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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은 일본어로 '신세츠しんせつ' 라고 하는데, 어원이 할복에서 나왔다. 스스로 배를 갈라 죽는 할복( 셋부쿠-切復)은 사무라이의 죽음을 상징한다. 조선의 충신들이 사약을 받고는 왕이 있는 곳을 향해 절을 드리고 사발을 완샷한 다음 피를 토하면서 죽는 것처럼, 사무라이들의 최후는 셋부쿠일 수밖에 없다.
본래의 셋부쿠는 단순하게 배를 가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후 일단 단검으로 배를 가로로 가른 다음 다시 아래 위로 갈라야 한다. 십자 형태로 가른 복부에서 내장이 쏟아질 때 마지막으로 심장이나 목을 찔러 죽어야 비로소 셋부쿠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무라이들도 인간인 이상 셋부쿠를 완성하는 것은 극히 어렵다. 배가 갈라지고 내장이 쏟아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다시 목이나 심장을 찔러 죽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가능하기 어렵다.
그리하여 등장한 편법적 배려가 '가이샤쿠(介復)'다. 소개한 그림에 나타난 것처럼 셋부쿠하는 사람의 뒤에 시퍼런 일본도를 들고 있는 무사가 순간적으로 목을 쳐서 고통을 덜어주게 하였다. 가이샤쿠를 하는 무사를 '가이샤쿠닌(介復人)이라 하는바, 친절의 어원이 거기서 나오게 된다.
후대로 가면서 굳이 배를 십자로 가를 것 없이 첫칼이 들어가는 순간 가이샤쿠를 하는 것으로 완화되었지만, 어쨌든 죽는 것은 매일반이다. 삶에 대한 애착은 자신의 목을 치는 자에 대한 반감을 부를 수밖에 없는데다, 원한으로 승화하기에 너무나도 충분하다. 미신이 사실로 유통되던 시대에 가이샤쿠닌에게 전가될 부담을 일러 무엇하겠는가.
그래서 발생한 대안이 셋부쿠를 시행하는 사무라이와 가장 친하고 믿을 수 있는 무사에게 가이샤쿠를 맡기는 것이었다. '친절을 베풀다'는 매우 긍정적이고 문화적인 문장의 어원이 그렇게 발원하였다는 것에 소름끼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의 영향이 그토록 깊이 침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경각을 주려하지 않는 내부의 지식집단들에게 더욱 소름이 끼친다.
-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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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렇게 깊은뜻이 담긴줄 몰랐습니다
덜 고통스럽게 하기위한 거라지만 소름돋는 내용이네요
알고서는 친절하다란 말
쓰기가 어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