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천명월주인옹은 말한다. 태극(太極)이 있고 나서 음양(陰陽)이 있으므로 복희씨(伏羲氏)는 음양을 점괘로 풀이하여 이치를 밝혔고, 음양이 있고 나서 오행(五行)이 있으므로 우(禹)는 오행을 기준으로 하여 세상 다스리는 이치를 밝혀 놓았으니, 물과 달을 보고서 태극, 음양, 오행에 대해 그 이치를 깨우친 바 있었던 것이다. 즉 달은 하나뿐이고 물의 종류는 일만 개나 되지만, 물이 달빛을 받을 경우 앞 시내에도 달이요, 뒤 시내에도 달이어서 달과 시내의 수가 같게 되므로 시냇물이 일만 개면 달 역시 일만 개가 된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달은 물론 하나뿐인 것이다. 하늘과 땅이 오직 올바른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해와 달이 오직 밝음을 보여 주며, 모든 물건들이 서로 보는 것은 남방의 괘(卦)이다. 밝은 남쪽을 향하고 앉아 정사를 들었을 때 세상을 이끌어 갈 가장 좋은 방법을 나는 터득할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무(武)를 숭상하던 분위기를 문화적인 것으로 바꾸고 관부(官府)를 뜰이나 거리처럼 환하게 하였으며, 현자(賢者)는 높이고 척신(戚臣)은 낮추며, 환관(宦官)과 궁첩(宮妾)은 멀리하고 어진 사대부를 가까이하고 있다. 세상에서 말하는 사대부라는 이들이 반드시 다 어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금세 검었다 금세 희었다 하면서 남인지 북인지 모르는 편폐(便嬖)ㆍ복어(僕御)와는 비교가 안 될 것 아닌가. 내가 많은 사람을 겪어 보았는데, 아침에 들어왔다가 저녁에 나가고, 무리 지어 쫓아다니며 가는 것인지 오는 것인지 모르는 자도 있었다. 모양이 얼굴빛과 다르고 눈이 마음과 틀리는 자가 있는가 하면 트인 자, 막힌 자, 강한 자, 유한 자, 바보 같은 자, 어리석은 자, 소견이 좁은 자, 얕은 자, 용감한 자, 겁이 많은 자, 현명한 자, 교활한 자, 뜻만 높고 실행이 따르지 않는 자, 생각은 부족하나 고집스럽게 자신의 지조를 지키는 자, 모난 자, 원만한 자, 활달한 자, 대범하고 무게가 있는 자, 말을 아끼는 자, 말재주를 부리는 자, 엄하고 드센 자, 멀리 밖으로만 도는 자, 명예를 좋아하는 자, 실속에만 주력하는 자 등등 그 유형을 나누자면 천 가지 백 가지일 것이다. 내가 처음에는 그들 모두를 내 마음으로 미루어도 보고, 일부러 믿어도 보고, 또 그의 재능을 시험해 보기도 하고, 일을 맡겨 단련도 시켜 보고, 혹은 흥기시키고, 혹은 진작시키고, 규제하여 바르게도 하고, 굽은 자는 교정하여 바로잡고 곧게 하기를 마치 맹주(盟主)가 규장(珪璋)으로 제후(諸侯)들을 통솔하듯이 하면서 그 숱한 과정에 피곤함을 느껴온 지 어언 20여 년이 되었다. 근래 와서 다행히도 태극, 음양, 오행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고 또 사람은 각자 생김새대로 이용해야 한다는 이치도 터득했다. 그리하여 대들보감은 대들보로, 기둥감은 기둥으로 쓰고, 오리는 오리대로 학은 학대로 살게 하여 그 천태만상을 나는 그에 맞추어 필요한 데 이용만 하는 것이다. 다만 그중에서 그의 단점은 버리고 장점만 취하며, 선한 점은 드러내고 나쁜 점은 숨겨 주고, 잘한 것은 안착시키고 잘못한 것은 뒷전으로 하며, 규모가 큰 자는 진출시키고 협소한 자는 포용하고, 재주보다는 뜻을 더 중히 여겨 양단(兩端)을 잡고 거기에서 중(中)을 택했다. 그리하여 마치 하늘에 구천(九天)의 문이 열리듯 앞이 탁 트이고 훤하여 누구라도 머리만 들면 시원스레 볼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트인 자를 대할 때는 규모가 크면서도 주밀한 방법을 이용하고, 막힌 자는 여유를 두고 너그럽게 대하며, 강한 자는 유하게, 유한 자는 강하게 대하고, 바보 같은 자는 밝게, 어리석은 자는 조리 있게 대하며, 소견이 좁은 자는 넓게, 얕은 자는 깊게 대한다. 용감한 자에게는 방패와 도끼를 쓰고, 겁이 많은 자에게는 창과 갑옷을 쓰며, 총명한 자는 차분하게, 교활한 자는 강직하게 대하는 것이다. 술에 취하게 하는 것은 뜻만 높고 실행이 따르지 않는 자를 대하는 방법이고, 순주(醇酒)를 마시게 하는 것은 생각은 부족하나 고집스럽게 자신의 지조를 지키는 자를 대하는 방법이며, 모난 자는 둥글게, 원만한 자는 모나게 대하고, 활달한 자에게는 나의 깊이 있는 면을 보여 주고, 대범하고 무게가 있는 자에게는 나의 온화한 면을 보여 준다. 말을 아끼는 자는 실천에 더욱 노력하도록 하고, 말재주를 부리는 자는 되도록 종적을 드러내지 않도록 하며, 엄하고 드센 자는 산과 못처럼 포용성 있게 제어하고, 멀리 밖으로만 도는 자는 포근하게 감싸 주며, 명예를 좋아하는 자는 내실을 기하도록 권하고, 실속만 차리는 자는 달관하도록 면려하는 것이다. 중니(仲尼)의 제자가 3천 명이었지만 각자의 물음에 따라 대답을 달리했고, 봄이 만물을 화생(化生)하여 제각기 모양을 이루게 하듯이, 좋은 말 한마디와 착한 행실 한 가지를 보고 들으면 터진 강하(江河)를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대순(大舜)을 생각하고, 현명한 덕이 있으면 서토(西土)를 굽어 보살피던 문왕(文王)을 생각한다. 그리하여 한 치의 선이라도 남이 아니라 내가 하고 이 세상 모든 선이 다 나의 것이 되도록 한다. 물건마다 다 가지고 있는 태극의 성품을 거스르지 말고 그 모든 존재들이 다 나의 소유가 되게 하는 것이다. 태극으로부터 미루어 가 보면 그것이 각기 나뉘어 만물(萬物)이 되지만, 그 만물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찾아보면 도로 일리(一理)로 귀결되고 만다. 따라서 태극이란 상수(象數)가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상수의 이치가 갖추어져 있음을 이름이며, 동시에 형기(形器)가 이미 나타나 있는 상태에서 그 이면에 보이지 않는 이치를 말하기도 한다. 태극이 양의(兩儀)를 낳았으나 태극 그 자체는 그대로 태극이고, 양의가 사상(四象)을 낳으면 양의가 태극이 되고, 사상이 팔괘(八卦)를 낳으면 사상이 태극이 된다. 사상 위에 각각 획(?)이 하나씩 생겨 다섯 획까지 이르게 되고, 그 획에는 기우(奇偶)가 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24로 제곱하고 또 제곱하면 획의 수가 1677만여 개에 달하는데, 그것은 또 모두 36분(分) 64승(乘)에서 기인한 것으로서, 그 수는 우리 백성 수만큼이나 많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한계를 지을 것도, 멀고 가까울 것도 없이 그 모두를 자기의 아량과 자기의 본분 내에 거두어들이고, 거기에다 일정한 표준을 세워 그 표준을 기준으로 왕도(王道)를 행하며, 그것을 정당한 길 또는 정당한 교훈으로 삼아 모든 백성들에게 골고루 적용하면 여러 방면의 훌륭한 인물들이 배출되고 오복(五福)이 고루 갖추어질 것이다. 따라서 그 온화한 빛을 내가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니, 그것이야말로 얼마나 깊이 있고 원대한 제도이겠는가. 공 부자가 《주역(周易)》의 계사전(繫辭傳)을 쓰면서 맨 첫머리에 태극을 내세워 후인들을 가르치고, 또 《춘추(春秋)》를 지어 대일통(大一統)의 뜻을 밝혀 놓았다. 구주(九州) 만국(萬國)이 한 왕(王)의 통솔하에 있고, 천 갈래 만 갈래 물길이 한 바다로 흐르듯이 천자만홍(千紫萬紅)이 하나의 태극으로 합치되는 것이다. 땅은 하늘 가운데 있어 한계가 있으나, 하늘은 땅 거죽을 싸고 있으면서 한도 끝도 없다. 공중에 나는 놈, 물속에서 노는 놈, 굼틀거리는 벌레, 아무 지각없는 초목들 그 모두가 제각기 영췌(榮悴)를 거듭하면서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큰 쪽을 말하면 천하 어디에도 둘 곳이 없고, 그 작은 쪽을 말하면 두 쪽으로 깰 것이 없을 정도이다. 이것이 바로 참찬위육(參贊位育)의 일인 동시에 성인이 하는 일인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성인을 배우는 일이다. 비유하자면 달이 물속에 있어도 하늘에 있는 달은 그대로 밝다. 그 달이 아래로 비치면서 물 위에 그 빛을 발산할 때 용문(龍門)의 물은 넓고도 빠르고, 안탕(雁宕)의 물은 맑고 여울지며, 염계(濂溪)의 물은 검푸르고, 무이(武夷)의 물은 소리 내어 흐르고, 양자강의 물은 차갑고, 탕천(湯泉)의 물은 따뜻하고, 강물은 담담하고 바닷물은 짜고, 경수(涇水)는 흐리고 위수(渭水)는 맑지만, 달은 각기 그 형태에 따라 비춰 줄 뿐이다. 물이 흐르면 달도 함께 흐르고, 물이 멎으면 달도 함께 멎고, 물이 거슬러 올라가면 달도 함께 거슬러 올라가고, 물이 소용돌이치면 달도 함께 소용돌이친다. 그러나 그 물의 원뿌리는 달의 정기(精氣)이다. 거기에서 나는, 물이 세상 사람들이라면 달이 비춰 그 상태를 나타내는 것은 사람들 각자의 얼굴이고 달은 태극인데, 그 태극은 바로 나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옛사람이 만천(萬川)의 밝은 달에 태극의 신비한 작용을 비유하여 말한 그 뜻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또 나는, 저 달이 틈만 있으면 반드시 비춰 준다고 해서 그것으로 태극의 테두리를 어림잡아 보려고 하는 자가 혹시 있다면, 그는 물속에 들어가서 달을 잡아 보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아무 소용없는 짓임도 알고 있다. 그리하여 나의 연거(燕居) 처소에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고 써서 자호(自號)로 삼기로 한 것이다. 때는 무오년(1798, 정조22) 12월 3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