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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림(靑春武林) 제 13 장 개전(開戰).-2.
그러나 그런 따위는 역시 꿈...!
서백은 이미 또 한 번 대형사고를 일으킬 것을 언급했었고, 이 날 밤, 이에 따라 혼천소마들은 이런 모두의 바램을 비웃기라도 하듯 또 한 번 천하 무림이 발칵 뒤집힐 만한 대 사건을 일으키고 있었다.
장소는 섬서 사문관의 산자락에 자리 잡은 대방파 창천보(蒼天堡)!
섬서의 문파들은 모두 철기보와 동맹이라고 알려진 바와 같이, 이곳은 상황보와 더불어 철기보가 무림의 패주가 되기 전, 보조를 함께해온 형제지간과 다름없는 방파였다.
청화의 난 당시에도 누구보다 강력히 철기보를 지지해 싸웠으며, 그로인해 크게 세력을 넓혀 대방파가 된 후 오늘 날에 이르러서는 상황보와 더불어 섬서에서도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 할 그러한 방파.
한데 해시(亥時)무렵이었다.
보내의 인물들이 잠자리에 들어 하나 둘, 고루거각에 불이 꺼질 즈음, 이곳의 거문 앞에 이상한 일이 발생하고 있었다.
하나 둘...! 혹은 삼삼오오.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거문을 향해 각양각색의 행색을 한 인물들이 산보라도 나온 양 앞서거니 뒷서거니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이 밤중에...?”
문을 지키던 위사들은 크게 의아스러웠다.
그리 외따로 떨어진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성 복판을 벗어나 산자락에 위치한 무림 방파에, 더구나 이렇게 자정에 가까운 시각에 많은 사람들이 오고 있다는 것은 크게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급히 서둘러 오고 있는 것도, 뭔가 소리를 지르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의아하긴 했으나 다가오기까지 위사들은 거저 지켜보고만 있었는데...!
수효는 꽤 많아 약 육십여 명 쯤.
이윽고 십여 장 앞까지 다가오고서야 위사들은 이들이 평범한 일반인이 아니라 저마다 병기를 소지한 무림인임을 알 수가 있었다.
비로소 위사들은 퍼뜩 경각심을 지니며 이들을 가로막았다.
“서시오! 이 밤중에 무슨 용무로 왕림하셨소?”
그러자 마침내 코앞까지 다가온 한 사내가 빙긋이 웃으며 의젓하게 입을 열었다.
“떠들 것도 경계할 것도 없네. 보주(堡主)님 안에 계신가?”
대뜸 묻는 게 보주...!
위사들은 일순 몸을 사렸다.
사내의 태도도 그렇거니와 보주를 찾을 정도라면 실로 조심해서 대해야 할 손님이기 때문이었다.
“계시긴 하지만... 하나 보주님을 뵙고자 오셨다면 잘못 오셨소. 침소에 드실 시간인데다가 보주께서는 해시(亥時) 이후로는 외인을 접객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계시니...!”
사내는 크게 웃었다.
“헛헛... 그랬었구먼? 하나 혼천소마들로 인해 비상경계령까지 내려져 있는 시국에 벌써 잠자리에 드셨다니...! 심려스럽지도 않으셨던가?”
왠지 다소 무시당하는 듯한 어투.
불쾌해진 위사는 퉁명스레 대답했다.
“물론 경계령 중이긴 하오만, 한들 혼천소마 따위가 감히 본 창천보에게 뭘 어찌할 수 있단 말이오? 전혀 신경 쓸 일이 아니라 생각하오. 우리부터 그렇게 생각하니!”
“헛헛... 그런가?”
그러자 사내는 다시 크게 웃었다.
“혼천소마를 우습게 생각하다니 과연 창천보다운 위세일세! 어쨌건 신경 쓸 일도 아니라고 하니 그럼 조금쯤은 신경이 쓰이도록 해줘야 겠구만.”
“무슨...?”
이에 위사들은 크게 흠칫했다.
역시 말투가 적잖게 이상한 것.
이에 위사들은 어리둥절하여 다시 무엇인가를 질문하려고 했는데,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입을 열 기회가 없었다.
번쩍-!
“아악...!”
“크아아악!”
태연자약 이야기를 나누던 사내의 손이 돌연 크게 허공에 원을 그었고, 순간 위사들의 머리통들은 모조리 핏줄기와 더불어 몸과 분리된 채 허공으로 튀어 올랐기 때문이었다.
하나 사내는 계속 농담이라도 하듯 말했다.
“응, 하고 보니 좀 실수했다 싶군. 이래저래 죽은 놈이 신경 쓸 일은 정말 없을 테니 살려서 좀 쓰게 할 걸.”
히죽히죽...!
장난이라도 하듯 웃으며 계속 한 손을 닫힌 거문 쪽으로 쭉 뻗어냈다.
순간이었다.
쾅-! 콰장창창...!
장내에는 실로 경악스럽기 그지없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뻗어낸 사내의 장심으로부터 산악 같은 경력이 쏟아지는가 싶더니, 그대로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과 함께 한 자 두께에 이르는 창천보의 거대한 강철문이 엿가락처럼 우그러져 날아 가버렸던 것.
“누구냐!?”
즉시 문 안쪽으로부터 큰 호통이 터지고 사방에서 경비위사들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하나 사내는 변함없이 태연자약한 모습으로 하나둘 씩 도착하는 인물들과 더불어 내 집처럼 창천보의 안으로 들어섰다.
“보주가 벌써 잠들었다고 하니 자존심이 상해서 허락 없이 들어왔네. 이래서야 체면이 말이 아니지. 우리가 바로 혼천소마거든.”
“혼천소마!”
즉시 벌컥 대소동이 벌어졌다.
기습공격이라 할 수조차도 없는 어이없는 상황!
설마 전 무림이 치를 떨며 찾기 시작한 소마들이 이렇게 한가한 모습으로 내 집처럼 창천보에 들어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하나 그들의 태도는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창천보의 위세가 그리 높다니 어디 한 번 놀아 보세나. 한 시진 정도는 버티겠나?”
“이건 저 유명한 대막 광풍사(狂風寺)의 적사장(赤沙掌)이라 불리는 장력일세.”
우르릉... 쾅!
번쩍-!
“크아아아아...!”
“아아아악...!”
그야말로 황당무계.
전혀 서두르지 조차 않고 하나씩 들어온 혼천소마들은 거듭 장난이라도 하듯 우왕좌왕하는 창천보 무사들을 향해 그냥 대충 아무렇게나 장력을 퍼붓고 제 편한대로 멋대로 손속들을 날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그들의 검장이 한번씩 번뜩일 때 마다 문앞으로 몰려나온 창천보의 무사들은 팔, 다리, 머리가 한 번에 수십씩 튀어 오르고, 더러는 사지가 어육처럼 뭉개져 추풍낙엽 같이 뒹굴기 시작한 것...!
“습격이다! 혼천소마들이 들어왔다!”
둥- 둥- 둥-!
오래지 않아 창천보의 전역에 곧 하늘이 허물어질 듯 급박한 비상 금고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막 깊은 잠에 빠지고 있었던 무사들이 정신없이 창검을 들고 도처에서 쏟아져 나왔다.
숫적으로 보면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
하지만 혼천소마에 맞선 그들은 너무도 무력했다.
“핫핫핫... 왠 파리떼가 이리도 설치느냐?”
“하하하... 풍악을 울려라!”
와르릉- 쾅-!
“으아...!”
“크아아아악...!”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소마들의 신형이 번뜩이는 곳에는 어디서나 피의 소나기가 거꾸로 하늘로 치솟아 오르고 비명이 하늘을 찔렀던 것.
그야말로 양(羊)의 무리 속에 뛰어든 굶주린 호랑이들의 살육이라고 해야 할 정도의 참상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
그리고 아침...!
“또...!?”
섬서를 중심으로 무림은 또 한 번 아수라장으로 돌변해 버렸다.
날이 밝기 무섭게 섬서 유수의 대방파 중 하나인 창천방이 지난 하룻밤 사이, 혼천소마들을 맞아 어처구니없게도 초토화 되어버렸다는 소식이 도처로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몇몇, 간신히 살아남아 도망친 몇몇 생존자들의 말이 더욱 소름끼쳤다.
보여줬던 그대로 이들은 기습공격도 아닌, 정면으로 보의 문을 깨고 들어와 장난치듯 수 천 무사를 파리 잡듯 살육한 후 보루자체까지 완전히 불태워 버렸다는...! 그야말로 모발이 곤두설 만큼 가공할 증언이었던 것이니...!
이에 소식을 들은 인물들은 거저 입만 벌릴 수밖에 없었다.
기실 창천보라 하면 철기보의 득세 후, 세력이 하늘을 찌를 만치 드높았던 곳으로 무림의 어느 방파도 이 앞에서 함부로 스스로를 내세우지 못했을 정도의 방파.
한데 이러한 창천보가 불과 육십여 명의 혼천소마를 맞아 장난도 아니게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고 하니...!
“인간들도 아니다...!”
소식을 접한 무림인들은 몸서리를 치며 몸을 사렸다.
하룻밤 사이에 천하 최강의 방파라고 할 수 있는 백대문파의 삼십여 대표들과 그 휘하의 일천여 좌우완(左右腕)들...! 그리고 또 하룻밤 사이에 무림에서 둘 째 가라면 서러워할 만치 강력한 힘을 지닌 대방파를 이렇게 간단히 쓸어버렸으니 누구라서 겁먹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잿더미 위에 덩그라니 남겨진 것은 창천보주의 잘려진 머리와 피로 적셔진 혈문(血文) 한 장...!
-천하를 대신하여 위선자들을 친다!
진정 황당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사태였다.
이쯤 되면 대체 누가 선이고 악인지 정말 구분이 잘 안 가는 것이다.
악이라면 혼천소마들일게 틀림없지만, 하나 이들이 남기는 격문들을 보면 한결같이 마땅히 할일을 하고 있다는 듯한 것들.
최대한 무림맹의 약점을 이용해 내용자체를 무조건 무림맹이 선 잘못을 했기에 응징하는 것처럼 행세를 하는 상태였다.
이렇게 되자 급기야 무림도처에서는 여기에 동조성을 띈, 실로 터무니 말들까지 나돌기 시작했는데...!
“그러게 백대문파나 무림맹이나, 대체 왜 그 중대한 존속문제를 제멋대로 처리해 가지고...!”
“그게 다 끼리끼리 해먹으려고 욕심을 부렸기 때문이야! 권좌에 눈이 어두워 천하의 군소방파들을 무시한 대가지 뭐겠어!”
“사실 혼천소마에게도 너무 심하게 하긴 했네. 무려 이십여 년 동안 척살령을 내려놓고 풀어주질 않았으니...! 와중에 무림맹이 계속 존속된다고 하니까 놈들도 이판사판 덤벼들게 된 게지. 척살령이 풀리지 않는 한 영원히 쫓기는 신세가 될 판국이니, 나라도 같은 입장이면 그렇게 하겠다!”
그야말로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이쯤 되면... 혈겁이 커지면 커질수록 무림맹에 대한 원성은 더욱 눈덩이처럼 불어날게 불을 보듯 확실했는데...!
그래봐야 이것은 아직도 시작!
창천보의 사태가 벌어진 직후,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무림맹은 또 한 번 돌이킬 수 없는 자충수(自衝手)를 내놓고 말았다.
*
사자전(獅子殿).
유목공과 백대봉공은 하나같이 사색이 된 채 할말을 잃었다.
“맹주! 부디 소인들의 한을 풀어주시기를...!”
유목공의 앞에는 피로 떡칠이 되다시피 한 몇몇 인물이 찾아와 처절히 울부짖고 있었다.
살겁을 피해 간신히 도망쳐온 창천보의 생존자들이었다.
“…….”
하지만 유목공은 침통히 고개를 떨군 채 무엇이라고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원칙 같으면 당장이라도 인마(人馬)를 동원해 혼천소마를 추살해야 마땅할 것이지만 그러나 소마의 행적을 모르는데 무슨 수로?
이래저래 계속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무림맹주로서... 그리고 오랫동안 동맹을 유지해 오던 형제로서... 그대들이 당한 참변에 먼저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네...! 이 모두가 본좌의 부족함 때문이었던 터...!”
침통히 떨구어진 고개 아래로 유목공의 입술이 힘없이 달싹였다. 음성조차 떨리듯 흘러나오는 것...!
“소식은 접했지만... 피해는 얼마나 되던가? 혼천소마는 얼마나 죽었고?”
피투성이의 무사가 오열했다.
“모조리 당했습니다! 보주님을 위시한 삼당 육향에 이천여 가솔들 거의가...! 혼천소마도 몇몇이 제거된 것으로 아오나 자세한 내막은 알 수가 없사옵고...!”
그는 계속 눈물을 쏟으며 말을 이었다.
“정문으로 들어와 보루에 불을 지른 후 인시(寅時)경에 뿔뿔이 흩어져 다시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뚝뚝, 금시라도 핏물이 떨어질 듯 충혈 된 눈으로 백대봉공 중 하나가 간했다.
“어쨌건 그렇다면 결코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제 아무리 뛰어난 무공을 지닌 놈들일지라도 밤새 접전을, 그것도 창천보 같은 대방파를 상대로 싸웠으니 다들 지쳤을 게 확실합니다. 필시 사문성(沙汶城)의 인근에서 휴식을 취할 게 분명할 터, 기회를 놓치지 말고 주위 방파에 급전을 보내 포위망을 구축한 후 정예들을 보내 압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일리가 있었지만 유목공의 생각은 달랐다.
“물론 얼핏 생각하기엔 그렇게 여겨질 수도 있소...! 하나 놈들 중에는 교활하기 그지없는 서백이 있지. 그자가 과연 그 정도도 계산에 넣지 않았겠소?”
“하오면...?”
“지쳤음을 아는 만큼 이미 멀리까지 벗어나 있을 것이오. 압박하기에는 늦었다 보오.”
다른 하나가 격분한 표정으로 훌쩍 나섰다.
“하나 그 생각을 역이용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간계가 깊은 자이니 한 번 시도해볼 가치는 있다고 사료됩니다만!”
곳곳에서 곧 이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렇습니다! 속수무책으로 무력하게 당하고 있느니 보다는 났다고 봅니다! 전 무림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데... 언제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앉아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습니까!”
“속하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설령 소득이 없을지라도 최소한 참변을 당한 창천보의 주검들을 거둬 묻어라도 줘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까마귀밥이 되도록 버려두시렵니까?”
장례(葬禮)...!
어쩌겠는가?
마지못해 유목공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전혀 아무것도 못하고 있느니 보단 나을 수도...! 모두의 뜻이 이러하니 시도만큼은 해보기로 합시다...! 천소...!”
일내당주 유천소가 급급히 포권지례를 취했다.
“하명하십시오!”
“사문성 주위의 모든 방파들에게 포위망을 구축하라고 급전을 띄워라. 반경은 창천보로부터 백 리 선이다. 악적들이 몸을 숨길만한 곳으로부터 천천히 포위망을 좁혀 들어가는 것이다.”
“명(命)!”
유목공은 계속해서 시선을 외삼당주와 서문한랑, 그리고 여만옥에게로 돌렸다.
“다음은 외삼당, 만에 하나라도 정말 놈들의 자취를 찾아내게 되면... 너희들은 포위망을 구축한 방파들과 더불어 일거에 그들을 격살시켜버리는 임무를 맡는다. 한랑, 만옥...! 둘 중에 누가 가겠느냐?”
즉시 여만옥이 엄청난 분노를 떠올리며 부복했다.
“속하가 가겠습니다! 아버님을 돌아가시게 한 불공대천의 원수들입니다! 속하를 보내주십시오!”
비명횡사한 상황보주 여상락의 아들...!
유목공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맺힌 한... 실로 크겠지. 일외당 설궁도와 함께 출발하라.”
거듭 다짐시켰다.
“지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힘으로 어찌 놈들을 제거해내지 못하겠느냐마는 그래도 각별히 조심하거라. 하룻밤 사이에 창천보를 몰살시킨 정도의 악적들이다. 혹시라도 어려움이 보이면 즉시 물러나도록 하고.”
“명!”
서둘러 여만옥과 설궁도가 사자전의 바깥으로 나서자, 유목공은 다시 제이내당주 초사극에게 명령했다.
“사극...! 장청과 더불어 강호전역에 방문(榜文)을 붙여라. 교활한 서백이 무림맹의 존속을 마치 권력에 눈이 어두워 일괄처리한 것처럼 날조(捏造)하여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다. 사실을 밝혀 이를 해명하도록 해라.”
“명!”
이에 두 사람이 마저 허리를 꺾자 비로소 유목공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들 나가보십시다...! 소득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출정하는 무사들을 배웅해줘야 하지 않겠소?”
뿌우웅~ 뿌우우웅~!
“하-!”
콰두두두두두...!
그로부터 불과 한 식경!
철기보의 하늘에는 가득히 출전을 알리는 고동소리가 울려 퍼졌고, 잇달아 지축이 흔들리는 말굽소리와 더불어 여만옥, 설궁도를 위시한 제일외당에 소속된 일천여 기마(騎馬)들이 태풍처럼 성문을 통과해 쏟아져 나가는 정경이 보였다.
분명 철기보 최강, 무림 최강의 정예들이라 일러도 과언이 아닌 인물들!
개개인의 무력도 그렇거니와 일개방파 정도는 삽시간에 잿더미를 만들어 버리고도 남을 정도의 힘이었다.
*
뿌웅~ 뿌우웅~!
거듭 하늘높이 울려 퍼지는 고동소리...!
“응...?”
훤백 역시 이것을 들었다.
하나 아직 무림맹의 일에 백지나 같았기에 이게 무슨 신호인지 몰랐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뭔가 또 일이 생겼음을 깨닫고 급급히 황보소미를 찾아 물었다.
“지금 고동소리가 뭐지? 비상신호 같은데...?”
보다 경험이 많은 황보소미는 곧 상황을 직감하고 대답했다.
“출전신호야. 드문 일이지만 외당들이 출정(出征)할 때 울리는 신호 같은데?”
훤백은 크게 당황했다.
“무슨 소리야, 지금 같은 상황에? 자리를 지켜야할 외당이 어딜 간다는 거지? 혹시 실없이, 창천보의 일 때문에 나가는 거 아냐?”
황보소미인들 한 식경 전에 사자전에서 결정된 상황을 어찌 알겠는가?
하나 구태여 그녀가 대답할 필요도 없었다.
“훤백, 안에 있냐!”
더불어 세 개의 인영이 정신없이 추밀원으로 쏘아 들어오며 다급히 말을 꺼낸 것이다.
“한 식경 전... 사자전에서 채결된 내용이다! 창천보의 일로 혼천소마를 압박 추살하고자 일외당이 출정했다! 어찌 생각하나?”
여만옥 등이 나서자 즉시 달려 온 사도횡, 황보선, 당삼화였다.
훤백의 만면에 일순 크게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
“역시 그런데...? 혹시 소마의 행적을 알아낸 거야?”
황보선이 대답했다.
“아니, 대략 짐작으로 사문성 일대를 포위압박 하려는 내용인 것인데...!”
사자전에서 의결된, 혼천소마가 멀리 가진 못했을 것이므로 사문성 일대를 압박한다는 내용을 상세히 훤백에게 설명했다.
“대체 무슨 골빈 소리야, 그게?”
훤백이 크게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그렇다쳐도 서백이 바보가 아닌데 압박할 거리 안에서 사람들을 쉬게 하겠어?
사도횡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대답했다.
“물론 유목공도 그렇게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여타의 봉공들이 워낙 성화를 부려서. 서백은 간교하니 필경 그렇게 생각하는 이쪽의 허를 노려 오히려 더 가까이서 쉬게 할 수 있다는 거지. 가능성이 없는 것인가?”
“나 참...!”
훤백은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으나 마나 너무 그건 당연하잖아? 이건 그들도 목숨을 걸어놓고 하는 싸움이라구. 이런 판국에 서백이 그렇게 우습지도 않은 잔머리를 굴리겠어? 싸움이란 오로지 정수(正數)만이 완벽하게 상대를 제압하는 법이야. 서백이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할 자 같으면 걱정도 않겠다.”
황보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쳐도 손해 볼 것은 없으니 괜찮겠지. 어차피 창천보를 치느라 그들은 크게 지쳐있을 것이고, 포위망 밖으로 빠져나갔다 치더라도 죽은 자들의 장례 정도는 치러줄 수 있을 테니까. 그런 점에서 손을 놓고 있느니 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판단에 결정된 일이야.”
하지만 훤백은 더욱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크게 지치다니? 어째서 그렇게 생각해?”
동시에 훤백은 자신도 모르게 쿵! 가슴이 내려앉는 충격을 받았다.
“아뿔싸! 그러고 보니...! 난리 났어, 형! 이건 실로 엄청난 실수야! 도천형 어디 있어!?”
느닷없는 태도에 사도횡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대내에 없어. 혼천소마의 근거지를 추적하느라 계속 외부에서 움직이는 중이야. 한데 왜? 뭔가 짚이는 게 생긴 건가?”
“큰 일 났군!”
훤백은 더더욱 당황했다.
“안되겠어! 형! 가까운 점포에 사람이 얼마나 있어? 소집해서 나서려면 얼마나 걸려!?”
사도횡은 훤백의 모습에 더 물을 것도 없이 큰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즉각 대답했다.
“태화성에 이백 명 정도, 전서구를 보내면 반 시진 정도다. 소집할까?”
훤백은 몸을 솟구치며 급급히 소리쳤다.
“그럴 시간 없어! 가까우니 직접 가도록 해!”
실로 처음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다급한 모습이 아닌가.
‘이 놈이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사도횡는 찰나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찔렀고, 지체 없이 훤백을 따라 몸을 날렸다.
황보선, 황보소미, 당삼화도 일제히 함께 몸을 날려 두 사람을 뒤쫓았고.
*
그로부터 불과 한 시진!
복화협(複花峽).
훤백의 가슴 떨리는 직감은 과연 여기에서 또 한 번 여지없이 맞아 떨어지고 말았다.
알려진 데로 이곳은 태화성과 인접한 선운성(鮮雲城)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길 양편이 깎아지른 백 척 절곡으로 이루어진 협로.
곧 이틀 전, 상황신검(常皇神劍) 여상락(余翔樂)이 살해된 바로 그 계곡 길인 것이다.
“하-!”
콰두두두두...!
한데 이 계곡 속을... 이번에는 그의 아들인 여만옥이 일천군마와 함께 치달려 가고 있었다.
거칠긴 했으나 섬서의 중요한 지름길 중 하나였기에 사문성(沙汶城)으로 가려면 역시 이곳을 통해 가는 게 가장 빨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곡구(谷口)로 들어서기까지, 또는 진입해서 치달리는 사이에도 여만옥은 이곳이 어떤 내력을 지닌 곳인지 깜박 잊고 있었다.
분명 이곳에서 부친인 여상락이 살해되었다고 들었지만 지금은 그저, 어떻게든 한시바삐 사문성까지 치달려가 소마들을 압박, 죽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 일념뿐이었기 때문!
“서둘러라! 협곡에서 이백 리만 우회하면 사문성이다! 이미 주위 방파들이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을 터! 좀 더 속도를 내라!”
“하랴-!”
콰두두두두두...!
자욱하게 일어나는 황진!
가파른 계곡 사이를 치달려 가는 일천군마의 형상은 그야말로 노도 같은 기세였다.
한결같이 혼천소마에 대한 비장한 각오로 달리는 중임에도 구름 같은 살기가 치솟았고...!
한데 여만옥 설궁도를 위시한 일천군마들이 협로의 중간 부근, 이틀 전 여상락이 당한 그 위치를 막 통과하려는 즈음!
까마득히 발치 아래로 그들의 질주가 내려다보이는 계곡 위에 실로 경악스럽기 그지없는 정경이 벌어졌다.
“흐흐... 역시 맏형의 이야기가 옳았군!”
스읏...!
홀연 가파른 계곡위에 한 무리의 정체불명의 인영들이 섬뜩하게 웃으며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아니, 나타났다고 하기보다 오래전부터 잠복하고 있었다고 보는 게 차라리 더 옳았다.
입증이라도 이들은 절벽 위 양편 곳곳에 집 채 만한 바위들을 마련하고 언제 건 밀어낼 채비를 해놓고 있었던 것!
뿐만 아니라 사방에 수백 개가 넘는 기름통까지 준비하고 있는 형상.
행색은 각양각색, 농부의 차림을 한 이가 있나하면 산인(山人) 혹은 상인의 차림을 한 이도 있었다.
공통점은 한결같이 눈만 삐죽이 바깥으로 내놓은 채 면사로 얼굴을 가렸다는 것과, 이상할 만치 노출된 눈빛들이 감정을 지니지 않았다는 것.
한데 정작 보다 더 놀라운 것은...!
중간쯤에 선, 이 각양각색의 행색을 한 인물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몇몇 인물들이었다.
그들만은 이 중에서도 유독 얼굴을 가리지 않은 모습으로 서 있었는데, 경악스럽게도 한쪽 뺨에 지렁이가 꿈틀대듯 보기조차 섬뜩한 검흔이 있는 사십 중반의 사내 하나!
또한 손에 파초선과 같은 큰 부채를 든 눈같이 흰 궁장 차림의 삼십대 여인이 하나, 그리고 팔 척이 넘을 듯한 엄청난 거구에 손에는 청룡언월도를 든 호랑이 같은 얼굴을 가진 사내가 서 있지 아니 한가?
맙소사...!
우화동녀 구문옥과 호면천황 진광! 그리고 살무흔 이소량이었다.
혼천소마 중에서도 최상위에 올라있는 인물들...!
그야말로 소름이 쭉, 끼칠만한 일이었다.
하다면 이들은 사전에 무림맹의 인물들이 이 협곡을 지나갈 것을 미리 계산하고 미리 이곳에서 매복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는데...!
하나 여만옥, 설궁도를 위시한 일천여 인물들이 이런 사실을 알 리가 없다.
연신 말에 채찍질을 가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좀 더 속도를 내라! 압박이 시작되기 전까지 우리는 중심으로 들어가 있어야 한다!”
이소량의 시뻘건 검상이 순간 섬뜩하게 꿈틀거렸다.
“흐흐흐... 실로 대단해...! 이곳을 지키고 있으면 크게 덕을 볼 일이 있을 것이라 하더니만... 분명 저게 철기보, 외삼당의 무리렸다?”
진광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맞는 것 같긴 하지만... 한데 어쩌려고? 이렇게 위에서 공격하려고...?”
물으나 마나한 소리.
이소량이 키득키득, 까마귀 소리로 웃었다.
“당연하지! 그러려고 잠복해 있었던 게 아닌가? 이런 기회란 좀처럼 있을 수 없네! 삼당의 일천 기마가 몰살당하면 제 아무리 무림맹이라도 허리가 휘청거릴 수밖에 없을 테니!”
진광의 어깨가 부르르, 절로 몸서리쳐졌다.
“그렇긴 하지만... 왠지 난 내키지가 않아. 맞붙어 싸우는 것이라면 몰라도 이런 습격은 처음이라...!”
이소량의 뺨에 난 시뻘건 칼자국이 멋대로 꿈틀거리며 입가에 떠오른 까마귀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히히히... 농담도 잘하는군! 놈들은 무림맹에서도 최정예에 속하는 고수들이야. 아무리 우리 소마가 강하다 해도 저런 놈들을 정면으로 맞아 싸울 수 있을 성이나 싶던가?”
계곡의 중심부까지 들어오자 망설일 것도 없다는 듯 호통을 터뜨렸다.
“몰살시킨다! 낙석(落石)을 굴려라!”
순간이었다.
콰드드득...!
집채만한 바위가 움직이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실로 엄청난 광경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계곡 양편에 미리 잠복했던 무리들이 대답조차 없이, 그대로 준비했던 집 채 만한 바위들을 아래로 밀어붙였던 것!
“크히히히... 놈들...! 모조리 어육덩어리나 되거라!”
같은 찰나였다.
콰르르릉- 쾅-!
백 척 절벽의 사방에서 절로 우둘우둘 소름이 돋을만한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천둥치듯 한 굉음이 연거푸 사방에서 터지며, 굴러 내린 바위들이 삽시간에 새카맣게 하늘을 가리며 치달리는 무림맹 군마들의 머리위로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던 것!
“훕...! 갑자기 무슨 소리...!?”
이에 가장 먼저 경악한 것은 앞장 서 치달리던 여만옥과 설궁도였다.
한시바삐 사문성에 도착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오로지 달리기에 급급했던 그들로서는 설마 이런 사태가 기다리고 있으리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
이에 놀란 그들은 비로소 혼비백산을 금치 못하며 급급히 고개를 쳐들어 올렸는데...!
하지만 대처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와르르릉... 쾅!
“으아악... 낙석이다!”
히히히히힝...!
그러했다.
고개를 쳐들어 보는 순간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 집 채 만한 낙석들은 어느새 그들의 정수리 위 까지 빗발치듯 덮쳐오고 있었던 것!
“위험하다! 피해!”
여만옥과 설궁도 등 일천 군마들의 안색이 순간 사색으로 돌변했다.
“와아앗...!”
하지만 좌우가 막힌 그 비좁은 협로에서 이 많은 군마가 피한들 어디로 가겠는가?
이에 일천 군마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 대혼란을 빚는 순간!
쾅! 쾅! 쾅! 쾅! 쾅...!
“으아아아아악...!”
히히히히힝...!
벼락 치는 굉음이 사방에서 일어나며 삽시간에 협곡 아래는 완전 생지옥으로 화하고 말았다.
퍼부어져 내려온 집 채 만한 바위들이 삽시간에 사람과 말들을 그대로 살과 뼈가 짓뭉개진 어육(魚肉)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뿐이랴!
“으하하... 숯불구이 좋다!”
펑, 펑, 펑...!
“으아아악...! 화염통이다!”
“크아아아아아악...!
콰르르릉...!
이소량의 또 한 번의 외침과 함께 무리들은 바위를 밀어내는 한편, 준비했던 기름통에 불을 붙여 폭우처럼 아래로 집어던지기 시작했는데...!
돌벼락 불벼락...!
쾅...!
화르르릉...!
“우와아아아악...!”
“크아아아...!
히히히히히힝...!
그야말로 완전한 지옥도였다.
뇌수가 터지고 뼈와 살이 바스러지는 속에 사지가 짓뭉개졌다.
점입가경으로 하늘까지 태워버릴 듯 일러난 새빨간 불기둥!
“키히히히...! 훌륭해도 진짜 소름이 돋을 만치 너무 훌륭하군!”
이러한 계곡 아래를 내려다보며 이소량은 흥분에 전율하며 웃었다.
“히히히히...! 유목놈이 좋아해도 꽤 좋아하겠어! 입버릇 같이 소마들을 버러지 같다고 지껄여 대더니만 이것으로 우리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겠군. 크히히히히...!”
콰르릉... 쾅...!
펑, 펑, 펑...!
“으아... 아아악...!”
“크아... 아...!
끔찍한 사건이었다.
이게 진짜 인간세상인지, 혹은 지옥인지 구별이 안갈 정도의 참상...!
하지만 이들의 공격 시간은 그리 길지가 않았다.
준비한 낙석과 기름통을 다 집어 던지고 나자 잠복했던 무리들은 곧, 아래의 정황 따윈 확인할 필요도 없다는 듯, 농부차림의 인물들은 농부의 모습대로 삽과 곡괭이를 든 채, 산인은 산인의 모습대로 약초 채집망을 걸친 채, 상인은 상인의 모습대로 저마다 준비한 물건상자를 짊어진 채 유유히 사방으로 흩어져 어디론가 사라져 가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모습은 누가 봐도 무림인의 행색으로 볼 수 없었다.
화르르릉...!
“으아아아악...!”
“크아아...!”
와중에도 아래쪽은 여전히 지글지글 살을 태우며 시뻘겋게 치솟아 오르는 불기둥 속에... 온통 무서운 비명소리가 가득 찼다.
첫댓글 즐독합니다
잘밧어요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감요
즐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