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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장 : 모정무한(母情無限) - 04
- 나에겐 당신이 전부요.
진충으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스스로 부복하고 받
아 달라 조르고 싶어도 못하는 심정이었기에, 그의 가슴은 두근거
렸다. 혹시 잘못 듣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는 자신에게 무엇인가
기회가 온 것이라 느꼈다.
봉검대에서 한 명의 무사로 생활하는 것과 누군가의 충실한 충복
으로 있는 것은 차이가 있다. 전자는 일다 다수요. 후자는 일대일
이다. 전자는 다수 속에 묻혀 일 년에 주군의 얼굴 한번 보기 힘들
지만, 후자는 바로 앞이 주군이다. 의미가 다르다.
진충이 무릎을 꿇고 땅에 머리를 박으며 소리쳤다.
"진충이 주군을 뵙습니다."
사공운의 눈에 밝은 광채가 어리며 그를 본다.
'후에 나를 구한 것이 진충인 줄 알게 되면, 누대치가 그냥 있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견딜 수 없는 불이익을 주겠지. 내가 그를 위
기로 몰았으니 내가 거둠은 당연한 것.'
과연 자신의 결정이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생각해 보았지만,
무엇도 확실하게 짐작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그를 모른 척 할 수 없는 노릇 이였다.
환영석대진 밖에는 복면인들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진
충의 희미한 흔적을 찾아 여기까지 왔지만 갑자기 사라진 흔적을
찾지 못하고 당황하는 것 같았다.
배교의 비전인 환영석대진은 그들 추적자들이 쉽게 찾아 낼 수
있는 허술한 진이 아니었다.
용설향은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 앉아 있
는 팽예린은 입술을 쫑긋거리며 무엇인가를 말하려다 말곤 하였다.
그녀의 눈엔 묘한 흥분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남자에게
성적으로 어필 하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보통 장정의 키보다 훨
씬 더 큰 키에, 사발 만한 가슴을 물결처럼 출렁거리며, 그녀가 자
리에서 일어섰다.
"아가씨, 풍백하고는 도대체 어떤 사이죠?"
용설향의 입가에 고소가 어렸다. 그녀의 미소를 본 팽예린은 함
께 웃는다. 그녀의 그 작은 웃음이 의미하는 뜻을 대충은 짐작했던
것이다.
"이용하기 위해서 접근했지만, 그는 길들여지지 않는 맹수와 같
아요."
"지금은 계륵이 되었나요."
용설향은 대답대신 팽예린을 보았다.
팽예린은 그녀의 시선에 어린 뜻을 읽었다.
"사공운과의 결투부터인가요. 아가씨."
용설향의 입가에 작은 탄식이 어렸다.
"그자는 처음부터 길들이기 어려운 자였어요. 운 좋게 그를 묶어
놓을 수 있었지만,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이지요."
"그 사람이 지금 용부의 근처에 와 있다고 해요."
용설향은 생각에 잠겼다. 아직은 내칠 수 없는 자였다. 그냥 버
리기엔 그 지닌 바 재주가 너무 아까웠다. 그리고 들인 공이 또한
아까웠다.
용설향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만나 봐야지요."
팽예린은 전보다 더 상큼하게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대
신 말꼬리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맹취아라는 꼬마 확실히 이상하던데요. 그리고 전대 영환호위무
사 중 한 명이 사라진 것 같아요."
용설향의 눈에 기광이 어렸다.
"전대 영환호위무사가 사라졌다고요."
"아가씨,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에요."
용설향의 눈은 점점 깊게 가라앉고 있었다. 팽예린은 그녀의 눈
을 보면서 마치 늪 같은 눈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선에 한번 걸리
면 빠져 나오기 어려운 그런 늪.
팽예린은 여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용대가가 맹각의 뒤를 쫓고 있으니 무엇인가 알아 올 것 같긴
해요."
"오빠가 말인가요?"
팽예린의 고개가 가볍게 끄덕였다.
그들은 여로 정말 잘 어울리는 시누이, 올케 사이였다.
태산이 보이는 작은 언덕, 용정현에서 용부로 가는 오솔길은 길
은 좁고 사람 여럿이 다니기에는 불편해도 혼자서 산책하듯이 걷기
에는 더 없이 좋은 곳이었다.
그 길가에 중년의 사내가 서 있었다. 그의 시선에 잡힌 태산의
기개와 그의 등에 걸린 기개가 언뜻 닮아 보였다.
큰 키에 긴 손과 발, 약간 마른 체격의 사내는 언뜻 보아도 낭인
의 기질이 강해 보였다. 특히 허리에 걸린 한 자루 도는 그의 기개
를 한층 굳건하게 만들어 주었다. 어찌 보면 바람처럼 자유로운 기
질이 엿보이기도 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그 자리에 서서, 한 동안 태산을 지켜보던 그의 발걸음이
용정현을 향해 돌아섰다.
'이제 나 풍백이 돌아왔소, 설향.'
중년의 사내는 금강쾌도 풍백이었다. 그가 용부의 용설향을 만나
러 온 것이다.
풍백과 용설향의 나이차는 20년. 그 나이를 넘어 가슴속에 사랑
을 심어준 여인을 찾아 온 풍백은 용부로 들어가지 않고 용정현에
머물러 있었다.
'무엇인가? 설향. 너는 무엇을 하려 하는가?'
그는 사공운을 죽이려 하면서 보고들은 것이 있었으며 느끼는 것
이 있었다. 지금 바로 용설향을 만나기엔 무엇인가 꺼림칙한 무엇
인가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망설이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도 용부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용정현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마음속의 의문을 풀어야 홀가분하게 용설향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머릿속에 사공운과 용설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
고 자연스럽게 용설아와 용설향을 비교하고 있었다. 또한 자신과
사공운을 비교해 본다. 무가 아닌 사랑과 사랑의 방법, 그리고 그
이상의 어떤 의미를 짚어 보고 있는 풍백이었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젊은 두 남녀가 풍백에게 준 것은 적지
않았다. 무공에 대한 새로운 깨우침과 사랑이 무엇인가 하는 강한
의문마저 던져 주었다.
그 둘과 헤어지고 무엇인 사공운을 그렇게 강하게 하였는가 하는
의문과 용설아의 사공운에 대한 강한 믿음은 어디서 기인 한 것인
가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였었다. 그리고 답은 사랑이었다. 그는
그렇게 해석을 하였다. 진실과 믿고 의지하는 그런 사랑.
깨우치고 나자 자신과 용설향의 사랑과 둘의 사랑에는 많은 차이
가 있음을 알았다. 지금 풍백 스스로 용설향을 사랑하는가? 하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그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럼 용설향
은 자신을 사랑하는가? 하고 묻는다면, 지금 풍백은 대답할 수 없
을 것이다. 최소한 사공운과 용설아가 보여준 진정한 사랑은 아니
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먼저 용설아라가 용설향의 의치에 있었다면, 사공운에게 자신의
친인척을 자신을 의해 죽여달라고 부탁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
게 하진 못할 것 같았다.
처음 용설향의 부탁을 받았을 땐 그랬다. 천하에 믿을 사람은 나
밖에 없기에,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들의 미래를 의해 그래서 부탁
했다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이런 힘든 일을 부탁할 수 없기
에 자신만을 믿기에 그랬다고.
풍백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비웃고 있었다.
가볍게 탄식을 한 풍백은 용정현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다 멈추
었다.
오솔길의 저편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다가서고 있었다. 백의의
무복을 걸친 노인과 이제 얼추 사, 오세 정도 된 꼬마 여자아이였
다. 맑고 귀엽게 생긴 아이는 무엇인가 기대에 찬 그런 모습이었
고, 그 여자아이의 뒤에서 걸어오는 노인의 모습은 맹호와 같은 기
세를 지니고 있었으며, 조금 마르고 후리후리한 키와 한광이 번뜩
이는 눈매는 노인이 결코 평범하지 않음을 알려 주었다.
'귀여운 여자아이와 얼음을 조각해 놓은 맹호의 모습 같은 노인
이라,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도 잘 어울리는구나. 조손인가?
근데 꼬마 아이의 모습이 무엇인가 낯익은 모습이다. 어디서 보았
지?'
풍백은 여자아이를 보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문득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에 조금 놀랐다.
풍백의 앞까지 다가온 소녀는 잠시 멈추어 서서 풍백을 빤히 올
려다보았다. 무엇인가? 기대를 했다가 조금 실망한 눈빛이었다. 그
여자아이의 실망하는 눈빛을 본 풍백은 몹시 미안한 기분이 들었
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자신을 누군가로 착각했다가 아닌걸 알자
실망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풍백은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역시 여자아이를 내려다보며 생각
에 잠겼다.
'내가 이 아이를 어디서 보았지?'
그의 의문이었다.
"여기에 오면 항상 누군가를 보네. 아저씬 누구세요."
풍백은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 말이냐? 난 잠시 태산을 구경하고 있었던 유람객이란다. 넌
누구지."
"취아에요. 전에 어떤 아저씨도 여기서 황혼을 보고 있었어요.
그 아저씨가 자꾸 보고 싶어서 여기에 다시 왔는데, 오늘은 아저씨
가 대신 있네요."
풍백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미안하구나, 그 아저씨가 아니라서."
"아니에요. 그 아저씨가 없을 줄 알았어요. 그냥 와 본 것인데
아무도 없는 것보다 보기 좋아요."
"허허......"
풍백은 무엇인가 허탈한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들다가 아이의 뒤
에 서 있는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눈을 파고드는 강한 예기
에 하마터면 눈을 돌릴 뻔했다.
'무서운 고수다. 나보다 위다.'
풍백은 가슴이 서늘한 기분이었다.
한순간에 나타났다 사라진 기세는 분명히 자신을 압도하고 있었
다.
'용부가 가까우니 용부의 고수이겠구나, 용부엔 용호가 잠자는
대지라 그 안에 고수가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더니, 정말
그렇구나, 이 노인은 누굴까?'
풍백은 도를 들고 한번 겨루어 보고 싶은 욕망을 참고 또 참아야
했다. 그의 투기를 읽었음인가? 노인은 상당히 감탄한 표정으로 풍
백을 보며 말했다.
"대단한 젊은이군."
풍백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나이 사십이 넘어 '대단한 젊은
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니 참으로 이상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취아야, 이제 그만 가야한단다."
"할아버지. 조금 더 있다 가면 안 되요."
"가야 한단다."
노인은 목소리는 강경했다. 그러나 말 자체가 부드러워 노인이
이 소녀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곧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소녀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싱그러운 풀잎이 바람을 타는 것 같다. 그 싱그러운 모습을
보고 풍백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아저씨 안녕."
"그래 잘 가거라!"
취아는 미소를 지어 보이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 뒤를 노인이 뒤
쫓아 걸어간다. 꼬마 아이가 지나가고 노인이 풍백의 앞을 스쳐 갈
때, 풍백은 자신도 모르게 금강도에 손을 얻었다.
"힘은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닐세."
풍백은 노인의 짧은 한마디에 투기를 잃고 말았다.
'지금은 내가 이길 수 없다.'
마른침을 삼킨 풍백이 정중하게 포권을 하며 허리를 숙였다.
"풍백입니다. 노선배님은 성함을 알고 싶습니다."
"금강쾌도?"
노인이 조금 놀란 듯 풍백을 돌아보았다.
"남들이 그렇게 부릅니다."
노인은 다시 한번 풍백을 훑어보더니 지나가는 말투로 말했다.
"맹각일세."
풍백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한천마검(寒天魔劒) 맹 선배님."
노인은 아이를 데리고 사라져 갔다.
언덕 아래로 내려가며 숲의 나무 사이로 사라지는 맹각과 꼬마
아이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던 풍백은, 문득 용설아가 생각이
났고, 그녀의 모습과 취아라 불린 여자아이의 얼굴 윤곽이 닮았다
는 것을 생각해 내었다. 그리고.
'턱과 눈매는 사공운을 닮았다.'
일순간 혼란스런 표정의 풍백이었다.
'하긴 세상에 닮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저 아이도 용부의 씨
일 것이다. 그럼 용설아와 닮은 것은 당연할지도. 한데 어째서 사
공운의 모습이 저 아이에게서 연상되지. 거 참......'
풍백은 쓴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이제 용정현으로 돌아가려는
참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도 길을 멈추어야만 했다.
그의 정면에서 한 명의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다. 마치 사자를 연
상시키는 우람한 등치에 등에는 하나의 대도(大刀)를 등에 매고 있
었다. 용맹함으로 가득한 얼굴은 사내다운 기상이 넘쳐흘렀다.
'오늘 참으로 멋진 고수들을 보는 구나, 대체 저 인간은 또 누구
기에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이냐?'
풍백이 놀란 눈으로 사내를 주시하고 있을 때, 사내 역시 놀란
눈으로 풍백을 보고 있었다. 둘은 처음 보았지만 상대에게서 놀라
운 투기를 읽고 있었다. 무인이 가진 동질의 기운은 두 사람을 묘
하게 비슷한 분위기로 만들어 주었다.
나타난 사내는 풍백의 기도를 보고 온 몸의 내공이 폭주하는 것
을 느꼈다.
'이 사람은 누구인데, 이런 기도를 지니고 있단 말인가? 도로 치
자면 아버님 빼고, 내 마누라 이상 가는 인간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 물건은 결코 뒤지지 않겠다.'
둘의 시선은 마치 아교처럼 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마치
태풍 같은 기세가 두 사람의 주위를 휩쓸고 있었다. 한쪽은 폭풍
같은 기세였고, 한쪽은 북풍한설 같은 기세였다.
한쪽이 세상을 뒤집어 놓을 것 같은 힘이 넘쳤다면, 한쪽은 만년
한철도 한칼에 자르고 말 것 같은 날카로움이 있었다.
'겨루어 보고 싶다.'
'멋진 기세다. 이게 웬 횡재냐?'
사내와 풍백은 아주 비슷한 생각을 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들
은 점점 기세를 높여 갔으며 전혀 멈출 기세가 아니었다.
풍백이나 나타난 사내는 성격에서나 무공에서나 전혀 만만치 않
았다.
아침이란 언제 맞이해도 상큼하고 활기가 있었다. 특히 오늘처럼
청명한 하늘에 여명이 틀 무렵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질 때도 있었
다. 봉성의 정문을 지키는 문지기들 중 제5조의 조장인 우대는 제
오봉검대의 무사로서 나름대로 긍지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뒤쪽에 서 있는 팔명의 수하들을 믿음직하게 돌아보고 자신이 아는
단 하나의 신 태상노군에게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가길 빌었다.
사실 봉성의 정문에서 특별하게 벌어질 일이란 별로 없었다. 그러
나 지금은 다르다. 감히 봉성의 며느리가 될 여자를 노린 살수들이
있었다. 그래서 평소 네 명이던 문지기도 배가 많은 팔 명이나 배
치해야 했다. 그리고 조장인 자신이 직접 문 앞에 서 있는 수고를
해야만 했다. 그런 상황이라 평소 찾지 않았던 신까지 찾아가며 기
원을 하였던 것이다.
우대가 정문을 지킨 지 채 이각 정도 지났을 때였다. 멀리서 두
개의 점이 나타나더니 봉성의 정문을 향해 다가왔다. 우대는 긴장
한 시선으로 나타난 그림자들을 주시했다. 그러나 그들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두 개의 그림자가 자신이 아는 사람들임을 알았다.
"하순, 들어가서 누 장로님에게 전해라. 사영환님이 돌아왔다
고."
"예! 조장."
"한데, 이틀 전에 어딘 가로 사라졌던 진충이 왜 함께 있는 거
지?"
우대가 의문스런 목소리로 중얼거릴 때, 하순이라 불린 봉검대의
무사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어제 저녁에 돌아온 누대치는 무엇
인가 상당히 초조해 보였다. 그는 돌아오자 마자 사공운이 돌아왔
는지 물었었다.
당연히 그 시간에 사공운은 돌아오지 않았었다.
누대치는 신속하게 증원군을 보내 사공운을 찾도록 지시하고 사
대복마금강동인 중 둘을 은밀하게 다시 보냈다. 만약 사공운이 다
시 봉성으로 들어온다면 그를 죽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보는 눈이 적지 않고 자칫 용설아와 결혼을 앞둔 마당에 모
든 것이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사공운이 이미 자신의
독수를 눈치 채고 있었다면, 그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두려웠
다.
봉성의 소공녀마저 일검에 죽이려고 덤비던 자가 자신을 죽이지
말란 법은 없었다. 물론 아니라고 우기면 증거가 없으니 대 놓고
뭐라 하진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역시 용설아의 향후 행복을 위
해서는 함부로 하진 못할 것이라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사공운은
살수였던 인물이다. 그것도 살수지왕.
누대치가 겁먹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누대치
는 일단 부랴부랴 봉성으로 돌아왔다. 이제 목성촌 일대에 배치한
척살대나 사대복마금강동인은 자신과 무관한 일이다.
그는 돌아오자 일단 수하들에게 말하기는 백발음마를 쫓던 중 사
공운이 실종되고, 그를 찾다가 먼저 돌아왔노라고 말했다. 그리고
문을 지키는 제오봉검대 조장들에게 사공운이 돌아오면 즉시 자신
에게 보고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봉성의 정문에 도착한 사공운의 얼굴이 굳어졌다. 진충 역시 평
소보다 배로 강화된 선위무사들을 보며 무엇인가 일이 벌어졌음을
눈치챘다.
제오조 조장인 우대는 사공운의 얼굴을 본 적이 있지만 모른 채
하기로 했다. 어차피 사공운이 자신의 얼굴을 알거라 생각진 않았
다. 그는 누대치나 담소봉을 쫓아갔던 봉검대 소속도 아니었고, 사
공운과 정면으로 마주친 적도 없었다.
사공운이 봉성에 들어왔을 때, 먼발치에서 그를 본 것이 전부였
으니 그가 자신의 얼굴을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정리되자 우대는 진충에게 눈을 부라리며 호통을 쳤다.
"진충, 넌 어디 갔다 이제야 오는 것이냐? 대체 이틀동안 어디에
있었느냐? 그리고 함께 온 자는 누구냐?"
추상같은 물음이었다. 진충이 무어라고 대답하려 할 때, 사공운
이 앞으로 나섰다.
"난 사공운이라 한다. 용설아 소저의 호위무사다. 성에 무슨 일
이 있는가?"
처음부터 사공운은 하대를 하였다. 그는 강화된 봉성의 경계 태
세를 보고 무엇인가를 직감한 것이다. 예의를 차릴 여유가 없었다.
"사공운이 누구냐? 여기가 어디......"
우대는 말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갑
자기 별이 번쩍 하더니 안면에 엄청난 고통이 밀려 왔다.
"봉성이 언제부터 이렇게 멍청한 놈을 선위무사 조장에 앉혔지?
넌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느냐?"
우대는 너무 화가 나서 사공운을 보았다가 입을 다물고 말았다.
어느새 사공운의 손이 그의 목젖을 잡고 있었다. 그의 뒤에 있던
선위무사들은 사공운을 잘 아는 자들이기에 숨도 못 쉬고 서 있었
다. 덤벼 보았자 막대기로 철문치기라는 것을 잘 아는 때문이었다.
"아직도 나를 모르겠느냐?"
"아......아닙니다. 사영환님."
"그럼 무슨 일이 있었느냐?"
"케......케엑, 요...... 용설아님이 암격을...... 하......하지
만 무사하신......."
"그걸 이제야 말해......"
사공운이 우대를 돌 바닥에 집어 던지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진충이 급하게 그의 뒤를 따랐다.
바닥에 쳐 박힌 우대의 머리가 깨져 피가 터지고 있었다.
사공운의 걸음은 거칠 것이 없었다. 그의 신형은 바람처럼 봉화
원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감히 그를 가로막는 무사들은 없었다.
사공운이 봉화원의 정문 앞에 도착했을 때, 누대치가 봉성의 무
사들을 데리고 나와 있었다. 그의 옆에는 백발에 긴 수염이 배꼽
아래까지 내려온 노인과 마르고 키가 작은 노인이 함께 있었다.
안에 소식을 알린 지가 언제인데 벌써 나타날 수가 있겠는가? 아
마도 미리 기다리고 있었으리라.
사공운은 누대치의 모습을 보자 피가 거꾸로 도는 기분을 느꼈지
만 억지로 눌러 참았다. 우선 모든 것을 들어내 놓고 따지기엔 증
거가 없었다. 자칫하면 일이 커지고 그로 인해 용설아에게 어떤 불
이익이 돌아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공운이 다가서자 누대치는 가슴이 떨리고 다리고 풀어지는 것
을 억지로 참으며 말했다.
"사영환, 무사해서 반갑네, 아무리 찾아도 업기에 많이 걱정했
네."
"용설아님은 무사하십니까?"
"무사하네, 그러니 자네는 숙소로 돌아가게, 현재 충격이 크신
듯 누구의 면회도 거절하고 계시네, 그래서 담소공자님도 찾아가
뵙지 못했네."
"난, 영환호위무사. 지금부터 그 임무를 다 할 것이니 누구든지
나를 방해하는 자는 밸 것이요."
누대치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드디어 걱정하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여기는 ......."
"여기까지 오면서 듣기로 살수가 봉성의 시녀로 변신해서 들어왔
다 들었소, 현 상황에서 누구를 믿을 수 있단 말이오."
"그...... 그건."
누대치는 말을 하다 멈추고 말았다.
-누가야, 더 말장난하면 네 목을 베고 말겠다. 이미 네가 한 짓
을 내가 아는데 더 이상 나를 자극하지 말아라. 그리고 전에 말한
부탁의 조건으로 진충을 내 수하로 삼겠다. 그러니 그 부분에 대해
서 빠른 처리를 부탁한다.-
우대치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진충 가자!"
"예! 주군."
사공운과 진충이 봉화원 안으로 당당하게 들어가는 모습을 누대
치와 봉검대의 무사들은 멍청하게 보고 있어야 했다. 대체 뭐가 뭔
지 알 수가 없었다. 특히 진충이 사공운에게 주군이라 한말이 그들
에게 주는 충격은 적은 것이 아니었다.
함께 있던 노인들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며, 누대치의 눈
치를 보았다. 누대치는 그저 사공운의 등을 보고만 있었다. 그는
최소한 한가지는 잘 알고 있었다.
사공운이 마음먹으면 지금 있는 무사들이나 두 노인이 자신을 지
켜주기엔 턱없이 모자란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귓가에 다시 사공운
의 전음이 들려왔다.
-다시 한번 나에게 하대를 하면 혓바닥을 뽑아 놓겠다. 늙은이.-
누대치의 안색이 더욱 창백해졌다. 아무리 가리려 해도 얼굴에
반질거리는 진땀을 감추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사영환님께서 오셨습니다."
시녀의 목소리를 들은 용설아는 심장이 주저앉는 기분이었다.
'나는, 어찌 하옵니까?'
용설아는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하늘이 바로 손에
잡힐 듯 한 다락방, 새들이 놀고 가는 숲 속, 파란 채소가 자라는
이랑 사이로 다름 박질 하던 다람쥐를 보고 행복해 하던 모습이 떠
오른다. 저녁이면 소곤거리던 사공운의 숨결이 아직도 그의 귓전에
들리는 것 같았다.
"아영, 세상에 다른 남자들보다 내가 우위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오."
"그게 무엇인가요. 운랑."
"세상에 잘난 사람들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소, 훌륭한 부모,
돈, 명예, 좋은 집, 강한 무공등등, 하지만 나에겐 그 중 아무것도
없소, 오로지 이 초가 한 칸 뿐이요. 그래서 나는 그 모든 것을 다
합한 것 이상으로 당신을 사랑하오. 나에게 바로 당신뿐이니까, 그
모든 것이 다 필요 없이 오로지 당신뿐이란 말이오. 아영, 그래서
난 세상의 그 어떤 남자보다도 더 당신을 사랑할 수 있소."
행복했었다. 그 말을 듣고 용설아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
복한 여자라고 생각했었다.
"운랑, 저 역시 당신 하나로 행복해요."
그 말을 하며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워하였었다. 아니 너무 벅찬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야만 했었다.
'아영도 평생 당신만을, 그렇게 사랑하겠습니다.'
그때 그녀는 그렇게 맹세했었다. 부끄러워 말로 표현하지 못했지
만 그녀는 그렇게 맹세하며 행복해 했었다.
그런데, 그런데.....
용설아는 자리에서 일어서기가 무서웠다. 이제 그를 보면 뭐라고
해야 하나? 현재 사공운은 자신들 사이에 아이가 있음을 모르고 있
었다. 왜 공정이 자신을 여기에 보냈는지 진정한 이유를 모르고 있
었다. 정신이 돌아온 용설아는 이제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사
공운에게 자신이 이제 아영으로 돌아왔음을 말 할 수 없었다.
최소한 자신의 딸이 안전해질 때까지는. 그때까지는 자신이 위험
을 앉고 있어야 했다.
'차라리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었다면.'
용설아는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닦아 낸 다음 일어섰다. 조금 이
상한 눈초리로 용설아를 보던 시녀들이 얼른 일어서서 그녀를 부축
하였고, 또 한 명의 시녀는 방의 문을 열었다.
문틈 사이로 사공운의 모습이 보인다.
바로 며칠 전에 보았던 사영환이 아니었다. 그녀의 운랑이 그를
보고 있었다.
첫댓글 ㅎㅎㅎ
잘읽었습니다
즐감~!
재밌게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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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즐독!!!!!!!!!!
ㅈㄷㄳ
감사히 잘보았습니다
감사해요~~~^~
ㅈㄷㄱ~~~~~~~```````````````
망각
감사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감
즐독 감사합니다^^^
감사...
즐독
잘읽었습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