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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문희시인
석모도 민박집
안시아
바다에 꼬박꼬박 월세를 낸다 외포리 선착장에서 나눠줄 광고지 한 켠 초상권을 사용해도 된다는 계약조건이다 인적 드문 초겨울 바닷가, 바다는 세를 내릴 기미가 없고 민박집 주인은 끝물의 단풍처럼 입이 바짝 마른다 알고 보면 어느 것 하나 내 것인 게 없다 슬쩍 들이마신 공기와 내 몫을 챙겨온 하늘 게다가 무단으로 사용한 바람까지 불평 없이 길을 내주는 백사장 위 스물 몇 해 월세가 밀려 있는 나는 양심불량 세입자인 셈이다 수평선을 끌어다 안테나를 세운 그 민박집 바다가 종일 상영되는 발이 시린 물새 몇 마리 지루한 듯 채널을 바꾼다 연체료 붙은 고지서처럼 쾡한 석모도 민박집에서 내 추억은 몇 번이나 기한을 넘겼을까
바닷가 먼지 자욱한 툇마루엔 수금하러 밀려온 파도만 가끔 걸터앉는다
-약력 1974년 서울 출생. 한양여자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2003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수상한 꽃』이 있음.
-감상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찾아 읽는 시가 있다. 안시아 시인의 「석모도 민박집」이 그 대표적인 시인데 읽을 때마다 ‘참 좋은 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묘한 질투심에 사 로잡혀 밤을 꼬박 새웠던 기억이 난다. 동료 시인에게 질투심을 유발할 만큼 「석모도 민박집」은 내 기 억 속에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그 후 나는 석모도 구석구석을 뒤져 시의 배경이 되는 민박집을 찾아보 았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석모도 민박집」은 바닷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내 눈 에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석모도 민박집」은 마음속의 풍경, 즉 이미지를 읽어버린 내게 눈을 씻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시이기도 하다. / 고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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