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어쩐 일이야?”
평소와 다름없는 저녁.........
벌써 일년 째...........
혼자 맞이하는 저녁 밥상..........
돌덩이처럼 넘어가지 않는 밥을 묵묵히 씹어 넘긴 지수가
설거지를 막 끝냈을 때
누군가의 방문을 알리는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현관으로 달려간 지수의 눈앞에
잔뜩 술에 취해 기대고 서 있는 지한이 보였다.
가희가 있을 때는 한번도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언제나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며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던 지한이
일년 전부터 알코올 중독에라도 걸리는 건 아닌지
겁이 날 정도로 자주 술을 마셨다.
그런 모습을 보는 지수는
찢어질 듯 아파오는 가슴을 감추며 애써 담담하게 물었다.
“어............지수구나............큭큭...............지수야.............”
그래...........
나 지수야............
난 가희가 아니라 지수라고...........
그러니 제발 내 앞에서 망가진 모습 보이지 말아줘...........
너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내가 미치도록 싫어지니까............
지수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술에 취해 목소리마저 이상하게 변해버린 지한은 웃고 있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지는데 지한은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미치도록 아파 보여 지수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가희가..............보고 싶어................”
투정을 부리듯 보고 싶다는 말을 쏟아낸 지한은
커다란 덩치가 의아할 정도로 쉽게 쓰러져 버렸다.
“..............바보.............”
지한에게 하는 말인지............
지수 본인에게 하는 말인지...........
말을 하는 지수조차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단어를 중얼거리며
지수는 지한의 몸을 잡았다.
지수도 작지 않은 키였지만 지한을 옮기는 것은 힘들었다.
포대자루를 끌 듯 지한의 몸을 질질 끌며 자신의 방에 눕힌 지수는
물수건을 가져다 지한의 얼굴을 닦아주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한참을 잠든 지한의 얼굴을 바라보던 지수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와 가희의 방으로 들어갔다.
파스텔 계열 색상을 좋아하는 가희답게
은은하고 아기자기한 가희의 방.............
대학 때문에 서울로 올라오면서 얻은 아파트..........
지수는 신세를 지고 싶지 않다는 가희에게 강짜를 부려
그때부터 함께 살기 시작했다.
가희와 함께 사는 내내 지수는 행복했었다.
가희는 옆에서 보는 사람까지도
행복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지수는 가희의 방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손때 묻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작은 액자에는
가희와 가희의 엄마가 함께 찍은 사진과
지수와 함께 찍은 사진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아줌마, 가희 잘 있는 거죠?”
서글픔이 묻어나는 음성으로 사진에 대고 중얼거린 지수는
책상 서랍을 열어보았다.
맨 위에 올려져 있는 통장을 꺼내 펼쳐 보았다.
보상금과 보험금까지 합쳐져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돈이 들어있는 통장을
지수는 서글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처음 입금이 된 날 이후로
단 한번도 인출하지 않은 돈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통장.........
그것이 가희에게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지수였기에
매일 아르바이트에 공부에 단 하루도 쉴 날이 없을 정도로 고생하던 가희를
제대로 말리지도 못했었다.
한참동안 통장을 바라보던 지수는
그것이 마치 가희라도 되는 양 품에 안았다.
그리고 통장을 품에 안으며 지수는 오래 된 기억을 끄집어냈다.
친구의 슬픔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눈물만 흘려야 했던 때를.............
그날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이었다.
대학이 모두 결정되고 지옥 같던 입시전쟁에서도 해방되어
이제 남은 시간은 신나게 노는 일만 남았던 그 무렵..........
졸업식이라는 설렘도 잠시.............
사색이 된 얼굴로 가희를 찾은 담임선생님의 말씀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창백하게 질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가희의 모습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휘청거리는 가희를 꼭 붙들고 놓지 않던 지수의 손이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쓰러졌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을 만큼
가희는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놀라기는 지수도 마찬가지였지만
지수마저 같이 무너져 내릴 수는 없었다.
지수는 혼이라도 빠져나간 듯 멍하게 넋 놓고 있는 가희를 이끌고
응급실로 달려갔었다.
“엄마!!!!!!!!!!!!!!!!!!!!!!!!!”
교통사고를 당한 가희의 엄마 정화의 모습은 처참했다.
“가희...........사랑............하는...............헉............내...........딸.................”
의식이 없던 정화는 마지막임을 예감했었는지...........
가희가 오자 힘겹게 입을 열었다.
“엄마!!!!!!!!!!!!!!!!! 말 하지 마..........
아무런 말 하지 마.............흑..........”
지수는 입술을 깨물며 가희와 정화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가희가 느끼는 두려움이 지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
가희에게 정화가 어떤 존재인지...........
정화는 가희에게 있어 목숨 보다 더 소중한 엄마였다.
그런 정화가 떠나 버릴까봐 두려워하는 가희의 마음이
너무나 생생하게 전해져
지수의 눈에서도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 내렸다.
“빛처럼.............밝게...............헉.............예쁘게.............”
“엄마!!!!! 제발...............아니지..........??
.............이렇게 가는 거 아니지???”
가희는 피투성이가 된 정화를 끌어안고 오열했다.
졸업식을 위해 정화가 무리를 해서 사 준 하얀 코트 위에
피가 범벅이 되는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정화만 무사하다면.............
옷쯤이야 넝마를 걸치고 살아도 상관없으리라는 것을 지수도 알고 있었다.
졸업식 전날 가희의 집에 놀러 갔을 때...........
고생하는 정화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새 옷을 들고
남들처럼 마냥 좋아하지도 못하던 친구의 모습이 떠올라
지수의 마음은 자꾸만 미어졌다.
“네가..........사랑하는............사람이 아닌...........헉헉............너를..............
사랑하는...........사람에게...........너만을..............헉........사랑해..............주는
그런...........헉...............사람에게.............가렴..............”
유언 같은 정화의 말에 가희도 지수도 한없이 무너져 내렸다.
“엄마!!!!!!!!!! 나 엄마가 원하는 건 뭐든지............할게.............흑.............
제발...........제발............엄마!!!!!!!!!!!!!!”
“절대...........절대..............엄마처럼.............살지는..........헉......................”
정화는 험한 세상에 홀로 남겨질 천금같은 딸 가희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마지막 순간까지 눈도 감지 못하고 떠났다.
절대 엄마처럼 살지는 말라는 그 말조차 끝맺지 못하고............
정화의 눈은 지수에게 가희를 지켜 달라 말하는 것 같았다.
“엄마!!!!!!!!!!!!!!!!!!!!! 아니지??? 우리 엄마............죽은 거 아니지??????????............
엄마..............흑흑...........나 대학생 되고.............선생님도 되고.............
시집가는 것도 봐야 하잖아................흑흑...............엄마 나 놀리는 거지???”
이미 육신과 혼이 분리된 정화의 시신을 끌어안고 가희는 절규했다.
울고...........또 울고...........
그렇게 울다가 지쳐버려 탈진해 쓰러지는 순간까지
가희는 중얼거렸다.
“조금만.............조금만.............더 기다리지 그랬어.............
우리 엄마...........내가 호강 시켜 줄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리지..........”
쉬어버리고............갈라진 음성.............
살아있는 사람의 음성이라고 차마 생각할 수없을 만큼..........
그렇게 텅 빈.............
작은 음성을 끝으로 가희는 정신을 잃었다.
그때부터 가희는 살아있는 시체나 다름없었다.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말을 하지도 않았으며 미소조차 잃어버렸다.
알맹이 없는 빈껍데기처럼 무기력하고 아픈 모습이었다.
곁에서 지켜보는 지수는
사랑하는 친구의 아픔을 대신 짊어져 줄 수 없는 것이
미치도록 원망스러웠다.
“돈은 얼마나 드리면 되겠습니까.”
“돈이라뇨?”
“합의금 말입니다. 아직 어린 학생인데.........
앞날을 위해서라도 그냥 우리 선에서 합의를 하시는 게
현명한 일 아니겠습니까?”
사고를 낸 사람의 말은 너무나 당당하게 들려왔다.
지수는 울컥하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삼켜야 했다.
그 사람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가희는 말 그대로 빈털터리였고
이 상태라면 대학도 포기해야 할런지도 몰랐다.
생각 같아서는 법의 심판을 받게 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돌아가신 분이 살아 돌아오지는 않는다.
이 사람 말대로 돈이라도 받아서
가희가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가희를 위해서는 옳은 선택이리라..............
지수는 여전히 넋이 나간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가희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여리고 착한 친구..........
가진 것 하나 없지만...........
이제는 고아까지 되어 버렸지만.......
그냥 가만히 있어도 빛이 나는 친구............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약한 친구..............
무슨 일이 생기든 지켜줘야 할 소중한 친구...........
지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가............
지켜 줄게..........
내가 너희 어머님 대신 너의 울타리가 되어 줄게............
지수는 그 사람에게서 받은 돈이 가희의 힘이 되어주길 바랐다.
그러나 가희는 그 돈을 건드리지 않았다.
언젠가 아르바이트에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온 가희에게
지수는 화를 벌컥 냈다.
“돈도 있으면서 이렇게까지 너를 혹사시키는 이유가 뭐야?
편하게 공부만 해도 될 만큼 충분하고도 남는 돈이잖아.”
서랍에서 찾아낸 통장을 가희의 눈앞에 들이밀며 소리치는 지수에게
가희는 힘없는 웃음을 돌려주며 말했었다.
“엄마의 목숨 값으로 호강하고 싶지 않아.”
평소의 가희답지 않게 단호했다.
언제나 자신보다 남을 먼저 배려해주고
어떤 상황이든 단 한번의 불평도 없이 웃어주던 친구..........
너무나 투명하고 맑아서
언제까지고 지켜줘야만 할 것 같은 여린 친구 가희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난..........이렇게 바쁘게 일하는 게 좋아........
다른 생각할 여유가 없잖아..........그러니까 너도 화내지 마.”
조용히 미소 지으며 대꾸하는 가희의 모습에 지수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자신의 소중한 친구 가희가 아무런 상처 없이
행복하기만을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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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 늦었네요~~
사실은 지금 이시간까지 일했어요....
일명 막노동...............ㅠㅠ
ㅋㅋㅋ
진짜 막노동 한건 아니구요...
요즘 울집 인테리어 공사중이라서요.....
에고에고~허리 아푸당.....ㅠㅠ
즐거운 밤 되세요~~~
후다다다닥~~~~~
카페 게시글
로맨스 소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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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눗방울 1부-[8화]
은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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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1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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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랬군요...얼마나 보고 싶고 그립더라니..ㅋㅋㅋㅋ....은설화님 항상 행복하세요...^_^**
장미님께는 항상 감사해 하고 있어요~~ 잊지 않고 기억해 주시고 찾아주셔서 넘넘 감사드려요~~~장미님도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