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졸업장보다 독서하는 습관이 더 중요하다.
마이크로소프트사 창업주 빌 게이트의
이 말은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대학으로 일컬어지는
대학의 졸업장보다
스스로 책을 읽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그만큼 독서가 인간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뜻 입니다.
그는 하루 한 시간씩, 주말에는 서너시간씩
꼭 책을 읽는 독서광 이었습니다.
그는 디지털시대의 선도자 이면서도
"컴퓨터가 책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내가 살던 마을의 작은 도서관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라고 말합니다.
굳이 빌 게이츠의 말을 예로 들지않더라도
책과 독서에 관한 명언은 수없이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명언, '책속에 길이 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에서 부터
'밥은 거지를 만들고 책은 부자를 만든다.'
'책이 없는 백만장자가 되기보다
차라리 책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거지가 되는게 한결 낫다'
'책 두 권을 읽은 사람은 책 한 권을 읽은 사람을 지배한다'
'책 읽을 시간이 없으면 책을 쓰다듬기라도 하라'
'구해놓은 책을 읽지 않으면 저승가서
그 책들을 두 손으로 높이 들고 서 있어야 한다.'
'책을 천하게 여기는 것은
아버지를 천하게 여기는 것과 같다'
'나는 한 시간의 독서로 시들어지지 않는
그 어떤 슬픔도 경험하지 못했다'
등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더 열거할 수 없습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책의 소중함과
독서의 필연성을 강조하는 명언 입니다.
오늘 저는 독서의 중요성을 일깨울 수 있는
여러 인물중에서
제가 존경하는 우리나라의 인물
세 분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조선시대의 위대한 문장가 김 만중은
아버지 김 익겸이 1637년 정축호란 중
강화도에서 순절하고
어머니 해평윤씨가 만삭의 몸으로 피난선을 타고
피난 갈 때 갑판 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 윤씨는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라는 아들을 볼 때마다
무엇보다도 엄한 독서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때 배우지 않고 사는 것은
빨리 죽는 것보다 못하다"면서 아들에게
책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해 주려고 노력 했습니다.
결코 넉넉한 살림이 아니었지만
아들에게 필요한 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면
값의 고저를 묻지 않았습니다.
이웃에 사는 홍문관 서리에게 책을 빌려
손수 필사본을 만들기도 하고
들에 나가 곡식을 거둔 돈으로
<논어> <맹자>등의 고서를 구하기도 하고
직접 짠 명주를 팔아 <춘추좌씨전 >을 사서
아들에게 읽히기도 했습니다.
스승을 구할 형편이 못돼 <소학> <사략> <당율>등을
직접 가르기도 했습니다.
손끝에 피멍이 맺힐 정도로 고된 일에
잠 못 이루는 날도 많았지만
그럴수록 마음을 다 잡으며
아들에게 당부 했습니다.
"너는 남과 다르니 배움에 한층 깊어야 한다. "
이런 어머니의 헌신적인 가르침 속에서 자란 김 만중은
훗날 <구운몽> <사씨남정기>등의 소설과
<서포만필>등의 평론집으로
우리나라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김 만중이 이렇게 한국고전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불후의 명작을 남기게 된 것은
바로 독서의 힘 때문입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심어준 독서의 힘이
김 만중의 일생을 뜻 깊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만일 김 만중이 책 읽기를 게을리 했더라면,
오늘날 한국고전 문학사의 한 획을 긋는 인물로
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사형 집행이 있기 전 ,
안 중근 의사의 마지막 소원은
읽던 책을 마저 읽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형이 선고된 후 안의사는
여순감옥에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안 의사는 항소를 포기하고
그곳에서 <동양평화론>을 저술하여
후세에 거사의 진정한 이유를 남기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동양평화론> 집필을 끝낼 때까지
사형집행을 연기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일본은 이를 무시하고 사형을 집행 했습니다.
사형을 집행하기 전에는
사형수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관행이어서
사형집행인이 안 중근 의사에게
"마지막 소원이 무엇입니까?" 물으니
"5분만 시간을 주십시오,
책을 다 읽지 못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남길 유언은 없으나
다만 내가 한 일은 동양평화를 위해 한 것이므로
한 일 양국인이 서로 일치 협력하여
동양평화의 유지를 도모할 것을 바란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5분 동안 읽던 책의 마지막 부분을 다 읽고
어머니가 직접 지어주신 하얀 수의를 입고는
사형집행인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이 세상을 하직하셨습니다.
안 중근 의사가 왜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휘호를 남기셨는지
깊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함경북도 종성 고향땅을 떠나
평생 분단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다가 가신
시인 김규동 선생은 1.4 후퇴때
서울 흑석동 산꼭대기 판잣집에 살고 있다가
피난길에 나섰는데 그때 책을 지고 나섰습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전쟁과 평화> 폴 발레리 시집<해변의 묘지>
<이 상 선집> 김 기림의 <시론> 임 화 시집<현해탄>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 오 장한 시집<장벽> <나 사는곳>
그리고 성서 한 권 등이 바로 그 책들입니다.
김규동 선생은 2002년 1월호 <생활성서>에 쓴 글에서
당시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적지않은 책 가운데서
이것만은 어디로 가더라도 짊어지고 가고 싶었다.
아내가 독에 묻어두고 가면 어떻겠냐고 했으나,
나는 설레설레 고개를 젓고,
두루 필요한 책 약 백권을 묶어
큰 보따리를 만들었다.
이것을 등에 지고 길을 나서는데,
거리에는 인적을 찾아보기 어렵고,
중공군의 포성이 서울 시내 상공을 넘어
강 건너까지 은은히 울려왔다.
노량진 시장께를 지나려는데
웬 지게꾼 아저씨가 달려들어
이 무거운 짐을 선뜻 지고
앞장을 서기 시작했다.
"이 난리통에 지게를 지고 벌이를 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놀라움에
우리 내외는 그저 짐작할 따름 이었다.
"아저씨는 피난 안 가요?"하고 물으니
'피난을 어디로 갑니까?
노모가 누워 있기도 하고요.
노모를 두고 나만 떠날 수도 없고 또 갈 데도 없어요'
노량진 역까지 그는 뛰다시피 해서
무거운 책자를 져다 주었다.
그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아마 중간에서 책을 포기 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노량진 역에서는 인천부두까지 가는
군용차량이나 트럭 같은 것이 있었다.
돈만 주면 차편은 아직 구할 수 있었다.
고생끝에 나는 부산에 닿을 수 었었고,
부산에서 3년동안 피난살이를 하는 동안
아저씨가 져다준 책들을 정신 차려 읽었다.
책을 들 때마다 40대 중반의 햇볕에 검게 탄
지게꾼아저씨의 초상이 떠올랐다.
'그래, 그 지게꾼은 톨스토이 보다 위대하다'는
감동이 가슴을 치곤 했다.
50여년을 지난 지금에 있어서도
그 아저씨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고 가슴속에 살아 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한 사람 시인으로서
김 규동 선생이
책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선생에게는 한 권의 책은
목숨과 맞바꿀 만큼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책이 곧 인간이고,
책이 곧 생명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인간을 만들고 성장 시킵니다.
저도 읽고 싶은 책 한권만 있어도
제 삶이 기쁨과 생기로 가득 찹니다.
책을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책을 읽다가 밑줄을 그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지고 배가 부를 때가 있습니다.
지하철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밑줄친 그 한 구절이
저를 행복하게 해줄 때가 있습니다.
그 행복은 특히 타산지석의 가르침을 줍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으면서
제 내면의 생각을 성찰하게 합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다양하고 깊이 있게
책을 읽으려고 합니다.
단편적 지식이나 생각은
단편적 사고를 하게 만들고
전문성을 결여 시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책을 단 한권만 읽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단 한 권 읽은 책속에 있는 진실만이
진실이라고 믿게 돼
그만큼 인생의 진실 범위가
좁아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시인 정호승님의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