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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감상 스크랩 보사노바(BossaNova) 이야기 / 장필순 - 어느새
쥴리아니 추천 0 조회 91 08.04.07 16:5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BossaNova


BossaNova의 탄생


전통적으로 BRAZIL의 노동자ㆍ빈민계층은 타악기 반주가 특색있는 삼바를 즐겼고,중산층을 위한 음악으로는 Samba Cansio 이라는 전통적인 발라드 형식의 노래가 있었다. Samba Cansio의 작곡가들은 기본적인 화음을 가지고 단순하고 외우기 쉬운 음악을 만들었고 가수들의 음성은 강렬했으며 가사는 신파조의 멜로드라마와 같은 내용이었다. 당시의 상류층들은 삼바에 매력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신분적인 격차로 인해 그것을 그대로 즐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자신들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들기에 이르렀는데 그것이 바로 BossaNova였다.

 

삼바의 주 수용층이 흑인 빈민층이라면 BOANOVA는 백인 상류층의 음악으로 시작되었고 나중에 가서 전 계층으로 확대 수용되게 된다. BossaNova는 전통적인 삼바를 대신하지는 않았지만 중ㆍ상류층들에게 음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BossaNova는 BRAZIL의 축제 음악인 Samba리듬에 Cool Jazz의 감각과 West Coast Jazz의 고급스런 선율을 적절히 가미한 변형적, 복합적 음악이다. BossaNova는 '접촉' 이라는 의미의 'Bossa'와 '새로운'이라는 뜻의 포르투갈어 'Nova'가 합성되어, '새로운 물결(New Wave)', '새로운 천성' 란 의미로 불리게 되었다.

 

BossaNova의 태동은 56년 Antonio Carlos Jobim의 곡을 Joao Gilberto가 노래한 'Chega Da Saudade' 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 졌지만, BossaNova는 역사적으로 음악적으로 Jazz와 긴밀한 동질감을 확보하고 있다. Latin America에서 생성된 BossaNova Rhythm은 원래 Africa Rhythm에서 전이된 것이므로 혈통적으로 Jazz와 닮아 있었다. 또한 Jazz의 태동지였던 New Orleans는 한때 Spain과 France가 번갈아 통치했던 식민지였으며, 여기에는 Latin의 여러 문화적인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그런 점에서 Latin Culture와 Jazz는 혈연적 관계에서 놓여 있었고, Ernest Bosman이라는 Jazz Columnist는 "Jazz는 New Orleans에서 잉태된 Latin America 음악의 변형으로 시작된 끝' 이라고 까지 밝히게 된다. 이런 이유로 African Music악에 음악적 뿌리를 내리고 있는 Jazz와 마찬가지로 African Music 분파인 BossaNova Rhythm은 자연스럽게 융화되어 미국 땅에서 친숙함으로 결탁될 수 있었다.

 

제 1세대 BossaNova

 

Samba와 Jazz의 혼합은 Brazilian Guitarist인 Laurindo Almeida가 1953년 Saxophonist Bud Shank과 함께 낸 음반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합작은 고립적이고 개인적인 활동으로 1950년대에 계속되었다. 50년대 후반에 이르러 작곡가 Antonio Carlos JobimㆍLuis Bonfa와 시인 vinicius de moraes , Guitarist Joao Gilberto 등은 전 세계가 주목하게 되는 Samba의 변형을 개발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새로운 경향’, Bossa Nova였다. 그들은 Chopin, Debussy와 같은 Europian Musicians의 미묘한 분위기와 Cole Porter, Frank Sinatra와 같은 American Musicians의 세련미를 갖추게 되었고 그 결과 BossaNova는 매우 독보적인 ‘조화’로서 단순한 즐거움의 음악에서부터 농염한 심오함에 이르기까지를 두루 포괄하고 있었다.

 

1958년 Jobim은 《Chega de Saudade》라는 Album으로, 1959년 Luis Bonfa는 영화 《Orfeu Negro》 O.S.T.에 “Manha de Carnaval”라는 곡으로 BossaNova를 선보이게 되었다. 당대 Brazil 최고의 Musician들이 대거 참여하여 수준 높은 곡들을 담아냈던 이 O.S.T.는 보사노바의 본격적인 등장이라는 점에서 BossaNova史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한다.
JoaoㆍAstrud Gilberto 부부는 BossaNova Volist로 두각을 나타내었다.
1961년 Stan Getz는 Charlie Byrd의 소개로 Brazil의 Jobim, Bonfa, Gilberto를 찾아가 BossaNova에 매료되었다. 그는 1962년 Byrd와 함께 《Jazz Samba》라는 앨범을 발표하면서 미국인들에게 이 Rhythm을 소개하였고 1964년 Jobim, Gilberto 부부와 함께 레코딩한 “Garota de Ipanema”로 폭발적인 BossaNova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BossaNova의 인기는 70년대 말의 Disco나 90년대의 RapㆍHipHop의 열기와 비교될 정도로 대단했다고 한다.

 

제1세대 BossaNova의 특징

BossaNova는 Samba의 Rhythm을 약식화하여 강한 Beat의 자극을 없애고 전체적으로 속도감을 떨어뜨렸으며 Drum을 기준으로 삼았다. 음계는 감미롭고 서정적이고 대중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었다.
BossaNova의 큰 특색은 귓가에 대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작게 속삭이는 듯한 가수의 음성인데 이것은 Samba의 강하게 뻗어나오는 음성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또한 BossaNova 작사가들은 Samba식의 Melodrama나 Tragic한 내용의 가사를 피하고 중ㆍ상류층 생활에 어울리는 가볍고 밝고 쾌활한 내용의 가사를 썼다. 이러한 부분은 당시 Brazil의 젊은 Musician들이 동경하던 미 서부의 Cool Jazz와 상당부분 일치한다. 그러나,BossaNova에 비평도 만만치 않았는데,BossaNova의 국제적 호응으로 Brazil에서는 J. Ramos Tinhorio이 앞장서는 BossaNova비평이 시작되었다. 그는 BossaNova와 Jazz사이의 연관을 강조하면서 “Jobim과 그의 동료들의 음악은 북미의 가치에 부합하면서 Brazil 대중을 Samba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은 당시 비평계의 생각을 잘 드러낸다.

 

BossaNova는 도시화의 자연스런 부산물이자 문화상품의 층을 가르는 결과를 낳았다. BossaNova는 작은 Club과 히우 남쪽 지구의 Apartment지역에서 나타나는, 중산층 시민들을 위한 음악이었던 것이다. Tinhorio은 그의 사회학적인 분석에서 BossaNova의 변화된 화음 사용을 북미 Jazz에 대한 경쟁에서 나온 것으로 동일시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Jobim은 Flat 5개와 Sharp 9개는 Jazz작곡의 영역에선 배타적인 것이 아니고, J. S. Bach 역시 그것을 사용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반박했다. 게다가 BossaNova는 다양한 변수가 있기 때문에 Samba와 Jazz의 혼합으로 단순화해서는 안되고 그 자체를 하나의 음악 개념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Tinhorio의 비평이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지만 북미에 미친 BossaNova의 영향력 또한 대단한 것이었다. Samba의 Jazz화와 Jazz의 Samba화는 서로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제 2세대 BossaNova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 북미에서의 BossaNova는 Rock&Roll의 위세에 눌려 점차 기울기 시작했다. Brazil의 BossaNova는 Nationalism와 Activism 의 성장과 함께 하여 점점 정치적 행동과 사회경제학적 의식에서의 격동과 동일시되었다. 정치적 모순에 불만을 갖고 있었고 BossaNova 주류의 진부함에 싫증을 느끼고 있었던 Brazil의 신세대 Musician들은 보다 정치적이고 깊은 내면을 담은 가사와 함께 강렬한 Africa Beat를 소개하게 되었다. Gilberto Gil에 의해 주도되었던 이러한 Style은 이후 Tropicalismo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다. 반항적이고 주제가 있는 음악은 ‘Formal Line’과 반대되는 ‘Content Line’으로 구분되었고 자유와 대중이라는 Ideology의 확산과 더불어 음악의 사회적 기능은 더욱 강조되었다. 대중음악은 Brazil Sociaty의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1964년 군사정권의 영향을 받았다. 행정주의적 법률은 사회ㆍ정치적 인식을 더욱 날카롭게 했고 음악에서의 반항의식을 고취시켰다. 검열법의 엄격한 적용에도 불구하고 몇몇 형태의 이의제기는 여전히 묵인되었는데 이러한 음악적 Message를 통한 항의는 군사정권에 대한 일반적인 불만을 표현한 것이었다. 1970년대부터 Milton Nascimento, Gal Costa 등등의 많은 Brazil Musician들은 BossaNovaㆍTropicalismo에 기반을 둔 Brazilian Pop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제2세대 보사노바의 특징

1964년 이후, 국가주의ㆍ지방주의는 BossaNova의 가장 큰 관심거리였다. 여전히 Gilberto와 Jobim의 Style이 많이 남아 있었으나, OSSANOVA 제 2세대들이 조금씩 변화를 주도해 나가게 된다.
그들은 사회적 문제 특히 북동부 시골지방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며 음악적 재료에 있어서도 변화를 가져왔다. 작사가들은 BossaNova의 틀에 원시적인 Samba의 요소들을 혼합하기 시작했다. Geraldo Vandre에 의해 이끌어진 몇몇 지방주의자들은 BossaNova의 음에 지방적 색채가 강한 말들을 사용하는 특색 있는 음악을 만들어 냈다. 점점 음악은 Jazz와 비슷한 형태에서 전통적ㆍ지방적 형태로 바뀌어갔다. 일부 Musician들은 초기 BossaNova의 쾌적한 분위기가 사라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좀 더 힘있는 무대 매너를 보여주기도 했으나 그보다 더 공격적인 공연은 사회비판적 주제를 담고 있는 곡들로만 이루어졌다. 내용은 도시 노동자들의 삶, 도시의 병폐, 흑인들의 어려운 처지 등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도시의 중산층을 위한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도 가사에서 시골 풍경을 강조했고 그것을 전통 Brazil 악기와 지방의 토속적 Rhythm, 대중적인 Melody의 모방 등을 통해 표현했다.
BossaNova 제2세대들에 의한 음악적 접근에서의 변화 이후 보사노바라는 말은 더 이상 새로운 경향, 독특한 스타일, 통합된 개념 등을 의미하지는 않게 되었다. 대중적인 유행이 사그라들던 BossaNova는 1980년대 Brazil에서 다시 유행하기 시작하여 Nigeria출신의 가수 Sade가 큰 인기를 누리면서 단계적으로 BossaNova Revival Boom이 일어났다. 대부분의 노래들은 BossaNova 제1세대의 것을 모방 또는 응용한 것이었다.

 

New Bossa Nova Craze!

 

70년대 후반부터 퇴조의 기미를 보이며 잠잠 했던 BossaNova의 물결이 Jazz계로 다시 밀려오는 현상은 94년 4월 Carnegie Holl에서 있었던 Verve 창립 50주년 행사가 기점이 되었다. 이 Carnegie Holl 공연에서 Contemprary Jazz의 지도자 Joe Handerson이 Charlie Haden, Al poster, 그리고 Jobim과 함께 'Desafinado'를 연주하고, Jobim이 'The Girl from Ipanema' 를 Guitar Solo로 들려줌에 따라 이 뜻깊은 행사의 HighLight는 한층 빛났다. 이 공연에서 영감을 얻은 Joe Handerson은 Rio에서 Herbie Hancock, Jack DeJohnette, Christain McBirdy,Paolo Deba가 등과 함께 Jobim의 곡들을 연주한 'Double Rainbow'를 Recording한다. 그해 12월 Jobim이 사망함에 따라 Jobim 생전에 마련된 이 Album은 Jobim의 죽음에 대한 Tribute로 바쳐진다.
'Double Rainbow'는 대대적인 화제를 낳으며 최근 BossaNova 재활의 근원지로 작용한다. 이를 통해 BossaNova와 한끈으로 묶여 있던 Jobim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많은 Artist들이 Jobim의 업적과 영향력을 애도하며 많은 Tribute Album을 남겼다. 그리고 Bub를 비롯한 음반관계자들도 Jobim의 Album을 집대성하는 작업과 함께 BossaNova를 90년대의 상품으로 제안한다.
최근에 공개된 BossaNova Album중 'Red Hot Rio'는 BossaNova에서 Tropicalisro (Rock과 강렬한 African Beat를 가미한 60년대 후반의 Brazil 대중 음악) 에 이르기까지 Brazil 음악에깔려 있는 아름다움과 영향력에 대해 비공식적인 헌정을 하고 있는 앨범이다.
AIDS 환자들의 구호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7번째 행사로 마련된 이 Album에는 Gilberto부부. George Micheal, Sting, Ryuichi Sakamoto 등이 대거 참가하여시선을 집중시켰다.
특정 Genre를 공략한 기획물을 계속 생산했던 Red hot Series는 그 8th Album으로 또 다시 BossaNova를 선택했다. 'Nova Bossa'라는 재미있는 Title로, 기존의 BossaNova 명곡의 Original version을 한 장에 정리해 놓은 이 Album은 최근의 BossaNova의 인기를 반영하며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 70세의 Cool Alto Saxoponist Lee Konitz 가 시도한 BossaNova의 도전을 수록한 'Brazil Serenade'은 최근에 공개된 BossaNova Style중 가장 충실한 내용을 담고 있다. Tom Harrell이 가세한 이 Album은 기존의 BossaNova에 보다 Cool한 감각과 Improvisation의 맛을 강하게 투여한 새로운 형식의 BossaNova Album이다. 'Brazil Serenade'는 일본 Swing Journal에서 부여하는 영예의 'Seal of Approval' Mark를 획득하며 Venus Label에서 출시한 Album중 가장 우수한 작평과 대중적인 성공을 함께 거둔 Album으로 자리하게 된다.

 

최근 BossaNova가 Jazz의 중심으로 밀려들고 있음에 강한 확신을 주는 앨범은 Lee Ritnour가 자신의 Independent Label 2의 출범을 알리며 공개한 'Twist Of Jobim'이다. 이 Album에는 GRP의 사장 Dave Grusin을 비롯하여 Herbie Hancock, Christian Mcbride, Al DeBarge, Al Jarrow 등의 거물급 Musician들이 참가하고 있다. BossaNova를 Fusion풍으로 살짝 뒤틀어서 해석한 이 Album은 Super Star의 대거 참여, Lee Ritnour의 Inde Label 설립이라는 화제를 업고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앨범으로 신 BossaNova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재능과 실력을 겸비한 유능한 Musician들이 90년대 Jazz Scene을 화려하게 꽃 피움에 따라 Jazz의 토양은 더욱 비옥해지고, 동시에 그들은 새로운 표현 양식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런 시대적 요구에 맞춰 BossaNova도 부활의 기운을 비추게 되었다. 지난 시절 전 세계를 강타했던 BossaNova를 자신의 음악에 중용하여, Artist 개인의 음악적 가능성을 확장하고, 새로운 형태의 BossaNova를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BOSSNOVA가 지니고 있는 대중적인 감성에 자신의 창의성을 접착시켜 탄생한, Neo BossaNova는 의도대로 많은 대중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나의 성공이 연속된 시도를 낳고 이것이 근년의 주요한 흐름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90년대의 BossaNova Album들의 대부분이 커다란 화제와 Event성 기획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도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60년대의 BossaNova가 그랬던 것처럼 90년대의 BossaNova 열풍 역시 대중의 호감에 크게 매달려 있다. 아직 Neo BossaNova가 Jazz의 흐름을 주도해 나갈 주류의 음악으로 평가될 수 없으며, 또한 최근에 일고있는 BossaNova 열풍이 Record사와 Artist개인의 상업적 계산 속에 위치하고 있음도 간과할수 없지만, 이 Neo BossaNova 음악이 오늘 우리가 가장 귀 기울여야 하는 소리임에는 틀림없다.

 

자료출처 : 네이버 지식In




대개 음악의 장르가 그렇듯이 보사노바도 음악을 만들고 전파한 대부가 있는데 그가 바로 1931년 브라질의 조그만 마을 '주아제이로'에서 태어난 기타연주자 조앙 질베르또 이다 느린속도의 삼바뮤직에 지루함을 느낀 그는 자신만의 화음과 리듬이 가미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보사노바이다...


보사노바(포르투갈어:Bossa nova 새로운박자 새로운길)는 브라질 음악의 한 형식으로 1950년대 이후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등에 의해 활성화 되기 시작하였다. 삼바에서부터 나온 음악형식이지만, 삼바보다 멜로디가 더 감미롭고, 타악기가 덜 강조된다. 이 장르는 재즈에서 큰 영향을 받았고,브라질등 남미지역에서 크게 유행했다. 영화 (검은 오르페우(Orfeu Negro)가 나온 후 잠시동안은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기도 했다...


80년대 가요계를 얘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부상일 것이다. 김현식, 들국화, 한영애, 신촌블루스, 시인과 촌장과 같은 음악인들은 TV를 비롯한 방송매체의 홍보 없이 공연과 음반만으로도 인기를 얻고 음악 생활을 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줬다.






이른바 '동아기획'이란 이름으로 모인 이들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은 서구에서 유행한 팝 음악의 사조들을 적극 수용해 이를 가요로 소개했고, 보사노바 역시 이들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이 관심 있어 하는 스타일이었다. 특히 보사노바 스타일의 가요로 데뷔한 동아기획 출신 신인 뮤지션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만능 뮤지션 김현철이 들고 나온 '춘천가는 기차'(1989), 김현철이 작곡과 편곡을 맡았던 장필순의 '어느새'(1989) , 박학기의 '향기로운 추억'(1989)은 보사노바가 대중들의 청취 감성에 완전히 뿌리내리는데 기여했다.


장필순... 장필순은 1982년 대학연합 창작음악 동아리 '햇빛촌'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여 1983년 여성듀엣 ‘소리 두울’로 활동하였다. 이후 조동진, 해바라기, 들국화 등의 콘서트 게스트로 참여하고, 1989년 데뷔 앨범 「어느새」를 발표하며 조금씩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후 3집「이 도시는 언제나 외로워」(1992)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하나뮤직’ 뮤지션들과의 작업은 장필순의 음악 이력에서 전환점이 되었다... 근데 이곡이 나온지도 벌써 18년이 되었고 더군다나 이 새로운 쟝르의 리듬을 김현철 이라는 뮤지션이 스무살때 이곡을 만들었다 하니 그의 음악적 재능은 누가봐도 인정해야 할듯 싶다...






이문세 - 가을이 오면


물론 이들의 부상하기 전에도 이미 보사노바는 가요의 새바람을 예고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조동익/이병우로 구성된 듀오 그룹 어떤날의 '오래된 친구'(1986),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1987),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1987), 오석준의 '우리들이 함께 있는 밤'(1988), 조덕배의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1989) 같은 곡들이 꾸준히 라디오 전파를 타고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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