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⑺ 뱀, 사(蛇), 사(巳)
‘뱀’ 하면 가정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기다란 몸뚱이, 소리 없이 발밑을 스윽 하고 스쳐 지나가는 듯한 촉감(觸感), 미끈하고 축축할 것 같은 피부(皮膚), 무서운 독(毒)을 품은 채 허공(虛空)을 날름거리는 기다란 혀, 사람을 노려보는 듯한 차가운 눈초리, 게다가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만든 장본인(張本人)으로서 교활(狡猾)함의 대명사(代名詞)가 되어 버린 뱀은 분명(分明) 우리 인간(人間)에게 그리 반가운 동물(動物)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지나친 혐오감(嫌惡感) 뒤에는 또 다른 호기심(好奇心)과 관심(關心)이 있다.
뱀은 겨울잠을 자는 동물(動物)이다. 땅에 가장 많이 몸을 대고 살기에 땅과 밀접(密接)하며 냉혈동물(冷血動物)이고, 독(毒)을 품고 있어 두렵다. 뱀은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일시적(一時的)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성장(成長)할 때 허물을 벗는다. 이것이 죽음으로부터 매번(每番) 재생(再生)하는 영원(永遠)한 생명(生命)을 누리는 불사(不死)→ 재생(再生)→ 영생(永生)의 상징(象徵)으로서 무덤의 수호신(守護神), 지신(地神), 죽은 이의 새로운 재생(再生)과 영생(永生)을 돕는 존재(存在)로 인식(認識)되었다.
‘뱀’이 크면 ‘구렁이’가 되고, 이 ‘구렁이’가 더 크면 ‘이무기’가 되며, ‘이무기’가 여의주(如意珠)를 얻거나 어떤 계기(契機)를 가지면 용(龍)으로 승격(昇格/蛇變爲龍)한다는 민속체계(民俗體系)가 있다. 뱀의 범주(範疇)에는 이무기, 구렁이, 뱀이 다 포함(包含)된다. ※ 이무기: 열대 지방에 사는 매우 큰 뱀을 이르는 말. 전설상의 동물로 뿔이 없는 용(龍). 어떤 저주(咀呪)에 의하여 용(龍)이 되지 못하고 물속에 산다는, 여러 해 묵은 큰 구렁이를 이른다.
뱀은 파충류(爬蟲類)의 동물실체(動物實體)로 일상생활(日常生活)에서 인간(人間)에게 공포(恐怖)의 대상(對象)이 되거나 흉물(凶物)로 배척(排斥)당하지만, 민속신앙(民俗信仰)에서는 신적(神的) 존재(存在)로서 일찍부터 다양(多樣)한 풍속(風俗)이 전승(傳承)되고 있다.
뱀은 치료(治療)의 신(神)이다. 그리스 신화(神話) 아폴론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醫術)의 신(神)이다. 이 의술신(醫術神)의 딸이 들고 다니는 단장(短杖)에는 언제나 한 마리의 뱀이 둘둘 말려 있었다. 이 뱀은 의신(醫神)의 신성(神聖)한 하인(下人)이었고, 해마다 다시 소생(甦生)하여 탈피(脫皮)함으로써 새로운 정력(精力)을 소생(甦生)시킨다는 스태미너의 심벌로 간주(看做)돼 왔다. ※ 단장(短杖): 짧은 지팡이
지금도 군의관(軍醫官)의 뺏지는 십자가(十字架) 나무에 뱀 두 마리가 감긴 도안(圖案)이고, 유럽의 병원(病院)과 약국(藥局)의 문장(門帳)은 치료(治療)의 신(神), 의술(醫術)의 신(神)을 상징(象徵)하는 뱀이다. ※ 문장(門帳): 문이나 창문에 치는 휘장
뱀은 민간의료(民間醫療)의 약용(藥用)으로도 쓰인다. 뱀은 정력강장작용(精力强壯作用)을 하고, 고혈압(高血壓) 환자(患者)에게 혈압하강작용(血壓下降作用)을 하며, 일체(一切)의 허약성(虛弱性)으로 오는 질환(疾患)에 사용(使用)된다고 알려졌다. 뱀의 허물도 중요(重要)한 약재(藥材)이었는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산림경제(山林經濟) 등에서도 뱀의 허물이 약재(藥材)로 쓰인다고 기록(記錄)되어 있다.
많은 알과 새끼를 낳는 뱀의 다산성(多産性)은 풍요(豊饒), 재물(財物), 가복(家福)의 신(神)이며, 뱀은 치유(治癒)의 힘이 있다. 뱀은 파충류 중 가장 특수화(特殊化)된 동물군으로 몸이 가늘고 길며, 다리, 눈꺼풀, 귓구멍 등이 없고, 혀가 가늘고 두 가닥으로 갈라져 있다. 뱀의 몸은 비늘로 싸여 있지만 이들 비늘은 한 개씩 떨어지지 않는 연결(連結)된 피부(皮膚)로 이루어져 있다.
눈에는 눈꺼풀이 없고, 그 대신(代身) 투명(透明)한 피부(皮膚)의 비늘로 덮여 있다. 표피(表皮)의 바깥층이 오래되면 눈부분까지 포함(包含)하여 표피(表皮) 전부(全部)를 뒤집어 탈피(脫皮)한다. 눈은 가까운 거리의 것을 잘 본다. 귀는 퇴화(退化)되어 겉귀가 없으며, 가운뎃귀도 한 개의 뼈만 있어 소리를 들을 수 없다. 그러나 지면(地面)을 통한 진동(振動)에는 매우 민감(敏感)하다. 후각(嗅覺)은 잘 발달(發達)하였고, 미각기관(味覺器官)은 없다.
사경견폐성(巳驚犬吠聲). 뱀은 개 짖는 소리를 싫어한다는 뜻이다. 뱀은 개짓는 소리에 기절초풍하게 된다. 발정기(發情期) 때의 개 짖는 소리는 산천초목(山川草木)을 울먹거리게 한다. 그 만큼 강한 쇳소리가 울려 퍼진다. 고막이 없는 뱀의 귀에까지 울먹거리는 쇳소리에 놀라 뱀은 심장(心腸)이 열에 부풀어 오르게 된다. 그리곤 허물을 미처 다 벗어버리지 못하고 죽어버리고 만다. 뱀은 금속성(金屬聲)의 개 짖는 소리를 들으면 허물을 벗다 죽는다. 이것이 사술원진(巳戌怨嗔)이 된 이유(理由)이다. ※ 기절초풍(氣絶초風): 기절하거나 까무러칠 정도로 몹시 놀라 질겁을 함 ※ 경(驚): 경계할 경. ※ 폐(吠): 짖을 폐
뱀은 확실(確實)히 요물적(妖物的)인 습관(習慣)이 있는 모양(模樣)이어서 독사(毒蛇)가 사람을 물을 때 개띠에 출생(出生)한 사람을 많이 문다고 한다. 독사(毒蛇)는 물어도 개띠에 출생(出生)한 사람만 택해서 물어뜯는다. 그리고 닭의 다리 비늘은 뱀비늘을 형상(形象)하여 무늬가 이루어져 있다. 소의 콧등은 뱀의 콧등과 같다. 그래서 뱀은 닭띠와 소띠는 잘 물지 않는다. 사유축(巳酉丑) 삼합(三合)이 되는 닭띠과 소띠의 사람은 거의 물리는 일이 없다고 한다.
⑻ 말(馬), 오(午)
오시(午時)는 태양(太陽)이 중앙(中央)에 떠있을 때라 양기(陽氣)가 성(盛)하여 말의 기질(氣質)이 강(强)하며 달리기를 잘한다. 그러나 오(午)는 용(用)할 때에는 음(陰)이 된다. 또 오월(午月)에는 일음(一陰)이 생(生)하는 달이라 말이 겁(怯)이 많아 서서 잠자는 습성(習性)이 있다. 즉, 오(午)는 양극(陽極)이 되어 현명(顯明)하게 나타나고 건강(健康)한 성격(性格)이므로 말[마물(馬物)]에 비유(比喩)한 것이며, 말은 경쾌(輕快)하고 빨리 달리는[속주(速走)하는] 양물(陽物)이다.
발굽은 하나이며 넓고 튼튼하다. 소는 네 개의 위(胃)가 있으나 말은 위(胃)가 한 개밖에 없다. 담낭(膽囊/쓸개)은 없다. 십이지(十二支)의 말은 남성신(男性神)을 상징(象徵)한다. 신라(新羅)와 가야(伽倻)의 마각(馬刻), 마형(馬形), 기마형(騎馬形) 등의 고분유물(古墳遺物)과 고구려(高句麗) 고분벽화(古墳壁畵)의 각종(各種) 말그림에서는 말이 이승(지상계)과 저승(저세상/하늘)을 잇는 영매체(靈媒體)로서 피장자(被葬者)와 영혼(靈魂)이 타고 저세상(저승/하늘)으로 가는 동물(動物)로 이해(理解)된다.
말이 그려진 토기(土器), 토우(土偶), 천마도(天馬圖)는 그 표현방법(表現方法)에 있어서는 다를지 몰라도 그것이 지니고 있는 사상(思想)은 다 같은 것이다. 즉 피장자(被葬者)로 하여금 말을 타고 저세상(저승/하늘)으로 간다. ※ 토우(土偶): 흙으로 만든 물상(物像) 또는 동물상(動物相). 장식적(裝飾的)인 용도(用途) 외(外)에도 풍요(豊饒)와 다산(多産)을 기원(祈願)하는 주술적(呪術的)인 의미(意味)도 지님 ※ 주(呪): 빌 주, 기원(祈願)할 주, 저주(詛呪/咀呪)할 주, 주술(呪術) 주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타난 기록(記錄)에 의하면 말은 모두 신령(神靈)스러운 동물(動物)로 작용(作用)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국조(國祖) 박혁거세(朴赫居世)가 탄생(誕生)할 때에 서상(瑞相)을 나타내 주는 것 등이 모두 신이(神異)한 존재(存在)로 등장(登場)되고 있다. ※ 신이(神異): 신기(神奇)하고도 이상(異常)함 ※ 박혁거세(朴赫居世/BC69∼AD4): 신라(新羅)의 시조(始祖). 고허촌장(高墟村長) 소벌공(蘇伐公)이 양산(楊山) 밑 나정(蘿井) 곁에서 말이 알려준 큰 알을 얻었는데, 깨 보니 그 속에 어린아이가 있었다. 알이 매우 커서 박과 같다 하여 성(姓)을 박(朴)이라 하였다.
박혁거세(朴赫居世) 신화(神話)와 천마도(天馬圖)의 백마(白馬)는 최고지위(最高地位)인 조상신(祖上神)이 타는 말로 인식(認識)되었고, 후대(後代)로 내려오면서 고대소설(古代小說), 시조(詩調), 민요(民謠) 등에서는 신랑(新郞), 소년(少年), 애인(愛人), 선구자(先驅者), 장수(將帥) 등이 타고 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일상생활(日常生活)에서 말의 이용(利用)은 단순(單純)히 실용(實用) 혹은 수렵(狩獵) 및 간단(簡單)한 경제적(經濟的) 단계(段階)에서 정복(征服)과 지배(支配)를 원활(圓滑)히 하기 위해 정치적(政治的), 군사적(軍事的) 이용단계(利用段階)로 발전(發展)하였다.
통일신라(統一新羅)를 거쳐 고려(高麗)와 조선시대(朝鮮時代)에는 농경(農耕), 군마(軍馬), 교통(交通), 통신(通信)의 역마(驛馬) 등으로 다양(多樣)했다. 근자(近者)에는 제주도(濟州道) 일부(一部)와 민속촌(民俗村) 관광지(觀光地)와 경마장(競馬場)을 제외(除外)하고는 말을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최근(最近)에는 주로 승용(乘用)이나 스포츠용으로 이용(利用)된다.
말은 인간(人間)과 역사(歷史)를 같이 하며 수많은 전쟁사(戰爭史)를 통하여 인간(人間)을 보조(補助)하기도 하고, 말의 역할(役割)인 교통수단(交通手段)으로 무진장(無盡藏)한 공훈(功勳)을 세운 인류사(人類史)의 공로자(功勞者)이기도 하였다. 이런 말을 잘 다루는 자(者)만이 세상(世上)에 융합(融合)하여 활기(活氣)를 띠는 것이었다.
역사(歷史) 속의 인물(人物)과 명장(名將)들은 말을 잘 다루었고, 특히 제갈공명(諸葛孔明)같은 병법전술가(兵法戰術家)는 말의 특성(特性) 및 성격(性格)을 잘 파악(把握)하여 수많은 전쟁(戰爭)을 승리(勝利)로 이끌었다. 제갈공명(諸葛孔明)은 자연법칙(自然法則)을 깨달은 자(者)였기에 말의 마구간(馬廐間)을 동남방간(東南方間)에 지어주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事實)이다. ※ 마구(馬廐): 말 기르는 집 ※ 구(廐): 마구(馬廐) 구
말은 지혜(智慧)가 높고 넓다. 뜻을 기다릴 줄 아는 동물(動物)이다. 현실적(現實的)인 초능력(超能力)의 힘으로 주인(主人)을 섬기게 된다. 말은 전쟁(戰爭) 속에서는 날쌔고 활발(活潑)하여 주인(主人)을 지켜주는 충성(忠誠)도 보이지만 말의 게으름은 옛날처럼 말이 중요시(重要視)될 때나 현대시대(現代時代)와 같이 말을 필요(必要)로 하지 않은 때나 같은 것이다.
말은 풀을 뜯으며 한가(閑暇)로운 시간(時間)을 보내면서도 언제나 생각(生覺)은 험(險)하고 거친 대지(大地)를 달리고 싶은 거국적(擧國的)이고 실질숭상(實質崇尙)이 뚜렷하다. 사람 역시 우물 같은 좁은 세상(世上)을 역겨워하며 어디론가 달리고 싶은 충동(衝動)을 느끼는 것이 사실(事實)이다.
말들의 교성곡(交聲曲)은 위력(威力)이 있다. 인간(人間)의 생명(生命)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하게 된다. 말의 울음소리는 통곡전후(痛哭前後)의 신령(神靈)스러운 곡성(哭聲)이다. 인간(人間)들의 죽음을 이미 예시(豫示)하고 있기 때문이다. 범의 포효(咆哮)와 개의 쇳소리가 화합(和合)해서 질러져 나오는 소리이기도 하다. 그 소리에 담겨 있는 신령(神靈)스러운 예지(豫知)로 전쟁(戰爭)은 이미 시작전(始作前)에 결정(決定)나 있다. 그것은 신령(神靈)스러운 말들의 특권(特權)이다.
⑼ 양(羊), 미(未)
양(羊)의 성격(性格)이 순박(淳朴)하고 부드러운 것처럼 양띠도 온화(溫和)하고 온순(溫純)하여 며느리가 양띠 해에 딸을 낳아도 구박(驅迫)하지 않는다는 식(式)의 속설(俗說)이 많이 있다. ‘양(羊)’ 하면 곧 평화(平和)를 연상(聯想)하듯 성격(性格)이 순박(淳朴)하고 온화(溫和)하여 좀처럼 싸우는 일이 없다.
양(羊)은 무리를 지어 군집생활(群集生活)하면서도 동료간(同僚間)의 우위다툼이나 암컷을 독차지하려는 욕심(慾心)도 갖지 않는다. 또는 반드시 가던 길로 되돌아오는 고지식(高智識)한 습성(習性)도 있다. 성격(性格)이 부드러워 좀체 싸우는 일이 없으나 일단(一旦) 성(性)이 나면 참지 못하는 다혈질(多血質)이기도 하다.
상형문자(象形文字)인 양(羊)은 맛있음[미(味)], 아름다움[미(美)], 상서(祥瑞)로움[상(祥)], 착함[선(善)] 등으로 이어진다. 즉, 큰 양(羊)이란 대양(大羊) 두 글자가 붙어서 아름답다는 뜻의 ‘미(美)’자가 되고, ‘나 아(我)’의 좋은 점[양(羊)]이 ‘옳을 의(義)’자가 된다.
우리 조상(祖上)들은 이러한 양(羊)의 습성(習性)과 특징(特徵)에서 착하고[선(善)], 의롭고[의(義)], 아름다움[미(美)]을 상징(象徵)하는 동물로 양(羊)을 인식(認識)했다. 즉 양(羊)에 대한 한국인(韓國人)들의 관념(觀念)은 순(順)하고 어질고 착하며 참을성 있는 동물(動物), 무릎을 꿇고 젖을 먹는 은혜(恩惠)를 아는 동물(動物)로 인식(認識)된다.
양(羊)은 언제나 희생(犧牲)의 상징(象徵)이다. 양(羊)의 가장 큰 상징적(象徵的) 의미(意味)가 있다면 그것은 속죄양(贖罪羊)일 것이다. 서양(西洋)에서는 사람을 징벌(懲罰)하는 신(神)에 대한 희생물(犧牲物)로 바쳐졌으며, 우리나라와 중국(中國)에서도 제사용(祭祀用)으로 쓰였다. ※ 속(贖): 속죄(贖罪)할 속
양(羊)은 또한 정직(正直)과 정의(定義)의 상징(象徵)이다. 양(羊)은 반드시 가던 길로 되돌아오는 고지식(高智識)한 정직성(正直性)이 있다. 속담(俗談)에 “양띠는 부자(富者)가 못 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양(羊)처럼 양띠 사람은 너무 정직(正直)하여 부정(不正)을 못보고 너무 맑아서 부자(富者)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⑽ 원숭이, 원(猿), 신(申)
잔나비, 즉 원숭이는 인간(人間)과 가장 많이 닮은 영장동물(靈長動物)로 갖가지의 만능(萬能) 재주꾼이고, 자식(子息)과 부부지간(夫婦之間)의 극진(極盡)한 사랑은 사람을 뺨칠 정도(程度)로 애정(愛情)이 섬세(纖細)한 동물(動物)이라고 한다. 부모(父母)‧형제간(兄弟間)의 정(情)은 ‘이’잡는 행위(行爲)로 언어(言語)를 대신(代身)한다. ※ 잰 + 납[원(猿)] ---> 잰나비 ---> 잔나비 ※ ‘잔나비’는 ‘조그마한 원숭이’를 뜻하는 우리의 옛말이다. ※ 재다: 동작이 날쌔고 재빠르다.
도자기(陶磁器)나 회화(繪畫)에서는 모성애(母性愛)를 강조(强調)하고, 스님을 보좌(補佐)하는 모습, 천도(天桃) 봉숭아를 들고 있는 장수(長壽)의 상징(象徵)으로 많이 표현(表現)되고 있다. ※ 천도(天桃): 선가(仙家)에서 하늘 위에 있다고 하는 복숭아 ※ 선가(仙家): 신선(神仙)이 산다는 집. 선도(仙道)를 닦는 사람
동양(東洋)에서는 불교(佛敎)를 믿는 몇몇 민족(民族)을 제외(除外)하고는 원숭이를 ‘재수 없는 동물’로 기피(忌避)하면서도 사기(邪氣)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특히 중국(中國)에서는 원숭이가 좋은 건강(健康), 성공(成功), 수호(守護/保護)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生覺)하고 있다.
원숭이는 동물(動物) 가운데 가장 영리(怜悧)하고 재주 있는 동물(動物)로 꼽히지만, 너무 사람을 많이 닮은 모습, 간사(奸邪)스러운 흉내 등으로 오히려 재수(財數) 없는 동물(動物)로 기피(忌避)한다. 띠를 말할 때 ‘원숭이띠’라고 말하기보다는 ‘잔나비띠’라고 표현(表現)하는 것도 이같은 속설(俗說) 때문이다. 원숭이는 꾀 많고 재주 있고 흉내 잘 내는 장난꾸러기로 이야기된다. 또 애교(愛嬌)를 잘 부리기 때문에 밉지 않다. 원숭이의 애교(愛嬌)는 인간(人間)의 어린아이와 흡사(恰似)하다.
하늘에서 간신(奸臣)처럼 심적(心的) 변덕(變德)이 생겨 지혜(智慧)와 잔재주를 겸한 원숭이[후(猴)]를 땅으로 쫓아 버렸으니 원숭이는 지구상(地球上)에 제일(第一) 처음 발을 디딘 외계인(外界人)인 셈이다. 그래서 원숭이는 버릇이 없고 자기자신(自己自身)이 생각(生覺)한 대로 밀고 나간다. 즉, 외계인(外界人)에게는 어떠한 사리판단(事理判斷)에 뚜렷한 기준(基準)이 없으며 현장상황(現場狀況)에 따른 처신법(處身法)이 그들의 법칙(法則)인 셈이다.
참으로 싹싹하고 식성(食性)도 그럴 듯하다. 맛없고 때깔이 곱지 않은 것은 잘 먹지 않는다. 혹(或) 어쩔 수 없이 먹게 되는 경우(境遇)에는 억지 상을 그려가며 가슴을 폭폭 치며 주위(周圍)에 표시(表示)를 나타내가면서 겨우겨우 먹어치운다. 원숭이의 흐느낌은 구슬프다. 가슴을 들먹거리며 조용하게 우는가 하면 설움이 북받치는지 대성통곡(大聲痛哭)을 해댄다. 그러다간 멋쩍게 슬며시 꼬리를 말아 올리고 주위(周圍)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아가며 살살 자리를 피해버린다.
또한 원숭이는 연극(演劇)의 시조(始祖)라 한다. 원숭이가 주연(主演)이 된 연극(演劇)의 연출(演出)은 대자연(大自然)의 법칙(法則)인 셈이다. 아픈 척, 슬픈 척, 죽은 척 등 필요(必要)에 따라 임기응변적(臨機應變的)인 대책(對策)이 뛰어나다. 원숭이는 은근하고 잽싼 눈치로 염치(廉恥) 좋은 행동(行動)을 식은 죽 마시듯 한다. 꾀병도 잘한다는 말이 되겠다.
지혜(智慧)와 잔재주를 겸한 원숭이, 아픈 척, 슬픈 척, 죽은 척 등 필요(必要)에 따라서 임기응변적(臨機應變的) 표현(表現)이 뛰어난 연극(演劇)의 시조(始祖), 쾌청한 날에 신바람 나고, 우충충한 날에 청승을 떠는 원숭이의 성깔 등 이러한 원숭이의 생태학적(生態學的) 모형(模型)을 문화(文化)의 창(窓)을 통해 민속학적(民俗學的) 모형(模型)으로 만들어 내고, 그것을 다시 사람의 운명(運命)과 연관(聯關)시키는 ‘띠’문화를 만들었다. ※ 청승: 궁상스럽고 처량(凄凉)하여 보기에 언짢은 태도나 행동
원숭이를 재수 없는 동물(動物)로 인식(認識)하여 잔나비로 대칭(代稱)하고, 아침에 이야기하는 것조차 꺼렸다. 그러나 불교(佛敎)의 영향(影響), 중국(中國)과 일본(日本)의 원숭이 풍속(風俗)의 전래(傳來) 등으로 다소(多少) 부정적(否定的)인 관념(觀念)이 희석(稀釋)되었다.
그리하여 민속(民俗)에 나타나는 원숭이는 다소(多少) 부정적(否定的)이나, 전통(傳統) 미술품(美術品)에서는 중국(中國)의 영향(影響)으로 좋은 면(面)이 부각(浮刻)되었다. 원숭이 이야기에서는 원숭이의 생김새나 흉내 내기, 재주, 꾀 등을 소재(素材)로 하고 있으면서도 그 재주를 과신(過信)하거나 잔꾀를 경계(警戒)하는 것이 대부분(大部分)이다.
또 원숭이는 아홉수[구수(九數)]를 조심(操心)해야 한다. 태어나서 9시간, 9일, 아홉 달, 9년 등에 위험(危險)이 찾아오므로 특히 유의(留意)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불길(不吉)한 불상사(不祥事)는 구수리(九數理)에 연결(連結)되어진다. 원숭이 띠[연(年)], 원숭이 월(月), 원숭이 일(日), 원숭이 시(時)를 사주(四柱)내에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홉수를 조심(操心)해야 한다. 원숭이들은 이런 자연법칙(自然法則)을 알고 있기에 잘 방어(防禦)해내고 있다.
⑾ 닭, 계(鷄), 유(酉)
묘(卯)와 유(酉)를 일월(日月)의 문(門)이라 하니 묘(卯)는 해가 뜨는 곳이며, 유(酉)는 달이 뜨는 곳이라 음(陰)과 양(陽)의 문(門)이라 한다. 그러므로 토끼와 닭은 음란(淫亂)한 것이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여명(黎明)을 알리는 닭은 상서(祥瑞)롭고 신통력(神通力)을 지닌 서조(瑞鳥)로 여겨져 왔다. 새벽을 알리는 우렁찬 닭의 울음소리! 그것은 한 시대(時代)의 시작(始作)을 상징(象徵)하는 서곡(序曲)으로 받아들여졌다. 닭이 주력(呪力)을 갖는다는 전통적(傳統的) 신앙(信仰)도 그 여명(黎明)을 여는 주력(呪力) 때문일 것이다. ※ 여명(黎明): 희미(稀微)하게 날이 밝을 무렵. 갓밝이. 희망(希望)의 빛 ※ 여(黎): 검을 여(려)
밤에 횡행(橫行)하던 귀신(鬼神)이나 요괴(妖怪)도 닭 울음소리가 들리면 일시(一時)에 지상(地上)에서 사라져 버린다고 민간(民間)에서는 믿고 있었다. 닭은 새벽을 알리는 동물(動物)로 귀신(鬼神)을 쫓는 벽사(辟邪)의 기능(機能)이 있다고 한다. 새벽에 닭의 울음이 열 번 넘으면 풍년(豊年)이 든다고 하였다. ※ 벽사(辟邪): 요귀(妖鬼)를 물리침 ※ 벽(辟): 피할 피, 벗어날 피, 다스릴 벽, 물리칠 벽, 임금 벽
닭은 흔히 다섯 가지 덕(德)을 지녔다고 흔히 칭송(稱訟)된다. 즉 닭의 볏은 문(文)을, 발톱은 무(武)를 나타내며, 적(敵)을 앞에 두고 용감히 싸우는 것은 용(勇)이며, 먹이를 보고 꼭꼭거려 무리를 부르는 것은 인(仁), 때를 맞추어 울어서 새벽을 알림은 신(信)이라 했다.
닭은 울음으로써 새벽을 알리는 빛의 도래(到來)를 예고(豫告)하는 존재(存在)이다. 닭은 여명(黎明) 즉, 빛의 도래(到來)를 예고(豫告)하기에 태양(太陽)의 새이다. 닭의 울음은 때를 알려주는 시보(時報)의 역할(役割)을 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알려주는 예지(豫知)의 능력(能力)이 있기도 하다. 장닭이 홰를 길게 세 번 이상 치고 꼬리를 흔들면 산(山)에서 내려왔던 맹수(猛獸)들이 되돌아가고, 잡귀(雜鬼)들이 모습을 감춘다고 믿어왔다. ※ 홰: 새장이나 닭장 속에 새나 닭이 올라앉게 가로질러 놓은 나무 막대
무속신화(巫俗神話)나 건국신화(建國神話)에서 닭울음소리는 천지개벽(天地開闢)이나 국부(國父)의 탄생(誕生)을 알리는 태초(太初)의 소리였다. 제주도(濟州道) 무속신화(巫俗神話) 천지황 본풀이 서두(序頭)에 “천황닭이 목을 들고, 지황닭이 날개를 치고, 인황닭이 꼬리를 쳐 크게 우니 갑을동방(甲乙東方)에서 먼동이 트기 시작(始作)했다”고 한다. 닭의 울음과 함께 천지개벽(天地開闢)이 되었다는 것이다.
김알지 신화(神話)에서는 나무에 걸려있는 황금 궤 밑에서 흰 닭이 울고, 그 황금 궤 안에서 동자(童子)가 나왔는데 금궤에서 나왔다고 성(姓)을 김씨(金氏)라 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라를 통치(統治)할 인물(人物)이 탄생(誕生)했음을 알리는 흰닭의 울음소리는 빛의 상징(象徵)으로서, 자연상태(自然狀態)의 사회(社會)에서 국가적(國家的) 체계(體系)를 갖춘 단계(段階)를 예고(豫告)하는 존재(存在)이다.
시계(時計)가 없던 시절(時節)의 밤이나 흐린 날에는 닭의 울음소리로 시각(時刻)을 알았다. 특히 조상(祖上)의 제사(祭祀)를 지낼 때면 닭의 울음소리를 기준(基準)으로 하여 메를 짓고 제사(祭祀)를 거행(擧行)했다. 수탉은 정확(正確)한 시간(時間)에 울었으므로 그 울음소리를 듣고 밤이 깊었는지 날이 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새벽을 알리는 시보(時報)로서 닭소리는 고전소설(古典小說) 심청전(沈淸傳)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닭아, 닭아, 우지마라,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 나 죽기는 섧지 않으나, 의지(依支) 없는 우리 부친(父親) 어찌 잊고 가잔 말인가!” 심청(沈淸)이가 뱃사공에게 팔려가기로 약속(約束)한 날 새벽에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자탄(自嘆)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닭소리는 새벽, 즉 날의 밝음을 알리는 상징(象徵)이다.
닭은 하늘나라 지옥문(地獄門)의 사자(使者)로서 파수꾼 역할(役割)을 담당(擔當)한 천국(天國)의 봉황(鳳凰)이다. ※ 사자(使者): 어떤 사명을 맡아서 심부름을 하는 사람. 죽은 사람의 혼(魂)을 저승으로 잡아가는 일을 맡았다는 저승의 귀신(鬼神) ※ 파수(把守)꾼: 경계하여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 ※ 파(把): 잡을 파
하늘나라의 법칙(法則)을 어긴 닭은 시장(市場)으로 쫓겨 내려와 지상(地上)의 봉(鳳)으로서 시간(時間)을 정확(正確)히 알 수 없었던 옛날에 시계(時計)의 역할(役割)을 하였고, 집안 내의 안녕(安寧)을 위하여 잡귀(雜鬼)를 몰아내주는 등 인간(人間)과 밀접(密接)한 관계(關係)에 있었다. 불가(佛家)에서나 나라에서 높은 직위(職位)를 표시(表示)하거나 집안에서 혼례(婚禮)를 치를 때 닭을 사용(使用)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렇게 신령(神靈)스런 동물(動物)이기에 닭은 하늘을 향하여 목을 길게 빼어 목청을 돋우는 것이다.
깨금질과 빙글빙글 도는 어지럼 춤으로 우주(宇宙)의 질서정연(秩序整然)한 운행(運行)을 추어댄다. 닭의 춤은 영계(靈界)의 봉황(鳳凰)마저도 흉내 내는 정도(程度)다. 봉황(鳳凰)의 춤은 우아(優雅)하기는 하나 멋이 없다. 닭의 춤에는 ‘신바람’과 ‘신명(神明)’이 일고 있다. 그것이 신굿인 것이다. 최초(最初)의 신굿은 닭의 춤에서 연유(緣由)된 것이다. ※ 깨금질: 한 쪽 발을 들고 한 쪽 발로 뛰는 것을
닭은 아래 눈망울을 위로 감아 올려 눈을 감는다. 몸짓 하나에도 이토록 영기(靈氣)가 서려 있다. 닭은 영(靈)과 혼(魂)을 나눈다. 영(靈)과 혼(魂)을 나누는 것은 오직 닭뿐이다.
닭은 직선적(直線的)이어서 깊이 생각(生覺)하고 행동(行動)하는 두뇌형(頭腦形)은 되지 못하나 자연섭리(自然攝理)의 파장(波長)을 시원하게 받아들여서 섭섭할 정도(程度)로 빠르게 전달(傳達)하여 주는 속성(屬性)을 가지고 있다. ‘시원섭섭’은 닭의 생리(生理)에서 생겨난 말이라 한다.
닭은 영계(靈界)와의 감응(感應)으로 어떠한 위력(威力)을 갖게 되었다고 해서 엉뚱한 생각(生覺)을 갖지도 않는다. 애오라지 천명(天命)의 계율(戒律)인 자신(自身)의 일에만 묻혀버리고 만다. 적어도 닭의 모든 것은 모두 잘난 것들을 표현(表現)하고 상징(象徵)한 것이라 한다. 닭은 이렇게 여러모로 인간(人間)에게 이로움을 주고 있다. ※ 애오라지: 겨우, 오로지
사주(四柱)에 닭을 가진 사람으로서 수탉처럼 목젖이 나온 사람은 자신(自身)의 명예(名譽)를 세우게 되고, 울음소리가 드높은 사람은 이름을 떨치게 되나 암탉처럼 목젖이 나오지 않으면 매사(每事)에 일을 까다롭게 처리(處理)하며 표독(慓毒)스러움과 괴퍅(乖愎)스러운 범죄자(犯罪者), 폭력범(暴力犯)으로 선량(善良)한 주민(住民)을 괴롭히는 일면(一面)도 가지고 있다. ※ 표독(慓毒): 사납고 독살스러움 ※ 표(慓): 급(急)할 표, 날랠 표, 재빠를 표, 용맹(勇猛)할 표 ※ 괴퍅(乖愎): 붙임성이 없이 까다롭고 별남 ※ 괴(乖): 어그러질 괴, 어긋날 괴 ※ 퍅(愎): 강퍅(剛愎)할 퍅, 괴팍할 퍅, 너그럽지 못할 퍅, 어긋날 퍅, 남의 말을 듣지 아니할 퍅 ※ 강퍅(剛愎): 성격이 까다롭고 고집이 셈
장닭이 홰를 길게 세 번 이상 치고 꼬리를 흔들면 귀신(鬼神)과 호랑이도 민가(民家)에서 물러간다고 하니 인유원진(寅酉怨嗔)이 여기에서 연유(緣由)되었다고 하겠다. 백수(百獸)의 왕(王)인 범도 물려가게 하는 위력(威力)을 갖고 있다. 닭의 울음소리는 고요한 정적(靜寂)을 산산이 쪼개어 놓는다.
‘꼬끼오’ 몇 마디의 울음소리는 지상세계(地上世界)의 새벽공간을 활기차게 만드는 위력(威力)을 갖고 있다. 신계(神界)의 위계질서(位階秩序)까지 파고드는 영묘(靈妙)함도 가지고 있다. 닭은 귀신(鬼神)들을 물러가게 하고 잡귀불침(雜鬼不侵) 당번(當番)도 선다.
⑿ 개, 견(犬), 구(狗), 술(戌)
우리 주위(周圍)에서 볼 수 있는 동물(動物) 가운데 가장 흔히 접할 수 있고, 인간(人間)과 가장 친밀(親密)하고 밀접(密接)한 관계(關係)를 가지는 동물(動物)은 ‘개’다. 개는 그 성질(性質)이 온순(溫順)하고 영리(怜悧)하여 사람을 잘 따르며, 개는 후각(嗅覺)과 청각(聽覺)이 예민(銳敏)하고 경계심(警戒心)이 강하다. 또 자기(自己)의 세력범위(勢力範圍) 안에서는 대단한 용맹성(勇猛性)을 보인다.
특히 주인(主人)에게는 충성심(忠誠心)을 가지며, 그 밖의 낯선 사람에게는 적대심(敵對心)과 경계심(警戒心)을 갖는다. 아주 오랜 시기(時期)를 같이 살아온 개는 동서(東西)를 막론(莫論)하고 인간(人間)에게 헌신(獻身)하는 충복(忠僕)의 상징(象徵)이다. 특히 설화(說話)에 나타나는 의견(義犬)은 충성(忠誠)과 의리(義理)를 갖춘 우호적(友好的)이고 희생적(犧牲的)인 행동(行動)을 한다.
의견설화(義犬說話), 의견동상(義犬銅像), 의견무덤 등의 다양(多樣)한 이야깃거리는 전국(全國)에서 전승(傳承)된다. 그런가 하면 서당(書堂/글방) 개, 맹견(猛犬), 못된 개, 미운 개, 저질 개, 똥개, 천덕꾸러기 개는 비천(卑賤)함의 상징(象徵)으로 우리 속담(俗談)이나 험구(險口/辱)에 많이 나타난다. 동물(動物) 가운데 개만큼 우리 속담(俗談)에 자주 등장(登場)하는 경우(境遇)도 드물다. 개살구, 개맨드라미 등과 같이 명칭(名稱) 앞에 ‘개’ 가 붙으면 비천(卑賤)하고 격(格)이 낮은 사물(事物)이 된다.
예로부터 개는 집지키기, 사냥, 맹인안내(盲人案內), 수호신(守護神) 등의 역할(役割)뿐만 아니라, 잡귀(雜鬼), 병도깨비, 요귀(妖鬼) 등의 재앙(災殃)을 물리치고 집안의 행복(幸福)을 지키는 능력(能力)이 있다고 전해진다. 특히 흰개는 전염병(傳染病), 병도깨비, 잡귀(雜鬼)를 물리치는 등 벽사능력(辟邪能力)뿐만 아니라, 집안에 좋은 일이 있게 하고, 미리 재난(災難)을 경고(警告)하고 예방(豫防)해 준다고 믿어 왔다. ※ 벽사(辟邪): 요귀(妖鬼)를 물리침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보면 백제(百濟)의 멸망(滅亡)에 앞서 사비성(泗泌城)의 개들이 왕궁(王宮)을 향(向)해 슬피 울었다고 기록(記錄)하고 있다. 집에서 기르던 개가 슬피 울면 집안에 초상(初喪)이 난다고 하여 개를 팔아 버리는 습속(習俗)이 있다. 또 개가 이유(理由) 없이 땅을 파면 무덤을 파는 암시(暗示)라 하여 개를 없애고, 집안이 무사(無事)하기를 천지신명(天地神明)에게 빌고 근신(謹愼)하면서 불행(不幸)에 대비(對備)한다.
무속신화(巫俗神話), 저승설화 등에서는 죽었다가 환생(還生)하여 저승에서 이승으로 오는 길을 안내(案內)해 주는 동물(動物)이 ‘하얀 강아지’이다. 이처럼 개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連結)하는 매개(媒介)의 기능(機能)을 수행(遂行)하는 동물(動物)로 인식(認識)되었다. 옛 그림에서도 개 그림이 많이 나온다. 동양(東洋)에서는 그림을 문자(文字)의 의미(意味)로 바꾸어 그리는 경우(境遇)가 흔하다. 개가 그려진 그림을 보면 나무 아래에 있는 개 그림이 많다. 나무[수(樹)] 아래에 그려진 개[술(戌)]는 바로 집을 잘 지켜 도둑막음을 상징(象徵)한다.
‘술(戌)’은 ‘지킬 수(戍)’와 글자 모양이 비슷하고, ‘수(戍)’는 ‘지킬 수(守)’와 음(音)이 같을 뿐만 아니라 ‘수(樹)’와도 음(音)이 같기 때문에 동일시(同一視)된다. 즉 ‘술수수수(戌戍樹守)’로 도둑맞지 않게 잘 지킨다는 뜻이 된다. 이와 같은 개의 그림을 그려 붙임으로써 도둑을 막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일종(一種)의 주술적(呪術的) 속신(俗信)은 시대(時代)를 거슬려 올라가 고구려(高句麗) 각저총(角抵塚)의 전실(前室)과 현실(玄室)의 통로(通路) 왼편 벽면(壁面)에도 무덤을 잘 지키라는 의미(意味)에서 개그림을 그려 놓았다.
사람들은 주인(主人)에게 보은(報恩)할 줄 알고 영리(怜悧)한 개를 사랑하고 즐겨 기르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흔히 천(賤)한 것을 비유(比喩)할 때 개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개는 아무리 영리(怜悧)해도 사람대접을 못 받는다. 밖에서 자야 하고 사람이 먹다 남은 것을 먹어야 한다. 사람보다는 낮고 천(賤)하게 대접(待接)받는다. 개에게는 밝은 면(面)과 어두운 면(面)이 있으니 의(義)로운 동물(動物)이라는 칭찬(稱讚)과 천(賤)하다고 얕잡아 취급(取扱)하는 양면(兩面)이 있다. 즉(卽), 개에 대한 민속모형(民俗模型)은 충복(忠僕)과 비천(卑賤)의 양면성(兩面性)을 지니고 있다.
발가락은 앞발에 5개, 뒷발에 4개로 지행성(趾行性)이다. 피부(皮膚)에 땀샘[한선(汗腺)]이 없다. 수명(壽命)은 보통 12∼16년이지만 암컷은 5세가 되면 번식력(繁殖力)이 저하(低下)되며 8세에서는 대체로 번식력(繁殖力)을 상실(喪失)하게 된다.
개는 야생(野生) 또는 반야생(半野生)으로 여러 마리의 수컷과 암컷이 무리를 이루는 일이 많았다. 무리 중에는 순위제(順位制)가 있으며, 그것이 정(定)해져 있지 않을 때는 싸워서 우열(優劣)을 가린다. 우열(優劣)의 순위(順位)가 정(定)해지면 조용해진다. ※ 지행성(趾行性): 고양이와 개처럼 두 발가락 마디만을 땅에 대고 걷는 일 ※ 지(趾): 발 지
신유술(申酉戌)의 순서(順序)로 나란히 배열(配列)해 있는 까닭은 인간(人間)과 흡사한 원숭이나, 인간(人間)에게 경종(警鐘)을 알리며 하늘을 향해 우는 닭이나, 짖어 대는 개나 모두 하늘에서 지상(地上)으로 쫓겨난 외계인(外界人)이기 때문이다. 닭은 하늘의 여자(女子)를, 개는 하늘의 남자(男子)를 상징(象徵)한다. 또한 개의 양기(陽氣)는 모든 숫놈의 양기(陽氣)를 대표(代表)한다. ※ 경종(警鐘): 비상(非常)한 일이나 위험(危險)을 알리기 위(爲)하여 치는 종 따위의 신호(信號). ‘잘못되는 일에 대하여 미리 경계(警戒)하여 주는 주의(注意)나 충고(忠告)’를 비유(比喩)하는 말
개의 귀는 영귀(靈鬼)의 바스락거림도 놓치지 않고, 후각(嗅覺)은 무표정(無表情)한 태양(太陽)의 그림자에서도 냄새를 찾아낸다. 개의 시각(視覺)은 직관(直觀)으로만 움직이게 되어 있어 이런 예민(銳敏)한 감각(感覺)들을 가지고 척하면 다 알게 되는 것이다. ※ 영귀(靈鬼): 이상(異常)한 귀신(鬼神), 괴이(怪異)한 정령(精靈) ※ 직관(直觀): 바로 눈에 보임
이 지구상(地球上)에서 개만큼 직관적(直觀的)인 논리(論理)를 깨우친 예언자(豫言者)는 없건만 인간(人間)들은 개의 그 예리(銳利)한 직관(直觀)으로 인간(人間)에게 알려주는 경종(警鐘)을 단순(單純)한 개소리로만 여기고,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개소리라고 몰아 부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개들은 죄다 알면서도 전(傳)해줄 수 없는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지니고 사는 것이다.
인간(人間)들은 개를 하등동물(下等動物)이나 애완동물(愛玩動物) 등으로만 생각하고 있다. “개소리 하지 말어!” 인간(人間)이 흔히 내뱉는 상소리다.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를 개소리라 한다. 그러나 개소리는 예언적(豫言的)인 소리다. 먼 곳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어떤 사람인가, 혹(或)은 인간(人間)을 해치는 사나운 짐승이 아닌가를 단번에 알아낸다. 꼴불견인 못된 행위(行爲)들을 개들이 막아주는 구실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人間)들은 역시 개소리로밖에 듣질 않는다. 세상(世上)에 개만큼 영악(獰惡)한 동물(動物)은 없다. 인간(人間)은 그것을 느끼기조차 못해 개들은 꼴불견이 되는 것이다. 동네 어느 집에선가 참혹(慘酷)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초저녁부터 짖어댔는데 주인(主人)은 오히려 시끄럽다고 몽둥이질만 해대더니 그날 저녁 괴한(怪漢)의 손에서 이승을 떠나게 되었다. ※ 영악(獰惡): 모질고 악착스러움 ※ 녕(獰): 모질 녕
그래서 주인(主人)을 잃어버린 개는 곡식(穀食)을 끊고 슬피 울다가 병(病)이 들어버렸다. 어느 날 있는 힘을 다하여 추적(追跡)한 결과(結果) 괴한(怪漢)의 집을 알아놓게 되었다. 집으로 와 주인식구(主人食口)들에게 개소리를 늘어놓으니 알아들을 턱이 없다.
빗자루 몽둥이질에 “망할 놈의 개새끼야, 퉤퉤, 나가 뒈져라! 이 염병(染病)할 놈 개새끼야, 썩 꺼져버려!” 개는 복(福)도 지지리도 없다. 하늘로 꺼진단 말인가, 땅으로 꺼진단 말인가? 숨을 할딱거리며 동네를 헤맨다. ※ 뒈지다: 죽다. ※ 염병하다: 염병을 앓다. ※ 염병(染病): 장티푸스 또는 전염병(傳染病) ※ 지지리: 아주 몹시, 지긋지긋하게
굶주림과 질병(疾病)과 안타까움의 한계(限界). 인간(人間)의 언어(言語)를 죄다 알아들으면서 오직 인간(人間)의 언어(言語)만으로 표현(表現)할 수 없는 답답함. 그것은 아름다우면서도 잔혹(殘酷)한 신(神)의 실수(失手)다.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한 개는 반미치광이가 되어 거리를 배회(徘徊)한다. 주인상(主人喪)을 치룬 것도 분한테 쫓겨나기까지 했으니 그래서 나온 말이 피골상접(皮骨相接)이라 하였다. ※ 피골상접(皮骨相接): 살가죽과 뼈가 맞붙을 정도(程度)로 몹시 마름 ※ 접(接): 접할 접, 이을 접, 접붙일 접
그런 후(後) 괴한(怪漢)의 딸이 시집을 가게 되었다. 연지곤지 찍고 신랑(新郞)‧신부(新婦) 재배(再拜)하여 꽃가마에 올라 새 보금자리로 가려고 하는 순간(瞬間)에 느닷없이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한 반미치광이 개 한 마리가 나타나 막다른 골목의 가마행렬을 꼼짝 못하게 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워이, 저리가 이놈의 개야. 어디 할 지랄이 없어서 여기서 지랄이야... 원.” 참으로 오랜 동안 개는 개지랄을 했다. 주인(主人)의 원한(怨恨)을 괴한(怪漢)의 딸에게 갚아준 것이다. ‘개지랄’이라고 하는 욕(辱)도 여기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확실(確實)히 개는 영악(獰惡)한 동물(動物)이다. ※ 지랄(지랄병):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分別)없이 하는 행동(行動)
⒀ 돼지, 돈(豚), 해(亥)
해월(亥月)은 순음(純陰)의 달이라 돼지는 힘줄이 없고, 용(用)할 때는 양(陽)이 되기 때문에 겉으로 지방질(脂肪質)이 많은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음양불비(陰陽不備)의 뜻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화(造化)와 상응(相應)하는 오직 사람만은 모든 것을 갖추고 있으니 인간(人間)을 이른바 귀왕(貴王)이라 할 것이다. ※ 귀왕(貴王): 만물(萬物)의 영장(靈長)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는 속담(俗談)도 있고, 흔히 뚱뚱한 사람을 보고 ‘뚱돼지’라고도 하며, 귀엽게 ‘꽃돼지’라는 별명(別名)을 가진 사람도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돼지는 십이지(十二支)의 마지막 동물(動物)이며, ‘돼지고기는 새우젓과 같이 먹어야 (소화가 잘된다고) 한다’는 말도 있고, 고사(告祀)를 지낼 때는 돼지머리를 상(床) 위에 올려놓고 장사가 잘되기를 빈다.
돼지는 신화(神話)에서 신통력(神通力)을 지닌 동물(動物), 제의(祭儀)의 희생(犧牲), 길상(吉祥)으로 재산(財産)이나 복(福)의 근원(根源), 집안의 재신(財神)을 상징(象徵)한다. 그런 반면(反面)에 속담(俗談)에서 대부분(大部分) 탐욕(貪慾)스럽고 더럽고 게으르며 우둔(愚鈍)한 동물(動物)로 묘사(描寫)되는 모순적(矛盾的) 양가성(兩價性)을 지닌 띠동물이다.
가축(家畜)으로서의 돼지의 용도(用途)는 고기와 지방(脂肪)을 얻기 위한 것이었지만, 하늘에 제사(祭祀) 지내기 위한 신성(神聖)한 제물(祭物)이었다. 돼지는 일찍부터 제전(祭典)의 희생(犧牲)으로 쓰인 동물(動物)이다. 제전(祭典)에서 돼지를 쓰는 풍속(風俗)은 멀리 고구려(高句麗) 시대(時代)부터 오늘날까지도 전승(傳承)되는 역사(歷史) 깊은 민속(民俗)이다.
고구려(高句麗) 때는 하늘에 제물(祭物)로 바치는 돼지를 교시(郊豕)라고 해서 특별(特別)히 관리(官吏)를 두어 길렀고, 고려(高麗) 때는 왕건(王建)의 조부(祖父) 작제건(作帝建)이 서해(西海) 용왕(龍王)에게서 돼지를 선물(膳物) 받았다. 조선시대(朝鮮時代)에 와서도 멧돼지를 납향(臘享)의 제물(祭物)로 썼다. ※ 교(郊): 성(城) 밖 교, 천지(天地)의 제사(祭祀) 교 ※ 시(豕): 돼지 시 ※ 납향(臘享): 납일(臘日)에 그 한 해 동안 지은 농사(農事)의 형편(形便)과 그 밖의 일을 여러 신(神)에게 고(告)하는 제사(祭祀) ※ 납일(臘日): 납향(臘享)하는 날. 동지(冬至) 뒤의 셋째 술일(戌日) ※ 납(臘): 섣달 랍
오늘날 무당(巫堂)의 큰 굿, 집안의 고사(告祀), 마을 공동체(共同體) 신앙(信仰) 등에서도 돼지를 희생(犧牲)으로 쓰고 있다. 돼지는 이처럼 제전(祭典)에서 신성(神聖)한 제물(祭物)이었기 때문에 돼지 자체(自體)가 신통력(神通力)이 있다고 생각(生覺)했다.
고구려(高句麗) 유리왕(瑠璃王)은 도망가는 돼지[교시(郊豕)]를 뒤쫓다가 국내위나암(國內尉那巖)에 이르러 산수(山水)가 깊고 험(險)한 것을 보고 나라의 도읍(都邑)을 옮겼다. 유리왕(瑠璃王)은 평지성(平地城)으로 국내성(國內城)을 쌓음과 동시(同時)에 2.5km 떨어진 바위산에 위나암성(尉那巖城)을 쌓았다.
고구려(高句麗) 산상왕(山上王)은 아들이 없었는데, 달아나는 교시(郊豕)를 쫓아 가다가 한 처녀(處女)의 도움으로 돼지를 붙잡고, 그 처녀(處女)와 관계(關係)하여 아들을 낳았다. 부여(夫餘)에서도 돼지가 벼슬이름으로 있다. 이처럼 고구려(高句麗)와 고려(高麗)는 돼지의 도움으로 도읍지(都邑地)를 발견(發見)하고, 왕(王)의 후손(後孫)을 얻었다.
이는 돼지 자체(自體)에 신통력(神通力)이 있고, 돼지는 신(神)에게 바치는 희생물(犧牲物)인 동시(同時)에 신(神)의 뜻을 전(傳)하는 사자(使者)의 모습으로서 신통력(神通力)을 지닌다. 이러한 관념(觀念)은 돼지를 상서(祥瑞)로운 길상(吉祥)의 동물(動物)로 표출(表出)한다. 우리의 고대(古代) 출토유물(出土遺物), 문헌(文獻), 고전문학(古典文學) 등에서 돼지는 상서(祥瑞)로운 징조(徵兆)로 많이 나타난다.
민속(民俗)에서 돼지는 재산(財産)이나 복(福)의 근원(根源)이며, 집안의 수호신(守護神)이라는 관념(觀念)이 강화(强化)된다. 돼지꿈을 길몽(吉夢)으로 해석(解析)하고, 장사꾼들이 정월(正月) 상해일(上亥日)에 문(門)을 열며, 돼지그림을 부적(符籍)처럼 거는 풍속(風俗) 등은 모두 이러한 관념(觀念)에서 연유(緣由)한 것이다. ※ 상해일(上亥日): 정월의 첫 해일(亥日)
이런 긍정적(肯定的) 이미지와는 달리 돼지는 탐욕(貪慾)스럽고, 더럽고, 게으르며, 우둔(愚鈍)한 동물(動物)이라고 생각한다. 설화(說話)에는 돼지가 탐욕(貪慾)스러운 지하국(地下國)의 괴물(怪物)로 등장(登場)한다. 속담(俗談)에서는 돼지의 탐욕(貪慾)스러운 성정(性情) 즉, 욕심(慾心), 지저분함, 돼지의 목청, 어리석음, 게으른 성격(性格)을 비유(比喩)하는 사례(事例)가 많다. 이러한 부정적(否定的) 관념(觀念)은 유대인과 이슬람교도, 성서(聖書)에서는 종교적(宗敎的) 금기(禁忌), 악마(惡魔)의 의도(意圖)와 유혹(誘惑)의 상징(象徵)으로까지 진전(進展)된다.
지상(地上)의 동물(動物)로서 우리는 지저분하고 음란(淫亂)한 돼지를 잘 알 것이다. 이것을 비유(比喩)해 예(禮)를 갖추지 못한 사람을 ‘돼지보다 못한 자(者)’라는 것이 여기서 유래(由來)한 것이다. 음란(淫亂)하고 욕심(慾心)이 많아 사회적(社會的) 병폐(病廢)를 이루기도 하지만 모든 물질(物質)을 혼합(混合)하는데 없어서는 아니 될 핵(核)의 원료(原料)인 수(水)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온갖 황음(荒淫)한 것과 더러운 것의 상징(象徵)이 되어버린 돼지는 한(限)도 많고 원(怨/怨望)도 많다. 옛날의 자유분망(自由奔忙)하고 돌격적(突擊的)인 생활(生活)에서 가축화(家畜化)되어 옛날의 품성(品性)을 전부(全部) 잃어버리게 되었다. 돼지의 울분(鬱憤)과 건망증(健忘症)은 극(極)에 달(達)해 있다. 돼지의 눈은 실컷 두들겨 맞은 눈매를 하고 있다. 용(龍)에 대한 피해망상증(被害妄想症)에 사로잡힌 돼지는 기껏해야 괴성(怪聲)으로 울분(鬱憤)을 토(吐)해 보려고 하나 울분(鬱憤)이 제대로 풀릴 이치(理致)가 없다. 황음(荒淫)한 행위(行爲)로도 시원치 않다.
돼지는 근성(根性)이 강(强)한 동물(動物)이다. 삶, 욕심(慾心), 지구력(持久力) 등에서는 타의추종(他意追從)을 불허(不許)한다. 또한, 우주만물(宇宙萬物) 중에서 가장 황음(荒淫)한 소리를 예사(例事)로 지르기도 한다. 걸핏하면 싸가지 없는 소리를 질러서 먹이만 배터지게 얻어먹는다. 그러나 돼지의 천성(天性)은 착하다. 얻어먹은 만큼 그 이상(以上)을 보답(報答)한다. ※ 싸가지 없다.: 버릇없다.
강한 식욕(食慾), 강한 번식력(繁殖力), 강한 인내(忍耐), 강한 죽음의 소리, 돼지의 언어(言語)는 하나밖에 없다. 온갖 뜻이 담긴 소리로서 요약(要約)하게 되면 ‘용용(龍龍) 죽겠지’이다. 용(龍)과는 숙명적(宿命的)인 앙숙(怏宿)이다. 돼지는 단순(單純)한 행동(行動)만을 되풀이한다. 오로지 먹고 자고 할 뿐이다. 돼지에게는 건망증(健忘症)과 실어증(失語症)이 때로는 편안(便安)한 것이 된다. 오로지 돼지코만 씰룩거리면서 괴성(怪聲)을 질러댈 뿐이다.
돼지머리는 제상(祭床)의 중앙(中央)에 올리어진다. 용신제(龍神祭)에는 꼭 돼지머리가 있어야만 효험(効驗)을 보게 된다. 그것도 콧구멍이 동그란 것이어야 한다. 콧구멍이 각(角)이 져서 보기 싫은 모양(模樣)을 한 것은 절대(絶對)로 안 된다. 돼지 콧구멍이 동그랗게 잘 생겨야만 눈이 웃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돼지는 항상(恒常) 꿀꿀대며 콧구멍의 각질운동(角質運動)을 하게 되는 것이다. 털은 볼품이 없다. 입을 ‘주둥이’라고 한다. 아집(我執)스런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 ‘저 못된 주둥이...’ 하는 것은 돼지처럼 밉게 보일 때 하는 말이다. ※ 용신제(龍神祭)= 용왕제(龍王祭): 음력(陰曆) 정월(正月) 대보름날 물가로 나가 용왕신(龍王神)에게 가정(家庭)의 행운(幸運)이나 장수(長壽)와 풍요(豊饒)를 비는 풍속(風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