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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와 문학
김완
슬픈 봄이다. 작년 말 삼국지의 관우가 지켰던 형주(우한) 땅의 한 일가족이 걸리면서 세상에 처음 드러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유례없이 높은 전파력으로 불과 석 달 만에 전 세계를 강타했습니다. 우한 코로나, 신종 코로나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던 이번 신종 코로나 변이종은 코로나19 (COVID-19)로 공식 명명이 되었습니다. 코로나19는 계절성 감기의 흔한 원인 중 하나인 코로나바이러스의 변이 아형입니다. 2000년대 이후는 여러 번의 코로나 변이형들의 출현이 보고되었습니다. 현재까지 출현이 확인된 코로나바이러스는 SARS-CoV (2003년), HCoV NL63 (2004년), HKU1 (2005년), MERS-CoV (2012년), 그리고 이번 COVID-19 (SARS-CoV-2)가 있습니다. 이들 중 사스와 메르스가 가장 악명이 높았습니다. 이처럼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코로나바이러스의 명칭을 통일하기 위해 COVID-19라는 용어를 쓰게 되었습니다. COVID-19처럼 연도를 나타내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은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이런 바이러스의 유행이 일어날 것이라는 뜻입니다. 만약 2022년에 새로운 코로나가 나오면 COVID-22 로 명명이 되겠지요.1)
WHO가 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을 선언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와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총, 균, 쇠』는 1998년 퓰리처상과 영국과학출판 상을 받은 책으로 인류 문명이 대륙별, 민족별로 불평등해진 원인을 다각적인 시각에서 분석하였습니다. 그중, 제목과 같이 균을 중요한 요인으로 꼽고 분석한 부분이 있어 새삼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치명적인 세균들이 갖는 중요성은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정복하고 원주민들을 말살시킨 과정에서 잘 나타납니다. 유럽의 총칼에 의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원주민보다 유럽의 병원균에 의해 병상에서 목숨을 잃은 원주민 수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2)감염병과 인간 사이의 관계, 감염병에 대한 인간의 대응 양태에 대한 문제는 옛날부터 존재했습니다. 옛날에도 무서운 감염증이 있었고 그로 인한 집단적인 죽음의 재앙이 있었습니다. 인류의 근대사에서 주요 사망 원인이었던 천연두, 인플루엔자, 결핵, 말라리아, 페스트, 홍역, 콜레라 같은 질병들은 모두 동물의 질병에서 사람의 질병으로 진화된 전염병들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지독했던 유행병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18년 유럽 전역을 휩쓸던 ‘스페인 독감’은 2,100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인플루엔자였습니다. 흑사병(선페스트)은 1346~1352년에 유럽 인구의 4분의 1을 죽게 했습니다.
감염병과 일반적인 질병은 어떻게 다른가요? 일반적인 질병은 “병이 났다”라는 사실만으로 출발하지만, 감염병은 “병이 났다”라는 사실에 “병이 옮겨졌다”라는 사실을 보태야만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병이 옮겨졌다”라는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그것을 집단적 수준에서 고려해야 하며, 더 나아가 그 집단을 다양하고 이질적인 존재들의 집합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서로 다른 개인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그 개인들이 함께 모여 이루는 집단의 성원들 사이의 인간관계와 그 집단을 둘러싸고 있는 정신적이고 물리적인 환경에 대한 조사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3)감염병이 우리 인류에게 주는 교훈은 궁극적으로 인류에게 ‘산다는 것’의 의미와 ‘더불어 산다는 것’ 즉 ‘더불어 사는 삶의 깊이’를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염병을 이해하는 데는 인문학적인 성찰이 필요합니다.
코로나의 전 세계적 유행은 국가와 지역의 경계를 넘어 우리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공통감각을 깨워주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배경과 양상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다양한 사회적 질병들을 이전부터 함께 앓아왔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세계는 BC와 AC로 나뉠 것이다.” 세상은 ‘코로나19 이전’(Before Corona), ‘코로나19 이후’(After Corona)로 나뉠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가 사람들에게 준 충격은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삶의 방식이 일변하고, 경제가 뒤흔들리고, 국가가 달라졌습니다. 사람이 사람과 관계하는 방식도, 나라와 나라가 관계하는 방식도 뒤집혔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코로나19가 지나간 이후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4)BC에는 전쟁이 국가의 힘을 강화했다면 AC에는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이 국가의 중앙통제를 강화합니다. 과거 시대에는 국가안보가 국민의 안위와 동일시되었고, 국가가 안전해야 시민이 안전하다는 논리가 정당화되었습니다. 1, 2차 세계대전의 경험과 냉전이 그 논리의 피와 살이 되었습니다. 시장의 자유가 초래하는 불안정을 고용안정과 사회복지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경험도 국가를 정당화했습니다. 하지만 그 논리는 소련의 붕괴로 치명적 타격을 입었고, 신자유주의의 득세로 힘을 잃었습니다. 비틀거리는 국가를 이제는 코로나19가 구했습니다. 시민 안보를 담보로 국가가 화려하게 전면에 재등장했습니다. 그 강도와 방법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모든 나라에서 코로나19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은 ‘국가’입니다. 도시를 봉쇄하기도 하고 국민의 움직임을 감시하기도 합니다. 치료도, 방역도, 예방도 국가 주도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백신 개발도 국가 간의 경쟁이 되고 있습니다. 국가 사이의 관계에서도 장벽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바이러스의 유입을 막기 위해 사람과 물자를 국경에서 차단하고 있습니다. ‘외국’에 대한 불신과 불안 바이러스는 스멀스멀 전 세계를 감염시키고 있습니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지만 코로나19로 받는 충격이 모든 나라에 균등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에 따라 국가의 힘이 크게 약화하는 예도 있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타격을 덜 받고 회복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코로나19로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다고 하지만 모든 부문이 공평하게 손해를 입은 것은 아닙니다. 자동차, 항공 등 전통 제조업이 눈에 띄는 어려움을 겪고 있고 여행, 유통업 등 전통 3차산업도 손해를 입었습니다. 4차산업혁명의 총아로 불렸던 공유경제에도 찬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반면 IT와 바이오 기업 등이 혜택을 입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사상 최고 수준의 분기 순이익을 올렸고, 존슨앤드존슨의 순이익도 55% 늘었다고 합니다. 재택근무와 화상회의, 온라인 수업이 늘면서 줌 비디오 커뮤니케이션 같은 업체들이 급부상했습니다. 아마존 같은 온라인 유통업체들은 직원을 더 뽑았으며,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를 활용한 온라인 엔터테인먼트, 네덜란드 테이크어웨이 닷컴 같은 음식배달 서비스 기업, 원격의료도 주요 수혜자입니다. 이렇듯 시장 권력이 재편되고 있습니다. 전통적 2차 산업뿐만 아니라 3차 산업, 심지어 4차 산업의 일부도 타격을 입고 약화되고 있습니다. 반면 언택트(비대면) 산업이 대두하고 있습니다. 교육과 의료, 상담, 외식 등 모든 분야의 소비가 급격하게 언택트화하고 있습니다.사티야 나델라 MS 최고경영자가 지적하듯이 “2년 치에 해당하는 디지털 전환이 두 달 만에 일어났다.” 코로나19 위기가 지나고 나면 이 전환도 되돌려질까요? 이제는 생산뿐만 아니라 소비에서도 개별화, 유연화, 신속화, 실시간(just-in-time)을 충족하는 기업들이 승승장구할 것입니다.4)그렇다면 노동의 양식도 이에 맞춰 전환될 것입니다. 원격근무 노동자가 임금이나 위험부담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므로 그 그룹에 들어가려는 경쟁이 치열해질 것입니다. 물론 원격근무 노동자는 모두가 플랫폼 노동자가 될 위험성에서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신종 질환들의 전파가 지구화와 무관하지 않지만, 제아무리 국제적으로 생각하고 국제적으로 구매 또는 판매하며 국제적으로 여행하더라도, 물질적으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우리 몸이 현존하는 장소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전 세계와 네트워크를 이룬다 한들 물질적으로 우리는 여전히 여러 장소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으며, 따라서 삶의 ‘로컬’ 한 장소를 공유하는 이들의 신체적이고 감정적인 상태에 무심할 수 없습니다. 이웃과 우리는 말하자면 감염 가능성으로 이어져 있기에 우리 이웃이 현재 무엇에 ‘감염’되어 있는지가 곧 우리 삶을 바꿀 것입니다. 여기서 ‘이웃’이라는 범주가 인간 이웃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이제는 분명해졌습니다. 동물의 집단감염은 인간의 집단감염 전조이자 연장이며 코로나19가 확인해주었듯이 인-수 감염과 인-인 감염의 경계도 사실상 무의미해졌습니다.5)
지금의 코로나19 바이러스 유행이 끝나리라 확신할 수 있는 것만큼이나 이번이 전염병의 마지막 사례가 아니리라는 사실도 분명합니다. 그것이 어째서 마지막이 아닌지, 또 어떻게 기후변화나 지구화가 낳은 위기와 무관하지 않은지는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습니다. 이 상황을 또다시 겪을 수 있다는 말은 현재 코로나로 인해 발생하는 물질적 결과들을 잠재적인 상수로 예상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런 사태가 발생할 때 적절한 대비 시스템이 있어야 하는 것과 별개로, 우리의 일상 자체가 그 잠재성에 맞추어 조율되어야 합니다. 반드시 지금 권고받는 정도의 격리와 자제까지는 아니라도 우리는 어쩌면 모든 방면에서 조금 덜 활동하고 덜 발산하며 심지어 덜 생산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요. 데이비드 하비가 말한 대로 확대재생산이 아닌 단순재생산의 삶으로 질서 있게 물러나야 하는 게 아닐까요. 성장과 발전을 향한 열망이 정녕 인간의 본능이라면 이제 그것은 물질세계를 질주하는 대신, 멈춰 서서 바로 그 물질세계와 새로운 관계를 맺고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데 발휘되어야 합니다.
코로나19라는 전 지구적 감염병 위기는 자본주의의 무차별한 자연개발, 생명과 환경파괴, 공장식 가축농장의 비윤리적 사육 방식, 야생동물 식용거래 등에 기인한 바 큽니다. 즉 자본주의적 생태 파괴와 균열의 대가인 것입니다. 코로나19는 ‘탈 탄소 사회’, 더 나아가 인간과 동물, 생태가 공생하는 ‘생태사회’의 미래도 보여주었습니다. 산업활동뿐만 아니라 인간의 활동 자체가 줄면서 공기가 맑아졌고 동물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포집을 늘려 지구 온도 상승을 1.5℃ 이내로 억제하자는 파리협약이 갑자기 현실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능성은 스스로 현실화하지 않습니다. ‘그레타 툰베리’가 곳곳에서 떠들고 행동하지 않는 한, 원격근로 노동자들이 사회적 거리를 뛰어넘어 공생을 모색하지 않는 한 AC는 국가와 시장이 지배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4)
“인류의 생활 공간은 이미 디지털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이러한 현상은 코로라19가 끝나도 계속될 것이다” 2020 서울 미래 콘퍼런스의 기조연설자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가 코로나 시대 이후의 시대를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스마트폰의 등장이 촉발한 생활 공간의 이동은 인류의 자발적인 진화 과정입니다. 시인 김수영은 「풀」에서 동풍에 맞서는 ‘풀’의 방법을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라고 풀이하였습니다. 시대에 적절하게 대응할 뿐 아니라 앞지를 때 위험의 원천을 능가할 수 있다는 탁월한 생각입니다. 김현 문학 축전, 아시아 문학 페스티벌을 비롯한 모든 문학 축전의 개최도 ‘포노 사피엔스’ 시대에 걸맞게 시공간의 제약 없이 소통할 수 있고 정보 전달이 빠른 형태로 진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는 도리어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많은 독자와 접할 기회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눠야만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상호작용의 이점이 있다는 점에서, 온라인으로 오프라인의 많은 것이 대체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이 그렇지는 않습니다. 좋은 문학을 큐레이션 하던 독립서점의 폐업 위기는 문학계에 결코 좋은 소식은 아닙니다. 혁신에 대한 수용성은 시대에 따라 변동합니다. 어느 사회이든 새로운 방식에 저항하는 보수적인 사회와 새로운 방식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혁신적인 사회가 나란히 공존합니다.
코로나19 시대에 어떤 문학적 서사를 어떤 형태로 담아야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전염병 서사의 한 갈래로 실존주의 계열의 『페스트』(카뮈)부터 스펙터클 계열의 『28』(정유정)까지 이에 대한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습니다. 코로나19에 걸렸다는 사실로 내가 타인의 삶에 해가 된다는 죄의식과 원치 않는 사생활 공개는 이 질병이 어떤 사회 병리학적 현상과 결부될 수 있는지 짐작하게 합니다.6)코로나19가 일상을 장악하면서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 판매가 급증했다고 합니다. “입 다물고 침묵하는 사람들의 무리에 속하지 않기 위하여, 페스트에 희생된 그 사람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기 위하여, 아니 적어도 그들에게 가해진 불의와 폭력에 대한 추억만이라도 남겨놓기 위하여, 그리고 재앙의 소용돌이 속에서 배운 것만이라도, 즉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는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사실만이라도 말해두기 위하여, 지금 여기서 끝맺으려고 하는 이야기를 글로 쓸 결심을 했다.”(김화영 옮김, 1998년 책 세상 판), 이 문장은 문학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문학은 발언이며 증언이고 추억이라는 것,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한 찬양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코로나19 같은 재앙에 맞서 문학과 문학인이 무엇을 해야 할지에 관한 문학계의 자성과 성찰이 필요합니다. 슬라보예 지젝은 책 『팬데믹 패닉』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은 병원체가 될 수 있는 바이러스 메커니즘, 산업화한 농업, 전 지구적 경제의 급속한 발전, 문화적 관습들, 국제적 소통의 폭발적 증가 등의 집합체로 볼 수 있다. 감염병은 자연적, 경제적, 문화적 과정들이 복잡다단하게 서로 묶여 있는 하나의 혼합체다.” 라고 했습니다. 이를 문학적으로 통찰하려면 넘어야 할 난관이 많을 것입니다. 좋든 나쁘든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코로나19를 새로운 주체의 탄생으로 이바지할 수 있도록 문학인들의 분발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참고문헌
1. 시사상식사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2. 『총, 균, 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 김진준 옮김, 문학사상
3. 감영병과 인문학 정과리⸳이일학 외 지음 강출판사
4. 포스트 코로나19, ‘멋진 신세계 2.0’? 서재정 2020.5.6. 창비주간논평
5. 어떤 ‘코로나 서사’를 쓸 것인가 황정아 2020.3.4. 창비주간논평
6. 코로나19 시대를 통과하는 문학, 허회. 월간 시인동네 2020년 08월호 p116-128
시인 김완(金完) 약력
광주출생
2009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그리운 풍경에는 원근법이 없다』, 『너덜겅 편지』, 『바닷속에는 별들이 산다』가 있다.
2018년 제4회 송수권 시문학상 남도시인상 수상
현재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
전자메일: kvhwkim@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