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태인(泰仁)은 전라북도 정읍시(井邑市)에 속해있는 지명으로 태산현(泰山縣)과 인의현(仁義縣)의 합명이다. 태산현은 본래 백제의 대시산현(大尸山縣)을 757년(신라 경덕왕 16) 태산(太山)으로 고쳐 대산(大山)·태산(泰山) 등으로 불렸다. 940년(고려 태조 23) 빈성을 인의현으로 고쳤으며, 1354년(공민왕 3) 대산군을 태산(太山)으로 고치고 인의를 편입하였다.
인의현은 백제 때 빈굴(賓屈)·빈성(斌城)·부성(賦城) 등으로 불렸다가 신라 때 무성(武城)으로 고쳤고, 고려에 인의(仁義)로 고쳤다가 1409년(태종 9)에 태산(泰山)과 합하여 태인현(泰仁縣)이 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태인군으로 승격되었고, 1913년에 정읍군 태인면이 되었다.
성씨의 역사
《태인경씨계묘족보(泰仁景氏癸卯族譜)》에 의하면, 경씨(景氏)는 고대 중국 진양(晉陽)의 초나라 공족(公族)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그 공족 중의 한 명인 경여송(景汝松)이 기자(箕子)를 호종(扈從)하여 한반도로 들어와 평양에 정착함으로써 일문의 문호가 열렸다고 한다. 이후 고려시대까지 그 후대를 알 수 없다가 경차(景磋) 때에 와서 그 연원이 분명해지는데, 경차 이전의 상계(上係)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므로 태인경씨는 경차를 시조로 삼고 있다. 경차는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를 지내고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올랐으며 태산부원군(泰山府院君)에 봉해졌다. 경차의 아들 경설정(景洩淨)은 동북면(東北面) 도순문사(都巡問使)와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지냈으며 태산부원군에 습봉되었다. 이 태산이 오늘날의 태인으로 태인경씨가 이루어진 유래가 되었다. 이후 경설정의 맏아들인 사공(司空)을 역임한 경상조(景祥祖)를 태인파로, 차남인 좌복야(左僕射)를 지낸 경상록(景祥祿)을 해주파로 하여 가계를 이어오면서 고려 말과 조선 전기에 걸쳐 가문의 성세를 이루었다.
분적종 및 분파
《태인경씨계묘족보(泰仁景氏癸卯族譜)》에 의하면, 경씨(景氏)의 본관은 태인과 해주(海州)를 비롯하여 충주(忠州), 경주(慶州), 밀양(密陽), 치등(置等: 전라북도 순창), 능향(綾鄕: 전라북도 태인), 복흥(福興: 전라북도 장수) 등 10여 개의 관향이 있는 것으로 전하나 태인과 해주를 제외한 본관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는 태인, 해주 외에도 충주, 경주, 밀양, 장연 등을 포함하여 11개의 관향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관조(貫祖)가 뚜렷이 밝혀진 것은 태인과 해주뿐이다.
주요 세거지
전라북도 태인
황해도 해주
경상북도 경주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태인경씨는 504가구 총 1,617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