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자라난 배추에 견주어보면
나는 안이 너무 비어 있다
가장 거친 겉잎이 애초에는
가장 연한 속잎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젊은 날 오류를 알고도 부리던 성질을
나잇살 먹어도 삭히지 못하는 내가 부끄럽다
배추벌레가 배추흰나비 될 때까지
얼마나 갉아먹힌지도 모르면서
배추는 자꾸 새로 고갱이를 돋아내며
묵은 잎사귀를 여러 겹으로 겹치며
둥글게 둥글게 속이 다졌는데,
나는 일기장에 참회의 문장을 남기지 못하고
빈 공책갈피 넘기듯 생을 넘기며
일찌감치 한 권의 표지를 뜯어버렸다
배추는 저렇게 결구(結球)를 마치고 나서도
아직 속에 만들지 못한 것이 있나보다
찬 비바람을 맞고서도 쓰러지지 않는다
그 속에도 빛과 어둠이 있어서
낮이면 씨 맺을 꽃대를 준비하고
밤이면 멈추어서 조용하게 쉴까
잎사귀들로 닫혀버린 배추의 내부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나는 모르고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내 안을
날마다 가만히 들여다본다
~~
배추밭에 들렀다가 문득 이 시가 생각났다.
겉잎도 애초에는 가장 연한 속잎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지금 내가 서 있는 이때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