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26.金. 흐림
“울림아, 너 혼자 돌 위에 앉아 무얼 하고 있느냐? 아까 대웅전에 들어와 참배하는 걸 얼핏 보긴 했다만 여러 사람들에게서 인사를 받느라 잠시 분주했었거든. 금세 법당 안을 둘러보았더니 글쎄 네가 없어져버렸더구나. 그래서 네놈이 어디서 뭘 하고 있나 하고 궁금해서 너를 찾아 도량을 돌아다니는 참이다.”
“부처님, 그 동안 잘 지내셨어요. 제일 먼저 인사를 드리려고 법당에 들어가서 삼배를 올렸는데 부처님께서 참배객 응대로 바쁘셔서 제가 온 줄 모르시더라고요. 그런데 그 때 배가 갑자기 아프잖아요. 그래서 해우소엘 다녀왔걸랑요. 몸과 마음이 얼마나 시원하고 개운한지 몰라요. 근심을 없애주는 곳, 해우소解憂所라는 이름만큼 정말 딱 떨어지게 그 쓰임새와 잘 어울리는 곳도 드물 거예요. 지금 그 느낌을 쓰고 있는 중이예요.”
“호오, 울림이 네 놈은 응가를 하고나서도 그때 마다 꼭 느낌을 쓰느냐? 참 특이한 녀석이로고. 그래, 그거라도 열심히 해야지. 그리고 네가 오늘쯤에는 배가 아플 줄 내 이미 알았다. 어제 이른 아침에 서울에서 출발할 때부터 너를 쭈욱 지켜보았는데 엄청 먹어대더구나. 집에서 아침밥을 착실히 먹고 나온 녀석이 어제 아침 버스에서 나누어준 빵 두 개 먹었지, 은박지에 싸진 주먹밥 먹었지, 뜨끈뜨끈한 설기 떡 먹었지, 참새가 건너 준 찐 옥수수 먹었지, 생수 500ml 다 먹었지, 귤 먹었지, 사과 말랭이 먹었지, 그리고 범어사에 도착하자마자 또 전통한식으로 점심을 먹었지, 그런데 네놈이 한 저금씩 집어가면 반찬이 동 나는 통에 앞에 앉은 킬리만자로가 불편하게 식사를 하는 거 같더구나. 옆에 앉아 있던 어부도 네놈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만 쳐다보고 어이가 없는 눈치더라. 그건 그렇고 별 하는 일 없이 오후 내내 슬슬 놀다가 저녁에 기장 횟집에 가서 또 무지 먹더구나. 그 식탁이 4인용인데 네놈은 요슈이골하고 난등하고 세 명이서 앉아 먹었지 않니. 그걸 다 먹고 나서도 네놈이 하도 게걸스럽게 구니까 보다 못한 요슈이골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회랑 반찬이랑 얻어다 네 앞에 놔주던데 요새 그만한 미모며 성품 갖춘 아줌마 드물단다. 인석아 알기나 하니? 난등도 동갑지기라고 네놈의 꼴사나운 모습 많이 접어주는 것 같더라.
그렇게 먹고 나서 숙소로 돌아올 때 다른 사람들은 버스 타고 힘들게 오는데 네 녀석은 날름 택시에 올라타서 편하게 오더구나. 뒤에 앉아 있던 byc4700하고 무지, 무지 친구가 속으로 욕했을 거다. ‘거 힘도 세게 생겼구만 택시는 여자에게 양보하고 버스로 오든지 달려오든지 할 일이지 앞자리를 혼자 다 차지하고 룰루랄라 오다니 참 뻔뻔하기도 하구나.’하면서 말이지. 그리고 말이다,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또 먹기 시작하지 않았니. 맥주 마시고, 막걸리 마시고, 와인 마시고, 술안주라고 김치에 머리고기 싸서 먹고, 땅콩 먹고, 오징어 포 먹고, 찻잎 장아찌 먹고, 버섶이 끓여준 차 마시고, 하여튼 네놈은 옆 사람과 이야기도 않고 먹고만 있더구나. 한 상에 앉아 있던 천우와 시몬과 남해대교가 속으로 흉봤지 싶구나. 그리고 그게 다가 아니잖니. 다른 사람 같으면 그리 먹고 잠들었으면 무슨 사단이 나도 났을 터인데 네놈은 아침에 일어나 씻고 나서는 아침밥 시간을 은근히 기다리던 눈치더구나.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게 그 집 해장국이 맛나 보이긴 하더라. 익은 김치와 빨간 깍두기에 해장국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나서는 범초 그 양반이 어제 밤에 술 마신 속을 달래려고 따로 요청한 국물을 눈치봐가며 덜어서 또 먹더구나. 아참, 레오하고 카메노는 너희들 밥 챙겨 먹이느라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것 같더라. 그저 아귀처럼 먹기나 하지 부산 식구들의 애씀을 알기나 했겠니. 오륙도에서 이기대 길을 걸어가면서도 입을 쉬는 법이 없더구나. 트로피카나 스파클링 포도 맛 먹었지, 생수 500ml 먹었지, 쿠키 먹었지, 언니들이 건네준 과자 먹었지. 초콜릿 먹었지, 귤 먹었지, 그러다보니 또 점심시간이 되지 않았겠니. 그 집 상호가 누룽지였던 것 같은데 근무하는 종업원들이 참 친절한 집이더구나. 그런데다 동계 올림픽에서 덜컥 금메달 따는 장면을 보여주는 신명나는 분위기에서는 밥맛이 더 땅기기야 하겠지만 거 스텐 양푼에 들어 있는 하얀 밥을 매큼한 불고기와 나물에 비벼서 잘 먹어놓고는 나중에 나온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맛을 봐야 한다며 또 덜어서 먹었지 않았겠니. 옆에 앉아서 같이 식사를 하던 호밀밭의파수꾼과 앞자리에 앉아 있던 기다림과 기다림 짝지도 체면 상 대놓고 말은 안했지만 놀란 눈치더라. 게다가 오늘 서울 올라가면서도 버스 안에서 또 먹을 계획이 짜여 있지 않느냐. 떡 먹고, 곶감 먹고, 보리 빵 먹고, 발렌타인 21년 산 마시고, 복분자술 마시고, 맥주 마시고, 막걸리 마시고, 안주 먹고, 또.. 또.. 아이쿠 끝이 없구나. 참 나 원, 내가 한 2500년을 살아봤다만 네 녀석 같은 인물은 보다보다 처음 본다. 그리 먹어댔으니 그 뱃속이 온전하겠느냐, 응 울림아.”
“와아~ 부처님, 정말 어제 아침부터 쭈욱 저를 지켜보고 계셨어요? 어떻게 하나도 빼지 않고 그렇게 잘 알고 계세요. 뭐 부처님 말씀도 맞긴 하지만요, 안 먹고 비실대는 것 보담 잘 먹고 씩씩한 게 훨 났지 않아요? 그건 그렇구요, 통도사가 평소 부처님께서 머무르시는 안방이라 그런지 정말 맑고 밝은 터인 것 같아요. 일주문을 턱 들어서니 발로는 오색구름을 밟은 듯하고, 가슴에는 환희심이 솟아나는 게 정말 여기가 불국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니 까요. 저, 부처님. 제가 아무 때고 오고 싶을 때 와서 몇 날 며칠이고 원하는 대로 묵을 수 있는 쯩 하나만 만들어주세요. 예, 부처님.”
“엉 쯩, 무슨 쯩? 무료 숙박증 말이냐? 울림이 네놈은 여전히 공짜 좋아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나보구나. 그런데 네놈에게 웬 쯩이 필요하단 말이냐. 네 녀석이 평소 잘 써먹는 말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했지 않았느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는 말인데 네가 구태여 통도사에를 와야만 불국토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구나. 네 녀석이 세상의 온갖 근심을 풀어헤치며 해우소에 앉아 있든지, 네 흥에 겨워 돼지 멱따는 소리로 노래를 부르든지, 시도 때도 없이 아귀처럼 먹어대든지, 예쁜 아줌마들 틈새에서 고운 모습을 힐끔힐끔 훔쳐보든지 간에, 그 시간 그 자리가 불국토佛國土라고 생각을 하면 바로 불국토일 텐데 그렇지 않느냐, 울림아.”
“아이 참 부처님도, 어쩌면 그렇게 융통성이 없으세요. 부처님 말씀 마따나 그게 그렇긴 한데요, 그래도 가끔 통도사에 직접 와서 부처님 부드러운 목소리도 듣고 싶고, 따뜻한 손도 잡아보고 싶고,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 싶고, 함께 어깨동무하고 노래를 부르고 싶을 때도 있거들랑요. 어쩌다, 이따금, 간혹, 뜬금없이, 그럴 때 가끔 필요할 지도 모른다는 말이지요. 아무튼 꼭 쯩 하나 만들어서 택배로 보내주셔야 해요.”
“오냐, 알았다. 택배 회사 직원이 항상 월요일이면 오니까 내일 부쳐주마. 그런데 울림아, 부처님이 무료쯩 보내주었다고 인터넷에 글 올리고 여기저기에 자랑삼아 떠들고 다니면 안 된다. 네놈에게 무얼 해주면 하도 부풀려서 소문을 내고 다니는 통에 내가 난처한 경우를 몇 번이나 당했는지 모른단다. 이번에는 입을 꼭 다물고 꼭 필요할 때만 쓰도록 해야 한다. 알겠느냐?”
“예, 부처님.”
부처님을 뵈올 때마다 항상 지청구를 듣기는 하지만 내가 미워서 그러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가 부처님께 별 잘 해드린 것도 없는데 뭐든지 부탁을 하면 못 이기는 채하고 결국 들어주신다. 다 내가 바르고 씩씩한 사람이 되라고 그러시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 통도사에서 마음속으로 부처님께 한 가지 더 부탁을 했다. 이번 부산 답사에 함께 참여를 한 모놀 가족과 오늘 참석은 못했지만 항상 가슴으로, 온라인상으로 마음과 뜻을 옹골지게 통하고 있는 모든 모놀 가족들이 밝고 건강하게 삶을 긍정적으로 향유하며 적극적으로 살아가게 해 달라고 기원을 했다. 이제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부처님께서는 내 부탁을 잘 받아 주실 것이다.
“부처님 고맙습니다!”
(- 그대여, 들어나 보셨는가? -)
첫댓글 예~ 저도 부처님께 감사인사 올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어지간히 많이 먹었네요. 탈나지 않은게 다행이었어요. ㅎ ㅎ 범어사 대웅전 아래뜰에 있었던 귀어운 부처님 상이 떠오르는 재미진 후기 즐겁게 읽었습니다. 함께 해서 더 행복한 부산답사이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울림이 있는 글 많이 보여주세요. *^^*
늘 꼼꼼히 메모하시고 생각하시고...먹은 것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시니~*^^*
재주가 여러가지구먼... 부처님께 때쓰는것도 할줄 알고...ㅎㅎㅎ
잔치집에 오셔서 먹고,마시고,즐기고 가시는게 당연한일이거늘... 이렇게 상세히 후기까지 적어 주시니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따름입니다..그리고 부처님께서 긴울림님 부탁을 꼭 들어주시라라 믿습니다.^^*
저도 식탐이 많아서 지니고 있는 가죽가방이 언제나 탱실합니다~~~~긴여울님~~진짜루 글 재밋네예~ㅎㅎ
간식하나, 음료하나, 과일하나, 어느 짬에 먹었는지 이리 소상히 기억하신다면........ 모두와 함께 했던.... 아직은 설익은 추억은 두말하면 잔소리겠네요. 저 역시.... 오래오래 기억하겠습니다.
그래서...'쯩'은 도착했나요?? 저좀 가끔 빌려주세요...ㅎㅎㅎ
카~! 재밌습니다. 그리고 대단하십니다. 부처님과 문답을 나누실 정도이시니...^^^^ 활자를 쪼금만 더 키워주시면 읽기가 더 편하겠습니다만...
"부처님 고맙습니다." 보다 저는 "부처님 죄송합니다.
" 늘 게으름 피우고 마음속으로만 데이트해서요...........맛난거 사들고 뵈러 갈게요
저도 긴울림하고 똑같이 먹었는데 왜 느낌이 다른가요... 다음에도 뵈겠습니다...
개구쟁이 같은 글 즐감했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