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우체국앞에서 - 윤도현
고3 여름방학때였다. 나는 장티푸스에 걸려 한여름에도 이불을 둘러쓰고 앉아 있는데
마당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가보니 큰형이었다. 형은 숫돌에 칼을 갈고 있었고
내가 뭐하냐고 하니까 씩 웃으며 그 칼로 자신의 허벅지를 쓱 긋는게 아닌가.
이내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고 형은 이칼로 그를 죽이려 한다고 하였다. 그해는 봄부터
대학생들이 유신철폐를 부르짖으며 꽃같은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던 시절이었다.
물론 개미한마리도 죽이지 않는 형은 그칼로 아무도 찌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다음해
2월 26 아침 형이 나가면서 나에게 악수를 청하며 공부열심히 하라고 하였다.
그날 저녁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집으로 밥먹으러 가는데 멀리서 형의 친구가 나를 보더니
달려오고 있었다. 그형은 먼저 살던 동내 목사님의 아들로 못본지 꽤 오래됐는데
대뜸 네형이 죽었다는것이다. 나는 깜짝놀랐고 그형과 집에 갔고 그형이 어머니께 그얘기를
하니 어머니는 그자리에서 혼절하셨다. 다음날 우리는 용산경찰서에서 형의 시신을
확인하였고 삼일째 되는날 형의 시신을 파주 용미리 시립묘지에 안장하고 돌아왔다.
오는 길에 보니 벌써 버들가지가 파릇파릇했다. 그리고 형의 유품을 정리해보니 노트몇권
분량의 수필과 소설 등 글이 많았는데 아버지는 부모앞선 자식이라며 마당에서 형의 유품을
모두 태웠다. 나는 형의 유품중에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따로 챙겨두었다.
그 시집 첫장에 "萬折必東을 아는가" 가 형의 자필로 적혀 있었다. 한강하구를 걸으며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이 역경속에 형도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내용이었고
원래 중국 고전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후 나는 세무공무원을 하면서 대학에 가기 위해 주경야독을 했으나 떨어졌고 사표를 쓰고 군에 입대했다
군에 입대할때 형이 남긴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가지고 갔고 관물대 아래 두고 틈틈히 읽었다
그리고 병장때 팀스프리트훈련에 선발대에 참여하여 M60트럭을 타고 양평을 지날무렵 트럭이 벼랑으로
떨어지는게 아닌가. 나는 차가 넘어간다고 외쳤지만 곧 트럭의 호로사이로 몸이 날라갔고 그 짧은 순간에도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죽지 않았고 간신히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니 트럭은
완전히 전복되었고 트럭사이 전우들이 깔려있었고 몇명은 나처럼 몸이 호로 사이로 튕겨져 나가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전우들 3명이 순직했고 4명이 중상을 입고 후송됐다가 상이제대했고 나만 살아남아 33개월
만기제대하였다. 고1 여름방학때 형이 다니던 교회에서 양평에 수양회를 가게 되어 따라가서 한소녀를 알게
되었고 그때를 생각하느라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그추억이 나를 살린 것이었다.
귀대후 나는 나의 꿈을 이루기위해 틈틈히 대입 공부를 하였고 제대후 26세의 나이에 대학에 입학하였다.
- 사랑스런 추억 -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트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주어,
봄은 다 가고 동경(東京)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 윤동주 -
첫댓글 만절필동 (萬折必東 :황하는 아무리 굽이가 많아도 마침내 동쪽으로 흘러간다는 뜻으로, 충신의 절개는 꺾을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오늘 또 사자성어 하나를 배웁니다.
그산 님의 형님에 관한 이야기가 가슴 아픕니다.
꽃다운 젊은 나이에 떠난 아쉬움만 남습니다.
반갑습니다
윤동주시인을 참 좋아하던 형은 적지 않은 글을 남겼지만
못난 동생이 챙기지 않아 불태워졌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도 이사를 다니다 분실해서
형의 유품은 남아있는게 없어 미안함이 많습니다
"만절필동"을 보니 더불어 연상되는게
" 渴不飮盜泉水 (갈불음도천수)" 입니다.
아무리 목이 말라도 훔친 물은 마시지 않는다.
윤동주의 작품은 제가 참 좋아하며 가끔씩
읊조리곤 합니다. 편한 일요일 되세요.
반갑습니다. 갈불음 도천수 처음 들어보지만 참 뜻이 좋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정도를 걷겠는다는 의미로 생각됩니다
행복한 일요일 되시기 바랍니다 !
형님께 젊은 시절 안타까운 일이 있으셨었군요.
사람의 운명은 타고난다 라는 말 그산 님의 글을 읽으며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ㅎ
반갑습니다
유서를 남기지 않았고 길에서 쓰러져 사망하셨기에 사인불명으로 되있습니다
정황상 그렇게 돌아가신 걸로 추정됩니다. 작은형과 나는 한동안 형의 묘소를 찾아다니다
안가게 되었고 아버지가 홀로 화장해서 묘소주변에 뿌렸다 합니다
또 하나의 사자성어
배우고 갑니다.
형의 즉음이 안타깝습니다.
수필방에도 가끔 들리시어
좋은 글 올려 주세요. 건필 유지하세요.
감사합니다. 형은 말이 거의 없고 큰키에 얼굴이 하얗고 코가 오똑하였으며
윤동주시인을 참 좋아했습니다. 능력은 없지만 말씀하신 곳을 방문하겠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
요즈음 그렇쟎아도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란 노래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는데
역시 그산님과 계절 감각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지난 슬픈 이야기 끝에
가슴시린 윤동주의 시를 들으니
마음의 풍요를 갖게 합니다
가리나무님 반갑습니다
노래 취향이 저와 비슷한가 봅니다
가을우체국앞에서는 이맘때면 생각나는 노래입니다
슬픈 사연은 영혼을 정화시켜주는 순기능이 있습니다
행복한 가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
그산님 글에 만감이 교차합니다.
형의 죽음과
윤동주님의 시
세무공무원을 사직하고
군대에서의 사고와
그리고
그리고~
끊임없이 뭔가를 겪었을 것만 같은ㅜㅜ
그산님~
지금까지 잘 살아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따뜻한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말씀대로 젊은 날의 저는 참 사고를 많이 겪었습니다
장영희교수의 말대로 제삶은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을 만들어 주었을 만큼
기적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제는 안정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데 아직도 계속 일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계절 가을을 맞아 늘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
아픔이 많은 인간 세상인데
그산님도..가족도 참 많은 아픔을 겪으셨습니다.
제가 지난 오월부터 몇달동안
틈틈히 시간될 때마다 625 동영상을
많이 봤습니다.
민간인 정규군은 물론 남녀노소
전쟁 속에서 사라져 가는 그 모습들을
참 많이 봤지요
특별한 것은
죽음이 목전에 있어도
천진난만한 얼굴들 지금도 기억 속을 맴돕니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자들은
그래도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데..
산자는 그런 현실에 감사해야한다는 생각도 하고요...
감사합니다. 사실 50년이 다된 일이라 평소에는 생각도 안하는데
지난일을 시리즈로 글쓰다보니 형의 일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의 성장스토리는 그후는 모두 비슷할것 같아 여기서 멈추고자 합니다
6.25 당시 동영상이나 사진을 보면 죽음앞에 태연한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가슴아픈것은 같은 동족을 상대로 피아구분없이 잔혹하게 살해한 사진이나
영상이 많아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제 남은 세월은 평안히 살다가
조용히 떠날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윤도현의 노래 속에 읽는 글 괜히 울컥해집니다 그 시절이 어떤 시절이었습니까 아깝고도 이쁜 청춘들이 속절없이 죽어 가고 죽으러 가고 형님도 그 아름다운 청년 중 한명이었을 것입니다
그산님 글은 언제나 가슴에 쌓여 갑니다 고맙습니다.
반갑습니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가을이 왔습니다
그런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민주주의가 있고 그를 바탕으로한 경제성장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제 세상 어느곳에도 형의 자취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주말에는 작은형과 함께 부모님의 산소에 가봐야 겠습니다
늘 좋은 댓글 감사드리며 오늘도 행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