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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바라본 조국광복(祖國光復)과 평화이상세계(平和理想世界)<1>
<평화경p.1278> 통일교회(統一敎會)의 용어(用語)로 조국(祖國)이라고 함은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는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세계적(世界的)인 나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세계적(世界的)이라는 말은 타락(墮落)한 세계권(世界權)에서 쓰이는 말이므로 기분(氣分)이 나쁩니다. 이런 조국(祖國)을 찾아 나아가는 주의(主義)를 통일교회(統一敎會)에서는 천주주의(天宙主義)라고 합니다. 그 조국(祖國)은 대한민국(大韓民國)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조국(祖國)은 대한민국(大韓民國)이 아니요. 미국(美國)도 아니요 공산국가(共産國家)도 아닙니다. 그 조국(祖國)은 하나님이 원(願)하는 조국(祖國)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새로운 그 조국(祖國)의 문화(文化)를 이루어야 하고 그 조국(祖國)의 역사(歷史)를 이뤄야됩니다. 우리는 새로운 이상적(理想的)인 조국(祖國)을 세우기 위하여 기준(基準)을 새롭게 정(定)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활(生活)을 바꿔야 합니다. 그 세계(世界)는 이 세계(世界)와 전부(全部) 다릅니다. 말도 다른 것입니다. 원리주관권(原理主管權)이니 상대기준(相對基準)이니 상대기대(相對基臺)니 복귀기대섭리(復歸基臺攝理)라고 하는 중요(重要)한 말들을 세상(世上)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러니까 다르다는 것입니다.
<말선358-307> 제멋대로 할 수 없다구요. 종교(宗敎)들이 찬양(讚揚)하고 국가(國家)들이 찬양(讚揚)할 수 있는 그런 과정(過程)을 거쳐야 돼요. 국가(國家)의 이익(利益)과 종교(宗敎)의 이익(利益), 또 하나님이 이익(利益)이 될 수 있는 것까지도 심의(審議)해야 돼요. 꿈도 못 꿀 수 있는 데까지 가지 않고는 세계(世界)가 바로 잡히지 않아요. 유엔(UN)이 국가(國家) 이익(利益)에 기초(基礎)를 둔 정치(政治)와 외교(外交)의 힘(力)에 의(依)하여 관장(管掌)되는 차원(次元)을 넘어서서 지구성적(地球城的)인 이념(理念)과 높은 신(神)의 이상(理想) 아래, 관장(管掌)하는 기구(機構)가 되어야 만인(萬人)의 권익(權益)을 보호(保護)하고 평화세계(平和世界)를 창건(創建)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말선358-308> (2001년11월04일, 대구 인터불고호텔 ) 향후(向後) 세계 질서(世界秩序)는 정치주권(政治主權)이 도덕적(道德的), 영적(靈的), 사상적(思想的), 가치(價値)와 별개(別個)로 작용(作用)해서는 공익(公益)과 평화(平和)가 보장(保障)되기는 어렵습니다. 신(神)의 이상(理想)에 기초(基礎)하고 우주공법(宇宙公法)과 통(通)하는 영적(靈的) 도덕적(道德的) 고차원(高次元)의 지도력(指導力)이 요청(要請)되는 것입니다. 지금이 그런 때입니다.
정치력(政治力)이나 그 어떤 힘(力)도 신(神)과 천리(天理) 위(位)에 설 수 없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돼요. 아무리 대통령(大統領)이라 해도 천운(天運)을 타야됩니다. 암만 자기(自己) 힘(力)으로 해 보라구요. 안 떨어지겠다고 죽을 힘(力)을 다해도 떨어져 나가요. 천운(天運)을 타야 돼요. 고차원(高次元)의 지도력(指導力)이 요청(要請)되는 것입니다.
<말선219-p,336~337> 인류역사(人類歷史)가 몇 천년(千年)인지 알아요? 6천년(六千年)이 아닙니다. 인류역사(人類歷史)는 2억5천만년(二億五千萬年)으로 잡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 이후(創世以後)에 하나님이 그 수욕(受辱)을 당하면서 얼마나 괴롭고 원통(怨痛)했겠어요? 그런 사실(事實)을 누가 알아요? 이러한 배후(背後)에 부모(父母)의 인연(因緣)을 통(通)해 가지고 참부모의 혈육(血肉)으로서 참사랑을 중심삼은 생명(生命)과 혈통(血統)을 깨버렸다는 그런 후계자(後繼者)들로서 죽으면 죽었지...,
전부(全部) 다 그렇잖아요? 대나무가 소나무 될 수 있어요? 죽더라도 대나무로 죽어야 돼요. 자라기를 대나무로 자라야 된다구요. 선생님(先生任)이 고향(故鄕)에서의 탕감노정(蕩減路程)없이 여러분들의 고향(故鄕)을 수습(收拾)하기 위해서 밤잠이나 제대로 잤어요? 명령(命令)이 떨어지자마자 들어가 산(山)구덩이를 파고 땅굴을 파서 전부(全部) 피난민생활(避難民生活)을 하면서 이 노릇을 시작(始作)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건국사상(建國思想)의 전통(傳統)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아담가정(家庭)에서부터 지옥(地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타락(墮落)했으니 저 세계(世界)에 가지 않고는, 아담가정(家庭) 종족(宗族)들은 저 세계(世界)에 가지 않고는 하늘나라는 없습니다. 이 세계(世界)의 모든 것을 부정(不正)해야 돼요. 옛날에 연애(戀愛)했던 첫사랑의 사진(寫眞)같은 것은 물론(勿論) 이름까지도 자기(自己) 머리속에서 잊어버려야 돼요. 하늘은 그렇게 축복(祝福)하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첫 번 사랑을 중심(中心)한 왕자왕녀(王子王女)들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은 황족(皇族)이에요 황족(皇族),
황족(皇族)들이 들어가는 곳이 천국(天國)입니다. 기독교인(基督敎人)들 무조건(無條件) 예수 믿고 천당(天堂)가? 통일교회(統一敎會) 문총재(文總裁)가 믿고 알고 있는 천국(天國)은 본래(本來) 타락(墮落)하지 않은 하늘나라의 황족(皇族)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황후(皇后)와 하나님의 아들딸 왕자왕녀(王子王女)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천국(天國)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자권복귀(長子權復歸), 부모권복귀(父母權復歸), 왕권복귀(王權復歸)의 권한(權限)을 가져야 돼요.
아담은 주체적(主體的) 남자(男子)지요? 첫 번 부모(父母)지요? 부모(父母)인 동시(同視)에 왕(王)이에요. 왕(王). 종주(宗主)가 크면 왕(王)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천년만년(千年萬年) 주인(主人)이 되기 때문에 지상(地上)의 왕(王)이 돼가지고 천상세계(天上世界)의 왕(王)이 되는 것입니다. 저 나라에 가게 되면 예수님이 왕(王)같은 입장(立場)에 있습니다. 그런데 황후(皇后)가 없습니다. 황후(皇后)가 없어가지고는 천상세계(天上世界)의 법도(法度)를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남자여자(男子女子)를 왜 만들었어요? 사랑 때문에 만들었지요?
예수님이 남자(男子)예요, 여자(女子)예요? 남자(男子)니까 땅 위에 와가지고 사랑의 이상(理想)을 갖추고 가야 할 것인데 못 갖추고 갔습니다. 못 갖추었으니 재림시대(再臨時代)에 다시 오겠다는데 예수가 장가(杖家)간다고 해서 나가자빠져요? 내가 그 놀음한다고 전부(全部)다 이단(異端)이라고 하지요? 두고보라구요. 천상세계(天上世界)에 가 보라구요. 예수님이 내 앞에 경배(敬拜)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무식(無識)한 녀석들! 내가 예수님을 교육(敎育)하지, 예수님이 나를 교육(敎育)할 수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평화경p1198~1200> 오늘날 한국(韓國)이 하나님 섭리(攝理)의 초점(焦點)이 되고 있다는 것과 세계문제(世界問題)의 관건(關鍵)이 한반도(韓半島)에 있다는 것을 밝히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世界)의 상황(狀況)을 여러 면으로 바라보게 될 때 누구나 실망(失望)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류(人類)의 간절한 소원(所願)이 자유(自由)와 평화(平和)와 안정(安定)임에도 불구(不久)하고 세계적(世界的) 혼란(混亂)은 날이 갈수록 더욱 악화(惡化)되어 인류(人類)의 장래(將來)는 이제 절망상태(絶望常態)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세계지도자(世界指導者)들의 끊임없는 노력(努力)에도 불구(不久)하고 세계문제(世界問題)는 더욱 복잡(複雜)해지고 더욱 어렵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民主主義)나 공산주의(共産主義), 종교(宗敎)나 철학(哲學)도 세계문제해결(世界問題解決)에 전적(全的)으로 무력(無力)함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인류역사(人類歷史)는 하나님의 섭리역사(攝理歷史)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攝理)의 뜻을 모르고서는 세계문제해결(世界問題解決)이 불가능(不可能)한 단계(段階)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은 분단(分斷)된 한반도(韓半島)에 초점(焦點)을 두고 세계(世界)를 섭리(攝理)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攝理)의 뜻을 알려면 한반도(韓半島) 분단(分斷)의 의의(意義)를 이해(理解)해야 할 것입니다. 한반도(韓半島)의 휴전선(休戰線)은 공산독재체제(共産獨裁體制)와 자유민주체제(自由民主體制)가 대립(對立)하고 있고 악(惡)편의 좌익(左翼)과 선(善)편의 우익(右翼)이 대결(對決)하고 있으며, 유물론(唯物論)과 유심론(唯心論), 무신론(無神論)과 유신론(有神論)이 부딪치고 있는 대치선(對置線)인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世界)는 사상(思想)과 체제(體制) 면(面)에서 볼 때, 미국(美國)과 러시아를 양극(兩極)으로 하여 민주진영(民主陣營)과 공산진영(共産陣營)으로 갈라져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반도(韓半島)는 세계(世界)의 축소형(縮小型)이요. 세계(世界)는 한반도(韓半島)의 확대형(擴大型)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심오(深奧)한 경륜(經綸)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축소형(縮小型)인 한반도(韓半島)의 통일(統一)을 먼저 이룩하고 같은 방식(方式)을 확대형(擴大型)인 세계(世界)에 적용(適用)하여 세계(世界)의 사상적(思想的) 체제적(體制的) 통일(統一)을 달성(達成)하시려는 섭리(攝理)인 것입니다.
한반도(韓半島) 휴전선(休戰線)의 또 하나의 섭리적의의(攝理的意義)는 구약시대(舊約時代)의 헤브라이즘의 흐름을 이어받은 기독교문명(基督敎文明)과 헬레니즘의 흐름을 계승(繼承)한 공산주의문명(共産主義文明)이 이 휴전선(休戰線)에서 대치(對峙)하고 있다는 사실(事實)입니다. 헤브라이즘 문명(文明)과 헬레니즘 문명(文明)은 로마를 중심하고 예수님에 의하여 통일(統一)되게 되어 있었으나, 예수님의 십자가(十字架) 형(刑)으로 인(因)하여 통일(統一)의 기점(基點)이 없어졌기 때문에 그것이 오늘날까지 평행선(平行線)을 이루어 나왔습니다.
한편이 우세(優勢)했다가 때로는 다른 한편이 우세(優勢)하면서, 오늘날에 이르러 헤브라이즘의 흐름은 기독교문명(基督敎文明)에 연결(連結)되고 헬레니즘 문명(文明)은 공산주의문명(共産主義文明)에 이어져서 한반도(韓半島)의 휴전선(休戰線)을 사이에 두고 대치(對峙)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반도(韓半島)에서 이 두 흐름의 문명(文明)이 통일(統一)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생각(生角)할 때 이런 점(點)에서 휴전선(休戰線)은 섭리적의의(攝理的意義)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한국(韓國)은 지정학적(地政學的)으로 4대 강국(四大强國)의 틈바구니에 있음으로 해서 불리(不利)한 점(点)도 있으나 섭리(攝理)의 초점(焦點)이 한국(韓國)이기 때문에 한반도(韓半島)의 성공(成功)을 세계(世界)에 넓히는데 있어서는 강대국(强大國)을 거칠 수 있어서, 그런 점(点)에서는 오히려 빠른 입장(立場)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한반도(韓半島)의 통일(統一)을 어떻게 달성(達成)하려 하시겠습니까? 그것은 섭리적(攝理的) 중심(中心)으로 한 분을 세워서 그를 통(通)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實踐)하도록 섭리(攝理)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내 이웃, 내 나라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國家)를 넘어 전세계(全世界)까지 위(爲)하는 사랑이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적(世界的)인 원수(怨讐)까지도 위(爲)하는 사랑입니다. 원수(怨讐)를 위하여 기도(祈禱)하고 원수(怨讐)를 위하여 필요(必要)하면 목숨까지도 바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천년(二千年) 전(前) 메시아로 오셨던 예수님이 바로 그 사랑의 주인공(主人公)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十字架)에 달리면서까지 원수(怨讐)를 사랑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잠깐 예수님의 십자가(十字架) 형(刑)에 관하여 언급(言及)하기로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과 함께 두 사람의 강도(强盜)가 십자가(十字架)에 달린 것을 아실 것입니다. 여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右)편 강도(强盜)는 예수님을 증거(證據)하여 선(善)편이 되었고, 좌(左)편 강도(强盜)는 예수님을 비방(誹謗)함으로써 악(惡)편이 되었습니다. 특히 우(右)편 강도(强盜)는 좌(左)편 강도(强盜)에 비(比)하여 예수님을 옹호(擁護)하면서 좌(左)편 강도(强盜)를 끝까지 비방(誹謗)했습니다. 이리하여 십자가(十字架)는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對決)의 결전장(決戰場)이요. 모든 문제해결(問題解決)의 초점(焦點)이 되게 된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眞理)요. 생명(生命)인 예수님이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셔서 고통(苦痛) 중에도 원수(怨讐)를 사랑하며 양편(兩偏)에 선악(善惡)을 각각(各各) 거느리셨다는 것은 대단히 깊은 섭리(攝理)의 뜻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한 화해원리(和解原理), 통일(統一)의 원칙(原則)이 내포(內浦)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선(善)편과 악(惡)편의 대립(對立)을 위시(爲始)하여 모든 종류(種類)의 대립투쟁(對立鬪爭)· 충돌(衝突)은 희생적(犧牲的)인 사랑에 의해서만 화해(和解)될 수 있고 통일(統一)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며, 어떠한 어려운 상황(狀況)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實踐)할 수 있어야만 죄인(罪人)을 회개(悔改)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十字架)를 중심(中心)한 좌편강도(左便强盜)와 우편강도(右便强盜)는 먼 앞날의 역사적(歷史的) 종말점(終末點)에서 현실적(現實的)인 선(善)과 악(惡)의 대립(對立)으로 결실(結實)될 종자(種字)의 입장(立場)이기도 하다는 사실(事實)을 이해(理解)하셔야 하겠습니다. 선(善)편의 우익(右翼)과 악(惡)편의 좌익(左翼)이라는 이름이 금세기(今世紀)에 나타난 사실(事實)도 예수님의 십자가(十字架)에 기인(起因)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선(善)편의 자유진영(自由陣營)과 악(惡)편의 공산진영(共産陣營)의 출현(出現)은 이미 2000년 전(前)에 십자가(十字架)를 중심(中心)하고 보여주셨던 것이며, 뿐만아니라 좌우강도(左右强盜)의 대립(對立)은 그 후(後) 수많은 대립투쟁(對立鬪爭)의 원형(原型)이 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좌익(左翼)과 우익(右翼)이라는 이름의 역사적(歷史的) 기원(紀元)은 실로 십자가(十字架)의 좌우편(左右便)의 강도(强盜)에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우(右)편 강도(强盜)는 생명(生命)을 걸고 좌(左)편 강도(强盜)에 대항(對抗)하면서 예수님을 증거(證據)하였기 때문에 죽어서 부활(復活)하여 낙원(樂園)에 가 있는 것처럼, 오늘날 우(右)편 강도(强盜)와 같은 입장(立場)에 있는 우익(右翼)의 대표(代表)인 미국(美國)이 좌편(左便) 강도(强盜)에 해당(該當)하는 러시아에 대(對)하여 끝까지 강력(强力)한 대결(對決)을 견지(見至)해 나간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공인(公人)을 받아서 지상천국(地上天國)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십자가상(十字架上)의 선(善)편과 악(惡)편의 대립(對立)으로 상징(象徵)되는 현실(現實)의 모든 대립(對立)과 투쟁(鬪爭)의 상황(狀況)은 한반도(韓半島)의 휴전선(休戰線)이 그대로 집약적(集約的)으로 표현(表現)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남북(南北)으로 갈라진 휴전선(休戰線)은 세계분단(世界分斷)의 섭리적(攝理的) 대속(代贖)을 위한 민족적(民族的) 십자가(十字架)인 것입니다. 여기서 한국(韓國)은 십자가상(十字架上)의 예수님에 해당(該當)하며 재림(再臨)의 기지(基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왜 이와 같은 섭리(攝理)를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이 민족(民族)에게 십자가(十字架)를 지운 것은 이 민족(民族)을 소명(召命)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 민족(民族)은 오랫동안 하늘을 공경(恭敬)하며 도(道)의 정신(精神)과 평화정신(平和精神)을 가지고 오랜 시련(試鍊)을 이겨낸 수난(受難)의 민족(民族)이요. 선(善)의 민족(民族)이기 때문에 소명(召命)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하여 끝날에 인류(人類)를 구원(救援)하기 위한 섭리사적(攝理史的) 제물(祭物)이 된 것입니다. 수 천년(數千年)동안 고난(苦難)의 역사(歷史)를 지내 온 한국(韓國)은 마지막으로 인류구원(人類救援)의 제물(祭物)이 되어 분단(分斷)이라는 세계사적(世界史的)인 십자가(十字架)를 지고 온갖 시련(試鍊)을 이겨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제물(祭物)로 소명(召命)된 민족(民族)이기 때문에 섭리(攝理)의 초점(焦點)이 한국(韓國)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민족(韓民族)으로서 영광(榮光)인 동시(同時)에 은사(恩賜)요, 두렵고 무거운 짐임을 이해(理解)해야 합니다. 제물(祭物)된 민족(民族)으로서의 책임(責任)을 다할 때는 가장 영광(榮光)된 축복(祝福)을 받게 될 것이지만, 책임(責任)을 다하지 못할 때는 가장 심(甚)한 불행(不幸)이 닥쳐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2천년(二千年) 전(前)의 유대백성(留待百姓)들은 책임분담(責任分擔)을 다하지 못하였기에 역사(歷史)를 통(通)하여 크게 불운(不運)을 맞았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민족(民族)에 부과(附過)된 섭리사적(攝理史的) 제물(祭物)의 사명(使命)을 다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실천(實踐)과 더불어 하나님의 진리(眞理)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중심(中心)한 실체(實體)로서 자신(自身)은 길이요 진리(眞理)요 생명(生命)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과 진리(眞理)의 실체(實體)로서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셨습니다. 이것은 선(善)편과 악(惡)편을 화해(和解)시키고 원수(怨讐)를 회개(悔改)시키는데 있어서는 사랑과 더불어 진리(眞理)가 필요(必要)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진리(眞理)란 세속적(世俗的)인 진리(眞理)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관(觀)한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眞理)는 일정(一定)한 섭리적(攝理的) 인물(人物)을 통(通)하여 계시(啓示)로서 지상(地上)에 전달(傳達)됩니다. 하나님의 진리(眞理)는 절대진리(絶對眞理)입니다. 절대진리(絶對眞理)는 만능(萬能) 키와도 같은 것으로서 이 진리(眞理)를 적용(適用)하면 어떠한 난문제(難問題)도 풀리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대결(對決)의 화해(和解)와 통일(統一)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의 실천(實踐)과 진리(眞理)가 필요(必要)하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휴전선(休戰線)을 사이에 두고 선(善)편과 악(惡)편으로 갈라진 한민족(韓民族)이 선(善)편의 진리(眞理)를 가지고 악(惡)편 사상(思想)의 과오(過誤)를 깨우쳐 주면서 사랑으로써 품고 나간다면 통일(統一)은 기필코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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