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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면서
▲ 기독교통일포럼 사무총장 정종기 목사 (기독교통일포럼은 2003년에 서울신학대학교 북한선교연구소를 중심으로 세워진 통일선교전략 연구 기관이다.) |
개성공단 중단은 파급효과가 클 것이다. 북한에 주는 타격도 있다. 개성공단의 일년 북한이 버는 돈이 약 1억달러이다. 북한의 일년 예산 규모가 70억달러정도라면 북한의 손해액은 약1.43%가 된다. 그리고 남한에 주는 피해 역시 만만치 않다. 일년예산에 대비한 피해액은 그리 크지 않지만 공단과 관련된 기업의 피해와 주식의 폭락으로 인한 우리나라 경제에도 파급이 클 것이다. 또 다른 영향은 5.24조치에서 조차 예외였던 나진 하싼 사업도 영향을 주게 되었다. 나진 하싼 사업은 남과 북, 러시아의 3국 협력사업으로 러시아산 유연탄 등을 러시아 하산에서 북한 나진항으로 열차로 운반한 뒤 배를 통해 국내로 들여오는 사업이다.이것마저 사실상 전면 올스톱되었다는 기사이다. 더 큰 파급효과는 대북선교의 위축이다. 8.25합의로 북한선교에 숨통이 열릴 것 같았는 데, 불과 5개월만에 거의 숨통을 끊어 놓게 된, 4차 북한 핵실험과 개성공단 폐쇄이다. 북한은 북한대로 체제의 안전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고,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을 압박하는 최후이며, 최고의 방안이라고 하니 북한선교 하는 입장에서 기도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임현수목사의 사건으로 인해 북한선교를 전면 재검토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와 함께 사실상 대북선교 현장 사역자들은 모두 주춤한 상태가 되었다.
급박하게 북한 문제가 돌아가는 이 때에 기독교통일포럼은 두 가지 문제를 깊이 다루어 보기 위해 이 자료를 만들게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자료는 연구서가 아니라 기독교통일포럼의 포럼을 위한 자료에 불과하다.
Ⅱ. 북한 핵
북한은 핵을 개발하여 전쟁의 위협수단과 체제 유지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북한은 공식 핵보유국은 아니지만 핵무장에는 성공한 나라로 평가받는다.
A. 북한 핵의 역사
1. 박정희정부 :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 사이에 정상회담이 공식적으로 타진 된 것은 1972년이었다.
2. 김영삼정부 : 1994년 7월 25일부터 사흘간 평양에서 김일석주석과 정상회담 공식합의 했다. 그러나 김 주석이 7월8일 새벽에 묘향산 별장에서 죽음으로 말미암아 무산되었다. 이것은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핵문제로 인한 위기가 확산되던 시기에 이를 중재하기 위해 방북했던 카더 전 미국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개회를 제안함으로 성사된 것이다. 김영삼대통령은 핵문제가 한창 뜨거울 때였으므로 어떤 식으로든 핵문제를 다루고 넘어가야 할 시기였다. 옐친 러시아 정부는 한러정상회담을 통해 러북 우호조약을 사문화하고 대북 무기 부품 공급을 중단키로 함에 따라 북한은 매우 위협적인 상황이 조성되었다. 1994년 6월13일 북한은 IAEA를 탈퇴한다.
3.노태우정부 : 남북기본합의서 채택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에 따라 남북 간에 핵 논의가 진행된 것은 이례적인 진전이었다. 이때 주한미군의 핵무기 철수가 북한의 관심사였다.
4. 김대중정부 : 햇볕정책으로 통칭되는 대북포용기조로 말미암아 북한의 핵문제는 1994년 제네바합의를 통해 마무리 된 후 현안으로 부각시키지 않았다. 금창리 핵의혹이나 북한 미사일 문제 등이 드러났으나 1999년 ‘페리보고서’를 통해 협력적 포용 기조를 유지한다. 이때 제1차 정상회담은 만남으로 성과를 얻었고, 북한은 현금으로 지원받아 경제를 약간 돌게 한 것으로 만족하는 시기이다.
5. 노무현정부 : 정권 말에 가서야 이루어진 남북정상회담은 지금까지 말썽이 되고 있다. 그 때 발표된 ‘남북 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은 평화정착과 공동번영, 화해통일 등으로 남북 간에 다루어져야 할 현안들이 많았다. 애초 정상회담 당시 서해특구 합의는 NLL 북방한계선 문제를 우회해서 분쟁의 바다인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게 됐다는 환상을 심어줬지만, NLL에 대한 남북군사 당국 간 입장차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6. 이명박정부 : 이명박정권은 대선 과정에서 내세운 대북정책공약 ‘비핵개방3000’을 새 정부의 핵심 정책으로 삼아 본격적으로 제안하였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개방하면 10년 이내에 국민소득 3천달러를 만들어 주겠다는 ‘비핵개방3000’ 정책은 초기에는 북한 핵의 우선적 포기를 강조하는 등 남북 간 실질 대화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대북 공세적 성격이 강했다..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이 발생하므로 금강산 관광과 이산가족 상봉 등이 중단되고 2009년에 장거리 미사일 시험과 핵실험 그리고 2010년에는 천안함사태와 연평도 포격도발, 2012년에는 장거리 미사일 시험과 2016년에 4차핵실험과 광명성4호 발사 등 상호 위협들로 관계가 더욱 악화 되었다.
7. 박근혜정부 : 2013년 2월 15일 박근혜출범 직전 일어난 제3차 북한 핵실험을 마주 대였고, 이어서 북한확성기사건과 8.25합의, 그리고 2016년 1월과 2월에 제4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맞이 하게 되었다.
1993년 1차 북핵위기 고조
5월 노동1호 미사일시험발사
1994년 제네바합의
6월 14일 IAEA탈퇴
7월 8일 김일성사망
김일석주석 사망 후 한반도 전쟁 위기설
1998년 8월 대포동1호(장거리) 미사일 발사시험
2002년 제네바 핵합의 깨짐
2002년 이후 한반도 전쟁 위기설
2003년 플로토늄 추출
2005년 플로토늄 추출
2005년 2월 10일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발사 실패
2008년 6월26일 핵 신고서제출하고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 생중계함
2009년 4월 핵 재처리 작업에 돌입하고
5월 25일 제2차 핵실험. 장거리미사일 발사 성공
2010년에는 천안함사태와 연평도 포격도발,
4월9일 힐러리 클린턴 미국무장관은 핵무기 보유인정한다.
11월에 원심분리기 시설 공개
2011년 11월 김정일사망
2012년 4월13일 4차 발사 ‘은하 3호’(광명성 3호, 2호기 위성탑재)
2012년 12월 12일 5차 발사 ‘은하3호 2호기’
2013년 2월 12일 3차 핵실험 함경북도 길주군 인근
2016년 1월 6일 4차 핵실험
2016년 2월 7일 북한인공위성 탄도미사일 발사 ‘광명성 4호’ (광명성4호 위성탑재)
B. 북한의 비핵화는 불가능하다.
1.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
중앙일보는 안드레이 란코프교수에게 두 가지 질문을 했다. 첫째는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포린 폴리시>에 "이제 세계는 '핵보유국 북한'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라고 썼다. '핵보유국 북한'과 함께 사는 법은 그 이전과는 어떻게 다른가? 라는 것이다. 교수는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북한도, 남한도, 미국도, 국제사회도 대북 정책의 기본 목적이 비핵화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제 비핵화는 이룩할 수 없는 목적이 되었다. 북한의 비핵화는 불가능하다. 북한은 어떠한 조건에서도 핵을 포기할 의도가 없다. 국제제재를 가할 경우에도, 대북 포용정책을 구사할 경우에도 북한은 결코 핵과 국제지원을 맞바꾸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두 번째 질문은 “어떠한 이유에서 북한이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보는가?”이다, 답으로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북한에게 핵은 체제의 가장 중요한 유지 수단이다.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북한은 미국을 비롯한 외부의 공격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이 죽고, 리비아에서 카다피 정권의 무너진 전례를 보면 북한 정권의 입장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핵무기를 포기하고 경제 지원과 핵을 맞바꾼 독재자는 역사적으로 하나 밖에 없다. 바로 재작년 혁명가들에 의해 사살된 카다피이다. 리비아가 핵무기를 갖고 있었더라면 나토와 외부세력이 혁명 운동을 지원하지 못했을 것이다. 김정은은 물론 이런 사례의 두 번째로 역사에 남고 싶지 않을 것이고 북한의 이러한 판단은 옳다. 둘째로 북한에게 핵무기는 협박 외교의 수단이다. 북한이라는 나라를 한번 객관적으로 바라보자. 인구와 GDP를 볼 때 북한과 제일 비슷한 나라는 아프리카의 모잠비크와 가나 정도이다. 모잠비크와 가나 모두 국제정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들이 원하는 조건 하에 외부의 지원을 기대할 수도 없다. 자신들이 핵무기를 보유하면 원하는 만큼의 지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북한의 논리이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자료를 보면 북한은 1990년부터 2011년에 걸쳐 약 1,180만 톤의 식량 지원을 받았다. 북한 입장에서는 그냥 지원이 아닌 여타 조건이 없는 지원을 받아야 한다. 핵이 없는 가나나 모잠비크 같은 나라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사실이 좋든 싫든, 국제사회는 이 사실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러므로 현단계에서 우리는 북한을 사실상의(de facto)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협력과 협상을 통해 북한 핵문제를 관리해야 할 것이다.”
C. 북한 핵포기 불가 입장 재확인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2013.10.23 “외부의 핵 위협이 가중되는 한 그에 대처할 핵 억제력도 강화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며 핵 개발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변인은 “현재 조선반도 정세에서 가동되는 것은 미국의 ‘핵 위협 공갈’과 ‘반공화국 제재’뿐”이라며 이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국면에서 6자회담 등 대화 재개를 요구하던 북한이 사실 상 핵 포기 불가를 재차 선언한 것으로 해석된다.
대변인은 “예나 지금이나 행동 대 행동은 조선반도 핵문제 해결의 기본 원칙이며 우리가 일방적으로 먼저 움직이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며 “우리는 평화와 안정을 바라고 미국의 적대시 정책포기를 요구하지만 절대로 구걸은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와 미국이 대화 선결 조건으로 요구해온 ‘선 비핵화조치’에 대한 전면 반박이다.
D. 6자회담
핵문제에 있어서 빼 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6자회담이다. 6자 회담은 부시 정권이 창안해 낸 북한과의 대화방법이다. 미국이 북한과 일대일로 대화하지 않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9.11사태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으로 북한과 일대일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한국, 일본, 러시아, 중국과 함께 북한을 상대를 하려한 것이다. 국제사회는 북한이 제2차 핵위기를 가져오자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6자회담에 동참한다.
2003년 6월 첫 대화 시작된 후 2008년 12월까지 우여곡절을 겪는다. 2009년 오바마 행정부는 6자회담에 적극적이지 않는다. 6자회담 하는 동안 북한은 잇단 장거리 미사일 발사시험과 핵실험을 통해 핵무장에 성공했다.
제1차 회의 : 2003.8.27~29
제2차 회의 : 2004.2.25~28
제3차 회의 : 2004.6.23~26
제4차 회의 : 1단계 - 2005.7.26~8.7
2단계 - 9.13~19 (9.19공동성명: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 포기한다는 내용 담은 6개항의 선언)
제5차 회의 : 1단계 - 2005.11.9~11
2단계 - 2006.12.18~22
3단계 - 2007.2.8~13
제6차 회의 : 1단계 - 2007.3.19~22
2단계 - 2007.9.27~30
제7차 회의 : 2008.12.8.~11
E. 김정은의 선택의 기로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이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중국까지 외면하고 경고하는 상황에서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을 계속해서 고립 심화를 자초할 것인지, 아니면 당분간 국제사회와의 타협을 시도할 것인지 북한에는 두 가지 길 모두 간단치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F. 기독교장로회의 선언문 발표
기장은 지난 1월 7일에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최부옥과 총회 평화통일위원장 정상시 이름으로 “북한 수소탄 핵실험에 관한 논평”이란 제목으로 선언문을 발표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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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제 오전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을 강행하고 핵 무력 발전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하여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새해 벽두부터 남북관계가 다시 극한 대립으로 치닫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이미 우리가 여러 번 강조했듯이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한반도를 비롯한 전 세계의 비핵화가 반드시 이루어져합니다. 핵은 그 자체가 모든 생명을 파괴하고 공멸시키는 악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수소탄 핵실험으로 최근 가까스로 복원한 남북 대화가 중단되어서는 안 되며, 이를 정치적 도구로 이용해서는 더욱 안 됩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를 원하는 국민의 뜻을 이행하여 하루 속히 대화 테이블을 만들고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군축, 평화협정 체결 등 보다 근본적 해결 방안을 찾는 노력을 서둘러야 합니다.
국제사회도 이번 핵실험이 핵 확산으로 치닫는 불행한 계기가 되지 않도록 신중한 분석과 평화적 방법을 모색하고 평화 체제를 형성하는 긍정적 계기로 전환시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매주 월요일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며, 특별히 올해에는 남북 민간교류와 민족 동질성회복을 위해 남북 그리스도인들이 직접 만나 함께 예배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만나지 않고는 화해할 수 없고 대화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으며, 서로 신뢰하지 않고는 통일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반도가 핵 위기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평화가 이 땅에 깃들기를 소망하며, 창과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드는 그날까지 십자가행진을 계속해 나아갈 것입니다.
G. 북한 핵은 인간의 욕심이다.
Ⅲ. 개성공단
북한이 살길은 경제개발과 핵무장으로 권력의 기반을 다지는 것이다. 김정은 체제에 들어와 나름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한계에 부닥치는 것은 핵문제로 인한 국제사회의 제제이다. 그런 가운데 중단되었던 개성공단을 재가동시켰고, 나름 황금평특구 개발과 원산 및 여러 곳을 관광특구로 개발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내세우고 있다.
개성공단은 북한으로서도 경제적 가치와 더불어 남북관계 전체를 평화적 관계로 정착시켜 가려는 원대한 구상의 터전이기도 하다. 특히 남한에게 개성공단은 이익을 창출하는 곳으로 투자 대비 확실한 수익을 올리는 곳이다. 기업인들이 왜 남북관계가 험악한데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에 들어 가려 하는 가? 개성공단이 가지고 있는 경쟁력이 없다면 결코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이 있다. 개성공단은 2003년 열릴 당시 모두가 들어가길 꺼릴 때, 주의 마음을 품고 그곳으로 들어간 기업들이 있다. 혹 모를 주의 도구로 그곳이 선교지로서 복음의 전진기지가 될 것을 꿈꾼 것이다. 결국 개성공단은 선교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A. 개성공단 폐쇄를 바라보는 교계의 시각
다음은 국민일보에 게제된 내용이다.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 중단’ 카드를 꺼내들면서 한국교회의 나무심기, 결식아동돕기, 영유아용 분유 보내기, 의약품 지원, 농업기술전수 등 대북지원 사업이 위기를 맞았다. 한국교회는 2010년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남북관계 단절을 의미하는 5·24조치가 취해지기 전까지 남북 민간교류를 주도해 왔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그 보루마저 없어지지 않겠냐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각 교단 및 기관은 11일 안타깝다는 성명을 냈다. 무엇보다 한국교회가 경색 국면 가운데서도 상징적으로 추진해온 북한 나무심기 사업가 순조롭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두만강 일대에 10만 그루의 나무를 심은 한반도녹색평화운동협의회(대표회장 전용재 감독)는 오는 4월 2차 방북을 준비 중이었다. 대북 인도적 지원단체인 국제사랑재단(이사장 김유수 목사)이 벌이고 있는 ‘북한 결식 어린이 한 생명 살리기 캠페인’ 역시 차질을 빚을까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대북 인도적 지원은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해도 북한에 대한 여론 악화로 북한을 돕는 손길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관우 한국대학생선교회(CCC) 통일연구소장은 “남북 관계가 20년 전으로 회귀하는 분위기”라며 “지난 20년 동안 진행된 민간단체의 구호활동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디딤돌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국교회 주요 단체들은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남북관계의 조속한 개선을 희망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총회장 박무용 목사)은 이날 성명을 내고 “남북이 화해협력의 장으로 나아가야 하는 시점에 개성공단 폐쇄는 심히 안타까운 일”이라며 “민족의 장래와 공동번영을 위해 남과 북이 서로 대화하고 협력해 평화통일 기반을 조성해 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 조일래 목사)은 성명에서 “개성공단은 북한 체제를 유지시켜주는 돈줄로 변모했다”며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은 북한의 거듭된 안보위협에 대한 최후의 자구책”이라고 밝혔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이영훈 목사)도 “북한이 북한주민의 인권은 철저히 배제한 채 군수물자 및 핵, 미사일만을 개발해온 것에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며 “정부의 현 조치에 대한 구체적이며 적극적인 대응 및 실천뿐만 아니라 반복되는 북한의 도발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장로교총연합회(대표회장 백남선 목사)는 “참담함을 금할 수 없지만 (정부의 결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 “한국교회가 먼저 하나로 뭉쳐서 기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강경 일변도 정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예장통합(총회장 채영남 목사)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비롯한 무기 경쟁은 동북아 지역에 불안을 조성한다”며 “남북 간 대화를 통한 문화교류와 경제협력을 촉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도 “개성공단 폐쇄조치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되고 있다”며 “남북 간 대화와 경제·문화적 협력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B. 개성공단
북한선교의 역사는 이미 40년을 넘어섰다. 남과 북이 공개된 장소에서 공식적으로 만남이 허용된 곳은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지구이다. 개성공업지구는 남과 북의 지속적인 만남의 장소로, 북한 사람을 계속하여 관찰이 가능한 곳이므로 북한선교의 전진기지로 본다. 남한 근무자와 북한근로자와 관 관리자를 만나고 사귀며, 교제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 현장으로서 북한선교 연구에 가장 적합한 장소이다.
1. 개성공단의 역사
개성공업지구는 1989년 당시 현대 정주영명예회장과 북한정부와 만남에서 시작되었고, 당시 황해북도 해주에서 개성으로 바뀌게 되었다. 북한은 2000년 8월에 현대아산(주)와 북한 (아태 ·민경련)간 「개성공업지구 건설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하였고, 2002년 11월 27일 개성공업지구법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통과 시켰다. 남한은 2004년 1월 29일 “남북통행합의서”를 타결하고 그해 4월23일 개성공업지구 100만평에 대한 사업 승인을 했다. 2004년 6월에 시범단지 15개 업체 입주업체 선정 및 계약 체결하고 6월 30일에 입주식을 가졌다. 2012년 1월에는 북측 근로자 5만명을 돌파하였고, 2013년 1월에는 개성공단 부속의원을 개원하고, 누계생산액이 20억달러를 돌파하였으나, 2013년 4월에는 개성공단 가동 잠정중단한 후 그해 8월에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합의서를 채택하고 재가동중이었으나 2016년 2월 11일 개성공단은 폐쇄되고 북한은 군사관할지역으로 선포하였다.
2. 개성공단에 대한 남과 북의 인식차이
2005년 통계자료에 남한 사람은 개성공단 사업에 여론 주도 집단의 찬성비율이 95%였다. 남한 사람은 개성공단을 통해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한다. 특히 개성공단은 남한의 이해와도 일치하는 부분으로서 북핵문제 해결이 ‘현실 가능한 경제협력’의 핵심이다. 북한의 핵문제 해결 없이는 개성공단 사업은 지속적이기 어려울 것이다.
남한은 개성공단 추진 이유 중에 하나를 ‘개혁, 개방의 조치’로 보았고 남한 언론은 개성공단하면 ‘개혁과 개방’의 장소로 북한을 유도하는 것으로 강조했으며, 북한 언론은 이점을 반대하면서, 개성공단을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통일의 장으로 강조했다. 남한 정부는 개성공단에 관심을 두는 이유로 첫째는 북한경제 성장의 발판마련, 둘째는 북한 경제부문의 변화를 가속화하기 위함, 셋째는 안정성 경제부문의 변화, 넷째는 한반도 정치 군사적 안정을 도모함으로 보고 있다. 즉 개성공단은 안보효과와 경제효과가 있는 곳이다.
북한은 개방과 개혁 그리고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는 북한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현장이 개성공업지구이다.
3. 개성공단과 핵문제
개성공단은 남과 북이 윈윈하는 곳이다. 이런 개성공단이 전면적으로 중단된 것은 핵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김진향교수는 “개성공단은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그동안 시행되어 왔던 개성공단의 계획이 모두 중단되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핵문제의 진전 없이는 개성공단은 한 발짝도 못 나간다’라는 ‘비핵개방3000’원칙을 천명하면서, 기존의 개성공단 관련 남북합의들을 대부분 무시하거나 부정했다”고 밝혔다. 결국 개성공단은 실질적으로 2008년 1월부터 비정상적인 상태가 된다. 우여곡절 끝에 개성공단은 가동되었다가 2016년 2월 10일에 와서는 4차 핵실험과 광명성4호의 발사로 말미암아 개성공단은 전면 중단되었다.
개성공단은 남북의 상호존중과 화해협력, 공존공영, 평화번영의 상징적인 경제프로젝트로 열린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을 남한은 북한의 핵실험의 제제조치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과연 남한 정부는 개성공단과 핵문제를 묶어 생각해야 하는 것인가?
정부가 개성공단을 핵문제와 관련 지어 전면 중단시키는 이유가 북한이 개성공단에서 벌어들이는 돈으로 핵을 무장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아니면 개성공단에서 나오는 돈으로 김정은체제를 유지시킨다고 생각한 것인가? 아니면 개성공단 카드를 사용하여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하려는 것인가? 사드를 정착시키기 위한 수순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인가? 중앙일보는 복수의 외교 소식통의 정보를 접하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공단 폐쇄 요구는 아니었지만 “개성공단을 그래로 둔 채 우리에게 대북제재를 요구하는 건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고 기사화 했다. 중국과 러시아 뿐 아니라 미국역시 이러한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기독교인들은 개성공단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4. 개성공단과 선교
개성공단은 기독교의 선교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터전이다. 양영식 전차관은 “평신도가 다각적으로 북한 사람을 만나고 있는 상황에서는 개성공단을 공식적인 북한선교의 전진기지로 보아야 한다”고 보았다. 개성공단은 기독교문화를 통한 북한선교의 대상과 북한선교 기초경험을 수집하므로 북한 선교 정책 정립하는 전진선교 기지이다. 그러나 개성공단에서 남한 근로자가 북한 근로자를 만났을 때, 선교 대화의 가능성은 고사하고 개별만남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근로자와 직접적으로 만나 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많으며, 북한선교의 정보와 자료를 구축할 수 있는 선교기지인 것이다.
개성공단 내에 기독교와 관련된 사건을 몇 가지 살펴보면, 2007년 개성공단 내 교회를 북한의 허락없이 세웠다가 평양에서 내려온 감찰반에 의해 적발되자 즉시로 십자가를 떼어야 했다. 또한 한 목회자가 개성에서 지속적으로 ‘땅밟기 기도’를 하다 북측으로부터 추방을 당하기도 했다. 또 다른 경우는 북한근로자가 있는 곳에 성경책을 놓아 두었다가 치워달라는 요청이 있기도 하고, 기업 내 사무용지인 생산 의뢰서 밑에 ‘주일은 주님과 함께’라는 내용을 넣었다가 북한으로부터 삭제해 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어떤 기업은 수요, 주일, 새벽기도 드리는 장소인 3층을 예배장소로 정해놓았는데, 그곳에 가보는 근로자들이 가끔 생겼다고 한다.
C. 개성공단과 핵 관련 일지
개성공단과 핵 관련 일지 | |||
년 |
월 |
내용 |
비고 |
1998 |
6.8 |
정주영현대그룹명예회장은1001마리를 몰고 방북 |
1차 발사 1998년 8월 31일 ‘대포동 1호’ (광명성 1호 위성탑재) |
2000 |
8 |
현대아산-북한간'공업지구 개발에 관한 합의서'채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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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
11 |
北,'개성공업지구법'제정 |
당국 차원의 협의는 2002년 4월 대통령 특사 방북을 계기로 시작 |
2003 |
6 |
개성공단1단계(330만㎡)개발착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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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
6 |
시범단지15개 입주 기업 계약체결…시범단지준공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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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개성공단 첫 제품 생산 |
| |
2005 |
3 |
남쪽에서 전력공급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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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개성공단 1단계 1차 기업 분양 (24개 기업) |
| |
12 |
개성지역과 남측지역 간 통신연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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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
5 |
1단계 330만㎡ 토지조성공사 완료 |
2차 발사 2006년 7월 5일 ‘대포동 2호’ (위성탑재 미상) |
11 |
북한근로자1만명고용돌파 |
1차 핵실험 2006년 10월 9일 함경북도 화대군 인근 | |
2007 |
1 |
누적 생산액 1억달러 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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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南, '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 |
| |
6 |
개성공단1단계2차기업분양(183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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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북한 근로자 2만명 돌파 |
| |
2008 |
3 |
北남측당국 인원 전원 철수요구. 남북교류협력협의 사무소 당국자 11명 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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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누적 생산액 5억달러 돌파. |
| |
12 |
北, 개성공단 상주 인원·통행시간 축소 등 '12.1 조치' 시행 |
| |
2009 |
3 |
北,키리졸브한미합동 군사훈련기간 3차례 육로 통행 차단 |
3차 발사 2009년 4월 5일 ‘은하 2호’ (광명성 2호 위성탑재) |
5 |
北, 남측에 '개성공단 관련 법규·계약 무효' 통보 |
2차 핵실험 2009년 5월 25일 -함경북도 길주군 인근 | |
6 |
北, 임금 월 300달러·토지사용료 5억달러 요구…南, 수용거부. 개성공단 의류업체 스킨넷, 입주업체 중 처음 철수 결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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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北,'12.1조치'해제 |
| |
12 |
종합 지원 센터 완공 |
| |
2010 |
5 |
정부,천안함관련5·24조치발표…개성공단신규투자금지 |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피격 5.24 대북제재조치 |
9 |
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성공단 북한근로자를 위한 탁아소 개원 |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북측으로 출경을 차단하고 남측으로의 귀환만 허용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 |
2012 |
1 |
북한근로자5만명돌파 |
4차 발사 2012년 4월 13일 ‘은하 3호’ (광명성 3호 2호기 위성탑재) 5차 발사 2012년 12월 12일 ‘은하3호 2호기’ |
2013 |
1 |
누적생산액 20억달러 돌파 |
|
4 |
北, 개성공단 북한근로자 전원 철수…가동 중단 |
3차 핵실험 2013년 2월 12일 함경북도 길주군 인근 | |
5 |
개성공단체류남측인원전원철수 |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남북간 긴장이 조성된 2013년, 북한의 일방적인 조치로 개성공단은 처음으로 문을 닫게 된다. | |
8 |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합의서'채택…남북공동위원회구성 |
| |
9 |
개성공단재가동 |
4.26일 ‘통일부 장관 성명’ 이후 9월 16일 가동 재개 | |
2014 |
1 |
개성공단전자출입체계완공…시범가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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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개성공단 방문 |
| |
6 |
독일바늘업체'그로쯔베커르트'영업점설치…외국기업최초 |
| |
2015 |
4 |
정부,개성공단 임금동결 공문 입주기업에 발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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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6차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임금협의 불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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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남측 개성공단 관리위원회-북측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개성공단 최저임금 5%인상 합의 |
| |
2016 |
2 |
정부,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결정 |
4차 핵실험 2016년 1월 6일 2016년 2월 7일 북한인공위성 탄도미사일 발사 ‘광명성 4호’ (광명성4호 위성탑재) ‘2월 10일 개성공단 전면중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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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결론
기독교인이 북한 핵과 개성공단 폐쇄를 바라보는 입장은 국익을 너머 복음과 관련되어야 한다. 복음은 남과 북 모두에게 혜택이 가는 것이다. 이것을 일반은총이라 부른다. 즉 기독교인이 바라보는 남과 북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선교적 과제이다. 이러한 선교적 과제를 풀기 위해서는 첫째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복음은 사랑과 희생 그리고 용서와 화해이다. 이것이 십자가의 도이다. 이것이 전제된 것이라면,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힘으로 삼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며, 개성공단을 힘의 논리로 사용하고자하는 것은 받아 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북한 핵실험은 규탄하되, 개성공단은 남북이 화해와 협력으로 갈 수 있는 도구로 삼아야 한다.
기독교인으로서 북한이 핵을 실험하고 보유하는 것에 대해서 용납할 수 없다. 북한은 자국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하나, 아직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은 상태의 휴전상태로의 반쪽나라임을 우리는 안다. 북한이 주장하는 자국 보호는 결코 받아 들일 수 없는 주장인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한반도가 평화를 유지하고,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핵이라는 강력한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안다. 화해와 용서가 선행되어진 복음의 통일이어야만 평화적 통일이 온다. 그렇기에 결코 북한 핵무장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북한 핵 문제로 인해, 정부의 개성공단 중단은 힘으로 북한을 압박하고 주변국을 압박하려는 수단으로 보인다. 정부의 이러한 압박수단으로 개성공단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한다. 개성공단은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터이다. 정부가 북한과 평화적으로 통일을 원한다면 힘과 힘으로 대처할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사랑과 희생 그리고 용서와 화해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개성공단을 북한 핵실험의 압박도구로 사용하지 말고, 핵과 개성공단을 투트랙으로 운영하여 개성공단을 평화적 통일의 발판으로 삼았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정부는 개성공단 중단을 풀고, 북한과 협의하여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우고 익힌 기업들을 더 늘려 들여 보내 개성공단을 확장하길 기대해 본다.
둘째는 대화의 장을 놓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독교의 가치는 대화이다. 북한 핵과 개성공단의 폐쇄는 남북한의 대화를 막는 장벽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허물기 위해 오셨다. 성경은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라고 말씀하고 있다. 기독교의 풀어야 할 과제 중 하나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만 만드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주셨다. 이 일에 대해 성경학자들은 여러 가지로 해석하지만, 인간과 하나님과의 대화를 위한 방법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가치는 서로의 소통이 되어야 한다. 영적으로 소통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여러 경로의 소통도 중요한 것이다. 그 중 북한 핵 문제는 6자회담 또는 5자회담이든, 정 안되면 양자 회담을 해서라도 대화를 이어가야 하며, 개성공단은 압박의 도구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소통의 도구로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는 막혔다면 돌아서라도 가야 한다. 선교의 방법을 문으로 표현한다. 정문, 뒷문, 옆문, 윗문 그리고 영문이다. 북한 핵실험과 개성공단 폐쇄가 어떤 문을 막고 있는 지 잘 모르겠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정문일 것이다. 북한 정부와 대면하면서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문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닐 것이다. 다른 문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선교가 중단되어서는 안된다. 즉 관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아버지가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나도 이들을 세상에 보내겠다”고 하셨다. 여기서 세상은 하나님과 영적으로 소통이 되어진 곳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곳은 광야이며, 막힌 담으로 둘러쌓인 곳이다. 우리가 가야할 곳은 바로 세상이다. 광야라고 또, 막혔다고 둘러만 보지 않는 것이 선교하는 사람들이다. 선교의 역사 가운데 이미 선교를 준비하시고 예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많이 찾아본다. 「작은여인」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중국선교사인 글레디스 아일워드선교사의 일대기가 나온다. 티벳선교를 하게 된 동기가 이미 티벳에서 주의 말씀을 듣기 위해 준비된 티벳승려들이 있었다. 이것과 같이 북한핵실험과 개성공단 폐쇄로 인해 막힌 담으로 둘러쌓여 있지만 그곳을 하나님 나라로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준비가 있음을 이해하고 막힌 길에서 돌아갈 길을 둘러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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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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