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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지 않은 수도사>
"요즘 어때?" 누군가 이렇게 물으면 우리는 거의 반사적으로 대답한다. "괜찮아." 그런데 정말 괜찮은 걸까. 이 짧은 인사 속에는 묘한 방어 기제가 숨어 있다. 괜찮다는 말은 상대를 안심시키는 동시에 자신을 보호하는 장치다. 괜찮지 않다고 말하려면 우리는 무언가를 설명해야 하고, 설명하려면 자기 안의 균열을 드러내야 하며, 균열을 드러내면, 우리는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아니, 괜찮지 않다는 사실조차 잘 모르겠다고 느끼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이상한 일이다. 우리 시대만큼 괜찮음을 강조하는 시대도 드물다. 서점에 가보면 자기긍정과 자기수용을 말하는 책들이 넘쳐난다. "당신은 이미 충분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 아름답습니다." 이런 문장들이 머그컵에 새겨지고, 인스타그램 피드를 장식하고, 상담실의 첫 마디가 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말을 이토록 자주, 이토록 다양한 통로로 들어야 하는 걸까. 혹시 이 말을 반복할수록 더 불안해지는 것은 아닐까? 정말로 충분한 사람은 자기에게 넌 충분하다고 굳이 말해줄 필요가 없다. 그 말을 자꾸 필요로 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어딘가 균열이 있다는 증거 아닐까?
500여 년 전, 독일 에르푸르트의 한 수도원에도 괜찮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마르틴 루터. 지금은 종교개혁의 영웅으로 기억되지만, 스물두 살에 수도원 문을 두드린 그 청년은 영웅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불안한 사람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기 자신 앞에서 도무지 괜찮을 수 없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바로 이 괜찮지 않음이 훗날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는다. 어떤 이야기든 시작점이 있는데, 이 제부터 시작할 이야기의 출발선은 영웅의 결단이 아니라 한 인간의 불안이다.
뇌우와 서원
1505년 7월 2일, 에르푸르트 근처 슈토테른하임 벌판에서 있었던 일이다. 법학을 공부하던 청년 루터가 부모의 집에서 대학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격렬한 뇌우가 쏟아졌고, 번개가 바로 곁에 내리꽂혔다.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루터는 땅에 엎드려 광부들의 수호성인을 불렀다. "성 안나여, 살려주소서. 수도사가 되겠습니다." 이 서원은 분명 죽음의 공포에서 터져 나온 외침이었지만, 단지 번개 때문만은 아니었다. 루터의 아버지 한스는 만스펠트의 광산업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이었고, 아들을 법률가로 키워 가문의 신분 상승을 이루려는 꿈을 품고 있었다. 아버지의 계획대로라면, 에르푸르트 대학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이 아들이야말로 출세의 길 위에 올라선 셈이었다. 그러나 정작 루터의 내면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른 종류의 뇌우가 치고 있었다. 과연 내 삶은 하나님 앞에서 괜찮은가 하는 질문이었다.
벌판의 번개는 어쩌면 이 내면의 질문이 바깥으로 터져 나올 빌미였을 뿐인지도 모른다. 2주 뒤인 7월 17일, 루터는 친구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수도원에 입회했다. 전날 밤 친구들을 불러 마지막 식사를 함께 나누었다고 전해지는데, 마치 세속의 삶에 작별을 고하는 만찬 같았다. 아버지 한스는 격노했다. 아들의 교육에 쏟아 부은 세월과 비용이 수도원 담장 너머로 사라지는 일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루터에게 수도사가 되는 일은 세속의 출세보다 훨씬 절박한 문제였다. 영혼의 구원과 하나님 앞에서의 의로움은 중세인에게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가장 실질적인 관심사였다. 죽은 뒤 연옥의 불 속에서 얼마나 오래 정화되어야 하는가, 혹은 영원한 형벌을 피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삶의 가장 밑바닥에 깔린 불안이었고, 수도원은 그 불안에 대한 가장 확실한 응답으로 여겨졌다. 그곳이야 말로 속세를 떠나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머무는 자리였으니 말이다.
수도원의 어둠
수도원에 들어간 루터는 가장 엄격한 규율을 따랐다. 그가 속한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엄수파는 결코 느슨한 공동체가 아니었다. 하루 일곱 차례 돌아오는 정시기도, 한밤중부터 저녁까지 빈틈없이 짜인 일과, 거기에 금식과 육체적 고행과 긴 침묵의 시간이 더해졌다. 수도사들은 겨우 한 사람이 누울 만한 크기의 독방에서, 난방도 없이 잠을 청했다. 루터는 이 모든 것을 성실하게, 아니 과도하게 수행했다. 한겨울에도 여분의 담요를 마다하고, 몸이 상할 정도로 금식했다. 훗날 비텐베르크에서 건강이 무너졌을 때 그는 수도원 시절의 지나친 고행을 그 원인으로 꼽기도 했다.
그런데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이 모든 노력 때문에, 루터의 내면은 점점 더 황폐해졌다. 그 황폐함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자리가 고해성사였다. 중세 교회에서 고해는 죄를 빠짐없이 고백하고 사제의 사면을 받아 양심의 평화를 얻는 통로였다. 그런데 루터에게는 이 평화의 통로가 도리어 고문대가 되었다. 그는 사소한 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한 번 고해에 여러 시간을 매달렸다. 고해를 마치고 돌아서는 순간 미처 말하지 못한 죄가 떠오르면 다시 고해실로 뛰어 들어갔다. 입으로 지은 죄와 손으로 지은 죄만이 아니라, 마음속을 스쳐간 불경한 생각, 기도 중에 흐트러진 집중,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까지도 모조리 고백의 대상이 되었다. 끝이 없는 일이었다. 죄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더 많은 죄가 보였고, 더 많이 고백할수록 고백하지 못한 죄가 더 또렷이 떠올랐다.
그의 고해 사제이자 영적 지도자였던 요한 폰 슈타우피츠가 이 끝없는 고해에 진저리를 칠 지경이었다. 어느 날 슈타우피츠는 루터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사소한 일로 자꾸 찾아오지 말고 차라리 살인이나 간음처럼 정말 고백할 만한 큰 죄를 짓고 오라고 말이다. 무자비한 핀잔처럼 들리는 이 말 속에는 사실 깊은 통찰이 숨어 있었다.
슈타우피츠는 루터의 문제가 죄가 너무 많은 데 있지 않다는 것을 꿰뚫어 보았다. 문제는 루터가 끝내 놓지 못하는 어떤 구조, 곧 자기 안의 의로움을 자기 손으로 완성하려는 그 안간힘에 있었다. 슈타우피츠는 또 이렇게도 말했다. 하나님이 너에게 화가 나신 것이 아니라, 네가 하나님에게 화가 나 있는 것이라고. 루터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했다. 아니, 사랑하려 했지만 할 수 없었다. 그에게 하나님은 무엇보다 의로운 심판자였기 때문이다.
이 공포가 가장 날것으로 터져 나온 사건이 있다. 1507년 봄, 사제로 서품받은 루터가 처음으로 미사를 집전하던 날이었다. 미사 전문을 낭독하며 영원하시고 살아 계신 참 하나님께 아뢴다는 대목에 이르렀을 때, 그는 갑자기 몸이 굳어 제단을 뛰쳐나갈 뻔했다. 내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감히 눈을 들어 살아 계신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린단 말인가! 그것은 특정한 죄에 대한 죄책감이 아니었다. 자기 존재 자체가 그 거룩한 분 앞에 설 수 없다는 존재론적 전율이었다.
이런 불안은 루터 한 사람의 골방에만 갇혀 있던 것이 아니다. 수도원 담장 바깥에서도 교회는 같은 불안을 나름의 방식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죄를 지으면 그에 합당한 벌이 따르는데, 그 벌의 일부를 돈을 내거나 선행을 쌓아 감면받을 수 있다는 면벌부 체제가 그것이다. 천국으로 곧장 가기에는 부족하고 지옥으로 떨어지기에는 과한 영혼이 머무는 중간 지대를 연옥이라 불렀는데, 면벌부는 그 연옥에 머무는 기간을 줄여준다고 여겨졌다. 사람들은 자신과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의 영혼을 위해 면벌부를 사들였다. 불안이 클수록 더 많은 것을 바쳐야 했고, 더 많이 바칠수록 충분히 했는가 하는 물음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수도원 안에서 루터가 고해와 고행으로 자기 의로움을 쌓으려 했다면, 수도원 밖의 평신도는 면벌부와 순례와 미사 예물로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자리만 달랐을 뿐, 인간이 무언가를 끊임없이 증명해야만 하나님 앞에서 견딜 수 있다는 그 논리는 동일했다.
루터의 비극은 누구보다 이 논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는 데 있었다. 그는 체계가 요구하는 것을 적당히 흉내 내는 데서 멈추지 못했다. 끝까지 가보았고, 그 끝에서 길이 막혀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확인했다.
가장 성실한 자가 가장 불안하다
루터가 겪은 이 불안을 두고, 그가 유난히 예민하고 강박적인 사람이었던 탓이라고 넘겨짚기 쉽다. 실제로 그가 동료 수도사들보다 양심의 문제에 훨씬 민감했던 것은 사실이다. 20세기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은 『청년 루터』에서 루터의 영적 위기를 아버지와의 갈등에서 비롯된 정체성 위기로 풀어내기도 했다[Erik H. Erikson, Young Man Luther: A Study in Psychoanalysis and History (New York: Norton, 1958), 48-53.]. 흥미로운 해석이지만, 만약 루터의 불안이 순전히 한 개인의 심리 문제였다면 그것은 그저 그의 개인사로 끝났을 것이다. 루터의 불안이 역사를 흔든 까닭은, 그 불안이 한 개인의 기질을 넘어 중세 종교 체계의 구조적 모순을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 모순은 이런 것이다. 인간이 자기 행위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고 가르치는 체계 안에서는, 가장 성실한 사람이 가장 깊이 절망할 수밖에 없다. 당시 신학의 주류였던 후기 스콜라 신학, 그 가운데서도 가브리엘 비엘로 대표되는 흐름은 이렇게 가르쳤다.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다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거부하지 않으신다"(Gabriel Biel, *Collectorium circa quattuor libros Sententiarum*, II, d.27, q.1).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이 나머지를 채워주신다는 말이다. 더 쉽게 옮기면, 네가 하는 만큼 하나님이 보답하신다는 인과의 논리다. 언뜻 들으면 합리적이고 너그러운 제안 같다. 그런데 루터처럼 정직한 사람에게는 이 공식이 독이 되었다. 내가 정말 내 안에 있는 것을 다했는가? 이 질문 앞에서 그렇다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어디 있을까? 자기에게 정직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언제나 조금 더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기도할 수 있었고, 조금 더 엄격히 금식할 수 있었으며, 조금 더 깊이 회개할 수 있었다. 그러니 최선이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지평선이고, 이 공식은 가장 성실한 자를 가장 깊은 구렁으로 떠밀어 넣는다.
루터가 빠져 있던 이 상태를 가리키는 독일어 단어가 있다. 안페히퉁(Anfechtung)이다. 이 단어는 다른 말로 옮기기가 무척 어렵다. 시험과 시련, 유혹과 영적 공격, 절망적인 회의가 한데 뒤엉켜 있어서 어느 하나로는 번역되지 않는다. 굳이 풀어 쓰면 ‘전 존재를 관통하는 흔들림’ 정도가 될 것이다. 루터의 안페히퉁은 단순히 나는 죄인이라는 인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는 죄인이 아닌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아무리 노력해도 의로워질 수 없다는 존재론적 절망이었다.
이 절망의 구조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그려보자. 시험을 앞둔 학생이 있다고 하자. 시험 범위가 정해져 있고 합격선이 분명하다면, 공부를 많이 한 학생일수록 마음이 놓인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시험 범위가 네 삶 전체이고, 채점하는 이가 완전한 의로움을 요구하는 절대적 존재이며, 합격 기준이 완벽이라면 어떻게 될까? 이런 시험 앞에서는 공부를 많이 한 학생일수록, 다시 말해 자기 부족함을 더 날카롭게 인식하는 사람일수록 더 깊은 불안에 빠진다. 적게 공부한 학생은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기에 오히려 태평하다. 루터가 바로 그 성실한 학생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기준이 얼마나 높은지를 누구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그렇기에 자기 노력이 턱없이 모자라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꼈다.
여기서 묘한 역설이 생긴다. 수도원은 구원을 향한 가장 확실한 길이어야 했다. 세속의 유혹을 등지고 오직 하나님만을 향해 사는 삶, 그것이 수도 생활의 존재 이유였다. 그런데 가장 확실하다는 그 길 위에서 가장 깊은 불안이 피어올랐다. 루터보다 대충 기도하고 대충 금식하고 대충 고해하는 수도사들은 오히려 평온해 보였다. 왜 유독 루터만 이토록 괴로웠을까? 다른 수도사들이 평온했던 것은 어쩌면 하나님을 그만큼 덜 진지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적당히 규칙을 지키면 적당히 괜찮으리라는 타협 안에서 그들은 쉴 수 있었다. 그러나 루터는 ‘적당히’에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의로움이 완전한 것이라면 인간의 응답도 완전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논리를 끝까지 밀고 나가면 인간은 결코 괜찮을 수 없다. 그리고 이 논리를 끝까지 밀고 나간 사람이 바로 루터였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를 미리 풀어두자. 루터의 해법은 기준을 낮추는 게 아니었다. 너무 빡빡하게 살지 말고 적당히 하라는 식의 처세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만일 문제가 단지 루터가 너무 엄격했다는 데 있었다면, 답은 간단했을 것이다. 조금 느슨해지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느슨해진다고 불안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기준을 낮춘 사람은 낮춘 만큼 또 다른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 뿐이다. 루터가 발견하게 될 것은 기준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평가하는 저울 자체에서 내려서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출구를 발견하기까지 그는 십 년이 넘는 시간을 어둠 속에서 더듬어야 했다.
훗날 루터는 이 시절을 돌아보며, 자신이 한때 하나님의 의라는 말 자체를 미워하기까지 했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이 의로운 분이시라면 그 완전한 잣대 앞에서 불의한 인간의 운명은 더 절망적일 수밖에 없으니, 하나님이 의로우면 의로우실수록 자신은 더 깊은 구렁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무신론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님이 분명히 계시기 때문에 더 두려웠던 사람이다. 이 미움이 어떻게 정반대의 발견으로 뒤집히는가 하는 이야기는 다시 하기로 하자. 지금 분명히 해둘 것은, 종교개혁의 진짜 출발점이 영웅의 담대한 결단이 아니라 한 인간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린 절망이었다는 사실이다. 역사의 전환점은 때때로 승리의 순간이 아니라 패배의 바닥에서 만들어진다.
증명의 시대
오늘로 돌아오자.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수도원에 들어가지도 않고, 하루 일곱 번 정시기도를 드리지도 않으며, 면벌부를 사러 다니지도 않는다. 그런데 묘한 것은, 루터가 갇혀 있던 그 구조가 우리에게 조금도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형태는 바뀌었지만 뼈대는 그대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증명하며 산다. 학교에서는 성적으로, 직장에서는 성과로, SNS 피드에서는 잘 편집된 이미지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넌 뭘 했어?’라는 질문이 어느새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등식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이력서에 빈칸이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올해 무엇을 이루었는가를 떠올릴 때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행위의 실적으로 자기를 증명하는 체계 안에서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체계 안에서도 똑같은 법칙이 작동한다. 가장 성실한 자가 가장 불안하다! 대충 사는 사람은 오히려 편하다. 자기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대로 살아보려는 사람, 의미 있는 삶을 붙들려는 사람, 자기 안에 조금 더 높은 기준을 품은 사람일수록 밤이 깊어지면 어김없이 그 목소리가 찾아온다. 이 정도면 됐나? 아직 부족하지 않나?
신앙의 자리도 예외가 아니다. 진지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일수록 나는 정말 구원받은 것인가, 내 믿음은 진짜인가를 가장 깊이 캐묻는다. 가장 성실하게 헌신하는 사람이 오히려 가장 지치고 가장 불안하다면, 그것은 500년 전 수도원의 풍경과 그리 멀지 않다. 루터 시대의 면벌부는 돈으로 연옥의 형벌을 줄여주는 제도였는데, 오늘 우리의 스펙 쌓기가 일종의 사회적 면벌부처럼 기능하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돌아볼 일이다. 자격증 한 장, 어학 점수 한 줄, 수상 경력 하나가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증서 노릇을 한다. 그러나 면벌부를 아무리 사들여도 불안이 사라지지 않았던 것처럼, 스펙을 아무리 쌓아 올려도 이만하면 됐다는 안도감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교회라고 다를까? 우리는 한 사람이 좋은 신자인지 아닌지를 은연중에 눈에 보이는 것들로 가늠하곤 한다. 얼마나 자주 예배에 나오는지, 얼마나 여러 부서에서 봉사하는지, 헌금을 얼마나 드리는지, 어떤 직분을 맡고 있는지가 한 사람의 신앙을 재는 잣대처럼 작동한다. 누구도 대놓고 그렇게 말하지는 않지만, 주일성수의 빈칸이 늘면 마음이 켕기고, 남들 다 맡는 봉사에서 나만 비켜서면 신앙이 식은 사람처럼 비칠까 봐 조바심이 난다. 이런 분위기 안에서 신앙은 어느새 하나님과 나누는 관계가 아니라 공동체 앞에서 통과해야 할 평가가 되어버린다. 이것은 꼭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다. 다만 우리 모두가 알게 모르게 이 잣대 위에 서서 서로를,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가늠하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정직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수도원의 종소리가 정시기도를 재촉하던 그 자리에, 오늘은 다른 종류의 종소리가 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루터의 이야기로 오늘 우리의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루터가 수도원의 어둠 속에서 끝내 발견한 것은, 증명에 실패한 바로 그 자리에서만 들려오는 전혀 다른 종류의 소식이었다. 그러나 그 소식을 본격적으로 만나기 전에, 먼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증명의 시대를 조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루터가 수도원에서 마주한 세계가 오늘 우리에겐 어떤 모습으로 변형되어 작동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다른 어디도 아닌 교회 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똬리를 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괜찮지 않은 수도사의 이야기가 정말 우리의 이야기가 되려면, 먼저 우리가 얼마나 괜찮지 않은지를 정직하게 마주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니 말이다.
글. 최주훈
1장 끝. 내년에 보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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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