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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5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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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그녀들은 모두 어디에
그산 추천 1 조회 414 23.09.14 16:29 댓글 2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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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3.09.14 16:45

    첫댓글 엄마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그녀를 누나라고
    부르면 족보가 쫌 꼬이는거 아닌가요
    중딩만 되었어도 그산님도 충분히 다락방에 올라갈 수 있었을텐데

  • 작성자 23.09.14 16:50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족보입니다.
    우리보다 10여년 많았고 우리 어머니보다는 10여년 아래였던것 같습니다
    둘이 다락방에서 비밀이야기를 하는줄만 알았지 그이상은 몰랐습니다 ^^

  • 23.09.14 16:56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안에는
    이상한 변태들도 있었지요.
    그때는 너무 부끄러워서
    몸만 이리저리 돌리면서 피하려고 애쓰고 ㅜㅜ

    차장들은 그 비좁은 틈을 뚫고 다니면서
    차비는 따박따박 빼놓지 않고 다 받고
    정말 신통방통 했지요.ㅋㅋ

  • 작성자 23.09.14 17:11

    그시절 차장들은 모두 슈퍼우먼이나 원더걸스 들입니다
    배치기로 남자들 서너명을 받치면서 차에 매달린채로 가는일이 흔했으니까요
    우리 막내이모도 어느날 어떤 변태가 몸을 들이댄채로 있다가 버스에서 따라내려
    울면서 집에 온적도 있습니다

  • 23.09.14 17:07

    버스차장하면서 꼬불쳐둔 토큰을 쥐여주던 제 친구는
    목사사모님이 되었다가 이제는 하늘의 별이 되었네요.
    그때 그 시절
    그 사람들...
    모두 일선에서 물러난 지 오래.
    다들 행복한 노후가 되시길 빌어봅니다.

  • 작성자 23.09.14 17:21

    그바쁘고 힘든 와중에도 삥땅을 칠수 있었나 봅니다
    차장과 운전사가 짜고 돈을 빼돌리기도 하고 운전사가 삥땅치는 차장을 협박하여
    여관에 데려가기도 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회수권을 오려서 내기도 했고 학교앞 분식점은 회수권도 받았습니다
    이제는 모두 60대후반이상 나이가 되어 그시절을 회상하실거 같습니다

  • 23.09.15 06:52

    그때는 직업이 은행원이 제일인 줄 알았고
    누구네 딸래미는 서울 은행에서 돈을 떡주무르듯이 만진다면서
    동네방네 자랑을 했었지요
    대부분 국민학교 졸업하면 부산 신발공장이나
    서울 뺀찌 공장으로 시골을 떠났고
    추석이나 설명절에는 양손에 종합 선물셋트를 들고 고향을 찾아왔던
    우리들의 언니와 오빠들이었습니다
    선물로 보내온 내복 한벌에 행복 해 하던
    그 시절이 따뜻하고 행복 했습니다

  • 작성자 23.09.14 17:26

    맞습니다. 여상나와 은행에 들어가는게 가난한집 아이들의 최대 목표였습니다
    그시절 서울역에 나가면 보따리를 옆에 끼고 무조건 상경하는 14.5세 정도의 여자아이들을
    흔하게 볼수 있었고 명절때는 기차짐칸에도 올라타고 차창에 매달려 고향에 가기도 했었죠
    모두가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던 아련한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 23.09.14 17:22

    그리 오래전도 아닌데
    까마득한 옛 일 같습니다

    그게 우리 주변 이야기였고
    우리들의 현실이었고...하지만
    이제는 역사가 되어버렸네요...

    쓸프지만 짠~~한 이야기입니다.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Long time ago.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Young girls have picked them every one

    Where have all the young girls gone,
    Long time passing

    Where have all the young girls gone,
    gone to husbands every one.

  • 작성자 23.09.14 17:41

    그렇습니다 불과 사오십년전의 얘기입니다
    요즘 아이들에겐 6.25나 임진왜란처럼 먼옛날의 얘기로 들릴겁니다
    모두가 가난했기에 불평이 적었고 열심히 일해 성공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지요
    말씀 하신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올려 드립니다.

    https://youtu.be/IeNZy8gGh2I?si=RfChh-WxhOOevGQ8

  • 23.09.14 17:23

    그 당시 버스 차장들 억세고 힘도 좋았습니다

    나는 버스 차장 출신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분들이 없어서 아쉽습니다

    마찬가지로 식모도 이하 동문

    지금은 다들 잘 살고 있겠지요?

    충성 우하하하하하

  • 작성자 23.09.14 17:42

    반갑습니다. 그당시 차장들은 모두 힘이 장사였던것 같습니다
    어떻게 20전후의 어린 아가씨들이 그런 힘을 발휘했는지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지금생각하면 집에 가서 끙끙앓거나 몸살나지 않았나 걱정됩니다
    그런 의지력으로 모두 잘살고 있으리라 봅니다

  • 23.09.14 18:39

    짖꿎은 남학생들 7명이 버스를 타면서
    이칠이 십이(2×7=12)하면서 은근슬쩍
    차비를 덜줘도 가방끈 짧은 차장은
    그냥 속기도 했구요

  • 작성자 23.09.14 20:56

    반갑습니다. 그런일도 있었군요. 출퇴근시간 수십명이 타는데도
    버스비를 다받아내는 차장들 정말 초인적인 능력자였습니다

  • 23.09.14 20:02

    어느곳 에서든 그시절 열심이셨던 것처럼
    성실하게 살고들 계실 겁니다

  • 작성자 23.09.14 20:57

    반갑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사셨던 분들은 다른 일에도
    열성적으로 일하셨을겁니다

  • 23.09.14 20:06

    내 국민핵교, 중핵교, 고등핵교 시절 이야그네요.
    1960~1980년대 이야그죠.

  • 작성자 23.09.14 20:58

    네 그렇습니다
    저는 80년대 중반 서울을 떠나 강원도 산골로 갔는데
    아마 그무렵 버스차장제가 없어졌을겁니다

  • 23.09.14 20:47

    처음 고속뻐스기사 채용당시
    항공기 기장 복장 비슷
    안내양도 폼나는 직업이였네요

    아~~~그때 내짝지.
    진주 어딘가가 고향인
    정아 라는 그 처녀
    지금은 나처럼 어딘가에서 늙어가고있겠네요

    한번 보고싶다
    정아야.

  • 작성자 23.09.14 21:00

    반갑습니다. 고속버스 처음 시행할때 기사들도 멋진 근무복을 입었고
    안내양들은 스튜어디스만큼 인기직종이라 공채로 모집했던걸로 기억납니다

  • 23.09.14 21:03

    네 잘 보았습니다.

  • 작성자 23.09.14 21:06

    네 감사합니다. 즐거운 저녁 되시기 바랍니다 !

  • 23.09.14 21:29

    존덴버 Today~ 버스차장 소녀들
    옛 생각 그 시절이 아프게 회상됩니다 그산님 고마워요~

  • 작성자 23.09.14 21:55

    반갑습니다. 오늘 여회원들의 다방관련 이야기를 보고 그시절 그누나들이 생각났습니다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이제는 오랜세월이 흘러 담담하게 회상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 23.09.14 21:39

    가슴아픈 이야기들 ㆍ
    그 누나들 다 어디로갔는지 ~~~
    가난이 죄였던 시대이야기 ㆍ

  • 작성자 23.09.14 21:56

    반갑습니다
    작은 보따리 하나 들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던 그누나들
    이제는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고 계시길 바래봅니다

  • 23.09.15 00:22

    엊그제 50여년만에 만난 집안의 언니가
    서울에서 남의 집 살이를 하는데
    주인 집 아들 둘이 조금 크니까 즈그 부모님들만 집을 비우면
    쭈물러대서 못살것더랍니다. 그래서 도망나와서 식당일을 했다고 하더군요.

  • 작성자 23.09.15 08:12

    반갑습니다. 그시절 그런일이 흔했을겁니다
    안주인한테 매맞고 쫒겨나기도 했고 그분들의 인권을 보호해주는
    장치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새삼 그시절을 살아오신 우리들의 언니 누나에게
    감사와 존경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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