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 달 살기를 꿈꾸고 올레길을 걸으며 제주의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싶어하는 이도 많은데
일 년동안 제주에서 삼시 세끼를 먹고 한라산을 바라보며 잠들고 직장생활을 하였으니 난 참 행복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직장생활이 어디서나 그렇듯이 희로애락이 늘 뒤섞이기 마련이다.
한가한 주말마다 이름도 없는 제주의 숲길을 걸었고 호젓한 마을을 산책하였다.
길에서 만난 제주의 자연은 앵글속에 모두 담을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신비했다.
육지에선 볼 수 없는 야생화와 노루, 말, 드넓은 태평양, 한라산의 깊은 골과 이불처럼 덮힌 설죽과 험준한 지형들
거칠고 칙칙한 화산의 흔적으로 어디서나 데굴대는 돌, 향긋한 당근밭, 겨울에 피는 빨간 동백꽃,
보기만해도 침이 고이는 밀감나무, 4.3 사건의 아픈 흔적에서 포구의 활력과 조금은 시끄럽고 조금은 이국적인 제주의 특유한 언어까지 제주는 생생했고 신비롭고 특별했다.
며칠의 여행에선 결코 알 수 없는 제주의 속살들을 사계절의 문을 열고 보고 듣고 체험하였다.
어떤 장소에선 무서움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만큼 제주에는 태고적 원시림이 곳곳에 남아 있다.
육지에선 사라져간 밀밭, 보리밭 한 가운데에 들어가 풋풋한 냄새를 맡고 까실까실한 이삭을 만졌던 느낌은
참말로 잊지못할 기억으로 남았다.
나만이 아는 작고 소소한 감동들이 기억의 바다에서 항상 출렁대며 머물러 주었으면 한다.
언젠가 내게도 삶의 여유라는 것이 주어진다면 제주의 어느 작고 한적한 마을 한 모퉁이에 작은 별채를 짓고
오래토록 머물고 싶다.
외롭고 쓸쓸한 순간마다 하나님을 찾았고 그분과의 깊은 교제의 시간이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이름없는 올레길을 걸으며 느꼈던 감정들이 어쩌면 기억 저 너머로 사라질지 몰라도
언젠가 인생의 고비마다 찰진 에너지가 되어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자양분이 되리라 믿는다.
비로소 깨닫는다. 사람이란 어디에 머물든 본인의 자세에 따라 아름다운 곳이 되기도 하고
지겨운 장소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제주에서의 생활을 접어야 할 때가 왔다.
직장의 사정으로 더 이상 제주에서의 생활을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
한편 섭섭하고 한편 다시 집으로 돌아가 생활할 것을 생각하니 홀가분하기도 하다.
육지에서 만날 새로운 환경과 낯선 사람들과의 인연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제주에서의 생활처럼 활기차고 신명나게 살고 싶다.
물론 제주만큼은 아름다운 환경은 이닐지라도 제주에서 얻은 삶의 지혜를 그곳에서도
동일하게 작동시키며 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