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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모놀과 정수 원문보기 글쓴이: 이종원
#6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의 현장, 체코 프라하에서 로멘스를 꿈꾸다.
글/사진:이종원
지난 서유럽 여행때 기차에서 만난 배낭여행객으로부터 '프라하'의 대해 극찬의 말을 들었다. 그로부터 다음 여행지가 프라하가 될 것만 같았는데 10년이 지나서야 프라하 땅을 밟게 되었다. 솔직히 '프라하'가 어느 나라의 수도였는지 또 어디에 붙어있는지조차 몰랐다. 그저 '프라하'라는 어감이 상쾌하고, 가슴속에 연정을 품었던 내 이상향의 도시라는 것 밖에.
작년 12월쯤 모놀에서 동유럽답사를 준비하면서 오랫동안 품어왔던 프라하 사랑을 다시 꺼냈다. 세월이 한참 지난 드라마 '프라하 연인'의 줄거리를 애써 떠올리며 얀휴스 동상 앞을 서성거렸고, 카를교 네포무츠키 동상을 만지며 소원을 빌었고, 드보르작의 신세계교향곡을 들으며 프라하 기대를 증폭시켰다.
그러나 너무 큰 기대 탓일까 실망도 그에 못지 않았다. 유럽의 한복판에 자리잡은 프라하야 말로 인파가 몰리는데 주말이면 도시 전체가 시장통이나 다름없었다. 복잡하고 무질서한 도시 프라하. 어쩌면 그것이 매력일수도 있겠다. 조용히 사색을 즐기며 도심 구석을 탐미하려는 내 의도는 프라하에 도착하자마자 접을수밖에 없었다. 막상 한국으로 돌아오니 프라하에 대한 그리움보다 아쉬움만 남은 것 같다.
카를교 아래 존 레논 벽은 왜 빠뜨렸고, 모차르트가 지오반니를 처음 공연했던 스타보프스케 극장을 찾지 못했고 , 펍에 앉아 하우스 맥주을 즐기며 수다를 떨었어야 했었데, 좀 더 일찍 일어나 새벽 시간을 활용했으며 얼마나 좋았을까. 하긴 패키지 여행 상품은 프라하를 하루도 제대로 보지 못했하다고 하니 그나마 그걸 위안 삼아야겠다. 어슴프레 프라하의 윤곽만 확인 했을 뿐 그 속살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마 내가 프라하를 다시 찾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모양이다.
프라하를 향해
아침 일찍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를 출발해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 체코 체스키크롬로프에 닿았다. 블타바(독일명은 몰다우)강은 체스키의 도시 절경이 반해 태극으로 휘감아 돌며 맘껏 여유를 부리며 도시를 유람하고 있었다. 그 작은 물줄기는 보헤미안 평원을 유랑하며 북쪽으로 흘러 프라하에서는 제법 강폭이 넓은 블타바강을 만나게 된다. 강은 프라하 북쪽 30km 지점에서 엘베강과 합치면서 독일로 넘어가 독일평원을 땅을 적시며 북해로 빠져나간다. 프라하는 블타바강을 기준으로 양쪽에 엽서에 등장할 만한 건물들이 서 있다.
프라하 역
프라하 외곽은 여느 유럽의 도시와 다를바 없다. 프라하역 앞을 지나고 나서야 고도 프라하를 실감하게 된다. 10년전만 해도 프라하는 배낭여행객의 천국이었다. 파리, 로마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웠던 대학생들이 프라하와 부다페스트에서 와서는 모처럼 정찬을 즐겼다고 할 정도로 물가가 저렴하고 음식도 맛났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웬만한 서유럽 뺨칠 정도로 물가가 올랐다.
프라하 역사 벽에 걸린 그림은 현대자동차 광고판이다. 한국에서 그렇게 현대 기아차를 욕하면서도 이렇게 외국에서 만나면 괜히 뿌듯해진다. 역에서 내리면 프라하의 웬만한 여행지는 도보로 충분.
바츨라프 거리. 체코의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거리에는 고풍스런 호텔이 많다.
Ambassador Zlata Hosa. 5성급 호텔로 바츨라프 거리에 있다. 구시가광장까지는 5분 거리, 카렐교는 10분거리로 도보여행자의 천국. 바츨라브 광장을 중심으로 여행지가 몰려 있어 일정 잡기가 수월하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에 나옴직한 고풍스런 호텔로 입구는 협소하지만 내부는 큼직하다.
최신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백년은 된 것 같은 엘리베이터를 주로 이용했다. 계단에서 내려다 보면 엘리베이터 연결 줄이 훤히 보인다. 자동 문이 아닌 여닫이 문이다. 평소에 저 문 열리면 뚝 떨어지겠지.
호텔 내부 역시 고풍스럽지만 깔끔하다. 유럽의 더블침대는 주로 싱글침대 2개를 붙여 놓았다. 잠버릇이 고약한 사람을 만나도 걱정없다.
아침 뷔페. 하루종일 걸어야 하기 때문에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새벽 4시 30분. 유럽은 3월 마지막주 일요일부터 10월 마지막 주 일요일까지 썸머타임을 적용하기 때문에 새벽시간과 밤시간을 활용하면 좋다. 특히 새벽에는 한적한 거리풍경을 만날 수 있어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서는 것이 좋다. 이런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숙소를 시내 한복판에 잡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중부유럽 11일 일정 중에서 가장 잘 한 것이 바로 이것.
역시 관광지답게 새벽에는 술 취해 배회하는 취객, 마약에 취한 사람이 많으니 혼자 다니면 위험하다. 반드시 3~4명이 함께 움직이는 것이 좋다. 인적 드문 중세 골목을 누비는 재미는 바로 새벽시간
틴성모성당 프라하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구시가광장. 때마침 틴 성모성당과 건물 사이로 해가 떠올랐다. 북쪽 로마의 분위기가 물씬 묻어난다.
틴성당 야경. 기도할때 두 손을 모은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프라하에서 성비투스 성당 다음으로 크고 아름다운 성당으로 알려져 있다. 높이는 80m. 성비투스대성당과 더불어 ㄷ을 프라하를 대표하는 건축물. 일명 쌍둥이 탑으로 아담과 이브를 상징한다고 하는데 어느쪽이 아담일까. 크고 높은 쪽이 아담. 그렇다면 오른쪽.
첨탑 사이에 성모상은 황금 성배를 녹여 만들었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번쩍번쩍 빛난다.
동화속 분위기 답게 성당은 슬픈 전설이 남아 있다. 성당에 미남 신부가 있었는데 첼레트나 거리(틴성당에서 화약탑가는 거리)의 여인이 이 신부에게 반한 것이다. 스토커처럼 일방적 사랑이 지나쳐 신부님은 혼자서 성당 밖을 나갈 수가 없을 정도다. 어느 비오는 날 교회내의 십자가를 밖으로 옮기려고 하는데 기다리던 여인이 신부에게 달려든 것이다. 놀란 신부는 무거운 십자가를 놓쳤고 그 여인은 십자가에 깔려 죽고 만다. 비 오는날이면 첼레트나 거리를 배회하면 남자들의 영혼을 빼앗는 귀신을 만난다고 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비오는날이면 주머니에 소금을 넣고 다녔다고 하는데 부정탈 때 소금뿌리는 것은 우리네 퇴치방법과 흡사하다.
첨탑끝을 자세히 보면 별이 반짝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만남의 장소로 나왔던 얀휴스 동상
드라마 '프라하 연인'에서 소원의 벽으로 나왔던 얀후스 동상. 그의 서거 500주년을 맞이해 1915년 광장 한가운데 세웠다. 전도연이 이 벽에 김주혁과 사랑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소원지를 붙여 놓는 곳으로 유명하다.
프라하에서도 가장 인파가 많이 몰리는 곳 중에 하나인데 아무래도 새벽에 촬영하지 않았나싶다. 둘이 타고 다녔던 마차는 변함없이 광장을 지나 다닌다.
중세 천주교의 폐해는 심각했다. 흑사병이 돌아 인구가 감소하고 물가는 상승한데다 모리비아 지역의 토지 80%가 성직자의 손에 있었고 면제부를 파는 등 부정부폐까지 만연했다. 심지어는 미사때 서민에게는 빵만 제공하고 포도주를 제공하지 않은 것이 공분을 샀다. 귀족과 성직자만 빵과 와인을 줬다.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한 성직자 얀 후스는 프라하 대학에서 '하느님의 말씀은 성경에 있지 교회나 교황의 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설파했고 체코어로 된 성경을 출간하고 체코어로 미사를 바쳐 체코인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그러나 1415년 7월 6일 독일의 콘스탄츠에서 열린 종교회의에 불려나가 화형을 당하고 만다. "만약 잘못을 인정하면 풀어주겠다."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기꺼이 화형대에 올라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죽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다시 부활해 체코인의 가슴에 정의의 불꽃을 심어주었다.
후스가 화형에 처하자 분개한 보헤미안 영주들과 농민들은 후스파를 조직해 종교의 자유를 요구하며 시청으로 몰려가 13명의 시의원을 창으로 찔고 창문으로 내던진다.(1차 프라하 투척사건) 이 사건으로 인해 15년간 신구교도간 후스전쟁이 이어졌는데 결국 후스파가 승리하여 200년동안 체코는 종교의 자유를 만끽하게 된다.
동상아래 새겨진 문구는
'진실을 사랑하고, 진실을 이야기하고, 진실을 지켜라'라고 새겨져 있다.
제 2차 투척사건의 현장
이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받게 되고 신성로마황제 루돌프 2세는 보헤미아에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황제 칙령을 발표하지만 얼마 후 그가 죽으면서 칙령은 무효화 되었다. 이에 반발한 신교도들은 프라하성으로 몰려가 황제가 임명한 2명의 공직자와 비서관을 창밖 15m에 던지는데 이 2차 투척사건이 유럽을 전쟁의 공포로 몰아 넣은 30년 전쟁의 시발점이 된다.
화가 난 합스부르크가는 용병까지 투입해 진압을 하게 되는데 당시 귀족, 군인, 농민 대표 등 27명을 구 시청광장에 참수시켜 화약탑에 10년간 걸어 놓았다고 한다.
시청사 입구 문에는 당시에 처형당한 27명의 명판이 걸려 있고 늘 이곳에는 꽃이 놓여 있다.그 앞에 27개의 하얀 십자기와 1621년 6월 21일을 새겨 놓았다. 6월 21일은 낮이 가장 긴 하지로 시민들이 가장 오랫동안 잘려나간 머리를 모습을 보게 하기 위함이다.
그 잔혹한 곳에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가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구시청사 시계탑 전망대 구 시청사 시계탑 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입구에 표를 사면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왂다고 하면 어떻게 올라가는지 한국어로 된 안내쪽지를 준다. 옆으로 난 상가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된다.
매시 정각에 나팔수가 나팔을 분다. 개미처럼 몰려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나팔을 불고나면 답례로 인사
어찌나 사람들이 많던지....
대장을 향해 손 흔들고 있는 모늘 식구들. 손 안 흔든 사람 증거 있어요.
전망대에서 바라본 광장과 틴성모성당 붉은 지붕과 파란 하늘이 잘 어울린다.
왼쪽에 하얀 건물이 성니쿨라세 교회.. 성니콜라스 생애을 그린 천장돔이 일품이라는데 .그아래 왕관모양의 샹들리에가 있다고 한다.
멀리 프라하성과 성비투스 교회가 보인다.
사방이 붉은 지붕. 다양한 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 2차세계대전에는 '이 집은 민가입니다'라는 표시를 걸어 폭격을 면했다고 한다.
카페가 옥상에 자리하고 있다.
구시가 광장
오를로이 천문시계 구시청사에 인파가 몰리는 이유는 은 바로 오를로이 천문시계 때문이다. 당시 프라하 대학 수학교수인 하누쉬와 조수 미쿨라세가 함께 만들어 시청사에 걸었는데 당시 프라하 시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시계주문이 쇄도하자 시의회는 시계를 독점하고자 음모를 꾸민다. 아누쉬가 열심히 일하던 밤 복면을 쓴 3명의 자객이 그를 묶어 놓고 불로 달군 쇠꼬치로 눈을 찌른다. 폐인이 된 하누쉬는 마지막으로 시계를 만지겠다고 요청했고 그가 손으로 천문시계를 어루만지자 시계는 갑자기 멈춰 버린다.
위쪽 시계는 칼렌다륨으로 천동설의 원리에 따른 해와 달과 천체의 움직임을 묘사했고 아래플라네타륨은 12개의 계절별 장면을 묘사했다.그러니까 위쪽은 시계, 아래쪽은 달력으로 보면 된다.
정시가 되면 칼렌다륨 위쪽 창문으로 해골이 나타나고 그 뒤로 12명의 사도들이 창문을 통해 지나간다. 윗쪽 황금색 닭이 나와 울리면 문이 닫힌다. 나팔을 불면 전망대 위에서 나팔을 불게 된다.
광장에서 기념촬영
사랑이 이루어지는 다리, 카를교 프라하의 아이콘인 카를교는 카를 4세때 점성술사와 천문학자를 동원해 1357년 9일 7월 5시 31분에 시공했는데 '135797531' 홀수(양수)를 나열해 다리가 영원히 튼튼해지길 기원하기 위함이다. 동양의 음양오행상 물이 음수이고 다리가 양수이기에 이를 적용했다고 하니 그 점성술사는 어떤 학문을 기초로 해서 이 숫자를 적용했는지 궁금하다.
특히 다리를 건설할 때 우유와 날계란을 풀어 돌의 접착력을 높였고 와인으로 회반죽을 했다고 하니 괜히 다리를 어루만지고 싶은 충동이 든다. 유럽 최고의 다리로 길이 520m, 폭 10m 로 육중해 예전엔 차량도 다녔다고 하는데 지금은 보행자 천국이다.
다리 건너기 전에 다리를 만든 카를 4세 동상이 서 있다. 카를대학 설립 500주년을 기념해 만든 동상답게 오른손에는 대학설립인가증을 들고 서 있으며 아래 4명의 여인들은 설립 당시 4개의 학부인 신학, 의학, 철학, 법학을 상징한다고 한다.
북쪽에서 바라본 카를다리
남쪽에서 바라본 카를 다리. 멀리 성비투스 성당이 보인다.
30인의 성인상이이 도열해 있는데 거의 사암으로 만들어져 시커멓게 변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유심히 보면 대리석 조각도 볼 수 있는데 네포무츠키상은 유일하게 청동으로 만들었다.이곳 역시 동틀 무렵에 찾아야 카를교 본연의 스산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블타바강에서 올라오는 물안개가 깔린다면 더욱 좋고
성루이트가르트 상이 카를교의 30개 조각상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받는다. 십자가 위에 못박힌 예수님을 성녀가 입을 맞추려고 하고 있으며 그 뒤로 천사가 날고 있다.
성인상은 전체 30개, 좌우에 15개씩
가장 오래된 성인상은 머리에 별 5개의 관을 쓰고 있는 성 네포무츠키상. 1683년에 제작하였다고 한다. 30개 성인상 중에 가장 인기 있다.
카를4세의 아들 바츨라프 4세는포악한 왕으로 소문이 났는데 하루는 왕비 소피아가 네포무츠키 신부를 찾아가 자신이 외도했다는 사실을 털어 놓는데 신하가 몰래 이를 엿듣고 왕에게 고자질한다. 포악한 왕은 즉시 신부를 불러 고해성사 내용을 털어놓으라고 했지만 고해성사 내용을 밝힐 수 없는 신념 때문에 입을 닫고 만다. 화가 난 왕은 그의 혀를 뽑고 다리 아래로 던져 죽여 버린다. 얼마후 그의 시신이 물위에 떠올랐는데 5개의 별이 빛나는 것이었다. 그후 네포무츠키는 다리의 수호성인으로, 프라하에서 가장 존경 받는 성인이 된다.
성인상 아래 받침대에 놓인 부조를 만지면 성인이 다리아래로 던져지는 장면과
충직한 강아지의 머리를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해서 전세계 관광객이 줄을 선다. 이 부분이 유난히 반짝거린다.
다리 아래로 떨어지는 성인의 모습 ..이 부분도 반짝거린다.
나도 소원을 빌고 어루 만졌다. 충직한 강아지에게도
블타바강과 성인상
체코 프라하의 아이콘인 카를교. 동틀무렵 연인이 다리를 건너고 있다. 두 지역을 연결하는 다리는 단순한 다리가 아니라 문화를 연결하는 매개체로 다리를 건너는 자체가 행위예술이다.
중세의 다리에서 프로포즈를 받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웨딩촬영하는 신부. 다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꼭 만날 것 같은 마법같은 곳이다.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수많은 연인들이 카를교를 찾는다. 나도 뒷짐쥐고 해봐야겠다. 멋진 걸~
천년을 달려본다.
카를교에서 바라본 프라하성
카를교와 프라하 성]
열기구도 둥둥. 물이 흘러 갈 수 있도록 유선형으로
카를교는 의외로 야경이 볼만하다.
소원을 빌기 위해 줄을 선다.
수준 높은 음악을 들려주는 거리의 악사
다리 양쪽에 교탑이 있는데 톨게이트 요금소 역할.
교탑 사이로 보이는 성미쿨라세 교회
성모상과 성 요하네의 석상이 있는 십자가. 히브리어로 된 비문이 새겨져 있다.
카를교옆 카프카 박물관
구시가쪽 교탑. 꼭대기에 올라 내려다본 카를교가 기가 막히다는데..다음에는 놓치지 말아야지
칼르교 교탑과 성비트성당
체코 음악의 아버지 스메탄나와 드보르작
카를교 왼쪽에는 '체코음악의 아버지'인 스메타나 박물관이 서 있다. 이곳이 카를교와 프라하성을 볼 수 있는 전망포인트다. 1863년부터 41869년까지 스메타나가 이곳에서 살았으며 '팔려간 신부'를 이곳에서 작곡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로부터 자유를 얻고자 그는 민족적인 곡을 주로 썼다. '팔려간 신부', '블타바. 등 . 이밖에 체코는 드보르작이란는 걸출한 작곡가가 나오는데 브람스에 눈에 띄어 슬라브무곡 등 민족적인 춤곡들을 많이 작곡했다.
프라하 도심의 지붕들
프라하 사람들은 건축박물관에 산다고 보면 된다.
유대인 지구.
벽 모서리 장식
도심 곳곳에 네포무츠키 성인상을 볼 수 있다.
체코 역사의 현장,바츨라프 광장
체코 최고의 번화가인 바츨라프 광장. 지하철 무스테크역에서 국립 자연사 박물관까지 길이 750m, 폭 60m거리로 프라하 신시가지 최대의 번화가다.
이곳은 체코의 근현대사 역사를 간직한 현장으로 20세기 초까지 시장이었다가 1차 세계대전후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몰락하면서 체코가 독립을 얻게 되었는데 바로 이곳 바츨라프 광장에서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1948년에는 공산당 장악하여 사회주의 공화국이, 1968년에는 두부체크로 대표되는 '프라하의 봄' 때 소련군의 탱크부대에 맨몸을 맞서 싸운 곳이기도 하다. 밀란 쿤데라 소설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프라하의 봄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1989년 공산정권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던 곳으로 벨벳혁명의 중심지로 공산주의 정권의 종말을 고한 역사적 현장이다. 그때 등장한 인물이 하벨대통령이다. '벨벳'이란 조용한, 평화적인 의미의 형용사로 무혈혁명의 동의어다. 당시 시민들은 열쇠와 꽃을 경찰에 꽂아줌으로써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체코의 민주화를 이뤄낸 성지다.
보헤미안의 수호신인 성 바츨라프 기마상
동상앞에는 프라하의 봄을 탄압하던 소련군에 저항하다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동판이 있으며 항상 꽃이 놓여 있다.
국립자연사 박물관 폭 100m. 높이 70m에 이르는 박물관
프라하의 명물 전차. 빨간색으로 고풍스런 건물과 잘 어울린다.
파란색의 삼성전자 전차도 보인다.
100년된 하우스 맥주를 먹을 수 있는 우핀카수
무하박물관. 무하의 가족이 보관하고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은 작품을 볼 수 있다.
과거 공산시대의 잔재
프라하 마리오네트 인형극을
국립 마리오네트 극장. 1929년에 5월 20일에 첫 공연을 80년이 훌쩍 넘었고 무려 3천5백회, 70만명이 이 공연을 보았다. 입구에는 공연을 소개하는 한국안내판이 걸려 있다.
인형극장은 250석 정도로 아담하다. 더 커도 곤란하다. 뒤에서 볼수 없으니 말이다. 의자는 딱딱한데 앉은 키 높이에 따라 조절이 가능해 아이들도 앉을 수 있다.
오페라 인형극으로 모차르트 인형이 등장하면서 시작되는데 인형극답게 무척 코믹하다. 희히대의 호색가였던 돈지오반니는 도시 곳곳에 여인들을 유혹하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쫒겨 묘지에 갔다가 결국 그는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줄거리다.
프라하에 인형극이 발달하게 된 이유는 체코어말살 때문인데 합스부르크왕가는 독일어만 쓸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인형극만은 체코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 오늘날 인형극을 발전한 원동력이 되었다.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인형의 줄을 움직여 실제 사람 같은 동작을 만들어낸다. 모차르트는 돈지오바니를 체코에서 만들었으며 스티브프스케 극장에서 첫 공연을 열어 프라하 사람들의 갈채를 받았다. 공연은 2시간, 1시간이 끝나면 휴식시간이 있다.
공연이 끝나면 배우들의 팬서비스가 이어진다. 500여회...70만이 넘는 관객.
590코루나...우리 돈으로 4만원
인형가게가 무척 많다.
또아리를 틀고 있는 금뱀의 문장. 프라하에서 가장 먼저 생긴 카페인 금뱀 문장
고풍스런 건물
청소부 옷은 우리와 색깔이 같다.
클람 갈라스 궁전.각종 공연이 열리는 성지합스부르크 대사를 위한 궁전으로 입구에는 마차시 브라운이 조각한 바로크 양식의 헤라클라스 조각이 인상적이다.궁전옆 마리안스케 광장이 있다.
구시청사
불타바강변의 댄싱하우스. 남녀가 함께 춤추는 건물볼록 튀어나온 것이 남자. 기존 건물 양식에서 탈피한 해체주의 작품.방금 녹여낸 아니스크림 분위기
체코식스테이크..소고기가 부드럽다.
후식으로 파이
시민회관. 역대 왕의 궁정이 있던 곳으로 화재가 나서 잿더미가되고 1911년 오늘날 시민회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프라하의 봄' 음악회장인 스메타나홀이 있으며 카페, 레스토랑이 있다. 입구 아치에 그려진 벽화가 일품이다. 극장 앞으로 천장이 열린 시티투어 버스가 지나간다.
프라하 문장
대통령궁에도, 맨홀 뚜껑애도 이 문장을 볼 수 있는데 바로 프라하문장이다. 요한묵시록 21장을 읽어보면 이 문장을 이해할 것이다.
23절 그 도성은 해도 달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그곳에 빛이 되어 주시고 어린양이 그곳의 등불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25절 거기에는 밤이 없으므로 종일토록 성문이 닿히지 않습니다.
26절 사람들은 민족들의 보화와 보배를 그 도성으로 가져갈 것입니다.
27절 그러나 부정한 것은 그 무엇고, 역겨운 짓과 거짓을 일삼는 자는 그 누구도 도성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오직 어린양의 생명의 책에 기록된 이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문이 열린 것은 문이 닫히지 않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프라하는 밤(어둠)이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며 칼을 들고 있는 손의 의미는 문은 열려 있지만 거짓을 일삼는 자에게는 감히 넘볼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3개의 성문은 성삼위. 12개의 별자리는 12사도
화약탑 첼러트나 거리의 끝은 화약탑. 1475년 고딕양식으로 지은 문으로 셩벽문의 하나로 17세기 화약창고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높이는 65m. 이곳부터 광장까지 첼레트나 거리는 예로부터 상인들의 교역 루르로 대관식때 왕이 걸었던 길이다.
성 밖에서 바라본 화약탑
시청사 문에 새겨진 부조상
도시 곳곳에 미술작품이 숨어 있다.
레스토랑 오픈 기념~우리나라는 트럭에 나이트클럽 홍보를 하는데
체코의 성박물관
모서리 건물. 화려한 바로크 양식
카페 '모놀과정수' 10주년 기념 답사를 기념하여
노천카페에서 주문한 맥주 그리고 따끈한 우유
프라하의 밤은 이렇게 훌쩍 흘러간다. 부라보~
I love Pra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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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진 정말 멋지게 찍으셨네요...... 제 사진기로는 저런 예쁜 야경 사진이 안나오는데..... 사진이 너무 멋져요
멋진 사진으로 만나는 프라하, 역시 멋집니다~! ^^
저는 눈오는날 갔는데 사람들도 많지 않아 많은 구경을 자세히해 넘 좋고 눈과 같이 구경하니 천국!!!
체코 맥주도 구 시청 지하 레스토랑에서 먹었는데 끝내주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