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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갈매기
어렵게 끼어든 <모놀>의 부산답사 - 얼마나 오랜만에 맛보는 부산의 자유로움이었던가,
부산을 평생 수없이 오 다니면서 부산지역의 명소를 한가하게 둘러보고 싶은 마음은
늘 꿀떡 같았으나 여태 그러질 못했었다.
나는 산타는 것 못지않게 바다 또한 좋아한다.
그래 요 근년 중국엘 갈 일이 있으면 일부러 인천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간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뱃전에 부딪칠 듯 다가오는 갈매기의 초승달 같은 예쁜 눈매가 잊혀 지질 않는다.
또 흰 포말을 천둥처럼 일으키며 내달리는 배의 고물을 지칠 줄 모르고 따라붙는 갈매기의
그 번개처럼 번쩍하는 아름다운 비상에 넋을 잃곤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일부러 갑판에 올라 갈매기의 윤무(輪舞)를 바라보며, 그 끈질긴 생활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아마 내달리는 여객선의 제물이 된 물고기를 낚아채기 쉬워서일 게다.
갈매기의 동족애, 가족애 같은 집단성, 그 단결력, 용맹성은 놀랍다.
독수리나 솔개가 자신들 거주지근처에 나타나면 어김없이 집단으로 덤벼들어 하늘의 제왕인
그들을 혼비백산 도망치게 만든다.
그들은 철새지만, 일단 자리 잡은 곳에서는 텃세가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자신들 보금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일소현명(一所懸命)의 본능은 정말 경이롭다.
** 一所懸命(잇쇼우겐메이) : 자기 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다는 뜻, 원래 이 말의 기원은 몽골이 우리 고려를
굴복시키고 여몽연합군이 일본을 침공했을 때 대마도주가 80기의 기병을 이끌고 나가면서 죽음을 각오하고 한 말,
필경 한 시간도 안 되 전원 몰살, 이후 전하여 <무슨 일에든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한다는 뜻> 으로 현대일본에서도
자주 쓰는 일본말. 여기서는 처음의 뜻에 잘 맞는 말이기 때문에 인용했음. <범초칼럼>의 <대마도여유기> 참조바람 **
그렇게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철저히 지키며 새끼치고 화기 애애 살다가도 때가 되면 또 떠나간다.
괭이갈매기, 재갈매기. . .집단적으로 도래하여 겨울을 보낸다. 우리나라 동해안과 남해안
하구 등 해변에서 겨울을 나는데, 엄동에는 주로 남해안 주변 도서 바닷가에서 지낸다.
그들은 종종 어장이나 어물 건조장에 무리로 모여들어 포획한 어류 찌꺼기를 찾는다.
또 모래밭에 내려 종종 걸음치기도 하며, 해면 가까이 나직이 날며 먹이를 찾기도 한다.
날개를 완만하게 규칙적으로 펄럭여 직선으로 비상하는 경우가 많으며, 바람을 이용해 범상(帆上)하며
상공을 선회하기도 활강(滑降)해 내려오기도 한다. 물에서는 가마우지처럼 교묘히 헤엄치기도 한다.
또 그들은 도둑고양이 울음 비슷한 슬픈 소리를 내면서 울고, 서로 다투는 일은 드물다.
암수가 함께 사이좋게 알을 품고 아무거나 잘 먹는 잡식성 조류다.
그런데 유행가 중에 목포에 <목포의 눈물>이 있다면, 부산에는 <부산갈매기>란 "트로트"곡이 있다.
너무나 유명해 어느덧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의 응원가 반열에까지 올랐다.
경기 때마다 관중은 목이 터져라 합창을 해댄다. 곡보다는 다음과 같은 애절한 가사 때문인 것 같다.
지금은 그 어디서 내 생각 잊었는가
꽃처럼 어여쁜 그 이름도 고왔던 순이 순이야
파도치는 부둣가엔 지나간 일들이 가슴에 남았는데
부산 갈매기 부산 갈매기
너는 정녕 나를 잊었나
지금은 그 어디서 내 모습 잊었는가
꽃처럼 어여쁜 그 이름도 고왔던 순이 순이야
그리움이 물결치는 오늘도 못잊어 네 이름 부르는데
부산 갈매기 부산 갈매기
이 노래가 "롯데자이언츠"의 응원가로 정착되기 시작한 것은 공교롭게도 "롯데"의 성적이 하위권으로
곤두박질 친 다음의 일이다. 옛날 무적시절의"롯데"를 <순이>라는 여인과의 사랑하던 시절에 비유하여
다시 그 영화로운 실력발휘를 하라는 의미에서 응원가가 된 것으로 짐작된다.
떠나간 사랑, 순이의 귀환을 애타게 기원 하듯이 "롯데"의 승리를 기원하는 것이다.
여기서 <부산갈매기>는 물론 순이와 동격이다. 야구장에서는 곤두박질 친 저조한 "롯데"의 실적이
다시 상승곡선을 타기를 바라면서 <돌아와요 부산항에>보다 이 노래를 더 많이 부르게 된 것 같다.
헌데 이 유행가에서 비롯되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부산사람들은 흔히 어떤 특정인을 지칭하여 예컨대 <그 가스나, 부산갈매기 아이가!>
<글마, 부산갈매기데이!> 라는 식으로 부산갈매기란 말을 많이 쓰는데,
나는 그 뜻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른다.
그저 나 나름대로는 생활력이 강한 여인네를 함경도 또순이라 부르듯이 부산지역의 생활전선에 나선
강인한 여인네들을 갈매기의 습성에 비유해서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 부산갈매기의 대표주자들이 자갈치 시장의 아줌마들이 아닐까.
그 연장선에서 생활력 강한 남성도 역시 부산갈매기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부산갈매기들을 이번 답사에서 하늘에서건 지상에서건 가는 데마다 줄곧 지켜보며 걷고
마시고 더불어 놀았다. 하늘을 나는 갈매기나 지상의 사람들이나 모두가 더불어 부산갈매기가
된 것이 이번 부산답사란 생각이 든다고 한다면 결례가 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게다.
하늘을 나는 부산갈매기처럼 실로 오랜만에 가슴 탁 트이고 모든 삶의 찌꺼기가 일시에
쏟아져 나가는 듯 모두가 후련함을 느꼈을 게 아닌가.
나는 모든 게 즐겁게 보이고 영원히 아무 근심걱정 없이 살아갈 듯 착각이 일기도 하였다.
해운대나 이기대 산책길에서는 갈매기의 비상에 환호했고 그 울음소리에 귀 기울였다.
어떨 때는 갈매기를 좇아 시선을 모으다보면, 한참이나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수평선조차
가늠하기 힘들어지고 푸른 우주 속에 내던져져 있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나도 갈매기가 된 듯
정신이 아련해 지기도 했었다. 바닷가 어딜가나 볼수 있는 갈매기지만,
이번 부산갈매기가 가장 행복해 보였던 건 어찌된 영문일까.
문득 “볼쉐비키”혁명으로 망한 제정“러시아”귀족의 후예로“프랑스”에 망명해 유명한 화가가
된“스따르”(1914-1955)가 생각났다. 그는 갈매기를 너무나 좋아했었다.
아니 좋아할 정도가 아니라 자신도 갈매기가 되고 싶었던지 마흔 한 살이란 이른 나이에
남불 해안 작은 마을“앙치브”의 자신의 4층 화실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한 화가다.
마지막 며칠 동안 침식을 잊은 채 지중해의 갈매기만 수 십 장 그렸다고 한다.
한창 그의 그림이 평가를 받아 화명을 날리며 돈이 펑펑 굴러들어오던 1955년3월16일 새벽의 일이다.
아마 그의 영혼은 자신의 뜻대로 촉촉히 눈물어린 어느 갈매기의 눈 속으로 들어갔음직 하다.
추상과 구상 사이를 마음대로 넘나들었던 정열의 화가다.
그가 짙푸른 바다와 뿌연 하늘을 배경으로 해서 그린 번쩍 번쩍 빛나는 갈매기 그림들은
그의 자유로운 영혼의 표상처럼 신선하고 인간의 오욕을 도려내려는 듯 날카로움이 서려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푸른 바다 위를 나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삶과 죽음을 초월해 자신의 의지대로만 살다가는 인생이 어쩌면
가장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그의 자유로운 죽음에 경의를 표하게도 된다.
극단적인 자유추구, 살아 있는 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필경 죽음으로 몰고간 것일까.
"스따르"가 그린 <갈매기의 비상>과 그의 "아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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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부산답사에서는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의 대향연이 가는 데마다 펼쳐지질 않았던가,
미묘한 지상과 해상의“콘트라스트”에 취해 절로 칠언율시를 흉내 내고 싶어지기도 했었다.
중국어를 상용할 실력이 못되는 나로서는 격조 있는 한시를 짓는 건 거의 무망한 일, 더구나 까다로운
한시(漢詩)의 압운법(押韻法), 한자의 사성(四聲), 대구법(對句法), 평측법(平仄法) 따위를 생각하면
그저 부끄러운 글 장난이나, 다만 여심(旅心)을 살려 내 멋대로 아래처럼 글 한 자루 지어 본다.
南海潮水 連天平, 土末春鷗 共潮飛 (남해조수 연평천, 토말춘구 공조비).
남해바다 조수는 먼 하늘에 잇닿아 있고, 땅 끝 봄 갈매기는 파도와 함께 나는구나
釜山踏査 此登程, 蒼空飛翔 君有閑 (부산답사 차등정, 창공비상 군유한).
나는 부산답사에 나서야 하는데, 창공을 훨훨 나는 너는 한가롭기도 하구나
佳人一去 不復返, 藝鄕尋訪 持難事 (가인일거 부복반, 예향심방 지난사).
가인은 한번 가면 돌아오는 법이 없고, 예향을 찾는 일은 걸핏하면 미루어지는지라
肇春風光 日色低, 白鷗作伴 向月道 (조춘풍광 일색저, 백구작반 향월도).
이른 봄 풍광은 저물어 가고 있으나, 갈매기 벗하여 달맞이 길로 가노라.
나이 70이면 제 생각대로 무슨 일을 하든 걸림이 없다 성현께서 이르거늘,
아직 나는 천방지축 욕심이 많아서인지 이렇게 밤새 글을 쓰고 앉아 있으니,
누군가가 지어준 ** <힙합-할배> 란 별명이 딱 맞는 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 천명(天命) 몰라 천지간이 창망(蒼茫)하질 않은가.
또 세상사 미련 많아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중심(中心)이 없는 것은 아닐까.
이제 춘삼월 호시절이 또 다가온다.
봄가을 오고 감이나, 생자필멸, 회자정리는 인간의 뜻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일이요,
해마다 피는 꽃은 한 꽃이나 해마다 보는 인걸 같지를 않으니,
그저 벗을 보면 정이 있고 임을 보면 술이 있어 지난 세월 박장대소,
오는 세월 유유자적(悠悠自適) 맞이하며 가는 세월 더디 가고,
느는 백발 은빛 나고 도처유청산 (到處有靑山) 찾아 금년 한 해도 부산갈매기처럼
<모놀>인들과 함께 자유롭기를 바랄 뿐이다.
** 힙합 HIP HOP
1980년대 미국에서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다이내믹한 춤과 음악의 총칭. 원래는 뉴욕의 할렘가에 사는 흑인이나 스페인계 청소년들 사이에서 생겨난 새로운 문화운동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힙합이 미국서 만들어진 유일한 문화라고 지적하기도 한다.비트가 빠른 리듬에 맞춰 자기 생각이나 일상의 삶을 이야기하는 랩과 레코드의 스크래치, 마치 곡예와도 같은 격렬한 동작의 브레이크 댄스가 가미된 새로운 감각의 댄스 음악이다. 1990년대 들어 힙합은 전세계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음악은 물론 댄스·패션·액세서리 등 여러 부문에서 보다 자유롭고 즉흥적인 하나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RUN-DMC,커티스 블로, 에릭 B. 앤드 레이킴, 엠시 해머, 퍼프 대디 등이 대표적인 힙합 가수들이다 (인터넷에서)**
달새님 사진 보시, 늘 감사드립니다.
범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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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초님의 잔잔한 후기는 늘 감동입니다.... 5월 답사가 기대됩니다..건강하세여 ^^
아르츠님, 늘 제글을 읽고 계시는군요, 감사합니다. 범초.
부산갈매기...기차타고 부산역 다 와가면 부산갈매기 음악이 나올 정도로 마니 애용하고 야구장에서도 목이 터져라 응원하며 단결력을 보여주는 부산의 상징입니다...저 푸른바다를 자유롭게 이동하는 갈매기처럼 서로 의지하며 이곳에서 맘껏 자유 누리시길....건강하십시요.
레오님, 이번에 성심성의 헌신봉사하시는 걸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부산갈매기 정신이겠지요! 덕분에 잘 지내다 돌아와 미진한 글이나마
보답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후기를 올립니다. 범초.
범초님의 몸과 마음은 갈매기의 비상처럼 활기가 넘치십니다. 품격높은 한시에 존경심이 듭니다. 범초님과 함께 한 길 참 행복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건필하세요. *^^*
별꽃님의 한결같은 모습이 참 좋아요!
제글을 빠짐없이 읽어주시는 성의도 놀랍구요! 범초.
갈매기의 이야기를 멋들어지게 표현하는 여초님...
난등님, 부산서 반가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범초.
어제 예쁜 외손주를 얻었어요,생명의 신비함,산고를 겪는 딸에 대한 연민,놀랍고 가슴떨리는 감동스런 시간을 보냈습니다,산다는 것은 이렇게 일상의 기쁨과 행복과 감동의 연속인가 봅니다~ 범초님의 부산갈매기 또한 감명깊게 읽고 갑니다 ~^^*
수향님, 벌써 외할머니가 되시다니, 경하드립니다. 삶은 아무리 슬퍼도 살만한 가치
가 있는 것인데. . .경사의 연속이야! 이기대에서 참 반가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범초.
오랫만에 찾은 해운대에서 예전에 만나지못했던 갈매기의 몸짓에 저도 정신이 혼미해질뻔 했습니다. 갈매기를 사랑한 화가의 얘기와 어우러진 여초님의 글속에 한참을 머물어 봅니다~~좋은글 감사드리며 언제나 건필하십시요~~
자살한 화가 얘기에 심각해 지지는 마세요ㅎㅎㅎ 제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쭈욱~ 글을 읽고 내려왔는데...반가운 얼굴이 보이네요...ㅎㅎ
반가운 얼굴은 온달. . .그 다음 다음 쯤은 범초도, 5달라 연기 대단했습니다!
여초님 마음은 힙합 할배가 아닌 힙합 청년 같으신데요.
마음은 청년, 스타일은 힙합, 육신은 골동품! 부산서 반가웠습니다. 범초.
여초님! 개나걸 같은데.... 너무 나이나이 하시는것 아닌가요. 만나뵈서 반가웠어요. 저 소리없이 답사만 하고 싶습니다.
여초님 늘 건강하시길.....................
만자로님, 부산갈매기처럼 눈매가 참 이쁘고 마음이 예쁘고. . . 감사합니다. 범초.
아닌거 같은데...ㅋㅋㅋ...
항상 건강한 모습 보기 좋습니다. 다음에도 뵈어요 *^^*
부산서 반가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범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