로 휩싸여져 있었다.
하지만 미처 그의 검세가 사도횡에게 도달하기도 전!
“한 치가 길면 한 치만큼 강한 것! 유연출소(乳燕出巢)!”
꼼짝 않고 섰던 사도횡의 입에서 벼락 치듯 외침이 터지더니 촥! 허리가 비틀어지면서 바닥을 겨눈 봉의 끝을 탁! 수직으로 쳐올렸다.
너무 간단해 보이는 수법.
“훕...!?”
하나 급습을 가했던 이대기는 아연실색했다.
대체 이게 왠일인가?
그렇게 간단해 보이는 이 수법이...! 미처 자신의 검세가 그에게 가까이 가기도 전에 검세의 틈을 비집고 솟구쳐 오르며 삽시간에 봉 끝이 다리사이 급소를 노리는 게 아닌가!
“이 무슨...!?”
이에 이대기는 혼비백산하여 급급히 쳐가던 자세에서 몸을 비틀어 일단 쳐올라 오는 봉 끝을 피했는데...!
그러나 그것이 끝이었다.
“터-!”
순간 사도횡의 봉이 흡사 살아있는 생물인양 꿈틀거리며 기세를 바꿨다.
그가 허리를 꺾자 쳐올려가던 기세에서 사도횡은 곧 바로 휘돌리기로 수법을 바꿔, 그대로 봉 끝을 이대기의 옆구리에 따라 붙였으며, 그것으로 그의 몸을 빙글빙글 허공에서 두어 바퀴나 회전 시켜버린 것이었다.
“앗...!”
이에 이대기가 짤막한 비명과 함께 중심을 잃는 순간, 다시 사도횡의 외침이 터졌다.
“십병섬(十兵閃)!”
투투투...!
“아앗...!”
찰나 이대기는 어찌된 영문인지조차 모르고 허공에서 중심을 잃은 채 맥없이 뒤로 튕겨져 나가고 말았다.
사도횡의 봉 끝이 휘젓기에서 다시 무찌르기로 바뀌어 연거푸 그의 몸을 난타해 버렸던 것.
“으잉...!?”
“뭐야 저게!”
순간 지켜보던 군웅들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일제히 경악의 외침들이 터져 나왔다.
아니, 경악이라기보다 그것은 의혹에 가까웠다.
기실 도천이 말했듯 백대봉공에 도전하는 인물이라면 아무리 허약하다 해도 일류에 속할 수밖에 없는 고수들!
한데 그러한 인물 중 하나가 사도횡을 만나 접전은커녕, 이거야 말로 접근조차 못하고 그대로 끝장이 나버린 것이었다.
“어찌된 거야!? 승부 났어?”
“뭐야 뭐?”
그야말로 북새통!
“히히히...! 골 때린다. 정말! 이건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인 걸?”
도천의 입에서 조차 믿겨지지 않는다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심사관 역시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대기는 분명 시작하기 무섭게 사도횡의 봉에 맞아 쓰러졌고 승부는 난 것이다.
“아...! 스물한 번째로 사도부주께서 승리하셨음을 알려드립니다.”
한참 만에서야 심사관의 외침과 둥-둥-! 북소리가 사위를 흔들었다.
“어이, 진짜 끝났데.”
“그랬데?”
“헛갈리지만 박수치자 그럼...!”
“와아... 아아?”
참 묘하기도 하지.
비로소 도처에서 괴상망측한 함성이 일었다.
뒤따라 두 사람은 곧 비무대에서 내려갔지만 그러나 이 한 판의 후유증은 대단했다.
“허허... 거 참...! 보아하니 무림에 실로 대단한 인물이 등장했소이다. 금우부의 소문을 못 들어본 것은 아니지만 설마 사도부주의 무공이 이 정도라니... 금우부의 위세가 가일층 상승하겠구려.”
“그러게 말이오. 더욱이 도외시했던 십팔반무예를 이만치나 구사하는 인물이 무림에 나타났다는 것이 더 괄목 할만하오. 보기에는 네 합이었지만 두합 째에 봉이 옆구리에 붙었으니 창날이었다면 이 합 맞소?"
명숙들조차 아연하여 분분히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이없군!”
“와아아아아...!”
도전자들의 대결이 다시 속행되는 속에, 도천이 황보소미에게 물었다.
“히히히... 진짜 웃겨서리! 얌마! 뭐라고 말 좀 해봐! 이기리라고 짐작은 했지만 뭐가 이리 간단히...! 병부의 무공이 저렇게까지 대단하던가? 넌 백가지 병기를 다룰 줄 안다지?”
“나도 썩 뜻밖인데...!”
이에 황보소미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너무 빨리 끝나 버려서 실은 나도 잘 모르겠어. 어쨌건 원인은 우선 이대기가 창술에 대해 너무 아는 게 없었던 것 같아. 창은 확실히 칼보다 몇 배나 길거든? 창의 명수를 상대로 싸울 경우 먼저 허공으로 몸을 띄운다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나 같은 거야. 어떻게든 바싹 접근해서 창끝의 범위 안에서 상대를 쳐야 하는 건데... 이런 면에서 이대기는 크게 서툴렀던 거야. 붙으면 마(馬)가 유리하지만 떨어지면 상(像)이 이기는 것과 같으니까.”
상과 마의 싸움!
“그런데... 문제는 사도오라버니의 창술이 특히 여간이 아냐. 지남침의 기세라던가 예리함도 그렇고... 아무래도 일반의 창술 같지가 않아. 상산(桑山) 조가(趙家)의 창술과 같다는 느낌이...! 사실이라면 정말 함부로 대적할 상대가 아닌 거야.”
“상산 조가...?”
도천의 눈이 순간 휘둥그레졌다.
기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아무리 금부의 무공을 도외시하는 무림인들이라도 이 집안을 모르는 이는 별로 없었다.
본시 상산 조가문중이라면 삼국유사 이래 죽기까지 패배가 없었던 저 홍안의 명장 조자룡을 비롯, 역대로부터 군부의 기라성 같은 명장들을 배출해온 창의 명문이었던 것이다.
비록 무림을 벗어나 있었지만 사대세가 이상의 막강한 위세를 지닌 대가문이 또한 바로 상산조가문이었던 것!
“응, 확실힌 모르겠어...!”
황보소미는 거듭 고개를 요리조리 갸웃 거렸다.
“상산조가의 창법은 천하의 비전(秘傳) 중 비전인데... 어떻게 사도오라버니가 배웠는지 난 그것부터가 모르겠거든?”
“히히히... 정말 이놈 저놈 할 것도 없이 하나같이 잔뜩 꿍꿍이속을 가진 괴물들이로군!”
도천은 계속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점점 더 신비해지는군. 훤백 이 자식 하나만으로도 웃긴데...! 짜샤 말해 봐! 기분도 좋을 건데 불어! 너라면 저 친구가 어떻게 조가창술을 배웠는지 알겠지?”
훤백은 대답은 무지 간단했다.
“몰라.”
“카카카카... 하기사 묻는 내가 더 바보다! 너같이 음흉한 놈이 언제 아는게 있었어야 말이지! 어쨌건 실력이 저 정도라면 나라도 안심할 수 없겠어!”
허언이 아니었다.
말을 하는 도천의 눈은 예리하기 그지없는 섬광이 떠올라 있었다. 필경 한 판 붙어보고 싶다는 모습...!
“와아아아아...!”
펑! 펑...!
그러한 와중에도 비무대에서는 계속 불꽃 튀는 대결들이 벌어지고 있었고, 마침내 한 시진이 지나갈 무렵 예순 일곱 번째로 황보선이 올랐다.
상대는 섬서 노진 청령궁의 적발협(赤髮俠) 곽진(郭眞)!
그러나 삼랑일연의 명성대로 워낙 강력한 무공을 지닌 황보선이었기에, 비무대에 오르자 약 이십여 수 만에 곽진을 혼쾌히 물리치고 이차 전에 진입했고, 다시 반 시진가량 후에 서문한랑이 이차 전에 올랐다.
남해검문(南海劍門)의 철기린 장청 역시 삼랑일연의 명성을 그대로 과시하며 차례로 이차 전에 합류를 했으니, 결국 이로서 사도횡과 삼랑일연은 모두 백대봉공의 이차 전에 무난히 합류한 것이다.
둥... 둥... 둥...!
그리고 오후에 들자, 마침내 앞서의 도전자들을 꺾고 올라온 대표들 간의 이차전이 벌어졌으며, 해가 뉘엿뉘엿 기울 무렵에는 급기야 무림맹과 더불어 천하의 대소사를 짊어지고 갈 일백 명의 봉공이 결정되고 있었다.
“와아아아...!”
“최고다!”
“사도횡!”
“황보선...!”
하지만 지켜보던 군웅들의 태도는 오로지 열광하고 있을 뿐, 누가 봉공이 되건 거의 별 놀라울 게 없다는 듯 했는데...!
까닭은 처음부터 출전하는 인물들의 내력들을 알고 있었던 만큼 어느 문파의 누가 승리할 것인지를 어지간히 점치고 있었고, 또한 접전은 거의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군림대회란 천하각파의 강호들이 올라와 접전을 벌이는 만큼 마땅히 어느 방파의 누가 강력한 우승후보라는 것이 처음부터 대략 예상되는 접전인 것이었고,
와중에 사도횡처럼 살별같이 나타나는 신예가 간혹 있기도 했지만, 그러나 이런 것은 극히 드문 경우였기 때문이었다.
따당... 따다다다당...!
“풍악을 울려라!”
“길 비켜라! 또라대협 나가신다!”
“으하하하하...!”
이에 군림대회가 막을 내리자 몰려온 군웅들은 오히려 다른 것에 더 열을 올리고 있었다.
삼 년에 한 번 열려 이 엄청난 인파가 몰리는 무림의 대잔치! 모였으니 당연히 한 판 땡겨야지!
마시고 노래하고... 호호탕탕! 그야말로 멋들어진 축제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첫댓글 재밌게 보았어요~~
즐~~~독
즐독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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