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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21의 에이런기사님글 폄
국민의 명령 회원 2만명 돌파 기념 우금치 민란 콘서트가 열린 11월 13일(토), 서울들불은 세종문화회관에서 12시에 모였습니다.
서울 들불은 2대의 버스로 나누어 타고 공주로 향했습니다.
공주로 가는 도중 민란회원들은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3시에 공주에 도착하여 시내 행진을 할 예정이었지만 시간이 늦어져서 바로 목적지인 공주교대에 도착했습니다.
4시에 공식행사가 시작되어 전국에서 모인 회원들이 공주교대 운동장에서 큰 원을 그리고 섰습니다.
먼저 국민의 명령 게시판에서 소개되었던 해방춤을 추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미리 연습해온 회원들은 다른 회원들의 박수로 장단을 맞추는 가운데 신나게 춤을 추었습니다.
공지한대로 각 지역에서 가져온 각종 막걸리를 함께 섞었습니다.
회원들은 하나로 합친 막걸리를 마시며 모두 하나가 되는 의식을 가졌습니다.
배우 명계남이 회원들에게 막걸리를 따라주었습니다.
김정길 전장관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문성근 민란대표는 지역들불들과 건배를 하고 사진도 같이 찍었습니다.
안희정 충북도지사가 행사장에 도착하여 민란지지 발언을 하였습니다.
안희정 도지사는 사람, 사람적 약자에 대한 사랑과 연대가 진보주의자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라며 평범한 주궍자들이 민란의 이름으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못다 간 진보의 길을 이어가는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고 하였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해가 쨍쨍 내리쬐나 먹구름이 잔뜩 하늘을 가리거나 우리가 가고자하는 이 진보의 길을 향해서 동지와 조직이 일관되게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선거에 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나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환호성 속에 기쁜 날도 맞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될 길에는 비판과 비난도 있을 것이며, 무관심도 있을 것이면 뜨거운 환호와 지지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캄캄한 이 어두운 길을 무엇을 의지하면서 걸어야 합니까? 어두운 밤바다에서 뱃사공들이 북극성을 바라보며 가듯이 우리 진보주의자들이 가야될 길은 바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람의 연대의 정신, 사람에 대한 사랑의 정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와 동지의 정신, 말못하는 저 자연까지 우리의 동지로 껴안고 사는 새로운 평화주위자의 길이 진보주의자의 길 아니겠습니까?
김대중과 노무현은 이 길의 어는 언덕길에서 넘어졌습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그 언덕길까지 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끌고 왔습니다. 그러나 그 아주 커다란 장애물 앞에 노무현은 그 수레바퀴 밑에 쓰러져야 했습니다. 바로 20세기의 진보와 보수의 낡은 전선이 결과적으로 노무현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망을 꺽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21세기의 진보의 길로 가야 합니다. 저는 지난 20세기에 혁명을 꿈꿨습니다. 혁명은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혁명을 통해서 정권을 잡으면 반대파를 숙청하거나 내몰수 있는 권리를 얻을 수 있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혁명의 길은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습니다고 있습니다.
정당과 대의민주주의라는 헌법적 질서가 우리가 지금 걸어야 될 유일한 궤도입니다. 그 궤도에서 우리는 정당정치의 새로운 출발을 하자고 간절히 염원하고 있습니다. 그 간절한 염은 정말 거창한 것도 아닙니다. '입에 쓰면 뱉도 입에 달면 삼키는 이런 몰지각한 정치 그만하자.' 아주 단순하고 소박한 우리의 간절한 염원 아닙니까? 바로 그 새로운 21세기의 출발을 위해 우리 동지들이 민란이란 이름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여기 내려오는데 트윗의 어느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연극도 아니고 무대도 아닌데 왜 민란이예요? 정치할려고 한다면서 민란은 좀 과격한 표현아닙니까?' 저는 그 글을 보면서 다시 그 분께 답을 했습니다. '정당과 모든 정치권의 기득권질서에 대해 평범한 주권자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정치적인 질서를 바라는 그 간절한 마음을 민란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저는 그렇게 답을 했습니다."
한 회원이 안희정 도지사에게 선물 목도리를 직접 매어 주었습니다.
각 지역 들불들은 풍물패의 장단과 함께 깃발을 앞세우고 운동장을 돌고 기차놀이도 하였습니다.
5시 30분경에 '민란군'은 횃불을 들고 콘서트가 열리는 우금치 마루로 가기위해 운동장을 나섰습니다.
시민주권과 노무현재단에서도 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경찰의 감시 없이 횃불을 든 시민의 행렬은 질서를 유지하며 우금치 마루를 향해 갔습니다.
6시 30분경 우금치 마루에서 콘서트가 시작되었습니다.
텔런트 맹복학이 콘서트 사회를 보앗습니다.
처음 무대에 오른 가수는 노무현대통령을 생각나게 하는 '님은 먼 곳에'를 불렀고 이자리가 다소 무거운 자리가 될 수 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이 순간을 즐겨달라며 김추자의 '그럴 수가 있나요'를 불렀습니다.
가수의 노래에 맞춰 문성근 민란대표가 해방춤을 추었습니다.
'민란군'은 민란 승리를 다짐하는 함성을 질렀습니다.
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가 분신을 한 날이기도 합니다.
국민의 명령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우금치 콘서트에 부치는 '민중의 땅 위에서'라는 시가 낭송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국민이 모두 하나가 되어 빼앗긴 국민의 주권을 되찾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기를 바라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다시 광화문에서', '우리 하나되어'를 불렀습니다.
동학민란을 그린 마당극이 이어졌습니다.
도처에서 동학군이 일본군과 관군에게 어려움을 당하자 한양으로 진격하기 위해 우금치로 집결할 것을 명한 전봉준은 하늘님에게 천명을 받은 자신의 역할을 다 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이어서 전의를 다지는 동학군의 모습이 보여집니다.
결전의 날, 동학군은 우금치를 뚫기 위해 돌진합니다.
그러나 동학군은 일본군의 총탄에 무참히 쓰러지고 맙니다.
쓰러진 동학군의 주검들 가운데 서서 전봉준의 혼은 말합니다.
"116년 전 11월 시체 위에 시체가 쌓이고 피 흘린 곳에 또 피 흘리며 우리는 이 고개를 넘고자 하였으나 결국 이 고개를 넘지 못했소. 이 땅에 외세를 몰아내고 나라와 백성을 편안케 하기 위함이었소. 그대들도 116년 전 오늘이었다면 이 곳에서 낙엽처럼 누워있었을 것이요. 내가 물어봅시다. 그대들의 조상들이 죽음으로 넘고자했던 이 고개에 모여있는 그대들은 오늘 무엇을 얻고자 함이요?"
넘어야 할 고개가 있다면 그대들은 꼭 넘으시요. 부디 죽지말고 살아남으시요. 그대들의 정신, 숭고한 뜻 스러지지 말고 꼭 살아남으시요."
녹두장군의 말이 끝나고 동학군의 넋이 116년 후 지금 백만민란군의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그리면서 마당극은 끝이 납니다.
백만민란의 공식가수가 되고 싶다는 가수 손병휘는 '나란히 가지 않아도' '강물은 똑바로 가지는 않지만 언제나 바다로 흐른다'를 불렀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부른 평화의 나무 합창단은 앵콜을 받아 '그 날이 오면'을 불렀습니다.
민란 회원들은 서로를 안마해주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한 회원이 자청하여 발언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뜻깊은 행사에 참석해서 너무 행복해요. 제가 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제가 가게를 접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이 자리에 오지 않으면 제가 평생 후회하고 살 것 같았어요.
당신은 누구를 가장 사랑하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누구라고 말할까요? 문성근님이라고 제가 말합니다. 길거리에서 비를 맞고 서있는 그 분을 봤어요. 그 사진을 보고 울었어요. 누구를 위해 그럴까요? 누구를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질까요?
그런데 나는 그 분하고 같이 하지 못해서 너무 미안했어요. 너무 내 자신만 챙기고 내 가정만 챙기고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 아닐까 많이 고민했어요. 그래서 오늘은 가게를 과감히 접고 제가 이 자리에 왔습니다.
여러분, 다음에 또 백만민란의 전국행사가 있으면 그 날은 모든 약속을 접고 우리 여기 참석해요. 그리고 2012년 백만민란이 결실을 맺는 그 날까지 우리 열심히 힘을 모으고 단결합시다. 백만 천만 갈 때까지 우리 모입시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등장하여 '백두에서 한라, 한라에서 백두로' '사계' 등을 불렀습니다.
일기 형식으로 전태일 열사에 관한 공연이 보여졌습니다. 전태일은 자신이 일하는 평화시장에서의 폐병에 걸려 피를 토하는 여공들의 열악한 작업환경과 과중한 근로시간, 저임금 등의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자료를 만들어 근로감독관을 찾아가지만 차갑게 외면당하고 맙니다.
'나는 안다. 그 서류가 쓰레기통에 있다는 것을'
11월 8일
바람이 많이 분다. 집에서 혼자 나왔다. 혼자서 걸었다. 외롭다.
11월 24일
오후 1시, 청계천 국민은행 앞 에서 데모를 하기로 결정했다. 사람들이 모였다. 형사들이 말했다. 우리를 벌레만도 못한 놈들이라고. 어떻게 사람이 벌레만도 못할 수가 있나?
11월 12일
아침이다. 어머니가 밥상을 차려주셨다. 라면이다. 라면은 언제나 맛있다. 그런데 그 라면이 왜 이렇게 먹기 싫은 걸까? 동생이 나한테 말한다. "오빠. 급한데 15일에 돈 좀 안될까? 미안해." "아니야. 내가 더 미안해." 사람들의 가슴은 어떻게 그렇게 갈기갈기 찢기는데도 그 견고한 세월을 버티는 것일까?
그리고 오늘 1970년 11월 13일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들어주게. 이 순간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나도 그대들을 영원히 잊지 않겠네. 아이들아, 어린 시다들아, 미안하다. 슬프다 너희들이 배고파하는 것이. 나도 한 때는 배가 고파서 움식을 훔쳐 먹은 적도 있다. 친구들이여, 난 이제 죽으리라. 나도 죽음이 무섭다. 하지만 이 죽음을 끝까지 견디리라. 내가 죽는 것이 우리가 죽지 않는 길이다. 친구들이여, 나를 사랑하면 내 몸에 신나를 부어다오. 성냥을 켜서 내 몸을 태워다오."
문성근 대표가 무대에 올랐습니다.
전태일 열사 분신 40주기가 되는 날 동학군의 동학민란 실패의 아픔이 서린 우금치 마루에 선 문성근 대표는 민주주의, 남북관계, 민생을 파탄 낸 이명박 정권의 심판하는 최선의 방법인 야권단일정당 창출을 기득권에 안주하는 기존 정치인들이 해낼 수 없기에 국민이 나서야 한다며 민란운동의 당위성을 말하고 전국 주요 도시를 찾아가며 펼친 80일의 백만민란운동으로 3만 3천명이 회원이 가입하고 16개 지역들불과 4개 해외들불이 조직되고 민주당 정치인들이 지지의사를 밝히고 사회 각계각층에서 지지 선언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고하며 민란 동참을 요청하는 1단계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했음을 선포했습니다.
문대표는 민란의 내용을 채우는 민란 2단계의 최우선 목표로 연말까지 5만명 회원 달성을 설정하고 '접주'를 중심으로 10명 단위에서 시작하여 30명 단위로 분화되는 지역별, 직능별 들불모임의 활성화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한편 일자리, 교육, 주택을 비롯한 여러 정책적 과제를 연구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정책들불의 추진을 위한 지식인, 전문가들의 동참을 촉구했습니다.
문대표는 마지막으로 87년 6월 항쟁을 정점으로 한 민주화 투쟁의 산물인 선거제도의 민주화를 무력화시키는 민주당의 반민주성을 질타하며 국민의 힘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자고 호소했습니다.
우리는 박정희와 전두환을 무너뜨린 국민입니다. 그 때 그 패기와 열정은 도대체 어디다 갖다 버렸단 말입니까? 그 나쁜 헌법, 그 나쁜 정권을 무너뜨린 그 패기로 저 한줌도 되지 않는 저 정당을 못바꾼단 말입니까? 그들에게 뭘 양보해달라는 것 아닙니다. 애걸하는 것 아닙니다. 그저 민주주의를 실천하자! 이렇게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 입니다. 국민의 이름으로 명령하는 것입니다.
유력한 정치인없이 총선이나 촛불 같은 전투국면이 아닌 이런 평시에 없이 불과 두 달 만에 3만 명이 넘은 것은 우리가 최초입니다. 자 이제 우리 모두 전사가 되는 겁니다. 돌아오지 않는 화살이 되는 겁니다. 이제 횃불을 들고 내 지역으로 가서 들불을 붙이는 겁니다. 그래서 전국에서 들불이 활활 타오를 때 우리는 저 한 줌도 되지 않는 정당기득권자들을 가볍게 눌러버리고 전국에서 고르게 지지받는 야권단일정당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리고 2012년에 반드시 민주진보정부를 세워낼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남북 분단을 넘어 신의주로, 시베리아로, 유럽으로 뻗어나갈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이 땅의 역사를 새로 써나가는 것입니다. 정의가 승리하는 역사를 써내려가는 것입니다. 승리하는 그 날까지 우리 끝가지 함께 가시겠습니까? (네) 이깁니다.
같이 가자! (같이 가자!) 같이 가자! (같이 가자!) 같이가자! (같이 가자!)
예비 접주들이 무대로 올라와서 각자의 각오를 밝혔습니다.
"116년을 기다려온 동학혁명을 완수하겠습니다."
"오늘 이 횃불이 8천만 겨레를 움직이는 들불이 되게 합시다."
"좋아하는 노무현대통령님이 돌아가셔서 마음에 한을 품다가 문짱님이 나서서 저도 따라가게 됐습니다.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됩니다."
"116년 전에 이루지 못한 민중의 한을 우리는 꼭 풀고 21세기 혁명을 이룰 것입니다."
"총칼 없이도 민주주의를 이뤄내는 뽄때를 보여줍시다."
"이 횃불이 사회의 낮은 곳에서 타오를 수 있는 횃불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3만이 5만이 되고 10만이 되고 50만이 되고 100만이 되는 그 날까지 열심히 뛰겠습니다."
부산에서의 거리민란운동 때 개인적으로 많은 회원 가입서를 받아 가지고 왔던 부산 민주할매는 좋은 자리에 나오라고 해서 좋고 젊은 세대들이 자신을 잘 봐줘서 고맙다면서 모두 합심하여 쥐새끼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바닷물에 던져버리자고 하였습니다.
문성근 대표가 무대에 다시 올라왔고 승리를 다짐하며 민란기를 흔들었습니다.
불꽃이 하늘을 수놓으면서 백만민란 우금치 콘서트는 막을 내렸습니다.
민중의 땅 위에서
청주농사꾼
백년전 이 땅에 사람이 하늘이었던 때가 있었다
폭정과 압제에 낫과 괭이로 맞선 사람들
그들이 곧 하늘이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목소리로
모두가 외치던 그것은
사람이 하늘인 세상!
백성이 근본인 세상!
그것 뿐이었다
오직 그것을 위해 이 땅 위에 피를 적시고
살점을 뿌렸다
그들의 눈물을 먹고 자란 저 나무들
저 산은 그들의 살점이요
저 강물은 그들의 피!
우리가 딛고선 이 땅 우금치!
이곳이 바로 역사다
역사 앞에 부끄럽지않으려
우금치에 나 지금 서있다
손에는 피로 지핀 횃불을 들고
가슴엔 울분으로 지핀 불기둥을 활활 태우며
이제 역사앞에 떳떳하게 서리라
내가 가야할 길에 마주한
독재자와 매국노의 칼날앞에서
큰 소리로 외치리라
나는 곧 우리라고!
우리가 곧 백성이라고!!
백성이 곧 하늘이라고!!!
그대 민중의 땅 우금치여
내 맹세하노라
독재와 폭력앞에 맞설 것이다
저들이 쌓은 권력의 성을 무너뜨리고
그 터마저 갈아 엎을 것이다
국민이 하늘이 될 그 날까지
투쟁의 주먹을 펴지 않으리라
민중의 땅 우금치에서
이제 우리는 하늘이 되리라!
훗날 우리는 역사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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